‘무자성’은 ‘무성(無性)’이라고도 한다. 삼성의 ‘性’은 sva·bhāva(自性)이고, 삼 무자성의 ‘無自性’은 ‘niḥ·svabhāva’이다. ‘性’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을 뜻하는
‘自性’이다. 자성이 없음이 ‘無自性’이다.
삼성의 진리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 삼 무자성이 된다. 삼 무자성은 삼성(三性) 각각에 해당하는 진리다. 상(相) 무자성은 변계소집성, 생(生) 무자성은 의타기성, 승의(勝義) 무자성(無自性)은 원성실성에 대응된다.
210) 길희성, 인도철학사 , 165쪽.
이는 허망 분별한 상들은 공(空)이기 때문에 ‘상 무자성’이다. 연기에 의해 생기 는 것은 공이기 때문에 ‘생 무자성’이다. 제법의 실상은 본래 공이기 때문에 ‘승의 무자성’이다.
⑴ 상(相 lakṣaṇa) 무자성은 “모습(相)은 스스로 존재함(自性)이 없다.”이다.
욕망 감정에 집착하여 본 모습들은 실체, 즉 스스로 존재함이 없다. 예컨대 새끼 줄을 뱀으로 착각한 것이다. 이는 변계소집성이다.
나아가 분별하여 개념화하는 것 역시 ‘상 무자성’이다. 대상을 추상화 개념화시 킴은 분별 집착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용수가 중론 에서 비판하듯이, 生-滅, 斷 -常 등의 한 극단을 잡아서 이론을 만든 것은 희론(戱論 말장난)이다. 실제로 존재 함이 없다.
⑵ 생(生 utpatti) 무자성은 “생겨남은 스스로 존재함(自性)이 없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의존하여 발생한다. 이것이 연기의 법칙이다. ‘생겨남’(生)은 연기의 관 계이다. 이는 분명히 현실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원인-결과의 관계에 따라 생 기는 것이기 때문에 본래 자성(自性 스스로 존재함)이 없다. 남에 의존해서 생겨난 다. 의타기성이기 때문에 무자성(無自性)이다. 현재의 심식은 과거의 습기(習氣)와 연(緣)에 의해 생기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무자성이다.
⑶ 승의(勝義 paramārtha) 무자성은 “최고의 무자성”이다. 남에 의지하여 생겨 나는 것(의타기성)이 현실의 사물과 변화를 이룬다. 이를 착각하여 망집(妄執)한 것 이 변계소집성이다. 그래서 무자성이다. 의타기성 역시 8식의 씨앗이 전변한 것이 다. 그래서 무자성이다. 승의 무자성은 아공관(我空觀)과 법공관(法空觀)을 체득함 으로써 나타나는 것이다.211)
3) 5위 100법
설일체유부가 모든 존재자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세계를 다섯 범주, 75가지의 사물로 나눈다. 5위 75법이 그것이다. 이는 설일체유부의 철학이 녹아든 것이다.
유식 역시 자신들의 철학에 따라서 모든 존재자를 5위 100법212)으로 분류하였 다.
⑴ 설일체유부의 철학을 종합한 구사론 에 따르면, 5위는 “색법(色法) 11개, 심 법(心法) 1개, 심소법(心所法) 46개,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 14개, 무위법(無 爲法) 3개”, 총 75개이다. 무위법 3개를 뺀 나머지는 모두 유위법(有爲法)이다.
211) 곽철환, 불교 길라잡이 , 73-74쪽.
212) 한자경, 성유식론 강해 , 서광사, 2019, 53-54쪽.
색법은 사물이고, 심법은 마음이다. 심소법은 마음이 소유한 법이다. 심불상응행 법은 의식의 흐름에 영향을 주면서도, 의식의 대상이 되지 않는 요소들이다.213) 이 상은 그 존재와 움직임이 드러나는 유위법이다. 무위법은 허공, 택멸(擇滅), 비택멸 (非擇滅)의 셋이다.
⑵ 유식은 이 다섯 가지 범주를 그대로 채택한다. 다만 법의 개수가 100개로 늘 어난다. 색법 11개, 심법 8개, 심소법 51개, 심불상응행법 24개, 무위법 6개이다.
이렇게 개수가 늘어난 이유는 유식이 의식을 중심으로 철학을 전개하기 때문이 다. 설일체유부는 인공법유(人空法有)를 주장하지만, 유식은 인유법공(人有法空)이 라 하여 정반대의 입장으로 간다.
이렇게 존재자를 분류하는 것은 붇다에 근원이 있다. 붇다는 사람을 色受想行識 의 ‘다섯 덩어리’, 즉 오온(五蘊)으로 분류한다. 또한 “眼耳鼻舌身意”라는 여섯 감 각 기관(六根 여섯 뿌리)과 그 대상인 “色聲香味觸法”의 육경(六境)을 합하여 12처 (處)라 한다. 여기에 여섯 감각 기관의 능력을 더해서 18계(界)라고도 한다. - 이것 보다 더 조직적으로 분류한 것이 5위 75법 혹은 100법이다.
⑶ 유식의 5위 100법은 다음과 같다.
‘색법’은 대상 사물이다. 감각 기관인 “眼耳鼻舌身”의 5근(五根)과 그 대상인
“色 聲香味觸”의 오경(五境), 그리고 1개의 법경(法境 사물이라는 대상)이 있다. 법 경은 6식 의식(意識)의 대상이다. 전5식은 대상 사물의 일부분의 자료를 가져온다.
