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이의 자연주의 윤리학에서 가치는 초월적인 실재가 아니라, 환경과의 상호작용에서 생긴다. 같은 맥락에서 듀이에게서는 그것이 전기 듀이든, 중, 후기 듀이든 ‘선’은 보다 더 낫고자 하는 노력을 의미할 뿐이다. 듀이는 공리주의와 칸트주의를 비판하면서 도덕적 기 능과 이상을 관심과 환경에 대한 적응, 공동선에서 구한다. 이러한 윤리학에 기초한 듀이 의 도덕은 고정된 완성물이 아니라 연속적인 과정이다. 듀이의 성장은 경험 및 행위의 성 장으로, 학교에서 도덕교육의 목적은 행위에서의 습관, 충동, 지성의 발달을 돕고, 그것이 가능할 수 있는 학교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데 있다. 이와 같이 듀이에게 도덕의 관점에서 관심과 공동선이 시사하듯, 개인과 공동체는 그의 도덕교육이 고려하는 두 마리 토끼이 다. 이 둘은 실제 상황에서는 불가분의 관계로 상호작용의 관계로 주어져 있다.
그러나 본 절에서는 개인보다는 개인주의가 듀이에게서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지 살피 며, 그의 공동체는 거대 사회가 아닌 거대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윤리학과 도덕 교육적 관점에서 규명하고자 한다. 듀이에게 개인은 환경과 부단히 상호작용을 하는 존재 이기 때문에, 그것은 전통적인 의미의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개체(individual)’를 의미하지 않는다. 1절과 2절에서 확인한 것처럼, 우리 사회에 지난 20, 30년 전 개체주의와 공동체 주의에 관한 윤리학적 논쟁이 있었고, 듀이 스스로 개인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탐구와 공
118) 이주한, 「듀이의 습관개념과 교육」, 『교육철학』제30집(2003), op. cit., 202-205쪽.
119) 노희정은 문제해결 과정 속에서 행위 결과를 예상하고, 좋은 습관으로 인격 형성을 꾀하 는 듀이의 도덕교육에서 실용주의 도덕수업의 원형을 읽는다. 노희정(2015), op. cit., p.
136.
120) 임태평, 「6. 도덕교육의 철학」, 『존 듀이 – 철학적 탐구와 교육』, 서울: 교육출판사, 2005, 166-167쪽.
동체에 대한 성찰을 1927년과 1930년에 각각 제출했음을 염두에 두면, 개인주의와 공동체 주의에 대한 듀이의 윤리학적 문제의식을 살피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듀이는 1930년에 『과거의 개인주의와 새로운 개인주의』(
Individualism, Old and New
)를 출간한다. 이 책은 1929년 미국의 마지막 호황기를 거친 뒤, 대공황에 직면하던 그 격변의 시기의 논문들을 묶은 것으로, 미국 사회의 시대 상황을 앞서서 반영하고 있 다. 이 책에서 듀이는 고대 아테네와 르네상스 시대의 것을 능가하는 지적인 자원과 역량 을 갖추고, 자연을 지배하는 이러한 시대에, 공동체는 부유해지는데 왜 개인의 생활은 개 선되지 않는지 묻는다. 그는 자신의 가치를 자신이 가진 경쟁성 있는 금전적 능력에서 찾 는, 한 마디로 경제적인 적자생존의 상황이라고 동시대를 진단했다(LW5: 46). 물질주의, 돈벌이에 대한 몰두, 즐거운 시간 보내기와 같은 시대의 조류는 “돈 문화(money culture) 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의 결과”(LW5: 55)라는 것이다.듀이는 동시대의 미국 문화, 특히 여가, 놀이 및 스포츠만큼 과거 형태의 개인과 개인 주의의 쇠퇴를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고 하였다. 각자의 집에서 개별적으로 여가를 보 내던 전통적인 방식 대신에 영화관에서 다 같이 모여서 관람하고, 유급 감독 아래에서 이 루어지는 조직화된 스포츠는 순수 집단주의 정신을 부추긴다(LW5: 61). 이러한 개인주의 는 일견 새로운 형태의 개인주의를 가시화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지만, 그것은 ‘잃어버 린 개인’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왜냐하면 개별자들을 결속시켜 주었던 충성심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일이란 사적이고 그 결과는 사적 수익으로 나타나는 곳에서 는, 사회적 성취에서 나오는 만족감은 나올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적인 관점에서 듀이 동시대인들의 삶의 가장 현저한 특징은 불확실이었고, 개인들의 심리적 특징은 불안, 짜증, 초조, 바쁨 등으로 나타났다(LW5: 67-68).
새롭게 변화된 상황에서 사람들은 파편화된 존재 방식의 심리적 특징 등을 발현하지 만, 여전히 이들이 의존하고 있는 개인주의는 구시대의 개인주의이다. 한편으로는 사상과 언론에서 개성의 억압이 일어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적 차원에서는 경제적 자기-추 구의 개인주의가 물질적 번영을 가져다주었다고 여기기까지 한다(LW5: 85). 『과거의 개 인주의와 새로운 개인주의』가 나오기 삼년 전, 1927년 『공중과 그 문제』에서 듀이는 개인주의를 간략하게 개괄하면서, 개인주의의 시작을 로크의 개인에서, 그리고 그 연장선 상의 프랑스 혁명에서 찾았다. 거기서도 듀이는 개인주의를 한편으로는 정치적 이념으로
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 이념으로서 읽었다. 즉, 경제적 자유주의에서 개인은 고립되 어 있고, 시장주의 또한 인위적인 사적 이익을 위해 만든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LW2: 289-294). 듀이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전통적인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로 돌아가는 것도, 동시대의 병리적인 유사 해방적 개인주의로 돌아가는 것도 지양하고자 하였다.
