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미국 정교관계의 역사적 형성
4. 중립성과 배타적/포함적 범주
중립성62)이라는 단어는63) 최근 세대의 것일지는 몰라도 기저에 깔린 사고(思考)는 그렇지 않다. 1689년 “관용에 관한 서한”64)에서 로크(Locke)가 주장한 관용에 대한 호 소는 모두 개인과 신을 직접 연결하는 그의 프로테스탄트 신념에 기인한 것이긴 하 다. 사실 로크의 관용에 대한 호소는 무신론자는 말할 것도 없고, 가톨릭도 포함하지 않은 점은 아이러니하다. 그의 입장은 모두 개인과 신을 직접 연결하는 그의 프로테 스탄트 신념이 기능한 것임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로크의 생각은 그 후대 의 자유주의자들에 의해서, 국민들이 어떤 삶을 살지에 대해서 국가는 중립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의미의 중립성의 모습으로 발전되어 나간다.
여하간 로크의 위와 같은 생각은 자유주의 전통의 핵이 되었다. 현대의 사상가들은 이를 “중립 국가의 이상(The ideal of neutral state)”으로 요약해 표현하면서, “중립국가 는 국민을 편견 없이 대하며 그들이 어떤 삶을 살지에 대해서 중립으로 남아있는 것”
62) Waldron은 이 단어의 첫 출현을 1974년으로 꼽는다. Jeremy Waldron, “Legislation and mora l neutrality,” in R. E. Goodin, & A. Reeve(eds.). Liberal Neutrality (London : Routledge, 198 9) p. 62.
63) Rawls는 이 ‘중립성’이라는 단어를 즐겨 쓰지 않았는데, 이는 평소 쓰던 말인 (불가능한)
“neutrality of effect-효과의 중립성”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neutrality of pr
ocedure-절차의 중립성”과 “neutrality of aim-목적의 중립성”에는 동의하는데, 이는 국가의
행위에 있어서 효과보다는 의도가 중립성을 띠어야 한다는 논조다. J. Rawls, “The Priority of Right and Ideas of the Good,” Philosophy and Public Affairs, Vol. 17, No. 4, (Autumn, 19
88) pp. 260-264. 국가의 도덕적 중립성에 관한 상세한 롤스주의자(Rawlsian)적인 견해로는
Huster의 저술(S. Huster. Die ethische Neutralität des Staates: eine liberale Interpretation der V erfassung, Mohr Siebeck, 2002)이 있다.
64) John Locke, Letter Concerning Toleration(1689). (미국 버지니아대 도서관 온라인 자료실: ht tp://web.archive.org/web/20080706082920/http://etext.lib.virginia.edu/toc/modeng/public/LocTole.htm l 최종접속 : 2013.5.10.)
임을 지적하고 있다65)
개념사적으로는 위와 같은 시기부터 전면적으로 부각된 개념인 ‘중립성’이란 기실 자유주의의 중추(nerve)이기에 전술한 “중립 국가의 이상”는 과거부터 자유주의의 목 표였고 이제는 논의의 당연한 전제로 받아들여지며, 자유주의적 사상의 組織 原理 (The organizing principle)이자 본질적인 자유주의의 원리(The fundamental liberal
principle)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로크 등 초기 자유주의 사상가들이 살아가던 17,
18세기와 같이 그것이 목표였다면, 20세기 이후의 근대국가에 살고 있는 자유주의 사 상가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전제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중립성 개념은 보통 다음과 같이 제시된다. 먼저 ⅰ) ‘중립적’이 된다는 것은 분쟁 에서 동등한 정도로 해당 각 당사자들을 돕거나 막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립성’이란 한 행위자가 어떤 경쟁이나 갈등의 상황에 있어서도 관심을 동등 한 정도로 모든 해당 당사자들을 돕거나 막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좀 다른 개념 으로는 ⅱ) ‘중립적(being neutral)’이라는 것은 ‘어느 한 쪽도 선호하지 않는 것’이라는 의미도 있다.
