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미국 정교관계의 역사적 형성
1. 자유주의적 견해에서의 중립성
88) Ronald Dworkin(註 80), p. 205.
89) Kis(註 81), p. 321
(1) 차별금지로서의 중립성
자유주의적 중립성 지지자들은 가치 있는 삶의 방식을 강제로 부과하거나 가치 없 는 삶의 방식 추구를 강제로 금지하는 것을 부당하다고 본다. 즉 이를 부당한 비중립 적 국가 행위(objectionably non-neutral state action)로 규정한다. 강제적 방법으로 사람 들의 삶을 보다 나아지게 만들려는 노력이 왜 도덕적으로 허용할 수 없는 것인지를 설명할 때 중립성의 원칙을 그 근거로 하는 것이다. Ronald Dworkin은 ‘누군가의 삶은 강제가 없을 때 유지되던 그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에 반하여 개선될 수는 없기’ 때문 에 강제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90) 이 주장은 사람들을 스스로가 찬성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도록 강요하는 것, 후견주의
(paternalism)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Dworkin은 중립칙이 반후견주의 그 자체와는
다른데, 그것은 최소한 다음과 같은 단 한 가지 점 때문에 그러하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영위할 올바른 방식에 대한 의견이 저열하거나 잘못되었다 고 관료들이나 다른 국민들이 생각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허용된 자유에 대한 형법상의 불이익을 포함한 사회적 재화(goods)와 기회의 분배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91)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중립칙의 범위는 반후견주의 원칙의 범 위와 일치하지 않는다. 전자는 후자보다 넓기도 하고 또 좁기도 하다. 중립칙은 특정 개인들에게 그들의 선택권을 강제적으로 제한하지 않고 불이익을 주는 국가행위(state
acts)에 적용되기 때문에 범위가 더 넓다. 또한 반후견주의는 개인적 도덕성과 정치적
도덕성 모두의 원칙인 반면, 중립칙은 국가를 통해 행동하는 정치공동체로 제한되기 때문에 범위가 더 좁다.92)
이 설명에서 언급되는 국가행위가 부당하게 비중립적인 이유는 스스로의 삶의 방식 에 대한 판단만을 근거로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준다는 점이다. 이 때 불이익은 그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선택권을 강제적으로 제한하는 방식으로 가해지게 된다.
이러한 국가행위에 반해, 중립성 원칙은 국가가 좋은 삶의 개념에 대한 공식적 판 단을 근거로 그 누구도 편애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이것이 특별한 종류의 차별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원칙인 차별금지원칙(a principle of non-discrimination)이다.
90) Ronald Dworkin, Sovereign Virtue: The Theory and Practice of Equality (Cambridge : Harvard University Press, 2000) p. 283.
91) Dworkin(註 90), p. 353.
92) Kis(註 81), p. 322
이 원칙은 정치철학적 원칙인 동시에 헌법적 원칙이다. 이 원칙은 인종, 종교, 성별 등 개인이 가진 속성이나 가치관에 따른 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 는 주지하는 바대로 세계인권선언에도 보장되어 있으며 거의 모든 근대입헌국가 헌법 에 규정되어 있다. 예를 들어 독일 기본법의 평등권조항, 프랑스 인권선언에서의 평 등, 미국 헌법에서의 법 앞의 평등 및, 우리헌법 제11조의 평등권 조항에서 이러한 원 칙을 도출하는 명문의 헌법적 근처를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
(2) 공적 이성에서 공유된 근거로서의 중립성 1) 배경
비록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에는 자유주의적 중립성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고 「정치적 자유주의」(Political Liberalism)에서는 아주 가끔만 등장하지 만, 자유주의적 중립성에 대한 담론은 Rawls의 영향력 있는 저서인 이 두 책에 의해 그 틀이 확고히 갖춰졌다. 「정의론」에서는 중립성은 먼저 차별금지
(non-discrimination)임을 논한다.93) 정의의 원칙은 다목적인 ‘사회적 기본재’의 분배를
규제하고, 개인들이 자신들에게 배분된 재화들의 한도 내에서 자신들의 특정한 인생 계획(life-plans)을 세우고, 수정하고, 추구하도록 만든다. 정의의 원칙은 ‘목표의 체제
(systems of ends)를 가치에 따라 순위 매기지 않고’94), 특정한 인생 계획이나 좋음
(good)에 대한 관념을 옹호하는 편견을 반영하지도 않는다고 한다.95)
이런 이유로 중립칙은, 앞부분에서도 논의했듯이, 그 어느 누구에게도 그 사람이 가지 고 있는 좋은 삶(good life)의 관념에 대한, 논란이 많은 가치 판단만을 근거로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중립칙은 국가들이, 논란이 많을 수 있는 각 좋음 (good)의 관념들에 대해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2) 두 가지 고려 사항
93) J. Rawls(註 80, A Theory of Justice, 1999 revised edition), p. 223. 그는 이 책에서 ‘정의의 원칙은, 그 내용에 상관없이 합리적으로 그 삶(life)의 계획을 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적용된 다.’라고 주장한다.
94) Ibid., p. 17.
95) Ibid., p. 222.
