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버넌스는 기존에 경영학, 행정학, 정치학, 사회학 등 매우 다 양한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개념으로 그 개념에 대한 논의의 역사도 짧지 않다. 그러나 그만큼 거버넌스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분야마다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어 하나의 명확한 정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거버넌스 개념은 국가 중심의 국정관 리, 통치 양식, 국가의 경영 방식 등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주로 정
리되어 왔다. Peirre&Peters(2000)는 거버넌스를 사회체제의 관리 혹 은 조정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하고 “사회체제 조정 과정에서의 정 부의 역할”이라고 정의했고 Williams(2001)는 “사회 전체 차원에서 방향잡기 혹은 방향성을 안내하는 정책 목표의 조정, 정책결정, 정 책 평가와 환류 등의 소위 메타평가” 역할을 하는 것이 거버넌스 의 역할이라고 주장하였다. 한편, Lynn et al.(2001)의 연구에서는 거 버넌스를 “공적인 방법으로 비용이 충당되는 재화와 용역의 공급 을 제한, 허용, 처방하는 법률과 규칙, 사법 및 행정적 처리 체계”
로 보고 있다. 이는 거버넌스를 하나의 레짐으로 보고 있는 시각이 라 할 수 있다. 거버넌스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은 정부뿐 아니라 기 업과 시민사회 등 다양한 사회 구성 주체들의 참여와 이들이 의사 를 표현하고 또 이러한 참여로부터 정책이 결정되는 모든 채널을 포함하는 사회학적 시각이다(Rosenau, 1995). 이러한 다양한 거버넌 스의 개념에 대해 유현석(2006)은 거버넌스 개념의 공통점을 ‘관리 하는 것 혹은 관리 메커니즘’이라고 정리하기도 했다. 또한 거버넌 스는 “관리와 주체, 주체들 간의 역할분담 그리고 상충되는 이해관 계의 조정이라는 점에 주목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거버넌스는 다른 한편으로는 주체들 간의 역할과 상충되는 이해관계의 조정의 역할뿐 아니라 이해당사자들 간의 ‘관계 유형 자체’이기도 하다 (Krasner, 1982). 이러한 Krasner의 주장은 거버넌스를 공적인 목적 을 달성하기 위한 이해당사자 간의 특별한 형태의 상호작용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한편, 국제사회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국가들의 집합체를 넘어 다양한 비 국가 활동 주체들의 등장과 또 그들의 힘과 역할이 강조 되는 새로운 형태의 다이내믹스를 보이고 있다(Rosenau, 1995). 이러 한 환경의 변화 속에서 거버넌스 논의에서도 국민국가 중심의 거버 넌스를 벗어나 지구적 거버넌스(Global Governance) 논의가 시작되
었다. Weiss(2000)는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해 “한 시대가 끝나고 새 로운 시대의 다이나맥스를 기술할 수 있는 정확한 용어를 찾지 못 해서 쓰는 단어에 가깝다”라고 다소 비판적으로 정의하면서도 글 로벌 거버넌스가 기존의 국가 중심의 거버넌스와는 그 배경과 활용 에 차이가 있음을 지적한다. 거버넌스 개념에 대한 다차원적 활용과 마찬가지로 글로벌 거버넌스 개념 역시 학문 분야마다 다르게 정의 되고 있다. 먼저 국제정치학 분야에서의 거버넌스의 개념은 세계화 라는 국제사회 환경의 변화와 함께 글로벌 거버넌스라는 개념이 등 장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신자유주의적 제도주의와 맥락 을 같이 하는데, 냉전의 종식과 경제의 세계화 등이 국제기구의 역 할을 강화․확대하였고 국가들은 다자적 국제기구를 통해 공동의 문 제를 관리해 나가는 방식으로 글로벌 거버넌스를 이해한다(유현석, 2006). 또 국가 간 협력으로 인한 주권국가의 행동의 자유 제한을 개별 국가들이 동의하고, 이 제한은 국제기구로의 주권의 부분적 양 도를 포함하는 형태로 나타난다(Keohane, 1983). 다음으로 국제관계 학 분야에서는 경제적 세계화뿐 아니라 환경문제나 빈곤 문제 등 지구 차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위가 더 이상 국민국가에 한 정될 수 없고, 이를 초월한 초국가적 기구들이 협력적 네트워크를 이룰 때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본다. 때문에 글로벌 거버넌 스를 “그 간의 국민국가 중심의 거버넌스가 초국가적 수준으로 확 대 재생산된 개념”이라고 이해한다(김태균, 2013). 또 개발 원조를 주요한 연구 주제로 다루는 국제개발학 분야에서는 개발원조와 인 도주의적 긴급구호 등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분배하는 행위자들의 정책적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글로벌 거버넌스 개념을 모색하고 있 다(Kaul et al., 2003). 학문의 분야와 관계없이 글로벌 거버넌스의 실제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권위와 그 권위를 관리하는 메커니즘의 이동이 전 지구적으로 이동하고 있고, 정치․경제․사회 모든 시스템에
서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한다(유현석, 2006). 그리고 글로벌 거버넌 스의 형태는 초국가적으로부터 지방적인 수준까지, 거시적인 것부터 미시적인 것까지, 비정형에서부터 제도화된 것까지, 국가중심에서 다중심까지, 그리고 협력적인 것부터 갈등적인 것까지 전 범위에 걸 쳐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한다(Hewson & Sinclair, 1999).
