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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 지식 형성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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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인식론은 감각적 지각과 지적 인식의 논의에 치중했다. 그러나 현대 인식 론에 이르면 그러한 인식론은 협소할 뿐만 아니라, 존재와 인식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논 의를 위해서도 좋은 출발점이 아니라는 견해가 나타난다. 존재가 어떻게 드러날지 미리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인식론자가 갖추어야 할 적절한 태도 중 하나는 경험을 열어 두 라는 주문도 나온다. 이는 윌리엄 제임스가 근본적 경험주의(radical empiricism)라고 부 르고,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절대적 실증주의(absolute positivism)이라고 명명한 것 이다.70) 듀이의 인식론도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놓여 있다.

듀이의 인식론이 전통적 인식론에 반한다는 의미에서, 보이스버트는 듀이의 인식론을

‘반인식론’으로 명명한다. 물론 전통적 인식론이 갖는 여러 오도하는 전제들 때문에 듀이 는 ‘인식론’이라는 낱말을 종종 조소하는 식으로 사용하기도 했다.71) 그러나 여기서 ‘반인 식론’이라는 것은 인식론 자체를 거부한다기보다는 전통적 인식론을 비판하고, 동시에 인 식론적 물음을 보다 근본적으로 세우고자 하는 듀이의 문제의식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읽어야 한다. 듀이의 인식론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비판 대상으로 삼은 전 통적 인식론에 대한 그의 논의부터 일별해야 한다.

듀이는 전통적 인식론이 확실성에 정초된 것으로 보았다. 그는 데카르트의 확실성에 대한 탐구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지식에 대한 태도 또한 확실성의 탐구에 기초하였 다고 간주하였다. 그들은 모두 확실한 것 혹은 고정된 것을 희구하는데, 이는 지식의 대 상, 인식 기관 및 마음의 본성에 대한 그들의 이해와도 관련되어 있다. 흥미롭게도 듀이 는 인식론을 인식론 그 자체로 해명하지 않는다. 1929년에 출간된 『확실성에 대한 탐

70) Kenneth T. Gallagher, The Philosophy of Knowledge, New York : Fordham University Press, 1982; 김보현 옮김, 『인식론』, 울산: 울산대학교출판부, 1992, 19쪽.

71) Raymond D. Boisvert, John Dewey,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1998, p. 30.

보이스버트는 이 책에서 듀이의 인식론을 다루는 첫 절의 제목을 ‘Against Epistemology’

로 시작한다. 이는 기존의 전통적 인식론에 대한 듀이의 비판적 태도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구』(

The Quest for Certainty

)에서 듀이는 불변의 존재를 전제하고 이를 추구해 온 인식 론자들의 탐구는 순수하게 인식론적 문제의식에 기초한 활동이 아니라고 보았다. 듀이에 따르면 확실성에 대한 탐구는 근본적으로 불확실한 삶을 도피하고자 하는 이성적 활동의 존재 방식을 반영한 것이다.

이성적 활동은 그 자체로 완전하기 때문에 외적인 표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실 패와 좌절은 존재의 이질적이고, 다루기 힘들며, 열등한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달성 가능한 것으로서 실제적 안전을 획득한 기술도 천시되었다. 기술이 제공하는 안전성은 환경의 위협에 비해 상대적이고 불완전하다. (…) 각각의 기술은 그 작용에서 우리가 준비하지 않았던 위험을 가진, 예기치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확 실성의 탐구는 확실한 평화에 대한 탐구이며, 그 목적은 행동이 야기하는 위험과 공 포의 그림자에 의해 영향 받지 않는 데 있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불확실성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를 악의 위험으로 끌어들인다는 사실이다. 결과들을 즐길 만한 근거가 있다면, 경험할 결과들의 세부적인 것에만 영향을 줄 불확실성은 우리에 게 아픔을 주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모험의 열정과 다채로운 경험의 즐 거움을 줄 것이다. 완전한 확실성에 대한 탐구는 순수한 지식에서만 충족될 수 있다.

