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미국의 국교부인과 중립성
Ⅱ. 종교적 상징
(1) 사회적 배경
유럽에서는 집이나 학교 등 실내에 십자가 또는 예수상(crucifix, Kruzifix.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수난의 상으로서 十字苦像, 십자가상이라고도 칭해짐. 이하 예수상이 라 함)을 게시하는 관습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습은 기독교적 전통이 깊은 지역일 수록 더욱 강하다. 독일 남부의 주들이 주로 그런 예에 속하는 데 예를 들어 바이에 른 주 법률은 1983년부터의 모든 초등학교 교실에 십자가 또는 예수상을 게시할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었다.
이러한 독일의 사회적 맥락 속에서 나온 것이 독일 연방 헌법 재판소의 이른바 1995년 공립학교 내 예수상 판결이다.
(2) 공립학교 내 예수상 판결 (연방헌법재판소)
1) 사실관계 및 판시사항 요지
이 1995년의 사건에서는 십자가와 예수상이 모두 문제되었지만 둘 중에 하나만 표 시하여 통상 이 판결은 ‘예수상(Kruzifix) 판결’이라 칭해지고 있다.259) 이 사건에서는, 종교적 상징을 공립학교 교실에서 게시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다루어졌다. 이는
1995년 5월 16일에 내려진 연방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서, 이 결정을 통해 모든 초등
학교 교실에 십자가 또는 예수상을 게시할 수 있음을 규정한 1983년부터의 바이에른 초중등학교 규정(Bayerische Volksschulordnung)의 해당 부분이260) 위헌적이고 무효라고 결정되었다.
이 사안에서는 수 세기 동안 수많은 기독교의 전통들이 일반적으로 사회의 문화적 토대와 결합된 사실에 대해서 다루어지게 되었는데, 연방헌법재판소는 그 주(州)의 모 든 초등학교 교실에 십자가 또는 예수상을 게시할 수 있음을 규정한 바이에른 주 법 률에 대하여, 학생들의 종교적 자유는 물론이며 학부모들의 종교적 자유와 부모로서 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시하였다.
2) 법정의견
종교의 자유란 내심의 신앙의 자유와 그에 따른 행위의 자유 모두를 내포한다는 것 이 다수 의견의 출발점이었다. 종교의 자유는 “공유될 수 없는 신앙 의식의 행위”에 참여하지 않을 자유 또한 포함하고 있다.261) 다양한 신념들이 공존하는 사회 안에서 개인은 다른 이들의 종교적 상징에 노출되지 않을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할 수는 없 으나 특수한 상황 하에서는 국가가 개인에게 특정한 신념, 그리고 그것의 제의와 상 징의 영향을 강요할 수 없다. 기본법 제140조 및 바이마르 헌법 제136조 제4항은 종 교적 행사에 개인의 참여를 강요하는 것을 명백히 금지하고 있다. 더 나아가 기본법 은 “다른 종교의 신봉자나 대립적인 종교 단체들의 공격이나 방해에 대항해 …… 지 켜주는” 개인의 종교 생활을 위한 보호 영역에 관해 국가에 의무를 부과했다. 종교의 자유 조항에 대해서 연방헌법재판소는, “[그 조항은] 다양한 종교와 종파에 대한 국가
259) BVerfGE 93, 1. 뒤에서 볼 1973년 법정내 십자가 사건도 마찬가지로 십자가와 예수상이
모두 문제되었지만, 둘 중에 십자가 하나만 표시하여 통상적으로 ‘법정내 십자가(Kreuz im Gerichtssaal)’ 판결이라고 불리어 이 판결과 구별되고 있다. BVerfGE 35, 366.
260) 원문은 다음과 같다. § 13 Abs. 1 VSO: Die Schule unterstützt die Erziehungsberechtigten be i der religiösen Erziehung der Kinder. Schulgebet, Schulgottesdienst und Schulandacht sind Mög lichkeiten dieser Unterstützung. In jedem Klassenzimmer ist ein Kreuz anzubringen. Lehrer und Schüler sind verpflichtet, die religiösen Empfindungen aller zu achten.
261) BVerfGE 93, 1.