그 자료를 종합해서 대상을 구성하는 것이 6식이다. 종합된 대상을 법경이라 한다.
‘심법’은 마음이다. 유식은 마음을 8개의 식으로 구분한다. 8개는 전5식과 6식인 의식, 7식 마나식, 8식 알라야식이다.
‘심소법’은 "마음속에 존재하는 법"이다. 의식 작용 또는 마음 작용에 의해서 일 어나는 것이다. ① 두루 일어나는 것(遍行) 5개, ② 다른 대상, 특정 대상에서만 일 어나는 것(別境) 5개 ③ 선한 것(善) 11개. ④ 번뇌인 것(煩惱) 6개 ⑤ 번뇌에 따 른 것(隨煩惱) 20개 ⑥ 정해지지 않은 것(不定) 4개.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 行法)’은 “심에 상응하지 않는 행법”이다. 마음 혹은 의 식의 흐름, 행위에 영향을 주면서도 심소법처럼 의식에는 잡히지 않는, 의식의 대 상이 되지는 않는 법들이다. 예컨대 ① 낱말(名身), 구절(句身), 문장(文身) ② 태어 남(生), 머무름(住), 늙음(老) ③ 시간(時), 공간(方), 수(數) ④ 화합성(和合性), 불화 합성(不和合性) ⑤ 일정함이 없음(無常), 흘러감(流轉), 다름이 정해짐(定異), 상응 (相應), 세력의 속도(勢速), 차례(次第) ⑥ 득(得) 업에 따라서 결과를 얻게 함. ⑦ 명근(命根) 수명을 결정하는 생명력, ⑧ 무상보(無想報), 무상정(無想定), 멸진정(滅 盡定) 定은 ‘정해짐’, 명상의 마음 상태이다. 분별 작용이 사라진 정신 상태를 단계 별로 나타낸 것이다. ⑨ 중동분(衆同分) 무리와 같은 부분. 자기가 속하는 무리의 공통적 특징을 갖게 함. 이 가운데 ①과 ⑥~⑨는 설일체유부의 분류와 같다.
무위법214)은 “함이 없는 것”이다. 설일체유부가 말하는 “허공, 택멸, 비택멸”에 213) 길희성, 인도철학사 , 69쪽.
“부동(不動), 상수멸(想受滅), 진여(眞如)의 셋을 보탠 것이다. 조건에 따라 생성 소 멸하지 않는 허공, 지혜에 의해 얻어지는 열반인 택멸(擇滅) 무위(無爲), 어떤 인연 도 없기 때문에 아무 법도 생기지 않는 비택멸(非擇滅) 무위는 공통된다. 무위는 생주이멸의 사상(四相)을 떠난 절대적이고 영원한 법으로 간주한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허공은 절대적 공간을 말한다. 즉 공간은 점유성을 가진 물질이 운동할 수 있게 하는 근거로서 그 자체 불생불멸이기 때문에 무위라고 한다. 허공와 시간, 공 기는 분명 존재하지만 조건에 의해 생성하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둘째, 택멸은 “(고통을) 택해서 없앰”이다. 열반을 말한다. 즉 무지와 집착에 의 한 일체의 번뇌를 끊어,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상태를 말한다. “고집멸도(苦集滅 道)”의 사성제의 진리를 깨달아서, 고통을 택해서 없앰, 그래서 해탈에 도달함이다.
열반에 도달하면 윤회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무위법이다.
셋째, 비택멸은 사성제의 지혜에 의해서 획득한 택멸과 달리, 저절로 획득한 열 반이란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열반은 불교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열반과는 다르다. 즉 유부에 의하면, 모든 존재는 삼세에 걸쳐 실재하며, 미래법은 현재법과 의 일정한 조건과 결부될 때 미래에서 현재로 현행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떤 미래법들은 현재의 조건과 결부하지 못하고, 영원히 미래에 머무는 법들이 있는데, 이들 법들을 일컬어 비택멸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현재의 연(緣, 조건)을 결여하 여, 현재로 생겨나지 않기 때문에 소멸하지도 않는다고 하여, 비택멸이라고 한다
넷째, 부동(不動)은 생각이나 의지가 흔들리지 않는 단계이다. 의지가 확실하기 때문에 번뇌나 집착을 일으키지 않는다.
다섯째, 상수멸(想受滅)은 대상의 특징이나 관념을 떠올리는 표상 작용과 괴로움 이나 즐거움 등을 느끼는 감수 작용이 소멸된 마음 상태를 말한다. 즉 상(想)과 수 (受)의 마음작용이 소멸되었다는 것으로 상수멸의 상태에서 드러나는 또는 깨닫게 되는 무위를 말한다.
여섯째 진여(眞如)는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뜻으로 우주 만유의 본체 인 평등하고 차별이 없는 절대 진리를 이르는 말이다. 즉 궁극적인 진리, 변하지 않는 진리를 말한다.
유식철학은 단순히 이론적 사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유가행’이란 요가 수행을 통한 경험에 의거한 것이다. 요가의 단계가 깊어짐에 따라 주체도 객체도 사라져버 린 상태가 되며 모든 집착과 미망에서 해방된다. 알라야식에 있는 유루 종자(번뇌) 가 무루 종자로 바뀌게 되면 열반을 증득하게 된다.215)
214) 길희성, 인도철학사 , 70쪽.
215) 길희성, 인도철학사 165-1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