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K-뷰티’라고 불리는 것이 한류 문화의 일환으로 유통되고 있다.
‘K-뷰티’란 한국의 스킨케어 방식 및 관련 제품의 세계적 인기를 지칭하 는 것으로, 국내에서 한국인들에 의해 인식되는 미의 규범이나 실천을 넘 어서 해외에서 통용되는 한국의 미를 의미한다(박소정‧홍석경, 2019). 한국 드라마 스타 및 K-팝 아이돌의 아름다운 얼굴과 스타일링은 해외 팬들에 게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한국식 화장법이 유튜브 등에서의 K-뷰티 콘텐츠를 통해 활발히 유통되고 있다. K-뷰티 열풍을 통해 2015 년에는 국내 화장품 생산액이 사상 처음 10조 원을 넘어섰고, 수출액은 50%가 넘는 증가를 보였다(식품의약품안전처, 2018). K-뷰티의 경제적 영 향력이 가시화되면서 많은 연구들이 K-뷰티의 경제적 효과와 확산 전략을 논의한다(예를 들어 정선주, 2017; 이선정·이수범, 2017, 2018). 이러한 연구들은 K-뷰티의 산업적 측면에 집중하거나 K-뷰티를 하나의 변수로 삼아 효과 검증을 하고 있으며, K-뷰티의 내용적 측면과 그 함의에 대해 서 질적인 분석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K-뷰티는 시장의 성장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그 문화적 함의에 대해서 도 주목이 필요한 현상이다. K-뷰티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시점은 약 2013년 전후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K-뷰티 또한 한국의 문화콘텐츠 의 세계적 유통과 인기에 힘입어서 형성된 것이라고 볼 때, K-뷰티의 잠 재성 및 가능성에 대한 인식은 그 이전부터라고 평가할 수 있다. 2002년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 <뷰티산업의 부상과 성공전략>은 드라마 <겨울 연가>(KBS, 2002)의 성공을 뷰티산업의 성공 사례로 들고 있다. 뷰티산업 을 좁은 의미의 화장품에 국한하지 않고 문화콘텐츠가 뷰티산업의 일부이 자 화장품산업과 연계된 영역이라고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 서 보고서는 뷰티산업의 영역을 <그림 2-3>과 같이 네 가지로 제시한다.
외면
미관 (美觀)
미모 (美貌) 미담 (美談)
미품 (美品)
내면 (제품)
체화
(미적) 체험 악세사리
패션(의류)
에스테틱 생활용품 (샴푸, 비누)
향수 미용성형
순수예술 (미술, 공예, 도예, 공연 등)
미식
광고 디자인
제품 명품
화장품 콘텐츠
예술성 장인정신
그림 2-3 국내 뷰티산업의 분류
출처: 삼성경제연구소 (2002). <뷰티산업의 부상과 성공전략>의 4쪽에서 인용.
원 저작권자의 모든 권리가 보호됨.
여기서 본 연구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미모’와 ‘미담’이다. 즉, 화장 품산업과 콘텐츠산업은 미적 체험의 영역에서 각각 외면과 내면을 구성하 는 보완적인 관계에 있는 것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 그림에서 ‘미담’에는 광고만을 언급하고 있지만, 보고서 본문에 따르면 콘텐츠산업 영역에서
<겨울연가>가 ‘멜로 스토리’, ‘아름다운 장면’, ‘스타’의 세 가지 미적 요인 을 통해 TV드라마의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비록 이것은 2002년 국내 뷰티산업을 바탕으로 한 내용이지만, 뷰티산업의 분류 작업 을 통해 문화콘텐츠와 연계된 것으로서의 K-뷰티의 태동을 엿볼 수 있다.
