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미국의 국교부인과 중립성
Ⅲ. 향후 전망
요컨대, 우리는 프랑스식의 엄격 분리 중립과 독일식의 열린 중립 간의 차이를 위 사례들을 분석하면서 보다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슐라이히(Schlaich)가 35년 전에 주목한 바대로, 현대 국가가 개입국가 경향을 띠면서 국가와 사회를 점차 일치 시켜나가는 고차원적인 방향성이 있음을 인정한다면, ‘단순한 격리’라는 프랑스식의 접근은 독일식의 ‘동등한 배려’보다 현대 국가에 적합하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453). 그러므로 유럽에서 이슬람교를 수용하는 문제에 관한 논의에서 프랑스식의 거리를 두 는 중립보다 독일식의 열린 중립이 종종 선호되는 것은454) 무리한 일이 아니다.455)
즉 이슬람교도의 머릿수건 착용을 선택적으로 배제하는 문제의 당부를 떠나서 학생 들의 종교적 자유는 독일에서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다만 국가 공무원로 하여금 공무에서의 복장에 있어 자제를 보일 것을 기대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비합리 적인 요청이 아니었다는 것이 이러한 독일에서의 ‘열린 중립’의 결론이었다. 이 점은 원칙적으로 국민들에게 포괄적 중립성을 적용하되, 국가로서의 역할을 하는 국가공무 원들에게만 배제적 중립성을 적용하는 중립성의 복합적 실행 형태이며, 이것이 독일 식 세속주의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을 볼 때 이민자(또는 새 문화그룹)의 유입 및 개입국가현상이라는 요소 를 동시에 가지는 경우라 할지라도 결국 현대 국가에서도 정교문제를 다룰 때 중립 개념 그 자체를 부정(내지 폐기)할 수는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 부정이라는 방식 은 설령 프랑스적인 중립만을 생각할 때는 이론적으로 고려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공적 영역에서 종교적, 문화적 차이를 포용하는 독일식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때문이
453) Schlaich(註 76), S. 242.
454) 예를 들자면 Matthias Mahlmann, “The constitutionalisation of secularism in Germany,” Migr ation, religion and secularism: A comparative approach (Europe and North America) (Sorbonne : University of Paris, 2005) pp. 32-33.
455) 이슬람교도의 머릿수건 착용을 선택적으로 배제하는 문제로 인해 자유주의 원칙이 얼마 나 심각하게 훼손되었든 간에 학생들의 종교적 자유는 독일에서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음 을, 그리고 국가 성원들로 하여금 복장에 있어 중용을 보일 것을 기대하는 것은 그 자체로 는 비합리적인 요청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 따라서 다문화 인정을 중립과 구별하기 위해서는, 특히 ‘열린 중립’까지 포함하는 중립과 구별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노력이 요청된다.456)
프랑스, 독일 각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었듯이 다문화주의의 비판을 야기했던 민족
-국가적 배타주의가 현대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상존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공
화주의는 프랑스의 경우에 승리를 거두었으며, “기독교 국가”의 건설은 독일의 사례 에서는 실제로,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와 같이 가톨릭적이며 보수적인 일부 州(Land)들 의 수정된 교육법에서 부분적으로나마 부활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법적-정치적 결과의 정당화에 있어 주요한 역할을 했던 “중립”, “중 립성”이야말로 다문화주의 비평가들이 언제나 말했던 바대로 특수한 집단의 위세를 위장한 외피로 효력과 기능을 발휘했는지. 그리고 그러므로 오늘날 다문화적 인정을 향한 기획이나 정책들이 그 어느 때보다 적절하고 유의미한 것은 아닌지. 이런 질문 을 던져본다면 이 글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답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중립은 다문 화주의 비평가들이 폄하하는 것처럼 집단의 권력을 숨기는 단순한 연막장치라기보다 는 보다 다면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문화주의 프로젝트의 내재적인 문제점들과 비 일관성 때문에도 그러하다. 현재에도 상존하고 또 어떤 곳들에서는 지배적인 관념이 기까지 한 (민족-국가주의로서의) 배타주의적 사조 옆에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주의적 중립의 원칙을 수호하는 독립된 사법부들에 의해 주요하게 대표되는 강한 보편주의 사조 또한 존재한다. 오늘날, 특히 유럽에서는 고전적인 민족-국가가 후퇴하는 만큼, 이러한 강한 보편주의 사조는 특정한 사람들에 의해 국가가 “소유된다”는 추정을 근 본적 전제로 하는 다문화주의적 대안이거나,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오히려 그 효용성이 흠결되는 정교“분리” 개념의 발달이라기보다는, 역사적으로는 자유주의적 토대를 갖고 있고 현재도 발전하고 있는 중립성 개념의 발달이 무엇보다도 유용하였 고 앞으로도 필요하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주는 징표라고 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학계와 판례의 흐름을 크게 세 가지의 입장으로 구분될 수 있었다. 분 리를 강조하는 견해, 수용을 강조하는 견해, 그리고 절충적인 견해(소위 중립설)이 그 것이었다. 나는 이것을 배제적 중립성의 측면을 강조하는 입장, 포함적 중립성의 측면 을 강조하는 입장, 그리고 중립성의 두 면을 모두 이해하는 입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 본다.
