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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한국에서는 1960-70년대 산업화의 비용을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 인가의 문제를 둘러싸고 정치가 활성화된다. 특히 부가가치세의 도입이 조세부담을 매우 역 진적인 체계로 바꾸어놓음으로써 권위주의 체제의 붕괴를 야기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한 국이 부가가치세 도입 당시 모델로 참고했던 유럽의 경우는 부가가치세의 역진성을 수정할 수 있는 국가복지가 매우 잘 제도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이러한 국가복지가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오로지 내자동원의 관점에서만 부가가치세 도입이 고려되었기 때문 에 부가가치세의 도입이 분배갈등의 폭발로 이어진다.

1970년대 후반의 분배갈등이 평화적이고 정상적인 정치과정을 따라 전개되었다면, 한국 에서도 아마 1970년대 후반에 매우 단절적인 복지개혁을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 의 경험은 이러한 경로와는 매우 다른 경로를 거쳐 왔다. 즉, 1979년의 부마항쟁 이후 곧이 어 10·26사태와 12·12군사쿠데타, 그리고 80년 서울의 봄을 거쳐 광주민주항쟁으로 이어지 는 한국 현대사의 과정은 1970년대의 분배갈등이 매우 폭압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억압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1970년대에 성장하기 시작한 분배연합이 복지문제를 정치화할 기회를 박탈당했으며, 그 기회가 적어도 1980년대 민주화 이행 시기로까지 이연됨을 뜻한다.

하지만 지배엘리트의 중산층 육성 대책이 보여주듯이 민주화 이행기에도 사회정책은 1970년대와 마찬가지로 국가복지의 최소주의 원칙, 수익자 부담 원칙, 선별적 지원 원칙을 유지한다. 사실 한국에서 사회정책은 어떤 뚜렷한 정책적 지향이나 철학을 바탕으로 한 것 이 아니라 항상 정치적 정당성 확보 차원에서 고려되어 왔다(Kwon, 1999). 그런데 국가복 지의 확대가 정치적 정당성 확보 차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갖는다면, 반면에 이에 수반되 는 재정부담이나 조세개혁은 정치적 정당성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 므로 재원조달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정당성 확보를 궁극적인 목표로 하는 사회정책은 결과 적으로 형식적이고 명목적인 도입에 그치거나 수익자 부담과 잔여주의적 성격이 강한 시장 순응형 사회정책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이혜경, 1995; 송호근, 1999: 83-84).

19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도 이러한 재정적 제약 문제는 사회정책의 성격을 규정하는 핵심적인 사안이 된다(곽태원, 1987). 첫째, 중산층 육성대책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 작되는 1985년은 아직까지 ‘3저 호황’이라는 것을 예측하기 힘든 때였고, 80년대 초반의 경 제안정화정책 기조도 여전히 강하게 지속되고 있던 때였다. 즉, 5공 초기에는 마이너스 성 장과 초인플레이션 문제, 실업률 증가 등 경제적으로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었으며, GNP의 5%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 외채상환을 위해 매년 지불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한 당시에 는 한국경제의 위기설과 함께 선진국의 복지국가 비판론도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이혜경, 1993: 82; 윤상우, 2002). 따라서 5공은 체제의 정당성을 만회하기 위해 복지국가 구현을 국 정목표로 내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정책에 있어서 점진주의적이고 소극적인 접근에만 머 물고 있었다(이혜경, 1993). 즉, 80년대 중반 집권세력의 정치적 위기로 인해 사회정책에 대 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상황에서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차적으로 국가의 재정건전성을 유 지해야 한다는 전제조건 하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둘째, 민주화 과정에서 분배욕구의 분출은 오히려 복지재정의 확대를 어렵게 하는 면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복지지출의 확대는 조세부담의 증가를 수반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앞에 서 살펴보았듯이 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는 분배문제와 관련하여 더 많은 국가복지가 요구 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조세부담이 과중하기 때문에 조세부담을 축소하라는 요구가 동시에 제기된다(박유광, 1988; 최광, 1989). 이는 그 동안 한국사회에서 분배문제가 지나치 게 억눌려 왔을 뿐만 아니라, 조세부담의 불공평성이 매우 심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유 야 어찌되었든 정책당국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서로 상충되는 요구들을 정책적으로 조율할 필요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조세부담의 증가가 어려운 상황에서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기 위 해 가능한 해결책은 복지지출을 최대한 억제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사회정책이 일차적으로 재정적 문제에 제약되어 있었다는 것은 ‘제6차경제사회발전5개년 계획’에 잘 나타난다. 아래 글은 ‘6차경제사회발전5개년계획 수정계획’에서 인용한 것이다.