뷰티와 대중문화가 밀접한 연결을 지닌다는 차원에서 K-뷰티는 동아시 아인의 문화적 정체성 측면에서도 함의를 지닌다. 홍석경(2013)은 한류 팬 들을 정서적 공동체로 만드는 중요한 가치 중 하나로 뷰티를 제시한다. 서 구의 미의 기준을 한국의 재현 기술 및 영상 언어, 뷰티산업, 한국적 정서 가치의 차원에서 번역해 낸 결과물로서의 한류 스타의 얼굴은 아시아인들 에게 더 많은 호소력을 지니는 문화정체성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이 멜로드라마의 스토리 속에서 이 공간을 자주 클로즈업함으로 써 스타덤에 오른 대부분의 한류 스타들은 섹스어필보다는 순결한 정신 과 감성이 엿보이는 얼굴의 매력으로 호소한다. 성형과 스토리텔링과 영 상기술에 의해 ‘구성된’ 그들 얼굴의 아름다움은 […] 사실적이라기보다 는 연상적(suggestif)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 ‘아시아성’을 재현한다기보 다는 아시아 정체성에 대한 ‘하나의 아이디어’ 또는 그에 대한 열망이라 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홍석경, 2013, 122쪽)
따라서 한류는 동아시아 국가의 미의 기준에 영향을 주는 주요한 문화 적 현상이다. 원(2013)은 중국의 뷰티산업을 관찰하면서 중국의 성형수술 리얼리티 TV쇼인 <신데렐라와 백조(灰姑娘與天鹅)>가 베이징에 위치한 한 중 협력 병원인 SK애강병원의 후원을 받고 있음에 주목한다. 2004년에 병원이 설립된 후, 2005년에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 <대장금>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수많은 중국 환자들이 이영애 사진을 들고 이 병원을 찾았다. 중 국에서 바비인형이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반면 한류 스타의 이미지가 중국인들에게 주요한 참조물이 되는 상황을 두고 원은 지구적 문화 접촉이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 이 아니라 비서구권 내에서도 일어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홍석경(2013)의 고찰과 마찬가지로, 한국인의 아름다움은 세계 미디 어에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서양인의 아름다움과는 다르면서도 서양인의 외모에서 장점인 부분을 갖고 있기에 아시아인이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앞서 언급했던 론디야(2009)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시아인들에 게 K-뷰티는 ‘친근한 이상’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미백은 K-뷰티의 핵심적 미학을 구성한다(박소정‧홍석경, 2019).
K-뷰티의 피부를 묘사할 때 사용되는 ‘porcelain’, ‘flawless’,
‘milky-white’, ‘dewy’, ‘glowing’ 등의 단어는 도자기처럼 흠결 없이 맑 고 촉촉한 우윳빛 피부가 K-뷰티의 형상임을 보여 주며, 이는 오늘날 한 국 사회의 미백 관리 및 화장법이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더불어 K-뷰 티란 한국인이 형질적으로 타고난 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이 규범화하여 정체성의 일부로 수행하는 미를 의미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 렇다면 K-뷰티의 핵심인 미백은 한국인, 더 나아가 동아시아인의 정체성 에 어떠한 효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해 볼 수 있다.
제 3 절 국내 포스트식민주의 연구의 지형
포스트식민주의는 대부분의 ‘포스트(post)-’ 담론과 마찬가지로 ‘포스 트’라는 접두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가를 둘러싼 문제로 수렴된 다. 시기적인 의미에서 ‘이후(after)’로 해석할 경우 식민주의의 연장선상 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현상들에 대한 접근을 의미할 것이고, ‘넘어서 (beyond)’의 의미로 해석한다면 식민주의의 해체 및 극복이라는 차원을 갖는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 유럽중심적 역사관을 내포하고 있고, 후자의 경우 아직 잔재한 식민 현실을 간과한다는 한계를 갖는다(McClintock, 1992; Shohat, 1992).17)
이러한 문제의식은 포스트식민주의를 일종의 수입 이론으로 들여온 국 내 연구에서는 ‘postcolonialism’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의 문제까지 동 반한다.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탈식민주의’는 탈식민을 궁극적 과제로 삼지 않는 포스트식민주의란 존재하기 어려운 가운데 그 운동의 방향을 명시하기 위한 목적에서 채택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태혜숙, 2001; 고부응, 2002; 이경원, 2003; 은용수, 2016 등). 그러나 ‘탈(脫)’이 지닌 초극적 의미로 인해 그 사용에 있어 제한적인 측면이 제기되기도 한 다. ‘postcolonialism’이 탈식민화(decolonization)를 목표로 하긴 하지만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에서 지속되는 식민 상태, 또는 신식민 (neocoloniality)의 상태를 내포하는 의미로서의 ‘postcoloniality’를 ‘탈식 민성’이라고 옮기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번 역어는 이에 대한 비판을 내포한 형태로 채택된다. 즉, 잔존하는 식민주의 적 정신과 구조를 환기시키려는 의도에서 ‘포스트식민주의’ 또는 ‘후기식 민주의’를 사용하고 있다(윤선희, 2003b; 김수미, 2015; 양현아, 2006; 이 상길, 2018 등). 또는 해석이 동반하는 오해를 인지하고 ‘포스트’의 양가 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차원에서 ‘포스트식민주의’ 또는 ‘포스트콜로니얼리 즘’이 사용되기도 한다(김수미, 2015; 황호덕, 2017).18)
용어의 장단점이 있는 가운데, 결국 어떤 용어를 채택할 것인가는 ‘탈 식민에 대한 의지’, ‘후기식민지로서의 한계’, ‘포스트식민적 상황’ 중 무엇 을 주요한 맥락으로 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19) 이에 본 연구 는 ‘postcolonialism’의 번역어로서 ‘포스트식민주의’를 택한다. 탈식민 (decolonize)은 유의미한 포스트식민적 담론의 효과로서 달성될 수 있다는
17) 포스트식민주의의 개념적 양가성에 대한 논쟁을 주도한 맥클린턱과 쇼핫은 이 용 어 자체를 거부하기도 했다.
