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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품에는 항상 빛의 요소가 있다. 빛을 발하는 광원이 직접 등장할 때도 있고, 광원으로부터 나온 빛이 대기에 반사되어 공간 전체가 어떤 미묘한 정조(情調)를 띄게 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내 작업에서 빛은 이렇게 조형적으로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즉 주제의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고, 작품의 완결성을 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전자는 존재(存在)103)로부터 계시된 영원성이라는 의미이 고, 후자는 그림이 살아나게 하는 것으로서의 의미이다. 이 두 가지 면 에서 빛의 의미를 살펴보겠다.

첫째, 나는 삶의 평범하고 단편적인 순간을 작품에 담아, 그 순간을 영 원성이 내포된 특별한 빛의 세계로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여기서 특별 하다는 것은, 그 순간이 누군가의 실제 경험이고 또 나름대로의 각별한 기억임을 나타내는 ‘그 순간의 빛’이라는 구체성(具體性)을 의미한다. 그 림 속에 나타난 구체적인 빛의 인상(印象)은, 흘러가버릴 일상적 사건을

‘특별한’ 기억의 순간으로 각인(刻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테오의 밀롱가]<그림 15>104)는 화면의 위쪽에 광원이 되는 전등이 있고, 거기서 나온 빛은 결을 따라 흘러내리듯이 바닥과 양 옆으로 서서 히 퍼지고 있다. 실내에 퍼져있는 빛의 느낌은 분명하지만, 또한 어둠

103) 본 논문에서 ‘존재(存在)’가 명사로 쓰일 때는 ‘신(精神), 영원’과 같이, 절대적인 근원, 즉 본래부터 있는 절대자(絶對者)를 지칭한다. 한편, 존재자(存在者)는 존재로부터 생겨난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을 뜻한다.

104) 나의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지만, 이것은 특히 개인적인 이야기로 채워진 그림이다. 테오, 리아, 제이라는 실존하는 세 사람에 대한 여러 가지 심정과 생각을 한 장면에 담은 것이었다.

특정한 인물들을 소재로 작업할 때는 그들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개인 적인 이야기를 작품에 담게 되면, 상황을 모르는 감상자에게는 무의미한 것이 될 수도 있지만, 삶이란 보편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화가가 자기 이야기를 하더라도 관객은 각자의 이야기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어둠과 같은 어려움이 있고, 그럼에도 어디선가 빛이 비추고 있는 것, 그것이 누구나의 삶의 모습이고, 내가 작품에 담는 이야기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기타 그림에 색 버전의 작품도 수록했다.

<그림 15> [테오의 밀롱가-리아와 제이; 먹] (Theo's Milonga-Leah and Jay;

black version), 2010, 목판화(한지에 먹), 161×122cm

역시 강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명암의 대조는 부드러워서, 대낮의 명랑 한 느낌보다 밤의 차분한 느낌을 준다. 빛의 차분함이 찬 것은 아니며 오히려 공간을 부드럽게 감싸는 것이다. 빛은 이렇게 미묘한 개성으로써 그 ‘순간’의 특별함을 되살리는 것이다.

한편,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지만, 여기에는 어떠한 소리도 없고, 또 시 간도 흐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나뭇결 따라 일렁이는 빛의 막 (幕)이 그림 속의 현장과 그림 밖의 관람자들 사이에 거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빛의 막 저편의 세계는 기억 속에 저장된 하나의 추억처럼 보 인다.

그림 속의 빛은 작가가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고딕 성당의 건축가가 색유리 창으로써 건물 안에 빛을 끌어들였듯이, 많은 예술가들은 나름대 로의 방법으로써, 빛을 작품 속에 스며들게, 그리고 빛나게 했을 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즉 빛은 현실 너머의 어디인가로부터 온 것처럼, 초월적이고 신비(神秘)로운 데가 있다.

사실 빛은 인간의 삶에 기반이 되어주고, 또한 아름다움(美)과 진리를 보여주는 가장 기본적 요소로서, 본래 근원적인 면이 있다. 물론 빛은 어디까지나 현상(現象; phenomenon)이기 때문에, 절대자 자체는 아니 다. 그렇지만 적어도, 빛은 형이상(形而上)의 절대적 존재가 스스로를 현실 속에 드러내는 특별한 계시(啓示)처럼 여겨질 만한 현상인 것이다.

따라서 작품에 빛을 담는 것은 작품 속에 근원적 존재가 현시(顯示)되기 를 희망하는 것이 될 수 있다.

[테오의 밀롱가]에서 광원인 전등불은 전혀 물감이 찍히지 않은 순수 한 지면(紙面) 그대로이며, 화면에서 가장 밝은 빛을 가지고 있다. 화면 을 덮은 나뭇결 커튼도 등불 위에는 드리워져있지 않다. 그래서 전등불 은 나뭇결의 커튼이 나눈, 그림 속과 그림 밖의 두 시공(時空)을 넘나드 는 절대적인 힘을 갖는다. 즉 그림 속에서도 그 공간을 밝히는 등불이지 만, 지금 그림을 바라보는 감상자에게도 실제로 빛을 내는 사물인 것이 다. 내가 이 전등을 순수한 백색으로 표현하는 데 집중한 것은 작품의 핵심적인 가치를 바로 이 광원과 그 빛에 담고자 했기 때문이다. 즉 절

대적 존재와 영원성을 은유하기 위한 것이었다.

둘째, 작품의 완결성의 측면에서의 빛의 의미란, 앞에서 계속해서 말한

‘그림이 살아나는 것’으로서의 의미다. 빛은 내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 숨결과 같다. 내가 표현한 내용을 최종적으로 설득력 있게 만드는 것은 빛의 생생함이다. 즉 내가 작품에서 묘사한 것이 어떠한 구체적인 순간 이든지 상관없이 언제나 가장 중요한 조형적인 목적은, 그 장면이 가지 고 있는 독특하고도 심상(心象)적인 빛의 세계를 결국 표현해낼 수 있느 냐에 있다. 그러한 노력이 성공한다면, 그림은 살아나게 된다. 다시 말 해, 종이와 물감으로 이루어진 사물에 불과한 그림 속에, 구체적인 어느 한 순간의 빛을 영원히 깃들게 할 수 있다면, 그림은 생명을 얻고 살아 나게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러한 빛에 대한 관심은 사실 미술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게 동서고금 으로 보편적인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빛이 어떤 본질적인 의미로 여 겨지고, 또 표현되어 왔는지 우선 살펴보려 한다. 그리고 내 작업에 표 현된 빛의 주제적, 조형적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논의의 순서 는, 빛의 두 가지 의미로서, ‘존재로부터 계시된 영원성’과, ‘그림의 살아 남’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