그리하여 중립성 개념의 요소는 보통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ⅰ) 두 개 이상 의 당사자 사이의 경쟁의 존재, ⅱ) 그리고 이에 대한 제3자(a third party)의 존재가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 ⅲ) 그런데, 행위는 결과와 의도를 잇는 것이므로 중립성도 둘 중 어느 부분을 주시하는가에 따라 두 가지의 측면을 가진다. 먼저 ① 결과 측면 : 경 쟁이나 분쟁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려는(또는 동일한 정도로 영향을 미치려는) 것(neutrality of effect)이며, ② 의도(목적) 측면 : 의도를 가지고서 행동할 것(neutrality
of intention)을 의미한다. 요컨대, 이러한 중립성 개념의 요소를 분석해보면 중립성을
결과 측면에서의 중립성과 의도(목적) 측면에서의 중립성으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게 된다.66)
(2) 관계적 특성으로서의 중립성과 그 양면성
중립성은 관계를 전제로 하는 정치적 원칙이다. 다시 말해서 중립성은 두 사람 이
65) Peter Jones, “The ideal of the neutral state,” in R. E. Goodin, & A. Reeve(ed.), Liberal Neutr ality (London : Routledge, 1989) p. 9.
66) Peter Jones(註 65), p. 9-10 ; Jeremy Waldron(註 62), p.32.
상의 공적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의미에서 보았을 때 개인윤리적 원칙이 아닌 사회윤 리적 원칙이고, 보다 분명히는 이러한 사회윤리적 원칙을 그 전제로 하는 정치적 원 칙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개인의 도덕성은, 정치적 도덕성이 그 주체에게 요구 (예. 공무원들을 통한 국가행위)하는 방식으로 그 주체인 인간 개인에게 중립적일 것 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서 타인의 일을 도와 주는 것, 동시에 우리가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도움을 주기를 거부하는 것 모두를 금 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립성은 관계적 특성(relational attribute)이다. 행위는 그 홀로 중립적일 수 는 없다. 어떤 행위가 중립적이라면 그것은 서로 다른 것들, 말하자면 X와 Y 사이에 서 중립적이다.
여기에서 X와 Y와 중립성의 주체인 A와의 관계를 고찰하면 두 개의 양식이 가능함 이 도출된다. 첫째, 배제적인(排除的, exclusive) 관계이다. 집합 내에 주체인 A가 있고 그 집합 외부에 X와 Y가 있다면 이것은 배제적인 관계이고 이때 A가 취하는 중립성은 배제적 중립성이 된다. 둘째, 포함적인(包含的, inclusive) 관계이다. 집합 내에 주체인 A 가 X와 Y와 같이 있다면 이것은 포함적인 관계이고 이때 A가 취하는 중립성은 포함적 중립성이 된다. 이를 표로서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배제적 관계 포함적 관계
주체 A 는 집합 內 대상 X, Y 는 집합 外
주체 A 는 집합 內
대상 X, Y 도 집합 內
[표 1] 배제적 관계와 포함적 관계의 구분
이때 주의할 것은, ‘포함적’이라는 표현의 의미는 어떤 집합 내에 주체인 A가 X 및
Y와 함께 있다는 것이지 A 속에 X 또는 Y가 들어가 있다는 의미는 전혀 아닌 것이
다. 이러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exclusive/inclusive라는 단어를 다른 우리말(예를 들어 외재적/내재적, 외적/내적 등)로 옮기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으나, 일단 이 글에 서는 위와 같은 표현을 유지하도록 한다.