이것이 오래된 철학적 전통의 견해이다(LW4: 7).

확실성에 대한 탐구는 삶의 위험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이성적 존재의 삶의 문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에서 이성적 활동은 자 유로울 수 없다. 이성적 활동은 위협과 불완전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순수 지식에 대 한 탐구에 몰입하는데, 이는 결국 확실한 평화에 대한 탐구로 회귀해 버리는 도피이다.

반면 불확실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기술은 환경의 위협을 극복하기에는 언제나 온전하지 못하다. 문제상황 속에서 이를 처리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처는 이렇게 어떤 식 으로든 위험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만일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피하고자 한다 면, 가능한 한 가장 좋은 방법은 평화를 해칠 수 있는 어떤 위협도 없는 확실한 것에 대 한 탐구로 들어가는 것이다. 듀이에 따르면 순수한 지식을 상정하고, 이를 탐구한 오래된 철학의 전통은 이와 같은 불확실성을 배제한 탐구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확 실성에 대한 탐구는 불변의 고정된 존재 영역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서 다뤄지는 인간의 지식은, 이해와 논증을 매개로 혹은 인식을 통해서만 지식에 다가갈 수 있다. 이 미 알려진 대상은 그 자체로 인식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존재에 있어서도 참된 것이다 (LW4: 17). 이렇게 전통적 인식론에서 지식은 선행하는 존재, 즉 본질적 존재와 관련된다.

지식과 학문에서 본질적인 고유한 대상이 그렇게 해서 나오는 것이다. 반면 우리가 행위 를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은, 행위와 관련된 것은 추측과 가능성의 영역에 국한된 것이라는 의미에서, 참된 지식의 이상인 확실성의 보증과 무관한 것이다(LW4: 18).

이와 같이 듀이는 지식은 그 대상이 되는 존재를 선재하는 불변의 것으로 가정하고, 이러한 대상의 상정이 다시 지식과 행위의 이원화를 낳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전통적 인 식론에 대한 듀이의 이와 같은 비판은 지각, 특히 시각작용에 입각한 지각론에 맞추어져 있다. 주관은 대상에 대한 지각을 그 인지적 임무로 생각할 때 객관과 동떨어진 존재로서 나타나는데, 듀이는 수동적 지각자로서의 인식 주체의 모델을 관람자(spectator)로서 표현 하기도 했다.

앎에 관한 이론72)은 시각 작용에서 일어날 것으로 추정된 것에 따라 만들어졌다.

대상이 눈에 빛을 반사시켜 그것은 보이게 된다. 대상은 생물학적 눈에, 그리고 시각 기관을 가진 사람에게 차이를 일으키지만 보이는 사물에게는 어떤 차이도 없다. 참된 대상은 제왕과 같은 무사심으로 고정된 대상이기 때문에 그것을 응시할 수 있는 어 떤 정신에 대해서도 왕이다. 관람자 인식론은 이 불가피한 결과이다. 정신 활동이 개 입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 있지만 이 또한 오래된 전제를 갖고 있다. 그 때문에 이 이론들은 실재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이론에 따르면 정신이 개입하기 때문에 우리는 단지 참된 대상의 수정된 유사성, 즉 어떤 ‘외관’만을 알 뿐 이다(LW4: 19).

전통적 인식론에서 주관은 로크에게서 그러하듯, 사물을 비추는 거울처럼 관념을 경 험의 대상으로 삼을 뿐이다. 그러나 경험론뿐만 아니라 합리론 역시, 직접적인 지식의 본 성과 기관에 관한 양자 간의 극단적인 대립을 제쳐 두면, 이 둘은 모두 반성적 사고의 역 할을 ‘재’생적(

re

productive)인 것으로 보는 데서 동일하다(LW4: 88). 듀이에 따르면 이들 을 종합한 칸트의 철학조차 여러 이유로 한계를 갖는다. 지각된 대상을 인식하기 위한 칸 트의 지성 범주는 뉴턴의 보편법칙의 이론이 요구한 실체와 인과성의 토대를 마련해 주 고 있지만, 시공간과 범주에 대한 칸트의 ‘주관성’은 듀이에게 그 체계의 치명적인 약점으 로 읽혔다. 게다가 『실천이성비판』에서 칸트가 신, 자유의지, 영혼불멸을 요청한 것도

