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1960-70년대 저축동원의 규모는 얼마나 되는가? 민간저축을 활용한 자본동원 의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예금은행 금융자금 중 정책금융으로 활용된 부분, 공공기금에 서 민간저축으로 조달된 부분, 산업은행 재원 중 기한부 예금의 형태로 조달된 부분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1954년에 한국산업은행이 설립된 후, 1961년 중소기업은행과 농업협동조합중앙회, 1962년 국민은 행과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 1967년 한국주택은행과 한국외환은행이 설립된다. 그리고 1976년 한 국수출입은행, 1980년 한국장기신용은행이 설립되는 등 특수은행의 설립은 1980년대까지 지속된 다(박영철, 1984: 369).
첫째, 일반적으로 국가의 차입행위란 금융시장을 통해 국채나 공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 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국가의 차입, 특히 국내차입의 경우 거의 대부 분이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금융통제 하에 행정력과 강제성에 기대 어 이루어진다(박영철, 1984: 347-348). 그러므로 일반은행과 특수은행 등 예금은행이 취급 하는 금융자금 중 자금의 용도가 지정된 수출지원금융, 수출산업설비금융지원, 중소기업자 금지원, 기계공업육성자금지원, 산업합리화자금지원, 서민주택자금지원, 농수축산자금, 상업 어음할인 등을 중심으로 예금은행 정책금융의 규모를 측정할 수 있다(재무부, 1974; 박영철, 1984: 352-359; 김준경, 1993: 134).2)
둘째, 일반회계 및 특별회계와 함께 정부 통합재정수지를 구성하는 정부관리기금은 재정 자금, 정부차입금, 해외차관, 회수금, 자체 수익금 외에도 민간저축자금을 중요한 재원으로 한다. 그리고 그 종류도 국민투자기금, 국민주택기금, 공업발전기금, 농어촌발전기금 등 매 우 다양하다(재무부, 1989; 최광, 1991; 오건호, 2010). 그러므로 공공기금을 통한 민간저축동 원의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각종 정부관리기금에서 민간저축자금으로 조달된 재원의 규모를 파악하여야 한다. 여기서는 편의상 정부관리기금을 대표하는 국민투자기금에서 순수 민간저축을 통해 조달된 부문만을 저축동원 규모에 포함시킨다.
셋째, 산업은행의 경우는 설립 초기 재원조달의 대부분을 대충자금 및 산업부흥국채기금 등 원조 및 정부차입금, 한국은행 통화발행 등에 의존했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 대충자금 이 고갈됨에 따라 산업은행은 산업금융채권의 발행 경로를 일반은행 인수, 증권보험사 인수 등으로 다양화하고, 일반은행 자금의 일부를 기한부 예금의 형태로 흡수함으로써, 민간자금 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간다. 즉 1960년대 들어 산업은행은 재정자금 확보에 한계를 느끼면 서 일반금융기관이 이미 동원한 민간자금을 전용하는 방식을 취한다(김상조 1991). 그러므 로 이 글은 산업은행이 동원한 민간자금 중 일반은행의 기한부 예금을 저축동원에 포함시 킨다.
아래 <표 2-1>은 민간저축동원의 규모를 앞에서 지적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계산한 것 이다. 이 표는 국가가 행정력과 강제력을 이용하여 민간저축자금을 동원하여 배분한 규모가 상당히 컸으며, 그것이 특히 1970년대 후반에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음을 보여준다. 중
2) 정책금융이란 시장기능에 일임하여서는 정부가 목표로 하는 수준의 자금배분을 기대하기 어려운 특정부문에 대해 금리, 기간 등 자금의 융자조건이나 가용성 면에서 우대하여 공급하는 여신을 말 하며, 그 재원은 원칙적으로 국가재정이 부담한다(김준경, 1993: 113; 이기영, 1994: 9-10). 그런데 한국의 경우 정책금융은 재정자금보다는 주로 민간금융기관이 기조성한 민간저축자금의 배분에 크게 의존하여 왔다(박영철 1984: 354).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행정력의 대상이 되는 정책금융 부 문을 저축동원에 포함시킨다.
