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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靈 spirit)은 영혼을 뜻하는데 육체에 깃들어 마음의 작용을 맡고 생명을 부여 한다고 여겨지는 비물질적 실체이다. 영은 마음 가운데 신과 연결되는 부분으로 초 월신의 경우 하느님을 지향하고 접하려는 마음을 말하며 프랑클의 경우는 반대로 내재신을 접하고 받아들이려는 마음인 ‘양심과 이성’으로 보았다. 프랑클은 모든 사람은 종교와 상관없이 ‘영’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치료라는 관점에서 ‘의미, 이유, 근거’라고 하였다. 그리고 넓은 뜻에서 ‘의미를 추구하는 행위’를 종교적이라 표현하였다.

프랑클은 인간 실존을 육체와 정신 그리고 영(靈)이 조합된 상태로 보았다. 프랑 클은 종교적인 선입견을 탈피하기 위해 로고스를 의미로 해석한 것과 같이 종교적 인 인간의 ‘영’을 ‘영적’ 차원이라 불렀다. 영적 행위의 동기를 ‘의미’라고 하였다.

영적이란 ‘의미에의 의지, 목표 설정, 사상과 이상, 독창, 상상, 믿음, 육체를 넘어 선 사랑, 초자아를 넘어선 ‘양심’, 자기 초월, 약속, 책임, 유머 감각, 선택의 자유, 자질’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여기에 무의식의 개념을 합하여 영적 무의식이라고 하였다.

프랑클은 인간의 의미 치료에서 무의식의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 곤 했다. 무의식에 대하여 거의 혹은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 본질에 많은 공헌을 했던 프로이트의 사상을 결코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의미철학

109) Fabry, 앞의 책, 233-234쪽.

과 의미치료가 둘 다 프로이트의 견해를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확대시켜 인간 무의식의 개념에 적용한 것이다.

프랑클은 그의 『의사와 영혼』(The Doctor and the Soul)이라는 책에서 말한 바와 같이 프로이트는 거인이지만,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는 난장이는 거인보다 훨씬 더 커 보인다”라고 했다. 프랑클은 프로이트의 어깨 위에 서서, 무의식으로부 터 심리학적 본능적 영역뿐만 아니라 영적인 영역까지 보았다. 칼 융의 어깨 위에 서서, 그는 영적인 무의식으로부터 집단적이고 원형적인 것뿐만 아니라, 개인적이 고 실존적인 그 무엇을 본 것이다. 프랑클은 무의식의 영적 부분이 하나의 자신 (self)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본능에 의해 쫓기는 자아(ego)가 아니라고 하였다. 이 용되고 조작되는 사물이기보다는 사랑받고 이해되어야 할 인간존재로서 대인관계 를 갖는 그러한 사람이 되는 영역으로 보았다.110)

우리는 위대한 실존적 결정을 이러한 무의식의 영적 분야에서 내리게 된다. 여기 서부터 우리는 종교적 신념과 믿음, 예술적 영감, 그리고 직관을 이끌어낼 수 있 다. 내면에 존재하는 무의식의 이러한 부분으로부터 의미를 표시하는 우리의 양심 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려오고 그럼으로써 우리 삶의 의미가 있는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에는 무의식적으로 억압될 수 있는 성적 욕망과 공격성의 영 역이 있는데 이것은 노이로제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프랑클은 내적 공허와 무의미 한 느낌을 일으키는 실존적 진공의 원인이 되거나, 의미에의 의지가 억압될 수 있 는 또 다른 부분의 무의식을 본다. 즉 우리의 영적 무의식은 긍정적으로 우리에게 서 올바른 그 무엇을 더 많이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클의 본능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구별은 프로이트의 의식과 무의식의 구별과 차이점이 있다. 두 사람의 구분법에서 근본적인 차이점은 의식과 무의식간의 경계선이 유동적이라는 것이다.