72) 듀이는 전통적인 ‘인식론(the theory of knowledge)이라는 표현 대신에, 지식을 동사 형태 로 나타내어 자신의 인식론을 ‘앎에 대한 이론’(the theory of knowing)이라고 했다. 이를 고려하여 필자는 인용문에서 ‘인식론’이라는 낱말의 사용을 피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럼 에도 우리는 듀이의 용법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듀이의 인식론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 로, ‘듀이의 인식론’이라는 표현을 계속해서 사용할 것이다.

듀이의 눈에는 자의적으로 보였다(LW4: 48-49). 그런 의미에서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는 참다운 인식론적 전회가 아니다. 듀이에 따르면 그러한 혁명은 신학적 권위에서 인간적 권위로 전환된 데 의의가 있지만, 그 외에는 고전 철학자들 이래 지성과 자연 구 조 사이에 대응관계가 있다는 오래된 전통을 반복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LW4: 229-230).

경험론과 합리론, 칸트의 선험적 인식론까지 비판하는 듀이는 사고와 앎의 문제를, 사 회적, 도덕적 문제의 맥락에서 살핀다.73) 듀이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사회적, 도덕적 맥 락의 앎의 이론을 탐구를 통해서 구축한다. 여기서 탐구란 미확정 상황을 확정된 상황으 로 통제나 규제에 의해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LW12: 108). 여기서 미확정 상황이란 탐구에 열려 있고, 탐구의 결과로서의 확정적 상황은 완결된 상황이다. 위 정의에서 통제 나 규제에 의한다는 것은 탐구에서 조작이 만족스럽게 실제 상황의 확립으로 끝난다는 것을 의미한다(LW12: 109). 한 마디로 탐구는 문제가 된 미확정 상황을 실험적 통제에 의해 완결된 상황으로 완전히 바꾸어 놓는 것을 의미한다.

보이스버트는 조작적인 탐구의 특징을 실험적인 방법을 중요시하고, 의식의 계속적인 성장을 목적에 두며, 의심, 불확실성, 당혹감은 단순히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의문시해 야 할 상황으로서 간주하는 것에 두었다.74) 이는 탐구란 당혹스러움에서 시작하고, 상황 속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능한 가설을 제시하고 실험적 검증을 거친다는 것이다. 보 이스버트는 듀이의 탐구는 단순히 사태를 직관하는 것이 아니라, 작용 중에 있는 신체적 지성, 즉 ‘사려 깊은 조작’을 수행하는 탐구자의 행위 형식을 의미한다고 했다.75) 여기서 지성은, 듀이의 표현을 원용한 것이다. 듀이가 이성이라는 말 대신에 지성을 사용한 것은,

‘이성’이 이론적인 것을 강하게 함의하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듀이는 지성을 실천적인 것을 함축하는 술어로서 간주하는 데(LW4: 170), 여기에 관조적 지식이 들어설 수 없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듀이의 탐구는 그 과정이 어떤 절차를 거치든76), 그것은 미확정 상황을 확정적 상황

73) Ibid., p. 31.

74) Raymond D. Boisvert(1998), op. cit., pp. 38-39.

75) Ibid., p. 41.

76) 그러나 탐구는 저절로 시작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탐구의 사전 조건인 미확정의 상 황(The Antecedent Conditions of Inquiry: The Indeterminate Situation)에서 시작한다. 듀 이의 말처럼 의문을 갖는 것, 그것은 특정 시점까지는 탐구와 같은 말이다. 탐구는 의문으 로 시작되지만, 의문이 탐구를 멀리 데려가 주지 못한다. 그러나 어쨌든 탐구를 일으킨 것 은 미확정 상황이다. 다음 단계는 문제 설정(Institution of a Problem) 단계로서, 불확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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