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미국 정교관계의 역사적 형성
3. 정교분리와 헌법에서의 세속주의
사실 우리에게 세속주의는 낯선 단어이지만 서구에서는 익숙하게 쓰이는 단어이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서구에서는 중세의 정교일치상황과 그에 따른 수 많은 전쟁을 경험하였고 근대국가의 탄생과 함께 그러한 폐해를 극복해 나간 동적인 과정을 “세속 화”라고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이 부재한 우리는 정적인 의미의 정교분리라는 단어가 세속주의보다 훨씬 익숙하다. 이 두 단어는 사실 국가와 종교의 규범체계라는 보다 보편적인 말로 표현할 수 있겠다. 여하간 이러한 의미의 세속주의는 종교의 자유를 주장함과 동시에 믿음에 관한 것들로부터 중립적인 입장에서 국가에 의한 종교적 강요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할 수 있고, 종교에 대해 국 가적인 특권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사상을 의미한다. 즉, 인간 활동이나 정치적인 의 사결정이 종교에 의해 간섭받기보다는 객관적인 증거와 사실에 기반하여야 한다는 주 장이 세속주의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정교분리와 헌법에서의 세속주의는 거의 같은 의미를 가진다. 따 라서 이 글에서 정교분리와 헌법에서의 세속주의는 동일하다고 간주한다. 단, 철학이 나 문화학에서의 세속주의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한편, 종종 현대 종교단체가 말하는 ‘세속주의’에 대한 우려 혹은 지지 등 실제로는
‘종교의’ 또는 ‘사회의’ ‘세속화’ (secularization) 에 대한 내용이고 세속주의와는 다른
뜻으로 본다. 이러한 세속화는 종교인 내부에서도 지지와 반대로 나뉘는데, 세속화를 지지 내지는 인정하는 사람들은 세속화는 과학의 발달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며 또 이로 인해 자신들이 소수파일 경우 종교적 탄압이 없게 된다는 장점도 있음
을 지적한다.
(2) 서구에서의 어휘 및 용법
법적 영역에서 여러 번 발생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먼저 언어와 의미와 관련 초기 에 문제를 다루어야 할 것이다. 일단 세속주의란, ‘세속적(secular)’, ‘세속화 (secularization)’, ‘중립(neutrality)’과 ‘라이시떼(laïcité)’등과 같은 여타의 용어와 관련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Rafael Palomino의 지적에 따르면, 이러한 용어의 의미가 완전히 명확하지는 않고,
다만 그것은 학자들의 선호와 환경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어떤 언어인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는 것이 공정할 것이라고 한다.119)
라틴 계열의 언어들에 있어서, ‘라이시떼’(‘laïcité’) (프랑스어), ‘라이시다 드’(‘laicidad’)(스페인어), ‘라이시따’(‘laicitâ’)(이탈리아어)는 국가와 종교 사이의 어떤 종류의 분리separation(그러나 반드시 격리isolation가 되지는 않는 것)에 대한 기본관념 을 전하고 있다.
정치적 관념 및 법적 관념에서는, ‘라이시떼’(‘laïcité’)가 엄격한 분리에 대한 가장 강력하고 강조적인 주장을 상기하게 한다.
앵글로-색슨 계열 언어들에 있어서는 ‘종교적 이데올로기적 중립성’(‘religious and ideological neutrality’)이라는 용어가 이러한 의도된 분리에 더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중립성은 물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여러 가지 수준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모든 용어들 (“라이시떼(laïcité)”, “중립성(neutrality)” 및 “분리(separation)”)은 정치적 영역 및 법적 영역에서 소위 “수축 과정(deflationary process)”을 겪었는데, 우 리가 어떤 종류의 분리를 다루고 있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되어야 종교의 자유가 충분히 보호되는 것이 되는지를 법적으로 이해하기가 까다롭기 때문이었다.120)
그러나 까다롭다고 해서 그 이해를 그저 미뤄둘 수는 없었다. 정교관계에 관해 사 법기관에서, 그리고 입법기관 및 행정기관에서 실제의 사례들에 대한 규범적 유권해 석이나 결론을 요구하는 요청이 각국에서 계속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최
119) Rafael Palomino, “Legal Dimensions of Secularism: Challenges and Problems” (October 3, 20 10). in 17th Annual International Law and Religion Symposium, Brigham Young University, Pr ovo, Utah, October 3-5, 2010, p. 3. (http://ssrn.com/abstract=1766465 최종접속 : 2013. 12. 10 .).
