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백이 된 피부는 뭔가 뽀샤시하게 광채가 난다고 해야 되나? (세준, 26 세, 대학생)
실제로 얼굴이 더 뽀샤시하게 나오는 부분은 카메라 테크닉이 더 중요해 요. (조명B)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뽀샤시? 복숭아 피부 이런 게 정말 유행이었다가..
(메이크업A)
‘뽀샤시’는 미백의 피부를 묘사할 때 자주 사용되는 단이다. 이 단어의 정확한 유래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2000년대 초반 보편화된 것으로 보인다. 기사상에 ‘뽀샤시’가 등장한 것은 1999년이 최초인 것으로 관찰되 고,55) 2000년대 초반의 기사들을 보면 “일명”, “소위”, “흔히 말하는”,
“신세대가 좋아하는”이라는 표현과 함께 뽀샤시라는 단어 및 관련된 새로 운 현상을 소개하고 있다. 표준어가 아닌 단어에 대해서도 이용자들이 직 접 그 뜻을 등록할 수 있는 네이버 오픈 국어사전에는 2003년에 한 이용 자가 “아기처럼 피부가 뽀송뽀송하다. 또는 잡티 없는 하얀 피부를 일컫는 말이다”라고 정의를 내려놓았다.56)
뽀샤시의 미학은 피부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존의 상상적인 관념이나 대 중매체들이 구현해 온 미백의 재현 미학을 토대로 삼고 있으면서도 몇 가 지 사건들과의 추가적인 연결접속을 통해 만들어진 배치물으로 보인다. 그 사건들이란 각각 2000년대 초반에 서로 다른 층위에서 활발하게 생성 및 확장되고 있던 별개의 배치물이자 기술적, 기호적 흐름이다.
우선 디지털 기술과의 연결이 있었다. 전세계적으로 디지털 카메라는 90년대 중순부터 소비자들에게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한국의 경우에는 2003년에 디지털 카메라의 판매량이 필름 카메라의 판매량을 추월했다(주 간동아, 2003). 그리고 카메라가 내장된 휴대폰, ‘폰카’가 보급되면서, 디 지털 이미지의 형태로 사진을 생산하고 보관하는 일은 매우 일상화되었다.
이러한 “디카‧폰카 신드롬”(이동현, 2003)이 동반한 것은 사진의 후보정 기술이다. “디지털은 ‘마술’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아래의 기사는 디지털 카메라의 테크닉과 포토샵을 이용한 후보정을 통해 누구나 자신의 결점을 고칠 수 있다는 내용을 소개하면서 그 핵심을 ‘뽀샤시’라고 설명하 고 있다.
얼짱 사진 핵심은 ‘뽀샤시’다. 너무 화려하게 부각되면 그렇지 않은 ‘원 55) 사람들이 PC통신 ID에 자신이 바라는 외모의 형태를 담는 유행에 대해 보도하면
서 ‘뽀샤시’가 예시 중 하나로 언급되었다(경향신문, 1999).
56) 네이버 오픈 국어사전. URL: https://ko.dict.naver.com/#/userEntry/koko/5 0346a883288bfcc3bad4c4cd9eaca51
본’을 들키게 되니 조심해야 한다. 뽀샤시한 상태로 시선을 집중시켜야 한다.
[…]
포토샵에 있는 다양한 필터 기능만 잘 활용해도 ‘뽀샤시’ 얼짱 사진 연 출이 가능하다. ‘가우시안 블러’로 전체적인 ‘뽀샤시’ 효과를 주면 된다.
(신익수, 2004)
디지털 이미지에 대한 ‘뽀샵’57) 기능으로서 등장한 ‘뽀샤시’ 효과는 기 존의 이미지를 구성하던 요소를 해체하고 재배치한다. 실제 신체의 피부 색조를 변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 된 피부는 특정한 색조, 채도 및 명조(HSB: Hue, Saturation, Brightness) 값을 부여받은 디지털 객체다. 따라서 미백은 이 값을 변환 함으로써 달성 가능하다. 더욱이 이러한 작업이 고도의 전문적 지식이나 기술을 요하지 않고 디지털 카메라와 포토샵을 시작으로 여러 보편화된 기술적 인터페이스를 통해 접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뽀샤시는 일상생활 의 미학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디지털은 ‘마술’”이라는 것을 일반 사람들이 가장 일상적이고 극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사진 의 뽀샤시 효과였던 것이다.
뽀샤시의 미학에 접속한 또 다른 사건적 흐름 및 배치물은 바로 ‘얼 짱’58)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얼짱’은 기존의 스타가 탄생되는 방식과는 다른 셀러브티리의 탄생을 보여 준다. 2000년대 초 인 터넷 커뮤니티 문화가 급성장하고 컴퓨터에 장착된 카메라로 자신을 찍은 사진인 ‘캠사진’이 포털 사이트 다음(Daum)의 ‘5대 얼짱 카페’와 같은 커 뮤니티에서 유통되면서 셀러브리티로서의 얼짱이 부상했다. 특히 휴대폰의 전면 카메라 기술은 자연스레 ‘셀카’의 유행을 만들어 냈고, 더 많은 얼짱
57) ‘뽀샵’은 ‘포토샵’의 은어다. ‘뽀샤시’가 ‘뽀샵’에서 유래한 단어인지는 알 수 없지 만 두 단어가 연관성을 갖고 등장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58) ‘얼굴 짱’의 줄임말로서 등장한 ‘얼짱’은 현재 국내에서는 유행이 지나간 단어가 되었지만, 해외에서는 한류가 부상하면서 한국식 메이크업 스타일이나 한국식 스 타일로 예쁜 외모를 지닌 이들이 ‘Ulzzang’, ‘オルチャン’ 등으로 불리고 있다.
