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저축은 조세와 달리 강제성을 수반하지 않으며 개개의 규모가 영세하고 그 주체 또한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개별 가구의 자유의사에 맡길 경우 자본동원수단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다. 반면 저축동원이 강제성을 띨 경우에는 조세동원과 마찬가지로 정 치적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저축동원을 위해서는 개개 저축자에게 적절한 유인 9) 신문기사 참조(동아 71년 9월7일 “전경련 새예산 삭감 주장”, 매경 71년 8월18일 “조세저항 더 커 질 듯”, 경향 71년 1월28일 “조세저항 완화에 주력”, 동아 71년 11월2일 “과대세수에 저항우려 전 경련 긴급의견서 발표”, 경향 71년 9월22일 “조세저항 위험 수위에”, 동아 71년 9월18일 “경제시 련에 뜨거운 논쟁-조세저항에 혼난 국세청 고지서 들고 또 부들부들”).
을 제공하기 위한 세심한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고, 가정경제에 미시적으로 개입하여 가계행 태나 행동을 특정한 방향으로 끌고나갈 필요가 있다(한국은행, 1978).
한국의 경우 국가가 저축동원을 위해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가정경제에 개입하는 방식은 대체로 저축장려운동, 저축계몽 및 저축교육의 강화와 같은 켐페인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근검·절약이라는 자본주의적 윤리와 현모양처라는 근대적 성별 분업을 강조하는 것 이었다. 국가는 다양한 캠페인과 계몽활동을 통해 가정경제의 모범적인 상을 제시하고, 근 대적인 가정학 지식에 기초하여 의식주를 합리화하고 생활을 과학화하는 등 저축증대를 위 해 생활개선을 강조한다. 또한 저축동원의 필요성으로 인해 국가경제와 가정경제가 밀접한 연관성을 갖게 됨에 따라, 국가경제와 가정경제의 매개자로서의 여성 특히 가정주부의 역할 이 강조된다.
<표 2-5>는 1970년대까지 한국 저축운동의 변천 과정을 네 시기로 구분하여 정리한 것 이다. 첫째, 해방 후 1950년대까지의 저축운동은 대체로 민간금융기관이 주도하는 자발적인 저축운동이 주를 이룬다. ‘국민저축운동추진중앙위원회’의 설치 등 국가의 지원이 수반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저축운동 관련 국가의 역할은 대체로 미미했으며 대한금융단이 주체가 되 어 주로 계몽영화의 제작이나 노래, 라디오방송 등을 통한 저축계몽활동이 주를 이룬다. 하 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한국전쟁 및 전후 복구과정에서 애국주의 담론을 통해 내 핍생활과 정신무장을 강조하고, ‘국민생활합리화 3대 목표’를 제시하는 등 국민들의 일상생 활을 통제하고자 노력한다(한국은행저축부, 1969). 또한 사회부 부녀국을 중심으로 부녀행정 을 통해 국민들의 의식주 및 소비를 통제하고자 한다(황정미, 2001: 117-119).
둘째,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1964년까지 시기로서 이 당시는 자발적 민간저축운동과 병행하여 국민저축조합제도의 실행 등 강제저축이 실시된다. 당시는 제1차경제개발5개년계 획 실시를 위한 투자재원 조달이 가장 중요한 목표였기 때문에 재건국민운동의 일환으로 내핍저축장려운동이 전개된다. 또한 재무부 이재국에 저축과가 신설되어 국가주도의 저축운 동이 제도화된다(한국은행저축부, 1969; 신영길, 2009). 국가의 적극적인 저축동원전략과 함 께 부녀행정에 있어서도 일반 가정주부를 대상으로 한 지도사업이 강화된다. 부녀행정은 애 초부터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생활방식과 규범을 여성에게 계몽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 는데, 60년대 이후 조국근대화와 경제개발이 국가의 일차적인 목표가 됨에 따라 일반 여성 을 대상으로 하는 부녀지도사업이 국가의 중요 사업으로 강화된다(황정미, 2001).
보다 구체적으로 5·16 쿠데타 이후 국가가 저축운동을 통해 가정주부를 동원하는 방식 을 보면, 재건국민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국가는 ‘계획경제를 실현하는 주부되기’라는 구
호를 내걸고, 근검절약, 내핍생활을 강조하며 저축운동을 전개한다. 특히 당시 대표적인 도 시 중산층 여성 잡지였던 “여원”은 매월 호 마다 부록으로 가계부를 실었는데, 가계부를 통 한 합리적 소비생활과 검약과 저축을 실천하는 근대화된 현모양처상은 국가가 가정주부와 일반가계를 동원하는 중요한 담론이었다. 그리고 이는 종종 국가의 운명이 주부에 의해 결 정된다는 논리로까지 비약되곤 한다(김현주, 2008; 서연주, 2008; 김도균, 2012: 183).
