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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감)의 단 세 가지 색을 번갈아가며, 수십 차례 거듭 찍기를 하여 만 든 작품이다. 이 세 가지 색은, 마치 3원색처럼 다양한 빛깔을 화면에 남겨놓으면서, 또한 어둠도 형성한다.

단순하게 생각할 때, 가장 어두운 색을 표현하려면, 자기가 사용하는 물감 중에서 가장 명도가 낮은 물감을 최대한 진하고 빈틈없이 화면에 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밝은 원색의 물감을 연하게 하 여, 여러 번 인쇄함으로써 어둠을 만든다. 검정색 먹 한 가지만 쓸 때도 마찬가지다. 먹을 아주 연하게 하여 여러 번 인쇄하고, 이렇게 겹겹이 쌓인 먹의 층으로 어둠을 만든다.

만약 단번에 어둠을 만들려고 하면, 어두운 공간은 사라지고, 꽉 막힌 검정색 평면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물감을 켜켜이 쌓지 않을 수 없는 것 이다. 앞에서 말한 시간의 축적도 결국 이것이다. 물감의 켜는 곧 시간 의 켜나 마찬가지고, 이것이 어둠이라는 공간이 된다. 시간차에 의해 종 이 속에 여러 층으로 스며든 물감이, 어둠을 검은 평면이 아닌 어두운 공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치를, 그림자는 부정적인 가치를 상징한다. 밝음이 빛의 계시(啓示)라면, 그림자는 빛의 은폐(隱蔽)다. 밝음이 영원한 생명에의 믿음이라면, 그림 자는 불안을 의미한다.

불안은 실존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실존은 빛을 내는 존재가 아니 라, 받고 있는 존재자로서 그림자 또한 지니고 있다. 살아있는 한 성숙 하는-어쩌면 썩어가는- 열매(實存)와 같다. 즉 그에게는 성숙의 희망이 있지만, 반면 그 희망은 미완(未完)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은 누구나 신 앞에 서있는 ‘단독자’라고 했다.90) 이 말은 인간이 정오의 태양 아래 선 것처럼, 그림자 한 점 없이 낱낱이 드러났다는 말이다. 그러나 정말 한 점의 의심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이가 얼마나 될까? 인생은 정오에 멈 춘 태양 아래 가만히 선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그림자를 가지고 저물어 가는 태양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강가]<그림 12>는 정면으로부터 역광(逆光)이 비추는 강가의 풍경으 로서, 하늘과 강물을 제외하면 산이나 강변, 인물은 모두 완전히 그늘 속에 있다. 그래서 그들은 그대로 그림자인 것처럼 평면적이다. 여기에 는 [사원]<그림 10>에서 보았던 원근감을 주는 단계적 어둠이나 깊이 있는 공간은 없고, 화면을 몇 조각으로 나눈 평면만 두드러진다. 특히, 날카로운 수평선 위의 검은 산과, 삼각형의 검은 강변은 마치 그림자처 럼-사실 정말 그림자로서- 검은 실루엣만 나타난다. 전면의 인물은 반 사광처럼 느껴지는 빛에 의해 조금 묘사가 되었지만 그래도 아주 평면적 이며, 그를 제외하면 그림자 속에는 나뭇결의 흔적 외에 아무런 형상이 나 내용이 없다.

나는 앞에서, 어둠으로 현실감이 있는 3차원의 공간을 형성한다는 것을 논하였다. 여기서는 반대로, 그 어둠이 그림자 즉 2차원적인 환영(幻影) 이 되어버리는 것에 관하여 논하려 한다. 이것은 마치 영사(映寫)된 영 화 이미지가 3차원적인 착각을 불러일으키다가, 어떠한 이유로 인하여

로 곧 해를 의미한다. ... 음양의 상호작용으로 만물이 생성하고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 ...” 은배, 『한국의 전통색』, 경기도 파주: 안그라픽스, 2012, pp.112-113.