「정의론」은 여기에서 고려해야 할 두 가지 중요한 사항을 추가한다. 첫째로, 「정 의론」은 논란을 구별해낸다. 즉 합리적인 사람들, 즉 자신의 협력에 유리한 공평한 조건을 찾고, 자신의 오류를 범하기 쉬운 경향에 대해 의식하며, 반대편의 주장을 진 지하게 고려하는 사람들을 이들처럼 합리적이지 않은 사람들 간의 논란으로부터 격리 해냄으로써 논란을 구별해낸다. 그리고 차별금지를 뜻하는 중립성의 범위를 합리적인 의견 불일치(reasonable disagreement)의 대상인 좋음(good)의 관념으로 제한한다. 또한
‘합리적인 의견 불일치’의 근원(이를 판단의 부담burdens of judgment이라고 부른다)의 목록을 제공하기도 한다. 즉 논란이 많은 사건들에 대한 증거의 평가가 난해한 점, 비 록 한 명이 관련된 고려사항들에 대해 동의하더라도, 나머지 사람 중 하나 이상은 그 중요성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관념들, 특히 도덕 관념들은 모호하며 처리하기 어려운 사건들의 대상이라는 점 등을 예로 들 수 있다.96)
둘째로, 「정의론」은 논란이 많은 근거의 사용은 도덕적으로 반대될 만 하다고 한 다. 즉 합리적인 사람들이 봤을 때 논란이 많은 근거를 이용해서 국가 행위를 정당화 시키는 것은, 문제시되는 행위가 이점의 불평등한 분배를 야기하는지 여부와 상관없 이 도덕적으로 반대할 만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이러한 정당화가 소위 ‘자유주의적 정당성 원칙’(이하 ‘정당성원칙’)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정당성원칙’는 어떠한 정치적 조직이 권력을 독점할 권리가 있다는 정당성이 개인에게 제공되지 않고서는 누구도 정치적 조직의 강압 아래에 놓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국가가 합법적으로 강압적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강압적 권력을 독점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다르게 말해서, 국가가 그러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리고 이 주장이 모든 대상들 각자에게도 정당화될 수 있 어야 한다.
그런데 ‘의견 불일치’가 만연한 사실이라는 점은 ‘정당성원칙’에 어려움을 가한다.
즉 누군가가 합법적인 권력 소유를 하는 결과가 되는 주장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면, 이는 공유되었다고 기대할 수 있는 근거들의 면에서 정당화가 되었다는 것을 상정한 다.97) 그러나 정당화 과정에 활용된 ‘근거들’을 두고 합리적인 사람들 간에 해결하기 힘든 의견 불일치가 발생한다면 이것은 문제인데, 근거들의 공유가능성이 손상되기
96) J. Rawls(註 80, Political Liberalism expanded edition 2005) pp. 56-57.
97) Ibid., p. 243.
때문이다.
3) 포괄적 교리와 정치적 관념의 구별
이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정의론」은 ‘정치적 관념(political conceptions)’을
‘포괄적 교리(comprehensive doctrines)’들과 구별해내는 것을 제안한다. 만약 어떤 교리
가 비정치적인 문제를 다루는 규범적이고 사실적인 가정들을 수반한다면, 그 교리는 거의 포괄적이다. 예를 들면, 신학, 형이상학, 인식론, 개인적 도덕성, 윤리학 등의 영 역에 해당하는 가정들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그런데, 만약 관념이 사회의 기본 구 조 즉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사회의 강압적인 기관들을 대상으로 삼는다면 관념은 협 의로서(narrowly) ‘정치적’이다.98) 포괄적인 교리들은 합리적인 의견 불일치(reasonable
disagreement)의 대상이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협의로서 ‘정치적’인 근거들은 합리
적인 논란의 범위를 넘어서고 공유된다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국가 행위에 대 한 정당화가 포괄적인 교리들의 다양성에 대해 중립적이라면 ‘정당성원칙’, 즉 자유주 의적 정당성 원칙을 만족한다. 이는 협의의 정치적인 용어들로 기술되어야 한다.
4) ‘정치적 자유주의’와 국가의 중립성
그러나 만약 자유주의가 국가가 이러한 방식으로 중립적이기를 요구한다면, 이 요 구는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주장하건대, 이 정당화 자체도 스스로가 다른 정당 화를 위해 설정한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그 기준이라는 것은 즉, 모든 시민들이 공유 할 수 있는 이유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자유주의는, 정치적 교리들이 개인적 자율성과 인류의 번영에 대한 특정한 관념에 의존하는 포괄적인 교 리로 간주된다. 즉 자유주의라 하더라도 ‘포괄적 의미의 자유주의’는 논란이 많은 시 각이므로 요구된 정당화를 제공할 수 없다. ‘단순히 다른 종파의 교리’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Rawls는 자유주의가 자기 스스로에게 중립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즉 자유주의는 자신의 정치적 원칙들의 형이상학적, 인식론적, 윤리적, 등의 토대를 일단 배제하고 ‘민주주의 사회의 대중정치문화에 내포된 생각들’만에 호소함 으로써 후자를 정당화해야 한다는 것이다.99)
98) Ibid., p. 10-11.
99) Ibid., p. 8,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