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가 복지국가나 사회적 권리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대체로 두 가지 견해가 존재한다. 첫째, 민주주의로 인해 정치적 공간이 개방되고 선거경쟁을 해야 하는 상 황에서 정치세력들은 사회정책을 정치적 지지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 향이 강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대체로 복지국가의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견해 이다. 플로라와 알버(Flora and Alber, 1981)를 비롯한 근대화론자들은 산업화와 함께 민주
주의 같은 거시적 변수가 복지국가의 발전과 저발전을 가르는 중요한 변수임을 강조한다.
제3세계 국가들의 민주화 이행에 관해서도 쉐보르스키와 같은 민주화 이행론자들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일단 제도화되면, 민주주의는 경쟁의 제도적 효과로 인해 민주화 이행의 성격이 어떠하든 간에 민주주의는 스스로 공고화된다는 점을 강조한다(Przeworski, 1992; 최장집·박 상훈, 2010: 140).
둘째, 민주화 이행 경로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견해들은 사회적 민주화는 민주화 이행 양 식의 함수이지 민주화의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민주화 이행의 경로와 민주주의의 유형은 매우 다양할 수 있으며, 민주화 이행의 성격이 민주주의의 공고화에도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O'Donnell and Schmitter, 1986). 그리고 쉐보르스 키와 같은 민주화 이행론자들이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다수표를 획득하고자 하는 경쟁의 압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민주화 이후의 정치균열이 반드시 시민사 회의 계급균열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민주화 이행이 어떤 경로와 유형을 따르는지, 그리고 사회적 균열이 어떠한 방식으로 정치화되는지가 민주화 이 후 민주주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경로의존성을 강조한다(최장집·박상훈, 2010: 138-141).
실제로 근대화론에 기대어 민주화 이행 이후 복지국가가 성장했다고 보는 견해들과 달 리(Peng and Wong, 2008 ; 김태성·성경륭, 1993), 제3세계 민주화 이행은 정치민주화가 반 드시 사회민주화로 귀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정치민주화가 사회민주화를 촉 발하고 이것이 다시 정치민주화의 수준을 높이게 되는 순순환과정을 ‘이중전환’이라고 한다 면, 제3세계 국가들의 민주화 이행 대부분은 이러한 이중전환이 유보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송호근, 1999: 119-120). 그러므로 민주화 이행이 복지국가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민주화 이행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이것이 민주 주의의 공고화와 복지국가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대체로 민주화 이행의 유형은 첫째, 기존의 권위주의 집권세력이 민주화 이행과정을 어 느 정도나 통제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의 문제, 둘째, 엘리트간 협상의 동학과 사 회에서의 압력의 동학, 즉 정치사회에서의 정치엘리트간 균열과 시민사회에서의 계급균열이 어떻게 결합하고 해소되는가의 문제 두 가지를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다(Valenzuela, 1992:
77; Mainwaring, 1992: 302-304, 317-326; O'Donnell, 1992; 송호근, 1999; 조효래, 1995; 윤 상철, 1997).
첫째, 민주화 이행 과정에서 권위주의적 집권세력이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는가에 따라 민주화 이행은 ‘구체제의 패배와 붕괴를 통한 이행’, ‘거래에 의한 이행’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의 중간형태로 ‘탈출을 통한 이행’을 추가할 수 있다(Mainwaring, 1992: 317-326;
조효래, 1995; 송호근, 1999: 108). ‘패배와 붕괴를 통한 이행’이 권위주의 체제가 완전히 붕 괴하면서 민주화 이행이 진행되는 경우라면, ‘거래에 의한 이행’은 기존 권위주의 집권세력 이 초기 자유화 과정을 주도하고 이후 민주화 이행 과정에서도 핵심적인 행위자로서 민주 화 과정에 개입하거나 통제하게 되는 경우를 뜻한다. 마지막으로, ‘탈출을 통한 이행’은 기 존 권위주의 세력이 매우 약화되어 민주화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패배하지도 않은 경우를 지칭한다(조효래, 1995).
한국은 이러한 민주화 이행 유형에서 브라질, 스페인 등과 함께 ‘거래에 의한 이행’의 전 형적인 사례로 평가된다(Valenzuela, 1992: 77). 보통 거래에 의한 이행은 소위 ‘성공의 역설’
의 결과로, 즉 권위주의 체제가 경제적 성공으로 인해 정치개방을 통해서 잃을 것이 없으며, 오히려 대내외적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할 때 발생하며, 이러한 이행 의 핵심 요소는 이행 과정에 대한 엘리트의 통제, 특정 행위자의 배제, 사회경제적 변화의 배제, 선거에서 경쟁할 수 있는 권위주의 체제의 능력 등이라고 할 수 있다(조효래, 1995;
윤상철, 1997). 그런데 한국의 민주화 이행은 기본적으로 권위주의 정권의 경제적 실패가 아 니라 성공을 배경으로 진행되었다는 점, 그리고 이것이 지배세력의 정치적 양보를 통해 이 루어졌으며 이들이 지속적으로 매우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며 민주화 이행 과정 전체를 통제해 왔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거래에 의한 민주화 이행’으로 구분할 수 있다(임현진·송 호근, 1995; 최장집, 1993; 송호근, 1999).