90) “그들은 신 앞에서 항상 단독자였고, 또 지금도 그러하다. 유리 상자 속에 앉아 있는 인간이 라 할지라도, 신 앞에서 속속들이 간파당하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만큼 부끄럽게 생각 하지 않는다.” 키에르케고르, 『불안의 개념/죽음에 이르는 병』, p.321.

<그림 12> [강가] (Riverside), 2005, 목판화(한지에 한국화물감), 55×60.5cm

평면 위의 환상임이 드러난 것과 같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다음 두 조 형 방법과 관련하여 논할 것이다. 첫째, 어둠의 내부를 묘사하지 않고 그늘(그림자)로 처리하여 공간을 상상하게끔 하는 일종의 ‘스푸마토 기 법’에 대하여, 둘째, 목판화의 특성상 나뭇결이 이미지에 중첩됨으로써 공간성과 평면성이 공존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 논할 것이다.

(1) 평면적 그늘

내 작품은 현실의 공간을 재현한 것으로서 때로는 여러 이미지들이 복

잡하게 어우러져 있다. 그런데 그 하나하나를 자세히 보려고 하면, 분명 하게 독립되어 드러나는 사물이 없다. 밝은 부분에서는 각개 사물의 고 유한 색이나 특징이 나타나지만, 그늘 속에 있는 부분은 사물 간의 경계 가 없고 하나의 검은 면에 합류되어있는 것이다.

사진에 관해 저술한 파이닝거에 의하면, 인간이 어두운 곳을 볼 때 작 용하는 시각 세포인 기둥꼴 세포(rods)는 감광성은 뛰어나지만, 사물을 선명하게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 우리 눈의 렌즈는 눈의 안쪽에 있는 망막이라 하는 빛을 느끼 는 곳에 상을 맺어 준다. 그러면 망막은 빛의 세기를 전기의 세기 로 전환시킨다. 이것은 수백만 개의 감광세포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데, 이세포들은 크게 고깔형과 기둥꼴의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해 상력(解像力)은 강하지만 감광성(感光性)은 약한 고깔형 세포들 (cones)은 우리로 하여금 상세한 디테일과 색을 보게 하는데, 이것 은 빛이 제법 밝은 때에만 제 기능을 한다. 한편 빛과 동작엔 예민 하게 반응하지만 색과 선명성을 느끼지 못하는 기둥꼴 세포들 (rods)은 주로 빛이 어두운 때에 활동한다.91)

즉, 어둠 속에서 둔감해지는 일종의 시각 능력의 약점 때문에, 화가가 어둠 속의 이미지를 세세히 묘사하지 않아도 관람자는 이상하게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한 덩어리로 처리된 어둠은 상상의 여지(餘地)가 되어, 관람자로 하여금 더욱 풍부한 해석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효 과를 만드는 것이 유명한 스푸마토(sfumato) 기법이다.92) 그늘은 실제 로 검은 평면에 불과하지만, 입체적으로 묘사된 밝은 부분으로부터 이어 지기 때문에, 마치 미완의 형상들을 품은 공간으로 느껴지게 된다.

아른하임은 화가가 어둠을 그늘로 표현하면서, 그 세부적인 묘사를 생 략한 채 암시(暗示)하는 기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는 어둠은 ‘무

91) 파이닝거, 『寫眞의 視覺』, 崔炳德(역), 寫眞과 評論社, 1983, pp.89-90.

92)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작품, [모나리자 (Mona Lisa)]의 웃 는 듯 마는 듯한, ‘신비한 미소’는, 다빈치가 스푸마토기법을 발명해 적용했기 때문이다. 입가 그늘 속의 입꼬리가 올라갔는지 내려갔는지는 관객의 상상에 달렸다.

존재’로, 밝은 부분은 ‘생명’으로 비유해서 말함으로써, 이러한 표현이 단 순히 시각적인 효과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시사(示唆)했다.

