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적인 어둠이란, 밤이나 그림자(陰)와 같은 상대적인 어둠이 아니라 모든 존재자를 포괄하는 우주 본연의 그 깊고 깊은 어둠을 말한다. 하늘 에는 빛나는 수많은 별이 있지만 우주는 언제나 칠흑처럼 어둡다. 그래 서인지 고대로부터 어둠은 빛보다 더 근원적으로 여겨졌다. 세상의 기원 (起源)을 말하는 창조 신화들에서는 어둠이 ‘빈 터’(空)로서, 빛보다 주
로 먼저 등장하곤 한다. 어둠이 있은 후에, 빛이 생기고 여러 존재자 (色)들이 생겼다는 식이다.
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것도 생기지 않았는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창세기1:2)83)
성경의 첫 문장은 하나님의 천지(天地)의 창조, 두 번째 문장은 위에 인용한 대로 ‘태초에 형상이 없고 빈 (空, 無)가운데, 깊은 물 위에 어둠 (玄)과 신(神)이 있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문장에서야 빛이 등 장한다. 즉 창조주와 천지로 표현된 시공(時空), 어둠은 빛이 출현하기 전에, 이미 태초에 존재하는 것으로 언급된다. 서양에서 어둠은 흔히 악 이나 불행 등의 부정적 상징으로 여겨지곤 하지만, 여기 성경의 가장 첫 장에서의 어둠은 신과 함께 있는, 공(空)과 무(無)라는 심오한 근원적 어둠(玄)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도 어둠이 최초의 존재로 묘사되는데, 맨 처음 ‘누스’라는 밤과 ‘카오스’라는 혼돈이 태초의 존재로 등장한다. 빛(아이테르)은 어둠 과 혼돈의 자식이다. 그리고 제우스는 몇 세대 후에나 등장한다.84) 이것이 서양의 경(經)과 고전에 나타난 어둠의 모습이라면, 이번에는 동양의 고전 중 하나인 도덕경(道德經)에 언급된 어둠의 모습은 어떠한 지 살펴보자. 도덕경 첫 장의 두 번째 단락은 성경 첫 장과 아주 많이 닮아 있다.
無名
무명 , 天地
천지 之
지始
시. 有名
유명 , 萬物
만물 之
지母
모. 常
상無
무, 欲
욕觀
관其
기妙
묘, 常
상有
유, 欲
욕觀
관其
기皦
교. 此
차
兩者양자 , 同
동出
출而
이異名
이명 . 同
동, 謂
위之
지玄
현. 玄
현之
지又
우玄
현, 衆
중妙
묘之
지門
문
85)
(해석-이름 없는 것이 천지의 시작이고, 이름 있는 것은 만물의 어머니.
83) 『공동번역 성서 개정판』(가톨릭용), 서울: 대한성서공회, 1999.
84) 토마스 벌핀치, 앞의 책, p.446, ‘신들의 계보’ 참조.
85) 金學主(譯解), 『老子』, 서울: 明文堂, 1977, p.69.
언제나 없음은 신묘를 보이는 것이고, 언제나 있음은 밝음을 보이는 것 이다. 이 둘은 동일한 곳에서 나왔지만 다른 이름을 지녔다. 그 동일한 것이 어둠(玄)이다. 어둡고 어두운 것이 모든 신묘함의 문이다.)86)
왜 하필 어둠일까? 이것은 단순한 검정이 아니다. 이 어둠은 현상계가 생겨나기도 전의 것이라서, 검다느니 하는 현상적 성질을 가질 수는 없 다. 다만, 빛이라는 만유(萬有)의 어머니가 뭔가를 시작하기도 전이라는 태초(太初)를 상상하자니, 이 태초의 빈(空), 없음(無)으로서의 존재(存 在)는 그저 어둠이었으리라 상상하는 것이다.
‘없음으로서의 존재’란, 모순적인 개념이지만, 관념적으로 실재한다. 수 학에서의 ‘0’이나 미술에서의 여백(餘白)이 바로 이 개념에서 나온 것이 다. 셀 수 있는 수(數)를 위해 그리고 볼 수 있는 유(有)를 위해, 그것 이 존재하도록 바탕이 되어주는 ‘0’과 ‘여백’은, 있는 것을 있게 하는, 또 는 있는 것으로써 그 존재가 추정되는, 이상적(ideal) 개념이다. 여기서 말하는 어둠이 바로 이와 같은 개념이다.
내 작업은 때때로 어둡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는 생동하는 빛을 추구하 지만 그 빛을 어둠 속에서 끌어내기 때문에, 빛보다 어둠의 표현에 몰두 하는 탓이다. 한편, 빛으로 산만해진 이미지들을 차분히 정리해주고 작 업을 완결해주는 것도 어둠이다. 즉, 내 작업에서 어둠은 빛보다 더 근 원적인 의미를 갖는다고도 할 수 있다.
