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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구조의 제국에서 욕망으로

Dalam dokumen 비영리 - S-Space - 서울대학교 (Halaman 88-91)

들뢰즈가 자신의 방식으로 푸코의 사유를 재해석하며 쓴 저서인 <푸 코>(1986/2019)에서 들뢰즈는 구조주의에 대한 비판을 하며 “주체의 지배 와 구조의 제국”(33쪽)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들뢰즈는 구조가 이미 결 정된 층위를 갖는다는 점과 그 안에서 구성되는 주체란 담론에 종속된 ‘1 인칭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을 한계로 파악한다(Deleuze & Guattari, 1972/2014; Deleuze, 1986/2019).

이는 들뢰즈만의 주장이 아니라 변화하는 역사적 조건 속에서 탈구조적 이고 존재론적인 사유를 지향하는 이론들이 공유하는 시각이다(예를 들어 Haraway, 2016/2019; Braidotti, 1994, 2002; Strathern, 2005/2019;

Kohn, 2013/2018). 그러나 들뢰즈를 비롯하여 이러한 새로운 시각의 이 론가들이 주체 개념을 완전히 폐기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주체 (subject) 또는 행위주체(agent) 개념에서 한계를 발견하는 이들은 이 개 념을 용해시켜 유동적이고, 다수적이고, 인간중심적이지 않은 것으로 재개 념화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배치는 개인 주체를 대체하는 개념 및 단위 로 동원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칼롱(2005)이 행위주체성에 대해 정리하는 부분은 아래와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는데, 칼롱은 이와 같은 행위주체성의 속성 때문에 “개인-인간-행위주체”라는 개념을 “사회기술적 배치”(p.5)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① 행위의 집단성: 행위는 집단적 속성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② 행위주체성의 다수성: 행위주체성의 형태는 다수적이고 다양하다. 어떠한 배치 형태를 갖느냐에 따라 행위주체성은 계산적일 수도 있고 무의식적일 수도 있고, 집단적일 수도 있고 개인적일 수도 있다.

③ 행위 주체성의 비인간성: 행위주체성은 인간 신체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 니라 보철, 도구, 장비, 기술 장치, 알고리즘에서도 비롯한다.

칼롱(2005)이 제시한 바처럼 개인의 선택이나 행동은 반드시 개인의 명 확한 의식과 의도를 통해 행해지는 것도 아니며, 개인이 어떤 의도를 지니

고 행위주체성을 발휘한다고 하더라도 사회 현상의 단위에서 볼 때 그러 한 행위주체성은 다른 인간 및 비인간적 요소에 의해 희석되거나 굴절되 기도 한다. 데란다(2006/2019)가 사회적 배치는 “의도적 행위의 집단적이 고 비의도적인 결과”(49쪽)라고 하며 비선형적인 인과성이라는 메커니즘을 고려해야 한다고 한 것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가능하다.

배치 개념은 고정된 형태의 주체는 물론 개별 인간 행위자의 의식적인 행위주체성을 상정하지 않는다. 들뢰즈는 행위주체성이 지닌 주관적 개념 을 제거하는 작업으로서 배치를 제시했다(김숙진, 2016). 배치의 행위주체 성은 각 구성원보다는 배치의 형태 자체로부터 나온다. 여러 이질적 요소 들이 함께 작동하여 행위주체성을 만들어 낸다.34) 예를 들어 앞서 언급했 던 레디(2013)가 줌파 라히리의 소설에 대해 초국적 뷰티 배치를 제시한 것은 소설 속 등장인물, 즉 개인 행위주체가 능동적이고 의식적으로 발휘 하는 행위주체성에 주목하기보다 초국적 환경에서 뷰티라는 하나의 배치 물로부터 발생하는 정동적 효과 및 행위주체성을 다루기 위함이다. 미란다 가 딕시의 이미지를 마주했을 때 겪는 변화는 인물들의 인종 및 젠더적 특성, 인물들이 놓인 환경, 인물들 간의 관계, 인물의 발화, 이미지가 전달 되는 방식 등 다양한 요소들의 계열화 속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렇기에 배 치는 그 “요소들의 합 그 이상”(DeLanda, 1991, p.20)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중요한 개념이 욕망이다. 배치가 다른 이론과 차이를 갖는 부분은 욕망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다. 많은 이론들이 욕망을 대개 결핍에 기인한 것으로 설명해 왔다. 욕망을 핵심 개념으로 하는 논의에서 도, 여성의 남근 선망은 남근의 결여로 인한 것이고(프로이트) 식민지인의 백인 선망은 흰 피부의 결여로 인한 것이다(파농). 또한 앞서 본 피부색에 대한 선행연구들은 대개 푸코식의 담론 개념을 사유의 틀로서 취한다. 그 설명 속에서 유색인에게 하얀 피부는 욕망의 대상이고, 그 욕망은 백인성 의 특혜적 권력이 형성되어 온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욕망이다. 즉, 백인 성의 담론 속에서 개인은 하얀 피부를 욕망하는 주체로 호명되고, 사회 곳

