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이의 도구주의는 윤리학에서 자연주의 윤리학으로 나타난다. 이런 관점에 서서 듀 이는 공리주의가 도덕적 선을 만족과 쾌와 같은 자연적 특성에서 구한 것은 의의가 있다 고 보았지만, 만족된 삶이 단순히 쾌의 감정에 지나지 않고, 고정된 최종적 목적이라는 관념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비판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듀이는 칸트 윤리학이 보편법 정식이 갖는 형식주의의 문제와 함께, 보편 법칙과 구체적 행위 사이의 연결 고리 부재, 감정과 별개로 존재하는 도덕법칙을 두고 칸트주의의 한계를 짚었다. 그 러나 듀이 윤리학이 도구주의라고 하여 듀이의 자연주의 윤리학이 윤리적 상대주의를 의 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주의 윤리학에서 선은 단순히 만족된, 욕구된 것이 아니라, 반성 과 숙고에 의존한다.176) ‘보다 나은 것이 선’이라는 명제에서 잘 나타나듯이 듀이의 윤리 학은 모든 가치들이 대등하거나 단순히 취향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지 않는다. 듀이의 자연주의 윤리학은 가치중립적 태도를 거부한다. 게다가 듀이의 자연주의는 무어의 자연 주의 오류를 범하지도 않는다. 성질(qualities)은 정의 불가능한 것이지만, 가치의 실재성 을 상정한 무어와 달리, 듀이 윤리학에서 가치는 주관과 객관이 만나는 곳에서 그 지평이 열리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176) 황경식, 「John Dewey의 倫理學」, 韓國哲學會/韓國敎育學會/존 듀우이硏究會, 『존 듀 우이와 프라그마티즘』, 서울: 삼일당, 1982, 148쪽.
립먼 역시 칸트의 의무주의 윤리학을 취하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행위가 규 칙에 부합하는 것만으로는 선하지 않으며 오로지 의무로부터의 행위만이 선하다는 칸트 의 법칙주의 윤리학은 지나칠 뿐만 아니라, 이는 도덕성을 인격에만 부여하고 사회제도 및 절차에서 박탈한 결과, 도덕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 악화시키고 있다.177) 나아가 듀이의 자연주의 윤리학이 문제상황을 확정된 상황으로 바꾸는 도구로서의 탐구 에 의지하듯이, 립먼의 윤리학은 만족과 쾌를 목적으로 하는 공리주의도 아니고, 보편법 정식에 바탕을 둔 형식주의의 칸트주의 윤리학도 아닌, 탐구를 통한, 탐구에 의한 윤리학 으로서 듀이의 윤리학을 계승하고 있다.
립먼은 윤리학을 “도덕적 행위를 이해하고자 시도하는 철학의 분야”178)로서 정의하지 만, 그의 윤리학은 도덕적 행위를 테오리아 하는 학문이 아니다. 그것은 “도덕적 문제와 도덕적 상황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탐구”179)를 의미한다. 이렇게 해서 립먼의 윤리 학은 도덕적 행위를 이해하기 위한 윤리적 탐구로 전환된다. 그 때문에 윤리학의 목적 역 시 직접적 해답을 제시하는 교화가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도덕적 가능성 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180) 요컨대 립먼에게 윤리학에 대한 철학 적 접근은 특정 윤리 법칙이나 규칙을 제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윤리적 탐구의 방법을 강조’하는 접근이다.181) 다만,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윤리적 탐구가 윤리학에 대한 탐구 로 환원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윤리적 탐구는 오로지 윤리학에 대한 탐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인식론적, 미학적, 그 밖의 여러 인간 경험의 측면을 고 려하면서, 학생들로 하여금 도덕 판단의 중요성과 함께, 학생들의 윤리적 감수성 및 배려 를 발달시키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립먼에게 윤리학이 윤리적 탐구로 제시된다는 것 은 학생들에게 도덕 규칙 혹은 도덕 원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도덕적 탐구의 실천을 익히도록 하는 것’이다.182)
177) Ibid. pp. 193-194.
178) Matthew Lipman, Ann M Sharp, Frederick S Oscanyan, op. cit., p. 188.
179) Ibid. p. 188.
180) Ibid. p. 188.
181) Ibid. p. 66.
182) Ibid. p. 66. 여기서 ‘도덕적 탐구’는 립먼의 기술이다. 또 다른 곳에서는 ‘윤리적 탐구’로 서 『리사』나 교사용지도서를 설명하곤 한다. 윤리적 탐구와 도덕적 탐구를 구분할 수 있 겠지만, 적어도 어린이철학 도덕교육에서는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혼용해서 사용한다.
『리사』의 교사용지도서 제목이 ‘윤리적 탐구’이지만, 『리사』에 대해 설명할 때는 ‘도덕
이는 앞서 립먼의 탐구가 수동적 관람자가 아닌 탐구자를 지향하듯이, 윤리적 탐구 역시 인간의 본성을 형이상학적 선이나 악으로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상황 속의 도 덕적 주체에게 책임지울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어떻게 문제를 개선해 나갈지 결정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겠다는 것이다. 립먼의 윤리적 탐구는 윤리학에 대한 탐 구가 아니라, 그 밖의 모든 영역의 내용을 거쳐 가고 예측된 가능성을 열어 두겠다는 것 이다. 이는 무엇보다 탐구 주체가 놓인 상황 이해를 돕기 위해서이다. 이는 앞서 듀이의 형이상학을 다룰 때, 상황 이론에서 이미 제시된 것이기도 하다. 듀이는 외연적 방법 (denotative method)을 통해서, 탐구가 아무리 고도의 추상성을 갖는다 하더라도 결국 일 상적인 경험에서 시작하여 일상적 경험으로 돌아온다는 전제의 방법론을 갖고 있다. 외연 적 방법은 보편적인 방법적 회의로 시작하지 않는다. 그것은 문제상황 속의 탐구로부터 시작한다. 듀이의 외연적 방법에서 상황이 가장 근본적이었듯이, 립먼에게서도 탐구 주체 가 놓인 문제상황이 가장 근본적이다.