“만약 증대되는 복지수요를 모두 정부재정기능을 통해 해결하려 할 경우에는 국민의 조세부담이 대폭 늘어나고 재정규모가 팽창되어 각종 비효율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또한 조세부담증가 없는 재 정규모팽창은 인플레를 초래하게 되고 경제의 안정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세제의 합리화로 정당하게 거두어야 할 세금은 징수하되 획일적인 고조세부담은 지양하면서 생활의 기본수요를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계층에 대한 재정지원부터 선별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 바람 직하다”(대한민국정부, 1988: 18).

이렇게 재정적 제약조건 하에서 사회정책의 ‘수익자 부담 원칙’과 ‘선별적 지원 원칙’은 생활보호제도와 같은 공공부조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제도나 의료보험제도 같은 사회보험에 도 강하게 반영된다.

첫째, 국민연금제도의 경우 ‘수익자 부담 원칙’은 시행초기에 보험료 부담 능력이 없는 저소득계층, 실업자 등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부분적립 재정방식을 채택했음에도 불 구하고 이로 인해 당대의 노인들이 제도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문제를 그대로 방치하였으며, 지역가입자의 경우에는 보험료를 전액 본인부담으로 하였다는 점에서 잘 나타난다(이혜경, 1993: 81-83). 이러한 것들은 모두 사회보험에 있어서 국고부담을 최소화하고 건전재정원칙 을 유지하는 것과 관련된 것들이며, 이로 인해 사회적 취약계층이 사회보험에서 제도적으로 배제되는 결과를 초래한다.10)

둘째, 의료보험의 경우에는 수익자 부담 원칙의 문제가 조합주의 대 통합주의간의 논쟁 형태로 나타난다. 1970년대 후반 의료보험제도의 시행 이후 의료보험은 지속적으로 적용 대 상을 확대해 왔는데, 그 결과로 인해 80년대가 되면 소규모 의료보험조합의 재정불안 문제 와 보험에 있어서 역선택 문제가 대두하게 된다(이두호, 1992; 이혜경: 1992: 181-184). 따라 서 조합주의적 의보운영의 문제점이 보사부 내에서도 논의가 되어 89년에는 의료보험 통합 을 위한 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한다. 하지만 의보통합이 국고부담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이 유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조합주의 방식이 그대로 유지된다. 이것은 의료보험 에 있어서도 사회적 연대와 재분배의 측면보다는 시장적 경쟁과 수익자 부담 원칙이 강하 게 유지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조영재, 2008).

10) 1995년 국민연금의 농어민 확대적용과 같이 적용대상이 확대되는 경우에도, 이것이 우르과이라운 드 타결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확대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농어촌연금보험에 대한 국고보조는 향 후 10년간 일인당 월2,200원으로 제한될 정도로 국가의 재정부담은 매우 인색하였다(이혜경 1995).

셋째, 공공부조에 있어서도 복지에 대한 가족책임을 강조하는 잔여주의 모형이 지배적임 을 알 수 있다. ‘제6차경제사회발전5개년계획 보건사회부문계획’에서는 “가정, 지역사회의 복 지기능을 최대한 조장시키고 이것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을 때 국가적 복지시책으로 보충하 는 선 가정보호, 후 사회보장 원칙을 견지한다. 이에 따라 앞으로 가정복지, 지역복지 및 재 가복지를 보다 강화해 간다”(김상균 1993, 136에서 재인용)고 함으로써 공공부조에 있어서 국가의 책임을 최소화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