(1) 시간의 축적
내가 작품에 어둠을 구축하는 것은, 일관된 기조(基調)를 지닌 빛의 세 계를 드러내기 위해서다. 빛을 표현하기 위해, 어둠을 깊이 쌓아야 하는
86) 이것을 다시 좀 더 풀어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절대무(絶對無)’는 천지라는 우주의 시 작이고, ‘존재(存在)’로부터 만물이 생겨났다. ‘없다’는 것은 인식 불가능한 신비(神秘)를 표현하 는 것이 되고, ‘있다’는 것은 분별해 알 수 있는 밝은 합리성(合理性)을 표현하는 것이다. 있음 과 없음은 결국 같은 근원의 두 가지 양상이다. 그 동일 근원은 심오한 어둠(玄)이다. 그윽하고 더욱 그윽한 어둠으로부터 모든 오묘(奧妙)한 것이 나온 것이다.> 여전히 어려운 내용이지만 일단 그 핵심은 이렇다. 즉, 있고 없다는 존재의 유무(有無)는 근원의 두 양상이며, 바로 그 근 원은 어둠(玄)이라는 것이다.
<그림 10> [사원] (Temple), 2005, 목판화(한지에 한국화물감), 25×20cm
것이다. 마치 어떤 말을 하기 위해서, 먼저 오랜 시간 깊이 생각하는 침 묵이 필요한 것과 같다. 빛이 순간 속에 쏟아지는 말과 같다면, 어둠은 시간 안에서 차곡차곡 생각을 쌓아가는 침묵과 같다.
[사원]<그림 10>87)은 소녀들이 앉아 있는 이편의 밝은 야외로부터, 어둡고 긴 복도를 지나, 다시 역광(逆光)이 들어오는 건너편 밖으로 이 어진 공간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나는 여기서 원근법의 구조적 장치보다, 오른편 상단 쪽으로 점점 깊어지는 어둠으로써, 원근의 거리를 만들었 다. 한편, 점진적으로 짙어진 어둠과 복도 끝 인물의 검은 윤곽은, 아무 물감도 가하지 않은 지면(紙面) 그대로의 건너편 입구를 역광이 들어오 는 것처럼 빛나게 한다. 즉 이 작품에서 어둠은 원근법적 공간을 강화하 고 빛을 드러내는 복합적인 역할을 한다.
나는 [사원]뿐 아니라, 대부분의 작품에서 수십 차례의 인쇄를 통해 어 둠을 형성한다. 결국 어둠은 판화 과정 속에 쏟아 넣는 몰입의 시간이 켜켜이 쌓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둠은 구축된 공간이자, 축적된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다루었던 현실적인 크로노스의 시간의 문제가, 내 작업에서는 어둠과 관계가 있다. 나는 앞 장에서, 시 간은 계속 흘러가 버리는 것이지만, 순간순간 의미를 담아 충실히 쌓아 올린 시간은 영원한 가치를 이루어가는 과정이라고 하였다. 즉 층층이 축적된 시간이 어둠을 완성하는 순간, 동시에 영원성의 빛도 완성하는 것이 된다.
(2) 어둠으로 쌓인 물감의 켜
어둠이란 검은색 평면이 아니다. 아예 색의 개념이 아니다. 어둠은 빛 이 없어서 캄캄해진 공간을 말한다. 물감 층이 쌓이는 것은 시간의 축적 이기 전에, 화면 위에 공간이 쌓이는 것으로서, 어둠을 형성하는 것이다.
[희원언니]<그림 11>88)는 검정색 없이 노랑(선황), 빨강(홍매), 파랑
87) ‘여행 중에 포착한 사진 이미지를 소재로 삼았다. 사원 모퉁이에 앉아서 소곤거리는 두 소녀 는 견학 온 학생들 같았다. 아이들의 모습은 항상 희망과 기쁨을 보여준다. ... 소형 판화로서 소나무 판의 굵은 결이 두드러진다. 진하게 수십 차례 인쇄하였다.’ 필자의 작업노트 중에서.
88) ‘유적지와 유래를 살펴보는 인물을 통해 종교적이고 사색적인 분위기를 표현했다. 칠하듯이 완만하게 판각하고, 바니시제판법을 활용하여, 다층의 중간 톤을 만들어냄으로써, 회화적으로
<그림 11> [희원언니] (Ms. Lue), 2004, 목판화(한지에 한국화물감), 162×116cm
(미감)의 단 세 가지 색을 번갈아가며, 수십 차례 거듭 찍기를 하여 만 든 작품이다. 이 세 가지 색은, 마치 3원색처럼 다양한 빛깔을 화면에 남겨놓으면서, 또한 어둠도 형성한다.
단순하게 생각할 때, 가장 어두운 색을 표현하려면, 자기가 사용하는 물감 중에서 가장 명도가 낮은 물감을 최대한 진하고 빈틈없이 화면에 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밝은 원색의 물감을 연하게 하 여, 여러 번 인쇄함으로써 어둠을 만든다. 검정색 먹 한 가지만 쓸 때도 마찬가지다. 먹을 아주 연하게 하여 여러 번 인쇄하고, 이렇게 겹겹이 쌓인 먹의 층으로 어둠을 만든다.
만약 단번에 어둠을 만들려고 하면, 어두운 공간은 사라지고, 꽉 막힌 검정색 평면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물감을 켜켜이 쌓지 않을 수 없는 것 이다. 앞에서 말한 시간의 축적도 결국 이것이다. 물감의 켜는 곧 시간 의 켜나 마찬가지고, 이것이 어둠이라는 공간이 된다. 시간차에 의해 종 이 속에 여러 층으로 스며든 물감이, 어둠을 검은 평면이 아닌 어두운 공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