의 중립성의 원칙을 내포한다. 국가 안에는 상이한 또는 적대적이기까지 한 종교적·
이데올로기적 신념 체계가 한 곳에 모여 있으며, 국가는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중립 성을 유지하기만 하면 평화로운 공존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시하였다.
위 판결에서 법원은 국가(州)는 사회의 종교적 평화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 하였다. 바이마르 헌법 제136조 제1항과 관련하여, 제4조 제1항, 제3조 제3항, 제33조 제1항, 제140조를 인용하면서 헌법 조항은 국가 교회의 설립과 다른 신념 체계에 대 해 특정 신념을 우위에 두는 것을 금지한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국가는 다양한 종교 와 수적으로나 사회적 지위에 있어서 힘이 약한 집단의 세계관에 대해 동등한 처분을 내려야 한다. 종교적 공동체와 국가의 연합 또는 지지는 “특정 종교 단체와의 동일 시”를 야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262)
기본법 제6조 제2항에 따른 부모의 자녀양육권과 기본법 제4조 종교의 자유에는 특 정한 종교와 세계관에 따라 자녀를 교육할 권리가 포함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부모 들은 “나쁘거나 해롭다”고 생각되는 신념으로부터 자녀들을 지킬 권리를 가진다.263) 연방헌법재판소는 바이에른 주의 법령이 이러한 기본적 권리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학교에서 그러한 마주함을 강요하기 때문에(이것은 일종의 참여의 강요로 볼 수 있 다), 학생들은 교실에서 어쩔 수 없이 십자가와 마주칠 수밖에 없으며 “십자가 아래에 서” 공부해야만 한다. 교실에서 십자가에 노출되는 것과 교실 이외의 곳에서 다양한 종교적 상징물에 노출되는 것 사이에는 주요한 차이가 있는데, 전자는 국가에서 비롯 되었다는 점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국가에서 비롯되지 않은 다른 상징들에 노 출되는 것은 큰 문제가 없다. 그것은 사회 내의 상이한 종교적 신념의 현존에 기인하 며 “동일한 수위의 불가피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비록 일상생활에서 노출될지도 모 르는 종교적 상징들을 개인들이 통제할 수 없을지라도 일반적으로 그것은 비 강압적 인 “스쳐 지나가는 우연한 만남”일 뿐이다.
나아가 이 판결은 1973년의 법정내 십자가 판결264)을 참조하면서, 교실의 십자가가 법정의 십자가보다 “지속성과 강도에 있어서”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정했 다. 일찍이 1973년의 법정내 십자가 판결에서 연방헌법재판소는 법정에서의 십자가의 존재는 州(국가)와 기독교적 신앙의 “동일시”를 지시하는 것으로 십자가를 이해한 유 태인 출신 신청인의 종교적 자유를 침해했다고 설시하였다.
262) BVerfGE 93, 1.
263) BVerfGE 93, 1 (15).
264) BVerfGE 35, 366.
한편, 국가에 의해 이러한 상징과 마주할 것이 강요되더라도, 그 상징이 종교적·교 의적 의미가 없다면 문제의 소지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는 부분적으로 기독교에 의해 형성되어온 서구 문화에서의 단순한 문화적 상징이라기보다는 기독교 라는 종교의 종교적 상징이라는 것이 이 사례에서의 헌법재판소의 다수의견이었다.
십자가는 교의적 의미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고 다수의견은 설시한 것이다.
위 판결은 십자가는 “[기독교의] 신앙의 상징인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희생적 인 죽음을 통해 원죄로부터 인간을 구원함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사탄, 죽음, 세계의 지배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상징하기도 한다 : 시련과 승리 모두. 따라서 기독교 적 신앙에 대해, 그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공경과 경애의 대상이 된다. 십자가를 갖춘 건물이나 방의 시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주인의 기독교적 신앙의 고양된 언명으로서 이해된다. 기독교가 그것에 부여한, 그리고 기독교가 역사 속에서 지켜 온 십자가의 중요성 때문에, 비기독교인이나 무신론자에게 십자가는 특정한 종교적 신념과 그 전 도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판시하였다.
