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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 형이상학에서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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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직접적, 일차적 경험

듀이의 형이상학에서 경험은 경험론자들의 표상으로서의 경험도 아니고, 일상 언어의

‘해 보았다’ 혹은 ‘겪어 봤다’는 의미에서의 ‘경험’도 아니다. 그것은 상황 속에서 존재하는

41) Thomas M. Alexander, John Dewey’s Theory of Art, Experience, and Nature: The Horizons of Feeling,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pp. 87-89.

42) 정해창, 『인스트루멘탈리즘: 듀이의 미완성 경험』, 경기: 청계, 2013, 112-114쪽.

43) Thomas M. Alexander, op. cit., p. 116.

유기체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이 경우 듀이에게 자연이 실재하고 유기체가 자연 의 일부분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은 유기체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과정뿐 이다. 자연은 별도의 존재가 아니라 경험 속에서 환경의 일부로서 설정되기에, 경험 개념 이 자연이나 다른 개념보다 앞선다.44)

듀이의 경험은 일반적으로 연속성과 상호작용으로 설명되지만, 형이상학장의 본 절에 서는 듀이의 경험을 존재의 관점에서, 다시 말해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의 실재 로서 받아들이는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다룰 것이다.

듀이는 『경험과 자연』의 1장 들어가는 글에서 그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제시된 철 학이 경험적 자연주의나 자연주의적 경험론을, 혹은 그 일반적 의미로 ‘경험’을 취한다면 자연주의적 휴머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LW1: 10)고 했다. 이러한 규정은 듀이의 형이상 학이 시원의 특징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변화 자체를 탐구 주제로 삼으면서 전통 적인 이원론적 형이상학을 배척하는 데서 이미 예고된 것이다.

경험은 “자연의 한 가운데로 더 깊이 들어가게 하는 수단”이라는 듀이의 기술은 경험 으로는 사물, 사태 그 자체를 알 수 없다는 경험론자들과, 이후 이들의 사유 성과를 흡수 한 칸트의 불가지의 실재론을 전제한 경험론을 암묵적으로 비판하는 것이다. 로크는 지식 형성을 고찰하면서, ‘경험과 관찰’에 호소한다. 로크에 따르면, 우리의 모든 지식은 경험에 그 바탕을 지니며, 모든 지식은 경험으로부터 유래한다. 외계 사물에 대한 관찰이든, 성찰 하는 마음의 내적 작용에 의한 관찰이든, 이 관찰이야말로 지성에 사고의 재료를 공급하 는 것이다.45) 그러나 로크의 이러한 경험에서 경험 대상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사물 에 대한 ‘관념’이다. 로크는 고체성, 연장, 형태, 수, 운동 및 정지 등의 성질은 이른바 제1 성질로, 사물에 실재할 것으로 추정하였지만, 우리 신체에 작용한 결과로서의 색, 성, 향, 미, 촉 등은 사물과 유사하지 않는 제2성질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로크 의 경험의 대상은 사물이 아니라 관념이라는 점에서, 제1성질조차 사물 그 자체가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지 확인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미 로크의 경험론은 사물 자체 와 분리될 여지를 남겼다. 이는 칸트에 이르러 역설적이게도 사물 그 자체는 알 수 없다

44) 김동식, 『듀이-경험과 자연』, 울산: 울산대학교출판부, 2005, 230쪽.

45) John Locke,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정병훈․이재영․양선숙 옮 김, 『인간지성론』, 경기: 한길사, 2014, 149쪽.

는 불가지론에 이르게 된다. 칸트에 따르면 지식이란 시간과 공간이라는 감성의 형식과 범주라는 지성의 형식의 필터화된 결과인데, 이러한 인식 주관을 통해 경험된 대상은 사 물 그 자체가 아니다. 듀이는 이러한 경험론자와 칸트의 인식론에서 특정 조건 아래에서 주어진 사물에 대한 몇 가지 요소만을 경험하는 주관주의를 읽는다(LW1: 24-25).