이러한 분류는 1070년대 이후 현재까지 서구의 학계에서 종종 시도되고 발전된 바 가 있다. 독일에서는 대표적으로 뵈켄회르데(Böckenförde)가 일찍이 ‘이격된(離隔,
distanzierenden) 중립성’과 ‘포개진(übergreifenden) 중립성’이라는 개념 구분을 통해 중
립의 두 함의에 대해서 논하였다.67) 미국에서는 대표적으로 그리너월트(Greenawalt)가
그의 저서 “정치에서의 종교적 사고”에서 이러한 구분과 관련하여 좀 더 정치하게 논 의되고 있다. 그는 중립성이라는 개념을 그대로 쓰지는 않고 ‘입장’이라는 단어를 통 해 표현하고 있다. 그는 공적 공동체 즉 정치적 공동체에서의 종교에 대한 입장들을 고찰하면서 “배제적인 입장”과 “포함적인 입장”을 구분하여 나눈다. “배제적인 입장”
이란 다음과 같다. ⅰ) 종교가 정치에 끼어드는 것에 반대하는 이들의 태도이며 ⅱ) 모든 국민들에 의하여 공유되고 있는 종교적 견해의 부재를 전제한다. ⅲ) 따라서 국 민들이 어떤 종교적 견해를 강요받는 경우에, 국가가 모든 국민들에게 강요한 것에 대한 이유가 없다면 국가는 불공정하게 행동한 것이라고 본다. ⅳ) 또 국민들과 공무 원들은 공공 토론에서 종교적 이유를 대서는 안 된다. 어떤 집단도 종교적 이유에 의 존할 수 없다.
그리고 “포함적인 입장”이란 다음과 같다. ⅰ) 국민들과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가장 믿을 수 있고 분명하다고 여기는 이해의 근거들이라면 무엇에든 의지할 수 있다는 것. ⅱ) 공정함은 배제(비록 그것이 자기 배제라 해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각자 가 가장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모든 사람의 의지에 존재한다. ⅲ) 올바 른 민주주의는 만약 종교적 논변들이 정치적 토론의 일부라 해도 불안정하지 않을 것 이다.68) 위와 같은 정치에서의 종교적 사고를 인정할 것인가의 여부에 대한 그리너월 트가 제시한 두 입장은 앞서 말한 배제적 중립성과 포함적 중립성 분류와 대체로 대 응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이후에 이 글에서 다루게 될 독일과 프랑스의 예, 특히 정교분리 논의가 정착 되어가는 20세기 초기, 그 중에 특히 바이마르에서의 종교조항의 성립과 프랑스의
1905년 법의 성립 시기, 그리고 현재의 두 나라들에서의 이른바 ‘이슬람 머릿수건
(headscarf, Kopftuch, foulard, 아랍어로는 hijab)69) 금지법(이하 머릿수건금지법)’들에 대 한 논쟁을 비교함으로써 찾을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찬성하고 반대하는 양쪽
67) 이 분류는 다음의 논문에서 시작되었다. E.-W. Böckenförde, “Kreuze (Kruzifixe) in Gerichtss älen?,” in: ZevKR 20, (1975) 130 f ; 그 후 다음의 글에서도 설시됨. E.-W. Böckenförde, “V orläufige Bilanz im Streit.um das Schulgebet,” in DÖV 1974, 255 f.
68) Greenawalt, op. cit.(Religious Ideas in Politics), pp. 268-270.
69) 다른 국내 논문들에서는 베일, 히잡, 헤드스카프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고, 이 글에 서는 머릿수건이라는 단어로 되도록 통일해 쓰도록 한다. 그러나 만약에 명시되어 있지 않 다면 머릿수건이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머리와 다른 신체 부분을 가리는 정도와는 상관이 없겠다. 이러한 머릿수건 등에 대한 뉘앙스 차이나 종교적인 의미에 대해서 상세한 점은 Wasif Shadid, & P. S. Van Koningsveld, “Muslim dress in Europe: Debates on the headscarf,”
Journal of Islamic Studies, vol.16 (2005) pp. 35-39 참조.
모두가 중립성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립성은 “투쟁의 장”70)이 되는데 이는 양 쪽 편 모두가 자신들의 이유가 중립성에 보다 합치되고 정당하다는 것을 증명하려 고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