34) 이는 ‘3인칭’(Deleuze, 1986/2019)이자 ‘페르소나’(Deleuze & Guattari,

곳에 미세혈관처럼 퍼져 있는 권력의 장치(dispositif)들이 하얀 피부를 욕 망하게끔 만든다. 여성주의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외모 가꾸기 가 욕망으로 해석될 수 있다면, 그것은 구조 속에서 여성이 느끼는 결핍에 기인하여 일어나는 것으로 해석되기 쉽다. 미백을 푸코의 주체와 권력, 담 론 개념을 적용하여 고찰한다면 미백을 규율하는 권력의 미시정치를 읽어 낼 수 있을 것이고, 프로이트식의 욕망으로 분석한다면 무의식과 억압의 작동으로 읽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은 ‘하얘지고 싶 다’라는 욕망을 늘 구조적 권력에 포섭되거나 결부된 형태로 파악한다.

반면 들뢰즈주의적 관점에서의 욕망은 결핍이나 억압과 관련되지 않으 며, “충만이고 실행이며 기능이다”(Deleuze & Guattari, 1975/2001, 135 쪽). 배치 자체가 곧 욕망의 배치다. 이러한 욕망 개념을 토대로, 푸코가 미시적인 권력 장치의 작동으로 설명한 것을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망의 배치로 바꾸어 놓는다.35) 푸코의 사유가 ‘권력이 어떻게 욕망을 규율하는 가?’의 질문이라면, 배치 이론은 이를 “어떻게 권력은 욕망되는 가?”(Deleuze, 1994/1997, 105쪽)라는 질문으로 바꾸어 놓는다. 들뢰즈는 푸코의 권력 장치는 구성적인 억압의 효과이며 그에 반하는 것은 ‘저항’이 라는 현상뿐인데, 모든 것이 권력 장치 하에 있는 존재일 때 그 저항이란 과연 가능한 것인지의 의문을 제기한다. 들뢰즈의 욕망에 상응하는 푸코의 개념인 쾌락(plaisir) 또한 주체화에 종속되기 위한 자아의 기술로서 들뢰 즈에게는 여전히 재영토화의 일부로 파악된다.

따라서 들뢰즈는 푸코에게는 없는 탈주의 힘, 푸코가 규정한 권력 ‘바 깥’의 힘으로서 욕망 개념을 제시한다. 욕망은 탈주선과 뒤섞여 존재하며 무언가를 생산하는 힘을 갖는 것으로 정의된다. 욕망은 어떤 요소들이 접 속하여 힘의 흐름을 절단하고 채취하는 생산적 능력이다. 그리고 이처럼 흐름을 절단하고 채취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을 들뢰즈와 가타리는 ‘기 계’, ‘욕망하는 기계(desiring machine)’라고 명명한다. 예를 들어, 입이 성대와 접속하여 계열을 이루며 소리의 흐름을 절단하고 채취하면 ‘말하는

35) 들뢰즈는 푸코의 장치 개념이란 배치의 한 구성요소라고 보며, 재영토화가 일어나 는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푸코의 장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규율 이란 배치 속에서는 코드화 또는 (재)영토화의 과정인 셈이다.

기계’로서 분절된 소리를 생산하고, 입이 식도와 접속하여 계열을 이룬 뒤 영양소의 흐름을 절단하고 채취할 경우 ‘먹는 기계’로서 신체 에너지를 생 산한다(이진경, 2002).

선행연구들에서 말하는 결핍에 기인한 욕망과는 달리 들뢰즈와 가타리 의 욕망 개념에 의거할 때, 미백은 보다 다양한 얼굴을 드러낸다. 미백의 규율 권력을 탐구하는 작업은 식민주의를 비판하는 효과를 가질 수는 있 으나 탈식민적 생성 담론을 생산하는 데에는 한계를 갖는다. 반면 보다 탈 주적인 욕망의 개념에 의거해 ‘미백 기계’는 무엇을 생산하는가를 질문할 때, 결핍과 억압 담론으로부터 벗어난 미백은 새로운 해석의 장을 맞이할 수 있다. 백인성의 담론적 구조 속에서 흰 피부를 결핍한 이가 흰 피부를 추구하도록 규율되어 이루어지는 행위로서 미백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의미를 생산하는 것으로서 해석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종합하자면,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주체가 형성된다는 관점에서 욕 망에 의해 주체가 생성된다는 관점으로의 전환은 무엇보다 소수자의 주체 성을 해석하는 데에 있어 주요한 함의를 지닌다. 어떤 주체가 된다는 것은

“말하고, 사유하고, 재현하려는 욕망”(Braidotti, 1994, p.120)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뷰티를 해석하는 기존의 여성주 의적 연구들이 마주한 ‘억압 대 힘돋우기’의 이분법적 해석 구도의 한계를 일부 극복하게 해 준다. 특정 개인 또는 집단이 주어진 구조와의 경합 과 정에서 능동적 행위주체성을 지닐 수 있는가에 대한 가불가의 답을 찾는 문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고정된 주체와 총체화된 담론을 벗어나, 욕 망의 배치 속에서는 다양한 계열화의 운동이 존재하는 열린 장으로 현상 을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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