둘째, 정치균열과 사회균열의 결합방식에 따라 우리는 거래를 통한 민주화 이행을 다시
‘사회협약을 통한 민주화 이행’과 ‘엘리트협약을 통한 민주화 이행’으로 세분할 수 있다(송호 근, 1999: 108). 메인워링(Mainwaring, 1992: 302-304)이 지적하는 것처럼 민주화 이행은 엘 리트간 협상의 동학과 사회로부터의 압력의 동학이라는 이중 과정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정 치엘리트간의 균열이 시민사회의 계급균열을 전국적인 정치쟁점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면 민주주의는 공고화될 수 있다. 그러므로 민주화 이행은 권위주의 세력의 잔존 여부 외에도 사회적 균열이 정치화되는 방식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구체제 세력이 잔존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부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조효래, 1995).
한국의 민주화 이행은 운동에 의한 민주화 즉 밑으로부터의 민주화 압력이 매우 거셌으 며 시민사회가 매우 저항적이었다는 점에서 남미나 대만의 민주화 이행과 뚜렷한 차이가 난다(최장집, 1993; 신광영, 1999). 하지만 한국의 민주화 이행은 ‘엘리트협약을 통한 민주화 이행’의 전형적인 사례에 속한다. 이러한 엘리트협약을 통한 민주화 이행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아마도 87년의 6·29선언과 90년의 3당합당일 것이다. 87년의 6·29 선언은 직 선제 개헌이라는 제도권 야당과 중간계급의 요구를 수용하고 나아가서 야당과 중간계급을 급진적인 민주화세력과 분리시킴으로써, 아래로부터의 민주화 압력을 정치엘리트간의 협상 문제로 전환시키기 위해 권위주의 집권세력이 선택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윤상철, 1997:
161-175; 김원, 2009; 서중석, 2011).1) 90년의 3당합당의 경우도 구지배세력이 민주화 이행 과정에서의 위험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민간출신에게 주도권을 이양한 엘리트 협약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송호근, 1999: 32-35).
그런데 한국에서 엘리트협약을 통한 민주화 이행이 갖는 더욱 커다란 문제는 이것이 지 역정당체제를 고착화시킴으로써 시민사회의 계급균열이 전국적 정치쟁점으로 부상할 수 있 는 통로를 완전히 차단시켰다는 점이다. 지역균열을 바탕으로 하는 이러한 지역정당체제는 계급균열과 같은 근대적 균열이 정치사회로 이전되어 정치쟁점으로 부상하는 것을 가로막 는 역할을 한다(최장집·박상훈, 2010: 133; 윤상철, 1997: 180). 쉐보르스키와 같은 민주화 이 행론자들은 다수표를 획득하고자 하는 선거경쟁이 결과적으로 정당과 사회간의 연계를 확 대 심화시킨다고 상정하지만, 이것은 정당간의 경쟁이 반드시 계급균열과 같은 갈등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간과한다. 오히려 지역균열과 같은 하나의 갈등 축은 계급균열과 같은 또 다른 잠재적 갈등 축을 억압하고 대체하는 효과를 갖는다(최장집·박상 훈, 2010 138-141). 그러므로 민주화 이행 이후 한국의 지역정당체제는 정치적 대표체계와 사회적 조건 간의 극심한 불일치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변형주의적 동원 사례라고 할 수 있 다(최장집, 1996: 205).
결론적으로 한국의 민주화 이행은 87년 6·29선언을 정점으로 급격한 단절을 이룬다. 한 국의 민주화 이행은 운동에 의한 민주화, 즉 민중의 투쟁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6·29선 언 이후 정치엘리트들만이 협상테이블에 참여하고 민주화 운동세력들은 완전히 배제된다.
또한 이러한 엘리트협약을 통한 민주화 이행과 함께 지역정당체제가 고착화됨으로써 민주 주의가 오로지 정치엘리트들 간의 정치 게임으로 변질되고 만다.
1) 6·29선언은 집권세력 내 개방파가 권위주의 체제의 전면 와해를 방지하기 위해 강경보수파를 설득 한 정치적 협약이었다는 견해도 존재하며(임혁백, 1992; 송호근, 1999: 35), 이와 달리 개방파와 강 경파간의 이해관계가 불일치했다는 것은 허구적인 대립구도라는 비판도 존재한다(윤상철, 1997).
하지만 저항연합 내의 제도권야당인 민주당이 기본적으로 정치체 내부의 협상을 통한 해결방식을 선호했다는 점에서, 6·29선언이 권위주의 집권세력과 저항연합 내의 온건파가 민주화 이행을 정치 적 거래의 문제로 전환시킨 중대한 사건이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