456) Joppke는 이에 대해 3개의 구별되는 요소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이 다문화
인정에 더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Joppke는 지적한다. Joppke(註 34), p. 14 3.
앞서 보았듯이 이 중 세 번째 입장인 절충적 견해(혹은 소위 ‘중립설’457))은 정부가 종교에 대하여 중립적이어야 하므로, 정부는 세속에 비하여 종교를, 어느 종교에 대하 여 다른 종교를 더 편애하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었다.
이 이론을 지지하는 연방대법관들은 국교설립금지 규정의 위배여부를 판단하는 기 준으로서 1960년대에 개발되고 1971년 Lemon v. Kurtzman 사건에서 확립된 세 가지 심사기준을 적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심사기준은, 간접적으로 종교를 발전시키는 정부의 조치를 허용하고 정부와 종교의 연루가 지나치지 않으면 이를 허용하므로 엄 격분리설과 구별되고, 입법목적이 세속적이지 아니한 것을 허용하지 않으므로 수용설 과 구별된다고 할 것임은 앞서 본 바대로이다.
이러한 ‘중립설’은 1970년대에는 많은 대법관들이 지지하였으나 1980년대에는 다소 지지가 줄어들었고, 1990년대의 Rehnquist 대법원에서는 수용설 지지자들이 늘어가고 있으며 확고한 중립설 지지자는 Stevens, Ginsburg 대법관 정도라 할 수 있었다. 미국 사회가 보수화되어 가면서 엄격분리를 반대하는 견해(이른바 수용설)을 지지하는 대 법관이 늘어나 Rehnquist 대법원장 체제에서는 Rehnquist 대법원장을 비롯하여 Scalia,
Kennedy, Thomas 대법관이 이 입장을 지지하였지만, 연방대법원의 다수를 차지하지는
못하고 있었고, 이는 현재의 대법원 체제에도 마찬가지이다. 다종교사회에서 종교간의 분쟁을 방지하여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엄격분리(배제적 중립성)에 입각하거나 적어도 ‘중립성’ 그 자체에 기반한 견해의 측면에서 국가와 종교의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미국 대법원의 판결 경향이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상에서 우리는 긴 비교법적 고찰을 통해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 개념에 대해 남아 있었던 불투명한 부분을 보완하여 보았다. 이러한 국가-종교 관계에 대한 규범체계의 원칙으로서의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 원칙은 배제적 중립성과 포괄적 중립성의 두 측 면으로 살펴볼 수 있었고, 비교법적 고찰을 통해 독일, 프랑스, 미국의 각 세속주의 형태 내에 역사적 배경에 따라 특유하게 자리잡고 있었음을 보았다. 그리고 기본적으 로 어느 나라이던 간에 중립성을 가능한 한 배제적 중립성으로 이해하는 입장과 가능 한 한 포괄적 중립성으로 이해하는 입장간의 대립이 이어지고 있는 점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대립은 학계에서뿐만 아니라 사법부의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으로도, 의회에서 의 토론의 쌍방 의견으로도 나타났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논문에 따르면 이러한 점
457) 이러한 표현에 대해서는 박홍우, 앞의 글, 395면 이하 및 Chemerinsky(註 190), p. 1151 참 조.
은 국가가 중립적일 수 없어서라기보다는 국가의 중립성의 두 측면 중 어떤 점을 중 심으로 이해하는가에 대한 차이에 다름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