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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목판화 기법의 현대적 활용

제를 무시할 수가 없는데, 작품은 그러한 특성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문화의 영역에 있는 예술은 국가나 민족을 초월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세계시민적인(cosmopolitan) 보편성으로 획일화해야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각개의 지역과 역사성의 뿌리로부터 자라난 다양한 개성 이 함께 발현될 때, 세상을 다채롭게 하는 것이다.

본 글에서 말하는 전통은 단지 한국의 전통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등한시되어온 한국적 특성을 작품에 도입하는 것을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사실이다. 작가의 정서적인 개성이 여기에 기인하 는 것이 많음에도, 그것을 담아내는 형식적인 부분이 서구적으로 편중되 어, 서로 부조화된 면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의 질곡의 근현대사는 미술의 영역에도 여러 가지 어려운 과제를 남겼고, 21세기가 무르익어가는 지금도 그 문제들은 여전히 풀어야할 숙 제로 남아있다. 즉 한국의 역사적 전통과의 단절, 서구 지향적 발전 등 으로 인한, 정체성의 혼란과, 시대에 발맞춰야 한다는 동시대성의 강박, 그리고 예술 본연의 작품성의 문제를 푸는, 세 지점이 조화를 이루는 작 업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時間), 세계(空間), 인류(人 間)의 문제를 조화롭게 푸는 것이고, 또한 ‘지금, 여기, 나’의 문제를 푸 는 것의 다름 아니다.

그런데 지금의 나 자신을 살펴보자면, 지극히 ‘문화적인 혼혈’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적 정서의 뿌리는 깊지만, 또한 서구적 문화 환경에서 교육받고 살아왔으니, 나의 정체성은 어느 한 쪽에 국한될 수가 없다.

정체성이란, 그 주체(主體)에 의해서 언제나 새롭게 발전해가는 것이므 로, 문화적 혼혈이라는 현재의 모습을 긍정하는 속에서, 동서 양쪽의 유 산으로부터 가치 있는 전통을 덧입어야 한다. 작업이든 삶이든, 개성으 로부터 출발하지만 보편의 궁극적 가치로 나아가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시공을 초월한 하나의 진실을 향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따로 있고 세계 가 따로 있지 않다. 지금 여기서 새로이 설정하는 나 자신의 정체성이 곧 새로운 한국성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에 있어서는 그 형식논리를 규명해서 전승하는 것 도 중요하겠지만, 그 뒤에 있는 세계에 대한 이해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200)

미래지향적인 미술의 중요한 기본 조건은 역사성과 시대성을 동시에 조 화시켜 충족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즉 구태의연해서도 안 되고 뿌 리를 잘라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이것은 전통이라는 튼튼한 뿌리 위에 있는 것이어야 할 뿐 아니라,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열려진 가능성을 지 닌 것이어야 한다.201)

각 세대는 힘써 일하는 인류의 하루하루에 해당하며, 그 사망과 탄생은 저녁과 아침의 종소리다. ... 예술ㆍ제도ㆍ정신적 풍토, 이 모든 것은 완성된 것이 아니며 항상 완성을 향해 진전한다.202)

나의 작업은 내용적 측면에서보다 표현 형식, 즉 기법의 문제에서 전통 과의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전통 목판화 기법’이라 함은, 한국의 판법 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문화적 혼혈이라면 분신인 작품 역시 그 럴 수밖에 없는데, 내 작품에서 복합적인 미의식이 발현되는 것은 특히 기법적인 면에서다. 즉 ‘전통 목판화 기법의 현대적 활용’이란, 동서양에 서 따로따로 형성된 목판화 기법의 창의적 종합을 말한다.

이 장에서는 기법에 관하여 다루되, 기존의 다양한 목판화 기법의 종합 적인 활용으로서 새로 개발된 것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주로 논하려고 한 다. 먼저 전통을 어떻게 작품에 새롭게 적용하였는지 [걷는 아이들]<그 림 27>, <그림 28>을 예로 들어 상세하게 밝히고, 그 후에 판화의 제 작과정에 따라 제판과 인쇄를 나누어, 각각 재료, 도구, 기법에 관하여 살펴보겠다.

200) 오윤, 앞의 글, p.75.

201) “전통을 물려받아 되살리는 것이 실존의 운명인데, 전통뿐만 아니라 같은 시대에 사는 사 람을 다시 살려내는 것을 명운(命運)이라고 한다. 운명(運命)은 진리를 깨닫는 것이고, 명운은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다.” 김흥호,『서양철학 우리 심성으로 읽기Ⅰ-철인들의 사상』, p.367.

202) 토머스 칼라일, 앞의 글, p.369.

<참고그림 32> [걷는 아이들1], [걷는 아이들2]의 연속 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