십자가를 교실 벽에 거는 것이 학생들로 하여금 그 메시지와 동일시하게 하거나 어 떤 행동에 참여할 것을 강제하지 않을지라도, 그리고 그것이 교과 과정에 영향을 주 는 것도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은 다른 방식으로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즉
“십자가는 호소적 성격을 지니며, 따를 가치가 있는 본보기로서 그것이 상징하는 신
앙의 내용을 인정한다.” 특히 어린 학생들은 나이, 개인적 확신, 그리고 비판적 평가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심리적인 영향에 민감하다. 비록 신앙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인정되는 것이지만 그러한 제한은 헌법을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 있어 서 다수의견은 “헌법적 근거에 따른 정당화사유”가 부재했다고 보았다. 국가가 교육 적 권한이 있다고 해서 그러한 제한을 부과할 정당성이 바로 도출되지는 않는다는 것 이다.
국가는 학교를 세우거나 조직하고 교육의 목적과 교과과정을 결정할 수는 있다. 그 리고 국가는 교육적 권한을 완수하기 위해 종교적 관련사항을 포함시킬 수도 있다.
그리고 “신념의 자유를 포괄적으로 보장하고 그에 따라 종교적·세계관적 중립성에 스 스로 구속되는 것이 국가”이기는 하지만, 국가는 “문화적으로 전승된, 역사적인 기원 을 지니는 가치와 신념 태도들, 즉, 사회의 결속이 토대를 두며 그 고유의 임무 수행 또한 근거를 두는 그러한 가치와 신념 태도들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게다가 부모들 로 하여금 자녀들을 공립학교에 보내도록 규정하는 주는 종교적으로 영향을 받는 교
육에 대해 부모들이 갖는 희망사항을 고려할 수도 있다. 기본법은 적극적으로 신념을 표현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지만 “다원주의 사회에서 모든 교육적인 이념들을 충분 히 고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종교적으로 다원적인 사회에서 소극적 종교의 자유와 적극적 종교의 자유 사이의 불가피한 긴장은 “모든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절충안을 찾는” 주(州) 입법 기관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
교실에 십자가를 게시하는 것은 헌법적으로 허용된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위 판 결에 따르면, 학교는 “기독교적 신앙에 대해 배타적인 믿음을 요구해서는 안 되며 전 도 행위”를 해서도 안 된다. 학교는 기독교의 역할을 중요한 문화적 영향으로만 인정 해야 하며, 특정한 교의적 내용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기독교의 문화적 요소는 또한 다른 종파에 대한 관용의 요구를 포함한다.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이러한 점들은 그것 이 교의적 가르침으로 간주되지 않는 한 다른 세계관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종교적 자유에 대한 기본적 권리를 인식하려는 노력을 내포하는 것이다”265)
십자가는 그 종교적 내용과 상징이 제거될 수 없으며 “서구의 문화적 전통의 일반 적인 징표 정도로 축소될 수”는 없다. 다양한 방식으로 “의심할 여지없이 서구 세계 를 형성한” “서구적 신념의 …… 본질적인 핵심”을 상징화할 때 그것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공유되지 않으며 오히려 종교적 자유에 대한 “그들의 기본적인 권리의 실천에 있어서 다수에 의해 거절된다.”266) 이에 따라 법원은 기독교 학교가 아닌 공 립학교에서 십자가를 전시하는 것은 기본법 조항 제4조 제1항 하에 위헌이라고 판결 했다. 더욱이 십자가를 전시하는 것은, 가령 대다수의 학생들이 적극적인 종교의 자유 를 요구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기독교를 믿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적극적인 종교의 자유 에 근거해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발생하는 기본권의 충돌에서, 기본 권이란 특별히 소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해결되어 서는 안 된다”.267) 학교가 헌법적으로 종교적 행위에 대해 여지를 남기게 되는 한 – 종교적 수업, 학교 예배, 그리고 다른 종교적 실천의 경우에 있어서 – 이것들은 자발 적이어야 하며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들을 위해 비차별적인 대안들이 마련되어야 한 다. 이것은 십자가가 교실에 걸려 학생들이 십자가의 존재를 피할 수 없는 경우에는 다르다.
265) BVerfGE 93, 1 (19).
266) BVerfGE 93, 1 (20).
267) BVerfGE 93, 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