그러나 듀이는 이들 전통적 주관주의와 단절하며, 제임스를 따라 주관과 객관의 그 어떤 분리도 인정하지 않는 경험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그는 이 경험을 ‘이중적인 말(a double-barrelled word)’이라고 하였다. 이는 삶과 역사라는 낱말처럼 경험 또한 사람들이 행하고 겪는 것, 작용을 미치고 작용을 받는 ‘경험함(experiencing)’의 과정으로, 행위와 재료, 주관과 객관의 어떤 구분도 없이 전체 속에 이 둘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을 의미 한다(LW1: 17-18). 듀이에게 경험은 경험함의 과정으로, 경험된 것과 경험하는 사람을 모 두 포괄한다. 같은 맥락에서 사물과 사고 역시 인식 대상과 인식 주관의 것이 아니라 한 계열(one-barrelled) 속의 것으로, 이 모두는 ‘일차적 경험’에서 파생된 것으로서 간주하는 것이다.

듀이에 따르면 일차적 경험이란 거시적이고, 조야한 자료와 관계하지만, 그것은 과학 과 같은 반성적 사고를 요하는 경우에 자료를 이끌어내는 원천이 될 뿐만 아니라 검증을 할 때에도 의존해야 하는 경험을 의미한다. 듀이에게서 일차적 경험의 내용은 반성의 제 일 자료를 제공한다(LW1: 16). 반면, 이차적 경험은 반성에 의거한 경험을 의미한다. 그 러면 듀이에게 이차적 경험의 대상은 무슨 역할을 하는가? 그것은 일차적 경험의 대상들 을 설명해 준다. 그것은 단순히 감각의 접촉을 갖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지성을 갖고서 그것을 파악하게 한다(LW1: 16). 그러나 이는 어떻게 가능한가?

경험된 것들로의 회귀는 그것이 도달된 길 혹은 방법 때문에 경험되는 것의 의미 와 의미 있는 내용이 풍성하고 확장된 힘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경로를 이차 적 경험 대상이 밝혀주거나 제시한다. 직접적인 접촉에서 이것은 이전의 존재, 즉 딱 딱하고 색을 띠고 냄새가 있는 그런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차적 경험의 대상들, 즉 세련된 대상들이 그 대상들에 이르기 위한 방법으로서 혹은 길로서 사용되었을 때, 이 성질들은 고립된 사항으로 남아 있지 않고 관련된 대상의 전체 체계 속에 포함된 의미를 갖는다. 그것들은 자연의 그 밖의 것들과 연속되고 이제 연속되어 있는 것으 로 간주되는 사물들의 의미를 갖게 된다(LW1: 16).

듀이는 반성의 역할이 일차적 경험의 대상에 이르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될 때 그 때

만나는 성질들은 자연과 연속적으로 되고 전체와 연관성을 갖는다고 보았다. 반성의 역할 은 추상적인 것에 대한 테오리아가 아니라, 일차적 경험을 가리키고, 동시에 거기로 돌아 가는 길로 사용하는 것이다(LW1: 17). 그러나 그렇지 않고, 경험하는 행위에서 경험된 것 들을 떼어 놓아, 이 반성적 탐구의 부분적 결과를 두고 경험 전체인 것처럼 간주한다면 그것은 주지주의와 추상주의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46)

듀이의 일차적 경험은 반성에 의거한 이차적 경험과 대응되는 것으로, 이는 직접적 경험에 다름 아니다. 많은 철학적 술어가 그러하듯이 듀이에게 일차적, 직접적 경험은 분 명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미루어 살피면 맥의 지적처럼, ‘직접적 경험’은 다음 세 가지 차원에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지식이 그로부터 근원한다는 의미에서 근원으로서의 직접적인 경험이고, 둘째, 앎의 두 가지 서로 다른 단계에서 요구되는 직접 적인 경험이며, 셋째, 지식이 결국 최종적으로 이어지게 되는 귀결로서의 직접적인 경험 이다. 직접적 경험에 대한 이 세 차원의 의미를 조금 더 부연하면, 첫 번째 의미의 직접 적 경험은 ‘문제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은 문제상황에서 일어난다. 문제상황에서의 직접적 경험은 조야하고 육안으로 보이는 대상과 관계하는 일차적 경험이다. 이러한 비인 지적인 직접적 경험은 사고가 기능하는 배경이다. 둘째의 직접적 경험은 앎의 과정에서, 반성적 경험의 시작도, 끝도 아니라, 반성적 경험의 과정 중에서 작용한다고 보았다. 반성 적 경험은 일차적 경험에서 그 재료를 끌어내서, 이후 검증으로 조회한다. 다시 말해 반 성적 경험은 우선 탐구 재료를 선택할 때, 그리고 그 다음 이를 검증할 때에도 ‘직접적 경험’에 호소한다. 직접적 경험에 대한 호소는 그것이 인지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 에서가 아니라, 인지 과정 속에서 작용하는 직접적 경험에 호소한다는 의미에서 직접적이 다. 세 번째, 지식이 결국 이르게 되는 직접적 경험이란 듀이의 표현을 빌리면 ‘완성적 경 험’을 의미한다. 이는 반성적 사고 과정에서 직접적 경험이 ‘최종적으로 실현’될 때, 그 경 험을 의미한다.47) 일상적 경험에 대한 맥의 이러한 설명이 정당한 것은 듀이는 ‘사고’가 아니라, ‘경험’ 차원에서 반성적 사고의 종국적 단계의 완성적 경험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46) D. C. Mathur, Naturalistic Philosophies of Experience: Studies in James Dewey and Farber Against the Background of Husserl's Phenomenology, St. Louis, Missouri:

