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에 새로운 결을 더한다. 소수자 A가 억압 받는 위치의 차이성을 설 명하는 것이 아니라, ‘A-되기’를 통해 A와 관계하는 다른 주체 항들의 상 호변환, ‘더불어-되기’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러한 ‘되기의 정치학’을 통해 발견한 유목적 주체는 보다 탈중심화된 지평, 매끈한 공간에 위치한다.
제국주의의 권력 속에서 ‘하위’주체로 규정된 하위주체로부터 차이의 존재론을 내포한 유목적 주체를 이끌어 내는 것은 들뢰즈주의적인 탈식민 담론 생성 작업이다. 유목적 주체는 특정 단일 권력의 억압이 자신에게 남 긴 피해의 자국을 부각시키며 그것에 의해 정의되는 존재가 아니다. 유목 적 주체는 여러 힘과 욕망이 교차하는 배치 속에서 체화된 신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따라서 미백 배치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인종색 언어가 만든 ‘홈’을 따라 움직이는 하위주 체의 모습이 아니라, ‘매끈한’ 미백 문화 속 여러 요소의 연결망과 각각의 국면 속에서 생성되는 유목적 주체, 또는 ‘미백 기계’다.
에 서구의 몸과 책은 자신의 재현의 권위를 상실하게 된다. (210쪽)
즉, 식민주의적 포획 담론이 낳은 이 혼성적 존재들은 식민주의의 권위 자 체를 뒤흔드는 위협적인 쌍생아로 존재한다. 피식민자는 식민자와 동일한 존재로 완전히 포섭되지 않는다. 오히려 식민지 담론이 미처 포획하지 못 한 “변칙적이고 일탈적인” 양상은 제국주의의 권력에 균열을 가한다.
앞서 백인성에 대한 해체적 접근의 사례로 언급했던 카와시마(2002)를 빌어 바바의 모방 개념이 본 연구의 전개에 어떤 관점을 제공하는지를 더 구체화해 보려 한다. 카와시마는 ‘백인을 특권화하는(white-privileging)’
주체 위치에 대해 설명 및 비판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은 하얀 피 부나 큰 눈, 검은 색이 아닌 색의 머리카락 등을 통해 백인의 외형을 표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카와시마는 이러한 주장을 하는 자들 을 ‘백인을 특권화하는 주체’로 규정한다. 그 주체 위치는 일본인들이 백 인을 모방하고 싶어 하며, 그 결과 나타난 모방은 진짜에 미치지 못하고 부적절한 형태에 머무를 뿐이라는 가정을 기반으로 한다. 그 반대급부로 아시아인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표현한다는 명목하에 배우 루시 리우(Lucy Liu)와 같은 이미지가 대두되기도 한다.
그러나 카와시마(2002)는 모방이 식민자들의 담론이라는 바바의 개념을 인용하여 이러한 인식을 비판한다. 하얀 피부, 큰 눈, 검은 색이 아닌 머 리카락 등을 백인만의 외형적 특징으로 고정시키는 것이 인종적이고 식민 주의적인 독해라는 것이다. 그리고 루시 리우의 외모를 ‘진정한 아시아인 의 아름다움’이라고 여기는 것도 식민자가 규정한 “모방적 대안(mimed alterity)”(p.173)에 불과하다.39) 따라서 아시아인이 백인처럼 되고 싶어 한다는 발언은 물론 ‘아시아인은 백인처럼 되지 않고도 아름다울 수 있다’
는 발언까지도 백인중심주의에 공모하는 효과를 지니게 된다. 바바 (1994/2012)와 카와시마(2002)의 논의는 아시아인의 시각적 진정성에 대
39) 유사한 의미에서 초우(Chow, 2002)는 ‘강제적 모방주의(coercive mimeticism)’
를 이야기했다. 특정한 종족 주체는 담론과 제도가 호명하고 규율하는 힘에 의해 특정한 방식의 정체성에 위치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특히 유색인은 더욱 인 종‧종족적인 진정성(authenticity)을 증명하도록 요구받기 때문에 일종의 모범 답 안으로서의 진정성을 재생산하는 방식으로 정체성을 수행하도록 강제된다.
해 비판적이고 해체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차이의 존재론을 긍정하는 들뢰즈 또한 모방의 개념을 사유한 바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들뢰즈의 되기는 모방으로서의, 즉 무언가와 동 일해지기 위한 의미의 되기가 아니다. 더욱이 들뢰즈(1968/2004)는 재현 의 원리 속에 차이들이 종속되는 상황을 비판했다. 재현이란 단일 중심을 상정하고 그 중심과의 동일성, 유사성, 대립, 유비의 방식으로 세계를 파 악하는 방식이다. 재현적 사유에 반대하며, 들뢰즈(1969a/1983)는 바바와 유사한 방식으로 ‘시뮬라크라’의 전복성을 포착한다. 그는 플라톤주의가 본질과 그 이마주(image), 원본과 복제를 나누고, 선별하고, 위계화하는 철학이었음을 비판한다. 그리고 이마주 또한 두 종류로 나뉘는데 들뢰즈는 이를 ‘도상적 복제물(iconic copies)’과 ‘환영적 시뮬라크라(phantasmatic simulacra)’라고 구별한다. 둘의 차이점은 <표 3-5>에 정리되어 있다. 즉, 도상적 복제물이란 형상의 본질에 근거한 모범적인 복제로서 표준적인 동 일성을 전제로 하는 반면, 환영적 시뮬라크라란 본질에서 벗어나 경계선을 흐리는 존재다.