그늘 부분이 아주 짙어서 깜깜한 막을 드리울 때는, 사물이 무존 재(nonbeing)에서 문득 나타났다가는 다시 무존재로 되돌아가는 듯한 강한 인상을 받게 된다. 미술가들은 일관성 있는 고정적인 세 상을 보여주기보다는, 생명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하나의 과정으 로서 보여준다. 전체는 다만 부분적으로 보이며, 대개의 사물들이 다 그러하다. 형상의 한 부분은 보이고, 나머지 부분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게 된다.93)

이 암시적(暗示的) 기법은 평면적 그늘 안에 입체적인 공간을 추정하게 하는 것이기에, 작품에 평면성과 공간성을 동시에 가져온다. [소녀]<그 림 13>94)에서 밝은 부분은 사실적으로 묘사가 되어있지만, 반면 어두 운 부분은 나뭇결 흔적 외에는 아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결 을 무시하면 하나의 톤으로 되어있다. 그런 점에서 어둠 속은 평면적이 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밝은 부분과 이어지는 공간이 암시된다는 점에 서는 공간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그늘 처리는 목판화의 매체적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목 판화에서는 기본적으로 형태를 드러내는 방법이 양각(陽刻)과 음각(陰 刻)에 의한 것인데, 양각은 어둠, 음각은 밝음으로 표현되어, 화면은 완 전히 양분(兩分)되어 버린다.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흑백 목판화가 많이 제작되는 이유가 이것이다. 즉, 판각으로는 원칙적으로 중간 톤을 만들 수 없는 것이다.95) 따라서 검정색 평면이 오히려 다층의 톤을 함축(含

93) 루돌프 아른하임, 『美術과 視知覺』, p.323. (보여지며→보이며, 보여지고→보이고: 필자 고 침).

94) ‘숨쉬기 힘들 정도로 오염된 톤네삽 호수에서 나는 엉뚱하게 일몰을 보러간 여행객이었다.

그때 한 소녀가 작은 나무배를 자전거를 타듯이 천연스레 타고, 우리 배 옆으로 다가왔다. 소 녀와 나는 호기심에 서로 쳐다보았다. 나는 사진을 찍은 후, 뭔가 주려다 망설였다. 결국 내가 어떻게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 배의 젊은 사공은 피로 때문인지 노인처럼 보였다. 그뿐 아니라, 오염된 호수에서-호숫가가 아니라 정말 호수 위에서- 사는 사람들은 모두 물 위에 뜬 쓰레기와 섞여, 대부분 형편없는 몰골이었는데, 신기하게 아이들은 깨끗하게 보였다.’ 필자의 작업 노트 중에서.

<그림 13> [소녀] (A Little Girl), 2005, 목판화(한지에 한국화물감), 115.5×159.7cm

蓄)한 어둠의 역할을 해야 한다. 결국, 사실적인 단색 목판화에서 어둠 은 ‘공간을 함축한 평면’이라는 복합적인 공간성을 지니게 된다.

단색 목판화 뿐 아니라, 다색의 목판화나 내 작품처럼 사실적 내용을 단계적으로 묘사한 판화에서도 이러한 공간성이 나타난다. 나는 단순하 게 양분된 흑백의 화면이 아니라, 여러 과정을 거쳐 다단계의 톤의 화면 을 만들지만, 그것은 밝은 부분에 국한된 것이다. [소녀]의 그늘(어둠) 부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어둠 속은 거의 묘사를 하지 않고, 전체 화면 에 일관성을 주는 한 덩이의 그늘로 표현한다. 이러한 어둠의 흐름은 화 면 전체를 통일감 있게 만들어주고 견고하게 한다. 그래서 산만하고 반

95) 흑백 목판의 판각법에서도 예외적으로, 중간 톤을 구사한 작가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오윤(1946~1986)이나, 중국 흑백 목판화 작가인 자오옌니안(趙延年 1924~)이 있다. 이에 대 해서는 Ⅴ장의 완만한 판각 부분에서 자세히 다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