정신분석에서는 의식이 무의식속으로 억압될 수 있다는 것과 무의식이 분석에 의 해 의식화될 수도 있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으며, 정신과 영 사이의 경계선이 확 고하다.111)

프랑클은 『무의식의 하나님』(The Unconscious God)에서 진술한 바와 같이 “영 적인 것과 본능적인 것 사이의 선은 분명하게 그려질 수 없다”고 하였다. 중요한 차이는 어떤 것이 의식이냐 무의식이냐를 구분 짓는 것이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이 이드(id)와 자신(self) 중에 어디에 결부되는가에 있다. 즉 본능에 근거를 두고 우리 를 충동하게 하는지, 아니면 우리의 중심으로부터 나타나 우리가 스스로 자신의 결 단을 내리도록 하는가에 있다. 과학의 역사는 우리의 의식적 이성을 지배자로 보게 끔 했다. 영적인 것을 포함하기 위해 본능적인 것을 넘어선 팽창은 질병의 진단과 치료와 예방에 중대한 결과를 가져온다. 정신분석학에서 억압된 욕망과 본능은 노

110) Fabry, 앞의 책, 65쪽.

111) Fabry, 앞의 책, 66쪽.

이로제를 일으키고, 치료를 달성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식화되어야만 한다고 가 정하였다. 마찬가지로 의미치료에서는 우리의 의미에의 의지가 억압되고 저지되었 을 때 무의미감이나 실존적 좌절이 생기게 되고, 의미에의 의지가 의식화되어야만 인생은 의미심장하게 된다는 것이다.112)

노이로제는 실존적 공허 속으로 정신질환이 들어올 수도 있으며 인생의 의미에 대한 회의는 절망과 우울을 초래할 수 있고 프랑클이 만든 “영인성 노이로제 (noogenic neurosis)”라는 새로운 유형으로 진전되는 수가 있다. 영인성 노이로제 는 우리의 영적 차원에서 기원한다. 가치 충돌, 양심의 갈등, 최선의 가치에 대한 보답 받지 못한 우리의 탐색, 즉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에 의해 발생될 수 있다. 영 인성 노이로제는 현재와 미래에 완수해야 할 약조, 성립되어야 할 과제, 찾아내어 야 할 의미들을 환자들이 알 수 있게 하는 치료 방법으로 효과를 나타낸다.113)

의미 치료적 신념의 핵심은 첫 번째 정상적 상황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양심의 충돌과 가치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치료자의 역할은 환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교육과 환경 그리고 내적 충동에 의한 무력한 희생자가 아니라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그들은 건강한 사람들이 취하는 것과 같은 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것, 이 세 가지이다. 그러나 가치관의 갈등 혹은 “실존적 좌절”이 사람을 압도하게 되면 노이 로제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정신의학자들은 소위 내인성(endogenous) 우울증 환자의 불안과 걱정이 최근 몇 년 동안에 걸쳐 변해가는 관찰을 해왔다. 한 세대 전에만 해도 많은 환자들은 그들의 양심, 부모, 지역사회 혹은 하나님 앞에서 죄책감을 느끼며 자신들을 비난 했었다. 『심리요법과 실존주의(Psychotherapy and Existentialism)』라는 책에서 프랑클이 지적한 바와 같이 오늘날의 내인성 우울증 환자들은 그들의 건강이나 돈 을 벌 수 있는 능력, 그들의 수입을 유지할 능력에 관해 더 많은 걱정을 한다. 그 들은 직업 또는 늙어가는 것과 관련된 불안을 내보인다. 언젠가 프랑클은 요즘 우 울증 환자들이 최후 심판의 날보다는 월급날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의미치료는 영인성 노이로제의 이해, 진단 그리고 치료 가능성을 위 해 개발되었다. 이러한 의미치료의 발달은 노이로제에 걸린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에 대해 새로운 안목을 가질 수 있게 한다. 의미치료는 우리를 이끌어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114)

2019년 4월 26일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8 청소년 통계 자료에 의 하면 우리나라 청소년의 사망원인 1위가 10년째 자살인 것으로 집계됐다. 또한 청 소년 4명 중 1명은 일상생활을 중단할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 등 우울함을 느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우울함은 여학생이 30.3%로 남학생(20.3%)보다, 112) Fabry, 앞의 책, 67쪽.

113) Fabry, 앞의 책, 70-71쪽.

114) Fabry, 앞의 책, 71-73쪽.

고등학생이 26.4%로 중학생(23.5%)보다 각각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115) 이는 자신 의 삶에 대한 의미 발견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삶의 의미를 발 견한 사람은 그 어떤 어려운 환경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