듀이가 보편적이고 방법적인 회의를 취하지 않듯이, 립먼 역시 구체적인 문제상황 속 에서 윤리적 탐구로 들어간다. 이와 같은 접근에 서게 될 경우 ‘가치명료화’나 ‘도덕적 딜 레마 발달이론’은 거부된다. 물론 이러한 프로그램 또한 도덕적 탐구와 관련된 행위에 관 심을 갖는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윤리적 탐구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윤리적 탐구는 적극적 듣기에서 시작하여 개념을 확인하고, 탐색하고, 발견하고, 질문의 가정을 검토하고, 논거를 제시하며, 그 논거의 강점과 약점을 확인하는 과정 속에서, 상호 존중과 협력으로 탐구적 대화를 변증법적으로 진행한다. 교사의 수업 활동에서 판서가 전 부가 아니듯, 이렇게 다양한 윤리적 탐구 활동을 단순히 가치명료화 하나로 축소시켜 버 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윤리적 탐구와 같은 ‘윤리학 하기’를 가치명료화로 환원시킬 수 없는 것은 단순히 탐구의 종식에 대한 우려 때문만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가치명료 화와 같은 접근은 보다 나은 가치와 보다 못한 가치에 대한 식별을 윤리적 탐구에서 제 거시킨다는 데 있다. 가치명료화는 어떤 가치가 다른 가치 보다 낫거나 혹은 못하다고 간 주될 수 없다는 입장에 서 있다.183) 그러나 듀이에게 ‘보다 나은 것이 선’이듯, 립먼 역시
적 탐구’로 기술하는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이는 어린이철학의 관심이 ‘윤리적’, ‘도덕적’이 라는 낱말의 구분보다는 ‘탐구’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도 이에 따라 이 논문에서는 윤리적 탐구와 도덕적 탐구를 같은 함의를 갖는 것으로 간주하고 사용할 것이다. Ibid. p.
191.
상황 속의 합당성, 즉, 보다 나은 가치를 윤리적 탐구 속에서 추구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 면, 가치명료화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비슷한 맥락에서 립먼은 심리학에 기초한 도덕발달이론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도덕발 달이론에서는 대체로 어린이는 성장하면서 발달론자들이 상정한 도덕적 개념을 갖게 된 다고 가정하지만, 비록 그러한 주장에 대한 경험적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 하더라도, 중 요한 것은 가치이론으로서 그것은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른바 각각의 ‘단계’
에는 실제로는 덜 성숙한 윤리적 행위와 성숙한 윤리적 행위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 때 문에 단계 이론 그 자체만으로는 이기심과 자기애(self-love)의 행위를 구분할 어떤 유효 한 수단도 제공할 수 없다.184) 단계이론은 고정된 도덕 개념을 어린이들이 확보할 것으로 간주하는데, 거기에는 도덕적 개념들의 위계가 ‘실재’하는 것으로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보다 나은 것이 선’이라는 윤리학적 명제에 기초한 어린이철학에서는 부정될 수밖 에 없다. 립먼의 윤리적 탐구에서는 보다 낫고 그렇지 못한 것을 특정 상황 속에서 탐구 해 갈 수는 있지만, 가치 자체를 실재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고정된 가치를 발견하며, 성 장 속에서 이를 획득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재주의적 선의 가치 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립먼의 윤리학은 윤리적 탐구 활동에 다름 아니다. 그 때문에 그가 저술한 중학교 윤리 교과서 『리사』를 일별하면 거기서 우리는 윤리적 이해에 대한 어린이들의 탐구를 확인할 수 있다. 즉, 이야기 텍스트에서의 아이들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정의롭 게 행동하지만 책임과 의무, 정의와 같은 가치에 헌신하기보다는, 윤리적 탐구의 절차에 대해 헌신한다.185) 윤리적 탐구는 상황 속의 가치 판단이기 때문에, 탐구에서 상황에 대 한 인식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교사와 학생들이 잔인함에 대해서 탐구한다고 할 경우, 교 실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잔인함이 나쁘다는 것에 동의했다 하더라도, 이는 윤리적 탐구 차원에서는 큰 의미가 없는 결론이다. 왜냐하면 누군가 잔인하게 대우받았다고 주장하는 상황을 제시할 때, 참된 문제는 어린이에게 일어난 것이 잔인함의 참된 사례인지 여부가 될 것이다. ‘모든 잔인한 것은 나쁘다’는 진술은 ‘모든 정의는 선하다’와 같은 진술처럼 어
183) Matthew Lipman(2003), op. cit., p. 37.
184) Matthew Lipman, Ann M Sharp, Frederick S Oscanyan, op. cit., p. 184.
185) Ibid. p. 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