120) Ibid., p. 1.
근에 들어서는 특히 여러 서구 학자들의 노력으로 이러한 “라이시떼(laïcité)”, “중립성
(neutrality)” 및 “분리(separation)”라는 개념에 대해서, 그리고 법적인 의미로서의, 다시
말해서 정교관계의 이념이자 법체계로서의 “세속주의(Secularism)”에 대한 탐구가 이어 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 이어서 살펴보도록 한다.
(3) 정교관계의 이념이자 법체계로서의 ‘헌법에서의 세속주의’
세속주의(Secularism)에 논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그것은 정교관계(Church-State relations)의 이념과 법체계의 형태(ideology and legal framework)를 결정짓기 때문이 다.121) 이러한 의미에서의 세속주의는 철학적인 의미에서의 세속주의가 아닌 헌법에 서의 세속주의를 의미한다.
Zucca에 따르면, 철학적인 의미에서의 세속주의는 보통 “종교와 국가의 관계에 대
한 일련의 규범적 주장을 보유하는 정치 프로젝트[를 의미한다] 그리고 세속주의와 세속화는 지난 세기 말까지 유럽에서 일어난 경우와 같이 병행해 가곤 하였다”122) 이 러한 첫 번째의 의미에 따를 때, 세속주의는 특정한 법적 체제(specific legal regime)라 기보다는, 계몽시대에 이미 부분적으로 기원을 두고 있는 근대의 한 세계관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법적 체제로서의 세속주의를 논하게 되므로 이보다는 더 규범적인 의미로서의 세속주의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그런데 위와 같은 철학적인 의미에서 의 세속주의의 정의 및 내용의 구체적 측면에 대해 논의가 분분하고 확정하기 어려운 반면, 헌법에서의 세속주의란 상대적으로 그 정의와 내용이 확정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할 것이다. 일단 각국의 헌법전이라는 명문의 텍스트들이 존재하며, 판례와 이 론 등 실례를 통해 논의된 바 또한 매우 많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입헌민주주의국가에서 요구되는 규범적 의미에서의, 헌법적 의미에서의 세속주의(다르게 표현하면 정교분리 여부와 그 강도)가 중시되는 본질적 이유는 역사 적으로 볼 때는 종교적 비종교적 집단 내지 종교적 비종교적 개인들을 동등하게 대하 여 정치 공동체의 내적 평화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21) Ibid., p. 3.
122) 원문은 다음과 같다. “. . . political project with a set of normative claims as to the relation ship between religion and the state. Secularism and secularization may go hand in hand as it was the case in Europe until the end of last century,” Lorenzo Zucca, The Crisis of the Secula r State: A Reply to Professor Sajó (2009. 2. 14.). I.CON, 2009, p. 4. (http://ssrn.com/abstract=1 343099 최종접속 : 2013. 12. 10.).
그리고 본질적 이유 중 하나로서 이론적으로 고찰해 볼 때에는 바로 Rawls가 발전 시킨 개념인 공적 이성(public reason)의 작동을 정치적 공동체 내에서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앞의 절에서 본 바와 같이 근대 입헌민주주의국가에서는 군주의 개인적 명령이 아 닌 공동체 구성원들의 합의를 그 의사결정의 기반이자 요체로 하고 있고, 따라서 이 러한 정치적 공동체에서는 중첩적 합의가 시민의 공통된 이성에 기초하여 정당화되어 야 한다는 점, 그리하여 합당한 시민이라면 누구나 합의할 수 있어야 하므로, 이에는
‘시민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시민성은 결코 ‘信徒性’에 압도되거나 침훼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공적 이성의 작동을 저해하고, 불능화시켜 헌정 국가 자체의 작동을 저해, 불능화하는 사태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헌정 국가에서의 정교분리란 바로 이런 시민성의 침훼를 방지하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규범적 의미에서의, 헌법적 의미에서의 세속주의란 대의제 등 과 함께 근대 입헌민주주의국가의 핵심 요소로서의 위상을 차지한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