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기존의 스타들이 재현 미디어가 구성해 낸 결과물 이라면, 얼짱은 표현 미디어로부터 생성되어 나온 셀러브리티다. 얼짱은 스스로 사진을 찍고 필요에 따라 ‘뽀샵’을 하여 온라인에 업로드했고, 얼 짱 카페와 같은 공간에서는 ‘5대 얼짱’ 등을 뽑기 위해 회원들이 투표를 하기도 했다. 즉, 스타가 특정한 스타성과 엔터테인먼트산업의 기획력을 바탕으로 그 매력을 인정받는 것이라면, 얼짱 셀러브리티는 동시대 또래들 이 공유하는 시각적인 미의 기준에 의거해서 선별된다. 그리고 그 미의 기 준을 구성하는 데에는 2000년대 초 30만 화소 안팎이던 폰카와 웹캠 특 유의 저화질 이미지, 그리고 뽀샵의 기술이 개입되어 있다. 이를 통해 얼 짱은 10~20대 또래 문화 안에서 선호되는 신체적인 기호들을 생산함과 동 시에 체화한다. 얼짱은 뽀샤시 미학을 구현한 미백 이미지의 프로토타입이 고, 얼짱 사진에서 나타나는 코드와 감수성을 따라 하는 셀카 미학이 온라 인에서 유통되며 얼짱 배치와 미백 배치를 형성해 왔다.
디지털 카메라와 포토샵, 폰카와 셀카, 온라인 대중문화와 얼짱이 연결 되는 흐름 속에서 뽀샤시 미학은 동시대 미백 개념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미백은 과거의 미인도나 기생 사진에서 보이는 것 같이 하얀 색조의 피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셀카와 얼짱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미백 이미지의 특성들을 들여다보면 ‘뽀샤시’가 색조를 밝게 하는 것 외에 추가적인 속성을 지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흐릿함(블러, blur)’이 있다. 위의 기사 인용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온라인상에서 ‘뽀샤시’ 효과를 주는 포토샵 기법을 소개하는 내용을 볼 때 대부분의 경우 ‘가우시안 블러(Gaussian blur)’의 사용에 대해 언급 한다. 가우시안 블러는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섬세한 노이즈를 줄이는 방 식, 흔히 말해 이미지를 ‘뭉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런 사진 보정 코드 는 얼굴의 일부에 의도적인 블러 효과를 넣는 미학으로 더 확장되기도 했 다.59) 이때의 블러 효과는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서라든지 시각적으로 불
59) 1999년에 운영을 시작한 국내 소셜 미디어인 ‘싸이월드’는 2015년에 사실상 주요 서비스를 종료했지만, 현재까지도 싸이월드 내에서 유행했던 소셜 미디어의 문화 적 코드들이 ‘싸이월드 감성’, ‘싸이 감성’이라는 단어를 통해 언급되고 있다. 싸 이월드 미니홈피에 업로드하는 사진을 꾸밀 때 유행하던 방식 중 하나가 얼굴의
쾌한 부분을 처리하기 위해 해당 부분을 뭉개는 일반적인 영상 문법과는 별개로 나타난 문화적 코드다. 무언가를 감추고 걸러낸다는 의미보다는 오 히려 꾸미기 효과의 기능에 가까우며, 특정 시기에 나타났던 문화적 감성 코드에 부합하는 이미지 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투명함이다.60) 포토샵으로 뽀샤시 효과를 낼 경우 가우시안 블러와 함께 많이 사용되는 것이 ‘투명도(opacity)’ 값의 조정이다. 투명도 를 높여 미세하게 반투명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투명함이란 디지털 기술 도래 이전의 대중 매체에서는 구현되지 못했던 속성이다. 투명한 피 부라는 것이 사람들의 관념적으로 가진 미의 기준 속에서 존재했고 실제 사람의 피부를 보며 감지되던 속성이라고 할지라도,61) 그것이 대중적으로 시각화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미지가 지닌 정보를 조정하여 투명도를 설정할 수 있게 됨으로써 투명한 피부는 시각적으로 구현 가능한 것이 되 었고, 미백의 의미 속에 안착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디지털 미디어 기술과 함께 나타난 뽀샤시 미학은 누구나 구현 할 수 있는 미백 이미지 미학으로서 자리잡고 그 외연을 확장함으로써 오 늘날 통용되는 미백의 주요한 의미를 형성하는 데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디지털 미디어 기술의 미학을 통해서 미백은 단순히 색조를 흰색에 가깝 게 만들거나 명도를 밝히는 것 외의 다른 특성들과도 결합한 배치물이 되 었다. 디지털 미백 이미지는 피부에 노이즈가 최소화된, 즉 피부가 잡티 없이 고른 색과 질감 등으로 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일부에 블러 효과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참고: https://1boon.kakao.com/unie ditors/cyworldphotoshop)
60) 인터넷 유머를 모아 소개하는 어느 기사에서 ‘뽀샤시’라는 말이 투명성을 은유하 는 말로 사용된 예를 볼 수 있다.
축하합니다 - 뽀샤시
(유엔이 정한 제1회 국제반부패의 날을 맞아 국제투명성기구가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우리나라 국민들은 국회를 가장 부패한 기관으로 여기는 것으로 나 타났다는 소식에 “국회가 1등할 때가 있긴 있나 보다”며 비아냥) (주간경향, 2004)
61) 예를 들어, 여성 잡지 <여원>의 1974년 10월호에는 “윤택 있는 투명감”을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