도상적 복제물 환영적 시뮬라크라
유사성에 근거 비유사성에 근거
내적인 본질을 갖춘 좋은 그림자 내적 불균형, 일탈, 전복의 나쁜 그림자
동일자(the Same)의 모델 타자(the Other)의 모델
표준적 동일성 존재 탈중심화된 체계
표 3-5 도상적 복제물과 환영적 시뮬라크라 비교
이러한 구별에 의거해서 볼 때, 파농(1952/2014)이 고민하고 주장했던 탈식민의 방법은 환영적인 시뮬라크라를 통해 달성될 가능성을 찾는다. 식 민지인으로서의 앙티유인이 내면화한 열등감에 대해 이야기했던 파농은 앙티유인의 내면에서 “하얀 존재감”(Fanon, 1952/2014, 220쪽)을 발견한 다. 이것은 앙티유인의 심리에 자아와 타자 외에 존재하는 세 번째 항으로 서의 백인이다. 앙티유인은 자아와 동류의 타자를 비교할 때는 자아를 앞
세우지만, 백인과 자아의 관계에 대해서는 백인을 우위에 둔다. 내면의 하 얀 존재감이 더 강하게 자리잡은 앙티유인일수록 자신의 언어와 제스처를 통제하며 자신의 열등감과 싸우고 백인의 세계관 속에서 자기 분열을 경 험한다. 즉, “한 사람의 검둥이는 매순간 자신의 이미지와 싸운다”(184쪽).
이 싸움은 자신을 도상적 복제물로 위치시키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분 투라고 할 수 있다. 파농은 ‘모범적인 백인 모방/진정한 흑인’의 이분법으 로부터의 벗어난 심리적 탈식민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검둥이는 없다.
백인도 마찬가지다”(223쪽)라며 (피)식민 주체를 해체시키는 파농의 주장 은 유기성을 잃은 개인(dividual, 기관 없는 신체)과 일탈적인 시뮬라크라 를 논하는 들뢰즈적 사유 안에서 더 큰 울림을 갖는다.
이러한 논의의 맥락에서 조금 이르게 미백의 함의를 도출해보자면 다음 과 같은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선행연구에서 보았던 ‘모범적 소수자 (model minority)’(Kim, 2001), ‘명예 백인’(Bonilla-Silva & Dietrich, 2009)은 도상적 복제물로서 파악된 아시아인이라고 할 수 있다. 백인이라 는 원본으로서의 형상에 근거하여 동일자를 모델로 삼는 아시아인들은 백 인 세계 안에서 착하고 안전한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오리엔탈리즘 적 상상 속에서 황화(yellow peril)로 인식되었던 아시아인이 하얀 피부로 탈바꿈할 때 이것은 또 다른 위험(peril)으로 여겨진다. 미백의 아시아인들 은 백인의 내적 본질을 공유하지 않은, 즉 내적으로는 비유사성에 근거한 개체다. 백인의 세계관도, 서구 국가에서의 거주증도, 원본에 대한 존경도 결여한 미백의 아시아인은 백인 형상을 거부하면서 환영적인 허구의 세계 를 만들어 내는 전복적 그림자다.
들뢰즈는 바로 이 전복적인 그림자로부터 생산적인 힘을 발견한다.
시뮬라크럼은 표면으로 기어 올라와 동일자(the Same)와 유사자(the Like), 모델과 복제물을 허구의 권력 아래 복속시킨다. 그것은 참여의 질 서, 분배의 고정성, 가치 결정에 있어서의 위계를 모두 불가능하게 만든 다. 그것은 유목민적 분포와 승리한 무정부적 상태의 세계를 수립한다.
시뮬라크럼은 새로운 정초를 제시하지 않으며, 모든 정초를 삼켜 버린다.
그것은 보편적인 와해를 일으키지만, 그 와해란 긍정적이고 즐거운 사건,
즉 탈정초(de-founding)다. (p.53)
시뮬라크라는 재현의 요구, 동일성의 척도로부터 벗어나 끊임없이 탈정초 하는, 탈주선을 만들어 내는, 탈영토화하는 잠재성을 지닌다. 보드리야르 (Baudrillard)가 결핍이라는 부정적 개념에 의거해 시뮬라크라를 논한 것 과 달리, 들뢰즈는 욕망을 결핍이 아니라 생산으로 해석한 것과 마찬가지 의 방식으로 시뮬라크라를 욕망하는 기계가 생산하는 긍정적 힘으로 보았 다.40) 여기에는 단순히 반복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변이생성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시뮬라크라는 곧 차이의 존재론으로서 n개의 되기를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