년도 예금은행
정책금융 국민투자
기금 산업은행
예금 민간저축
재원합계(A) 중앙정부
재정규모(B) A/B
1961 45.5 2.2 47.7 571.5 8.4
1962 81.5 3.3 84.8 883.9 9.6
1963 81.8 3.7 85.5 728.4 11.7
1964 53.4 3.6 57.0 751.8 7.6
1965 97.8 11.1 108.9 935.3 11.6
1966 133.7 16.9 150.6 1,409.4 10.7 1967 275.5 23.9 299.4 1,809.3 16.5 1968 514.7 142.0 656.7 2,620.6 25.1 1969 820.4 167.8 988.2 3,705.3 26.7 1970 1,037.1 233.2 1,270.3 4,687.0 27.1 1971 1,572.4 150.2 1,722.5 5,485.0 31.4 1972 2,020.4 97.9 2,118.3 7,462.0 28.4 1973 2,780.0 94.6 2,874.5 7,212.0 39.9 1974 1,733.8 698.0 75.4 2,507.2 12,030.0 20.8 1975 2,283.8 1,720.0 233.1 4,236.9 17,653.0 24.0 1976 5,539.5 3,371.0 205.0 9,115.5 25,189.0 36.2 1977 8,534.9 6,113.0 296.5 14,944.4 32,744.0 45.6 1978 11,029.3 9,192.0 496.9 20,718.2 44,080.0 47.0 1979 15,008.9 12,111.0 500.6 27,620.6 59,900.0 46.1 1980 24,512.0 15,832.0 465.0 40,809.0 76,820.0 53.1 앙정부 재정규모와 비교했을 때 민간저축동원의 규모는 국민투자기금 제도가 도입된 1970 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증가하여 1980년에는 50%를 상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표 2-1> 민간저축동원의 규모 단위: 억 원, %
자료: <부표>, 윤건영(1991: 512 표 6-29), 한국은행 경제통계연보 중 “한국산업은행주요 계정”중 저축성예금과 예금은행 예금, 한국개발연구원(1983, 1991) 참조.
이러한 민간저축자금의 동원규모는 일본의 재정투융자 규모와 비교해도 상당히 큰 수준 이다. 사실 민간금융기관이 조성한 민간저축자금을 국가의 통제 하에 재정자금처럼 활용하 는 발상은 일본의 재정투융자 제도를 참고한 것이다.3) 일본은 전전부터 공무원연금이나 우 3) 국민투자기금 도입 당시 재무부장관이었던 남덕우는 국민투자기금 제도가 일본 대장성의 자금운
용부 계정에서 힌트를 얻어 도입되었다고 언급한다(남덕우, 2009).
년도 재정투융자(A) 일반회계 정부지출(B) A/B
1960 606.9 1,569.7 38.7
1965 1,620.6 3,744.7 43.3
1970 3,579.9 8,213.1 43.6
1975 9,310.0 21,288.8 43.7
1980 18,179.9 42,588.8 42.7
1985 20,858.0 52,499.6 39.7
1990 27,622.4 66,236.8 41.7
편저축자금을 자금운용부 산하 재정투융자 기금으로 흡수하여 산업개발 혹은 사회복지 사 업에 사용하여 왔다(柴垣和夫. 1985; 新藤宗幸. 2006; Park, 2011; Cargill and Yoshino, 2003). 그런데 일본의 경우 이러한 민간자금을 동원하는 구조가 재정투융자 제도를 통해 일 원화됨으로써 한국에 비해 매우 간결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이광준, 1992). 이는 일본의 경 우 각종 공공기금이나 우편저축자금 등으로도 충분히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을 뿐 만 아니라 금융제도 또한 매우 상이했기 때문이다.4)
이러한 제도적 차이를 고려하여 살펴볼 때, 한국의 민간저축자금 동원 규모는 일본의 그 것에 비해 규모가 상당히 컸다. <표 2-2>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의 경우 일반회계 정부지 출 기준으로 재정투융자 규모가 산업화시기에 40%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는 <표 2-1>에서 알 수 있듯이 1970년대 후반 민간저축동원의 규모가 중 앙정부 재정규모 대비 40-50%에 달한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민간저축자금의 정책금융 규 모를 중앙정부 재정규모를 기준으로 파악한 반면, 일본은 일반회계 기준으로 파악했다는 점 을 고려할 때 한국의 민간저축동원 규모가 일본에 비해 더 컸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5)
<표 2-2> 일본의 재정투융자 규모와 일반회계 정부지출 규모 단위: 10억 엔, %
4) 일본의 경우는 게이레츠의 형태로 기업계열군과 은행이 매우 밀착되어 있었고, 재정투융자 제도를 통해 조달한 민간자금은 대부분 일본개발은행 등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개발금융기관을 통해 배 분된다(柴垣和夫. 1985; Teranishi, 1999). 반면 한국의 경우는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 등 공 공기금과 우편저축자금 만으로는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은행의 예 금 일부를 투자기금으로 흡수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이마저도 충분히 않아서 예금은행의 예금 일부를 아예 정책금융을 통해 직접 배분하여 왔다. 이것은 한국의 경우 1960년대 이후 정부가 개 발금융기관이나 특수은행뿐만 아니라 일반 시중은행 등 민간 금융기관도 사실상 장악하고 은행 경영에 직접 개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5) 일반적으로 중앙정부 재정규모는 일반회계, 특별회계, 공공기금을 모두 포괄한다. 그러므로 일반회 계를 기준으로 한국의 민간저축자금 정책금융 규모를 계산할 경우 <표 2-1>에서 계산한 값보다 더 클 것이다.