물론 듀이는 새로운 개인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게 명시하지는 않는다. 다 만 그것은 적어도 다음 두 가지 조건들, 하나는 개인과 사회를 대립적으로 보는 시각을 그만두어야 하고, 다른 하나는 과거의 경제적 의미의 개인주의의 영속화에서 벗어나야 한 다는 것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듀이는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적 효용에 초점을 둔121), 시대의 변화를 초래한 과학과 기술을 이용하는 태도 변화를 요청하는데, 이때에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그 과학의 도입이라는 것이 접근의 방법을 의미하는 것이지, 자 기 완결된 일종의 실체로서 과학을 언급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LW5: 88-89). 이렇게 듀이에게는 탐구의 인식론이 윤리학에서도 견지되고 있는 것이다.
듀이의 개인은 탐구의 방법을 갖고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개인 이다. 물론 그 환경은 인문,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 문화적 환경까지 의미한다.
그러한 새로운 시대의 변화 속에 등장한 개인들은 어떠한 관계 방식으로 공동체를 구성 하는가? 듀이에게 사회는 단순히 개인들의 집합이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사회가 개인에 앞서는 것도 아니다. 듀이에게 가치와 선은 실재가 아니듯, 개인과 사회도 특정 개인과 사회 집단으로 존재하지, 비실재적인 추상의 ‘개인(the individual)’과 ‘사회(the society)’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개인과 사회를 유기적인 것으로도 볼 수 없는데, 그런 관점은 개인과 사회를 불변의 실재로서 간주하고 그들 사이의 갈등과 모순을 은폐할 수 있기 때 문이다(LW2: 355).
듀이는 현대 사회에서 나타난 공중(the public)의 상실을 통해서 그 원인을 숙고하고, 공중을 회복할 공동체를 고려하고자 한다. 듀이에 따르면 사회적 상호작용의 결과, “좋든 나쁘든 간접적으로 그리고 심각하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식별가능 할 정도로 뚜렷한 집단과 이름을 형성”(LW2: 256)할 때 그것을 가리켜 공중이라 한다. 공중에 대한 듀이의 문제의식을 낳은 원천 중 하나는 리프먼(Lippmann)에게 있다. 그러나 리프먼은 소수의 인사이더와 다수의 아웃사이더로 나누고, 전자를 능동적 행위자로 후자를 일반 공중의 방
121) Paul Kurtz, “Introduction,” LW5: xx.
관자로 간주하였다. 게다가 그는 정부에서 하는 일들이 기술적이고, 전문적이며, 복잡하여 공중에서 멀어지고 소수의 손에 운용된다고 보았다. 리프먼은 과거 아리스토텔레스 시대 의 도시국가에서는 사회를 소규모로 유지하여 소수의 시민 참여를 가능하게 했지만, 현대 의 거대 사회에서는 공중이 할 수 있는 일은 인사이더의 작업에 때때로 간섭하는 것이 전부라고 보았다.122) 이와 같이 리프먼이 민주주의 문제의 해결은 공중이 아니라 인사이 더 엘리트층에게서 구하고자 했던 데 반해, 듀이는 공중의 상실된 원인을 검토하고, 대중 도 지식인도 아닌 공중을 통해서 거대 사회를 극복하고자 한다. 즉, 듀이는 현대 사회의 경제 주체로서의 대중이 갖는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면서, 소비 주체가 아닌 여론 주체로 서의 공중에 토대한 민주주의를 모색하고자 하였다.
20세기는 기술 발달에 따라 과거에는 특정 지역의 사건에 지나지 않은 것이 대규모적 으로 일어나는 거대 사회의 출현을 특징으로 한다. 듀이는 거대 사회의 등장에서 공중 소 멸의 징후를 읽으며, 그 회복을 거대공동체에서 찾고자 하였다. 듀이는 거대공동체를 설 명하면서, 『민주주의와 교육』에서 언급했던 강도나 갱스터 사례를 다시 들고 있다. 그 들은 특정 영역 내에서는 성장했다고 평가 받을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성장은 폐 쇄적인 영역에서의 것으로 상호작용의 원리를 충족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반면에 거대공 동체의 구성원들은 닫힌 영역에서의 성장이 아니라, 폭넓은 상호작용의 원리를 견지하기 때문에 공동체 내에서 통합적 인성의 충만함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LW2: 328).
거대 사회를 거대공동체로 전환시켜 줄 구성원들의 상호작용 중에서 가장 긴요한 것 이 바로 의사소통이다(LW2: 324). 의사소통, 더 정확히 말하면 의사소통의 기능은 다름 아닌 지식인데, 거대공동체를 위해서는 사회적 지식의 발달이 무엇보다 시급하게 요청된 다. 앞서 도덕교육에서의 습관의 관점에서 말하면, 공동체 구성원들은 무엇보다 의사소통 을 위한 신체-마음 메커니즘 활동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습관 도식 구축은 특 정 엘리트, 전문가의 몫이 아니라 거대공동체의 상호작용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 된다(LW2: 335). 또한 거대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는 사회적 탐구가 필요한데, 여기서의
122) 이 부분은 리프먼의 『환상의 공중』(The Phantom Public)에 대한 듀이의 리뷰를 요약 한 것이다. John Dewey, “Practical Democracy,” (LW2: 214-216) 듀이가 언급한 내용은 리프먼의 다음 『환상의 공중』에서 특히 2장, 3장, 4장에 잘 기술되어 있다. Walter Lippmann(1925), The Phantom Public, New Brunswick and London: Transaction Publishers,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