Warren H. Green, Inc., 1971, p. 74.

47) Robert D. Mack, The Appeal to Immediate Experience: The Philosophic Method in Bradley, Whitehead, and Dewey, Freeport, N.Y.: Books for Libraries Press, 1945, pp.

60-65.

다만, 한 가지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직접적 경험이 반성 이후의 산물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LW10: 198). 반성은 문제상황 속에서 일차적 경험 혹은 질성적 경험이 그 적실성 여부를 판단할 때 등장하는 것으로, 그 차원이 다르다.

(2) 하나의 경험, 완성적 경험

듀이의 경험을 다루면서 강조해야 할 다른 한 가지는 ‘하나의 경험’과 ‘완성적 경험’에 관한 것이다. 듀이의 형이상학을 자연주의 형이상학으로 명명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그 의 ‘경험’ 때문인데, 특히 ‘하나의 경험’이 듀이의 형이상학적 관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경험을 해 갈 때, 경험의 구성요소들은 경험의 과정에서 계속적으로 통합되기 때문에 경 험은 단절되지 않는다. 그러나 단순히 요소들의 집합이 경험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 아니 라, ‘하나의 경험’이 될 수 있는 것은 그 전체 경험에 스며들어 있는 성질이 전체의 통일 성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경험 이후에 겪었던 그 때 그 식사, 그 수련 원, 그 결혼식, 그 학회 등을 말할 수 있다(LW10: 44).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일상의 경 험이 언제나 하나의 경험인 것은 아니다. 듀이는 교육자로서 적지 않은 일상의 경험이 지 루한 관례를 반복하거나 무목적으로 떠밀리듯이 흘러간다고 개탄했는데, 이때의 경험은 결코 ‘하나의 경험’이 될 수 없다.48) 그러나 우리의 일상이 관례적인 삶을 반복하고 있지 않다면 ‘하나의 경험’은 언제나 가능한 일이다. 교사가 귀가하며 하루의 수업을 떠올릴 때, 학생들이 하교 중에, 혹은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며, 오늘 하루가 ‘좋았다’거나 ‘나빴다’고 정리할 때, 그것은 ‘하나의 경험’이 된다. 듀이의 ‘하나의 경험’에서 한 가지 더 짚어야 할 것은 그 경험의 성격이다. 한편으로 대화중에 경험을 잘 전하기 위해 ‘좋았다’거나 ‘나빴 다’고, 불가피하게 형용사를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과학자나 철학자가 자신들의 경험을 언급할 때 지적인 것으로 나타낼 수도 있다. 그러나 듀이에 따르면 특정 한 방식으로 경험의 성질을 전할 수 있지만, 경험 그 자체는 정서적이기도 하고, 의지적 이기도 하고, 지적이기도 하다. 물론 경험이 이 들 정서적인 것과 의지적인 것, 그리고 지

48) D. C. Mathur(1966), “A Note on the Concept of “Consummatory Experience” in Dewey’s Aesthetics,” The Journal of Philosophy Vol 63, No. 9, in John Dewey. Critical Assessments, Edited by J. E. Tiles, Vol. III,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1992,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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