이와 같이 글로벌 거버넌스 개념에 대해서는 국가 간 문제 혹은 국 제적 공동의 문제를 대면하는 ‘권위’, 이해당사자 간의 ‘관계’, 혹은 그 관계의 ‘관리 메커니즘’등으로 다양하게 정의하고 있지 만 다음의 두 가지 특징이 국제개발협력에서의 글로벌 거버넌스 개 념을 관통하고 있다. 첫째, 국제개발협력에서의 글로벌 거버넌스는 국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공동의 문제 해결 혹은 공동의 목표 달 성을 위해 이해당사자간의 협력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특히 국제 개발협력 사업의 차원에서는 근대적인 원조가 국가 간의 직접적인 외교 행위의 일환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중상주의와 현실주의 패러 다임을 벗어나기 어려웠고 여전히 국가 간 협력적 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둘째, 글로벌 거버넌스를 이루는 근본적인 힘이 공여국 국민에서 국가나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기관, 그리고 국 제기구로 ‘위임(delegation)’하는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특징 이다. 개발 원조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국제개발 원조의 패러다임 이 ‘도구’에서 ‘목적’으로 진화해 가고 있다는 것을 전제할 때 위임이라는 방식은 글로벌 거버넌스를 확장하고 그 영향력을 더욱 크게 하는 동인이 될 수 있다(박종희, 2016). 특히 위임이라는 방식 은 일반적으로 행위자(주인)가 대리인에게 일정한 권한을 이양하는 것을 뜻하므로 국내적으로든 국제적으로든 위임한 자와 위임받는 자 간의 책임과 그 내용의 효율을 동시에 확보하고자 하는 특징이 있다(Epstein&O’Halloran, 1999). 따라서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글 로벌 거버넌스는 지금까지 주로 원조의 효과성을 제고하기 위한 수
단으로 인식되어 왔으나 오히려 상호교차적으로 구성되는 원조의 효과성과 책무성이, 궁극적으로 글로벌 거버넌스의 효과적 작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모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Kim(2011)의 주장이 타당할 것으로 판단된다([그림 2-5] 참조).
[그림 2-5] 글로벌 거버넌스의 정당성을 구성하는 책무성과 효과성 출처: Kim(2011) pp. 28. 번역하여 재인용
근본적으로 ‘위임’이라는 방식을 통해 이행되는 개발협력 사 업은 이해당사자 간 당위적 이득, 즉 (원조의)효과성과 책무성을 담 보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에 선택된 방식이므로(박종희, 2016), 위 임 방식은 원조 효과성과 책무성 제고를 전제로 하며 이로 인해 설 정된 이해당사자 간의 관계, 즉 위임하는 자(주인)와 위임 받는자(대 리인)의 관계는 원조의 효과성과 책무성 제고를 담보해야 한다. 국 제사회가 개발협력의 효과성을 논할 때, 이해당사자들의 관계에 주 목하는 이유 역시 이 때문이다. 개발협력에서의‘위임’방식은 원조 효과성과 책무성을 담보하기 때문에 선택된 방식이지만 또 다른 한 편, 위임 방식에 내재되어 있는 딜레마로 인해 원조 효과성과 책무
성에 한계를 보인다. 실제로 원조 효과성 문제는 단순히 정책의 효 과를 측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근본적으로 원조의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박혜윤, 2013). Gibson et al.(2005)은 원조의 효과성 문제를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구분하였 는데, 첫째는 정보의 문제이다. 이는 고전적 주인-대리인 문제에서 도 동일하게 언급되는 문제로, 행위자들 간의 불완전한 정보 교환이 편향되거나 왜곡된 대응을 야기하고 특히 ODA와 같은 국제개발협 력 사업에서는 납세자와 수혜자 간의 지리적․정치적 거리가 존재하 므로 ‘정보의 단절된 피드백 고리(broken feedback loop of information)’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Svensson, 2006). 뿐만 아니라 개발협력 사업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은 행위의 선택에 있 어 자국의 정치적 환경에 따른 제약을 받는다. 두 번째는 동기의 문 제이다. 이는 개발협력의 행위자들이 이기적인 행동을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로, Buchanan(1977)이 소개한 ‘사마리아인의 딜레마 (Samaritan’s Dilemma)’로 요약된다. Buchanan은 공여국(기관)을 사마리아인에 비유하여 공여기관이 입법부로부터 받은 예산을 정치 적 자원으로 인식하고 이를 유지하거나 증가시키고자 하는 데 반해, 수원국은 공여국(기관)이 ‘사마리아인’이라는 것을 아는 이상 도 움이 없는 상태, 즉 원조가 없는 상황을 아예 상정하지 않으며 오히 려 열악한 국내적 상황을 유지함으로써 수원국 정부의 경제적․정치 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인식하고 낮은 수준의 선택을 하는 것이 합리적 최종 선택이 된다. [표 2-3]은 Buchanan의 사마리 아인의 딜레마를 2인 동시 게임의 형태로 도식화한 것으로 괄호에 서 앞 숫자는 공여국의 효용을, 뒤의 숫자는 수원국의 효용을 표현 한 것이다. [표 2-3]에서 표시된 (3,4)이 원조 효용의 균형점 이라는 것인데, 이는 사마리아인의 딜레마로 인해 공여국은 최대의 효용을 얻지 못하지만 원조는 계속해서 유지하게 되는 낮은 원조 효과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