18) ‘탈식민주의’와 ‘포스트식민주의’라는 번역어가 별도의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하는 데, 라틴아메리카의 ‘decolonialidad’ 담론을 다루는 경우다. 미뇰로(Mignolo, 2007) 등이 제시한 라틴아메리카의 탈식민성 기획에서 ‘postcolonial’은 냉전시대 의 제3세계 담론이 출발점이라면, ‘decolonial’은 1492년 유럽의 라틴아메리카 정 복을 맥락으로 삼는 것으로 구별된다.
19) 이에 황호덕(2017)은 포스트식민주의적 실천을 탈식민(반식민) 투사, 후기식민지 번역가, 포스트콜로니얼 비평가로 그 성격을 삼분한다.
생각을 전제로, 본 연구에서는 포스트식민 시대의 미백을 사유하는 여러 경로를 제시하는 것을 주요한 내용으로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미백은 식민주의적 구조 바깥에서의 담론화를 요하지만 한편으로 초국적 산업이 형성하는 신식민적 구조 안에서 제국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따라서 본 연 구는, 오늘날의 포스트식민적 상황에서 미백에 대한 고찰을 통해 미백의 탈식민화를 주장한다.
한국 사회를 대상으로 한 포스트식민주의 연구는 연구가 문제 삼는 식 민성이 무엇에 기인하는가, 즉 무엇으로부터의 탈식민할 것인가의 차원에 서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식민화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민족주의, 근 대화, 자본주의화 등과 뒤엉켜 전개된 만큼 오늘날 한국의 포스트식민성을 형성하는 여러 심급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기존 연구들이 비판의 대 상으로 삼는 한국의 식민성을 역사적 경험 차원에서 크게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일본 제국주의 및 식민주의 권력과 그에 의해 내화된 피 식민자로서의 식민성이고, 다른 하나는 전 지구적 단위에서 작동하는 서구 의 헤게모니와 그에 의해 내화된 비서구인으로서의 식민성이다.
우선 일본과의 관계에서 출발하는 포스트식민주의 연구는 피식민의 경 험이 해방 후 한국 민족에게 어떤 식민적 주체성 및 감정구조를 남겼는가 의 문제를 다루며, 그 포스트식민적 상흔을 어떻게 극복하고 실질적인 역 사적‧법적인 청산을 이룰 것인가를 탈식민의 과제로 삼고 있다(양현아, 2006; 이동준, 2013; 유선영, 2017). 특히 이와 관련해 위안부 문제와 기 지촌 여성 문제가 국내 포스트식민주의적 여성주의의 주요한 주제로 다루 어져 왔으며, 그 과정에서 식민주의가 민족주의 및 가부장주의와 결합하여 어떤 역학 관계와 차이의 정체성을 형성해 왔는지에 주목한다(양현아, 2006; 이나영, 2008).
본 연구와 조금 더 밀접한 관련을 맺는 포스트식민적 상황은 비서구로 서의 경험을 의미한다. 유색인의 미백이 백인 모방으로 환원되는 서구 중 심적 사상에 대한 문제의식이 이 연구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서 구의 근대성에 대한 선망과 함께 근대 사회로 이행했고, 더욱이 일본으로 부터 탈식민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서구 제국주의의 침투를 허용한 측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