정부부처별 정부관리기금 정책금융
상공부 국민투자가금, 기계공업진흥기금, 천일염전개답자금
수출지원금융,
중소기업특별저리자금, 유통근대화자금, 각종산업자금 문교부 관광진흥개발자금,
수송 및 통신자금 관광진흥자금
보사부 공단병원건설자금,
공해방지시설자금, 민간지역병원설치자금
내무부 농어촌주택자금 재해복구지원자금,
지하철건설지원자금, 지방자치단체여신 건설부 국민주택기금,
상하수도자금 공단조성자금,
해외건설지원자금
농수산부
농업기계화촉진자금, 농어촌후계자육성자금, 농수산물가격안정기금, 양곡기금,
농수산개발자금
동력자원부 저탄기금 에너지절약시설자금,
하계저탄자금, 무연탄수입자금
국방부 운수산업육성기금 운수산업지원금융
1995 40,240.1 70,987.1 56.7
2000 38,285.5 84,987.1 45.0
출처: 新藤宗幸(2006: 81-82)에서 재인용.
민간저축의 동원은 정부관리기금과 정책금융 종류의 증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60년대 말까지 총 10개에 불과하던 정부관리기금의 수는 1970년대에 크게 늘고, 특히 1970년대 후반 융자성 기금을 중심으로 기금설치가 급증하게 된다(최광, 1991). 아래 <표 2-3>은 정부 각 부처별로 관련된 정부관리기금 및 정책금융들을 정리한 것으로 행정부가 정부관리기금 이외에도 정책금융의 방식으로 민간자금을 재정자금화한 사례가 매우 다양하 고 폭넓게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표 2-3> 정부 각 부처별 정부관리기금 및 정책금융 간여사례
노동부 연불임금지원자금
항만청 해운진흥기금 외항해운자금
수산청 수산진흥기금 출처: 박영철(1984: 353)에서 재인용.
위의 표는 한국의 경우 정책금융이 정부 대부분의 부처에서 다양한 목적으로 수많은 사 업을 지원하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이용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즉 정책금융이 선별적 자원할 당의 성격을 상실한 채, 현실적으로는 경제의 전 산업을 지원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으며, 포괄범위를 기준으로 볼 때 정책금융이 사실상 정부의 예산상의 재정활동을 대체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박영철, 1984: 352-355). 이것은 민간저축자금의 동원이 재정과 금융, 그리고 조세와 저축의 경계를 모호하게 할 정도로 매우 광범위했음을 보여준 다.6)
그 동안 개발국가론은 국가의 금융통제가 후발 국가의 경제적 성공에 매우 중요한 기여 를 해 왔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이 이론은 국가의 금융통제가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 을 미쳤는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만 주목해 왔을 뿐, 국가가 왜 재정적 수단 보다는 금융적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는지, 민간저축을 동원하기 위해 어떤 정책적 노 력을 기울여 왔는지, 그리고 그 결과로 어떠한 국가-사회관계가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반 주목해오지 않았다. 특히 국가의 민간저축동원이 사람들의 일상생활 및 삶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면 다음 2절과 3 절에서는 저축동원의 구체적인 과정과 관련 정책들, 그리고 저축동원이 가정경제와 일상생 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2절 경제개발계획과 저축동원전략
1) ‘1차경제개발5개년계획’과 내자동원의 실패
6) 남덕우는 ‘금융자금도 국가의 자원인 만큼 정부의 계획하에 경제개발에 유용하게 써야 한다는 것 이 대통령의 철학’이었다고 밝히고 있다(남덕우, 2009: 76). 이것은 당시 금융과 재정의 경계가 얼 마나 모호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