셋째, 65년 금리현실화 조치 이후 72년 8·3조치까지의 시기로서 이때는 고금리정책으로 실질금리가 보장되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소비합리화와 저축계몽활동을 추진한다. 적립 식목적신탁제를 도입하여 주택, 학자금, 결혼 등에 대비하는 생활설계를 통한 저축활동을 적극 권장해나간다. 69년에는 저축추진중앙위원회가 설립되어 국민의 자발적 저축생활화운 동을 조직화하고, 저축계몽이나 저축교육, 저축관련 조사연구 등을 체계적으로 실시한다. 또 한 자립저축제도나 공무원 적금가입제도, 해외취업자 저축 의무화 등 강제성이 수반된 저축 제도를 도입하여 실행한다(한국은행, 1972).
이와 함께 여성단체들은 여성저축생활중앙회(67년 설립)를 중심으로 주부의 가계생활합 리화를 통한 여성저축운동을 전개하여 가계부사용, 소비절약을 통한 생활합리화 운동, 저축 계몽지 ‘알뜰살림’을 발간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한국은행, 1972: 27-31). 이것은 반관반민 혹은 민간여성단체들이 국가의 부녀지도사업과 밀착되어 국가가 여성을 동원하는 중요한 기구로 기능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여준다(황정미, 2001: 171).
넷째, 72년 이후 유신 권위주의 시기로 당시는 저금리정책 하에서 물가상승이 매우 심각 하여 금리를 보전하기 위해 임시조치 등 임기응변적 대응을 한 시기이다. 74년 1월23일 수 신금리 인상을 위한 임시조치(소위 ‘1·23 임시조치’)가 실시되었으며 이 임시조치는 그 후 2 차례 더 연장 실시된다. 이러한 임시적인 금리인상 조치는 석유위기로 인한 물가상승에 대 응하는 한편, 소득세 대폭 감면 등 1·14 긴급조치 이후 과잉유동성을 저축을 통해 흡수하는 것이 목표였다(한국은행, 1975; 한국은행, 1978; 재정금융30년사편찬위원회, 1978).
또한 이 시기부터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저축운동이 강화된다. 어린이 학생저축운동이 나 농어촌지역 저축운동, 새마을공장 등 사업체 종업원에 대한 저축운동을 강화하는 등 저 축운동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저축시범지역 활동을 강화하여 저축반 편성, 호 별 방문을 통한 저축계몽, 여성저축분회의 조직화 등 조직화된 저축운동을 전개한다(한국은 행, 1975). 특히 새마을 부녀회는 내부 조직으로 저축부, 생활개선부, 가족계획부, 교양활동 부, 소득개발부 등을 두어 저축증대나 생활개선사업을 주도했는데, 이것은 새마을 운동이 여성들의 활발한 참여와 동원 없이는 활성화되기 어려웠을 것임을 보여준다(황정미, 2001:
시기 특징 저축운동 추진기구
50년대 까지
민간주도자발적 저축운동
-산업자금의 비인프레적 조달이 주된 목적 -필승저축운동(한국전쟁기간)
-한국은행과 대한금융단을 중심으로 저축선 전 계몽영화(53년), 저축의 노래(53년), 라디 오 저축방송극 등 제작 배포
-어린이저축운동 추진
대한금융단 한국은행국민저축운동추 진중앙위원회
61-64년 국가주도 강제저축실시
-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 투자재원 조달이 목적 -재건국민운동본부 주관 내핍저축장려운동:
계행위 금지, 저축계몽활동강화, 연간목표액 설정 실시
-애국주의 캠페인
-국민저축조합 결성을 통한 강제저축
-저축강조기간 실시: 표어, 포스터, 논문, 시 나리오 공모
재건국민운동본부 재무부 이재국 에 저축과 신설 (행정기관 중심 저축운동 추진)
65-72년 관민합동 저축운동추진
-적립식 목적 신탁제: 주택·학자금·결혼 등 생활설계형 저축
-금융기관 저축목표 할당 등 재무부가 저축 자금 조달 및 운용 주관
-저축추진중앙위원회를 중심으로 국민의 자 발적 저축운동 조직화. 저축계몽 및 교육 등 저축생활화 운동 추진,
-주부의 가계생활합리화를 통한 여성저축운 동추진: 생활간소화, 가계부사용, 1주부1통장 소지운동-학교 저축교육 강화 및 학교저축은행의 신 설(70년)
-공무원 급여통장지급제 -저축시범지역 실시
재무부한국은행(저축추 진과가 저축부 로 승격(68년)) 여성저축생활중 앙회(67년) 저축추진중앙위 원회(69년)
73-79년
새 마 을 저축운동(학교·농 촌·공장)
-어린이 학생저축운동 및 학교저축은행 강화 -농어촌 저축시장조사 실시 및 농어촌지역 저축운동 실시 강화
-새마을공장 등 사업체 종업원에 대한 저축
재무부한국은행 내무부여성저축생활중 145-147). 아래 인용문은 이와 같은 사실을 잘 보여준다.
“‘새마을 운동의 성패는 여성이 좌우한다’는 말이 암시하듯이, 지방에서의 근면 협동정신과 도시 여성의 소비자로서의 근검절약이 국가 번영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고 볼 때, 여성의 잠재능력 개발 은 곧 국가 번영과 경제성장에 직결됩니다”(여협 1975: 4(황정미, 2001: 174에서 재인용)).
<표 2-5> 저축운동의 변천
추진운동 실시
-저축시범지역 활동 강화: 저축반 편성, 호별 방문을 통한 저축계몽, 여성저축분회의 절미 저축, 1가구1통장 갖기 운동 등 조직적인 저 축운동 전개
-저축계몽활동의 강화
-총력저축 전진대회/범국민저축생활화운동기 간 등 범국민적 저축캠페인 실시
앙회저축추진중앙위 원회저 축 추 진 본 부 설치
자료: 한국은행(1972, 1975, 1978, 1988), 한국은행저축부(1969)을 바탕으로 작성
국가 주도의 저축장려 운동과 저축장려 담론들은 국가가 저축동원을 위해 세밀한 사회 적 ‘규율기제’(정용욱·정일준, 2004)와 근대적인 성별 역할분담의 확립을 필요로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계의 저축증대를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절약과 저축, 자립과 자조 등 일상 수준 의 생활태도가 매우 중요하며, 이것은 다시 자본주의적 윤리와 관습, 그리고 합리적 사고방 식의 확립을 전제로 한다(Kwon, 2011). 그런데 근대화와 산업화 초기의 켐페인들이 제기하 는 바와 같이 당시의 생활방식은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나태와 낭비가 심했으며 가계 저축률도 낮았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생활방식과 단절하기 위해 자립과 자조의 원칙이 강조 되고 일상생활 자체가 계몽의 대상이 된다. 또한 자립과 자조, 근검과 절약이라는 사회적 규율을 확립하기 위해 무상구호나 국가지원은 낭비적이고 비생산적인 정책으로 비판받는다 (황정미, 2001: 58-9).
이러한 맥락에서 가정경제의 담당자로서의 여성, 특히 가정주부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근대적인 성별 역할분담이 중요해진다. 사실 ‘남자=생산=일터, 여자=재생산=가정’을 강조하 는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를 전통적인 유교문화의 유산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사 실과 다르다. 한국에서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는 종래와 달리 여성을 가정의 책임자로 부상시 키고, 여성을 이전의 수동적이고 전근대적인 지위에서 탈피시키는 해방적인 성격을 지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근대적인 가정학에 기반을 둔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는 근대 국민국가 성 립과정에서 형성된 여성근대화론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박선미, 2007; 가와모토 아야, 1999).
게다가 일상생활 수준에서 절약·저축을 담당하는 것은 주로 여성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여 성은 내핍생활의 조직자이자 계획자로서 매우 전문적인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Kwon, 2011:
171).10)
10) 사실 전통적인 가부장제 규범 하에서는 가계의 살림살리는 남성이 담당해 왔으며, 여성은 단지 주변화된 존재로만 위치해왔다(신광영, 2011; 박선미, 2007: 219). 이는 일본에서 20세기 초반까지 만 해도 저축장려운동이 주로 남성 가부장을 대상으로 해 왔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岡田和 喜, 1996). 하지만 일본의 경우에도 1차 대전을 전후로 저축장려운동의 대상이 점차 여성으로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