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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신화와 중간계급의 자산형성

년도 일반

행정 국방 교육 보건 사회보장 및

복지 주택 기타 지역개발

경제사업 기타 1971 23.5 27.2 18 1.8 4.9 0.6 1.4 20.3 2.3 1972 12 26 16.1 1.2 5 1 1.3 24.8 12.6 1973 11.9 28.1 16.6 1.3 5.9 1.9 1.1 20.1 13.1 1974 11 26.7 12.9 1.1 5.1 1.3 0.9 32.1 8.9 1975 13.1 26.4 12.7 0.9 4.8 1.1 0.8 31.1 9.1 1976 9.4 30.6 13.9 1 4.3 1.1 0.8 29.3 9.6 1977 9.1 30.8 14.4 1.5 4.4 1.4 0.8 26.9 10.7 1978 9.5 32.6 13.7 1.5 4.3 1.2 0.8 26.2 10.2 1979 9.1 26.7 14.4 0.9 4.7 1.8 0.6 31.8 10 1980 8.5 30.6 14.6 1 5.7 2.5 0.7 26 10.4 1981 8.9 28 14.4 1 4.9 7.5 0.6 24.7 10 1982 9.2 27.3 17 1.2 8.5 3.3 0.7 21.6 11.2 1983 10.1 27.9 17.9 1.5 4.7 4.8 0.8 19.9 12.4 1984 9 26.6 16.8 1.3 5 7.9 0.8 19.1 13.5 1985 9.4 26.6 16.6 1.3 5.2 4.8 1 21.9 13.2 1986 10 27.5 17 1.5 6.1 3.9 1.1 18.1 14.8 1987 9.4 25.5 17.1 2.2 6.2 3.6 2.2 17.7 16.1 1988 9 25.2 17.7 2.1 7.2 4.2 0.6 19.4 14.6 1989 8.9 23.1 17.1 1.9 8 8 0.7 18.9 13.4 1990 8.5 20 17 1.7 8.1 10.1 0.5 20.4 13.7 1991 8.8 19.6 13.9 1.8 8.5 9.2 0.5 20.7 17 1992 9.8 19.3 14.4 0.9 9.3 7.2 0.5 18.7 19.9 1993 9.8 18.4 15.4 0.9 9.3 6.2 0.6 19.9 19.5 1994 11.1 17.2 13.9 0.8 9.3 6.1 0.5 25.4 15.7

<표 4-7> 중앙정부 통합재정수지 기준 재정지출구조 단위: %

출처: 노인철·김수봉(1996: 57), <표 4-4>에서 인용.

것이고, 이것은 다시 비용부담의 분배를 둘러싸고 첨예한 이해갈등을 유발했을 것이다. 하 지만 내 집 마련이나 재산형성, 공공기금을 활용한 재원조달은 사회구성원들의 재산권을 침 해하지 않으면서 분배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서 서구적인 맥락의 재분배 정치와는 거리 가 먼 것이었다.

이것은 실제로 지배엘리트가 중산층 육성 대책을 어떠한 정치적 맥락과 목적에서 활용 했는지를 살펴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지배엘리트의 중산층 육성 대책은 1989년 공안정국 을 계기로 보다 본격화 되는데, 6공 정권은 공안정국 조성을 통해 중간층의 안보심리와 안 정희구심리를 자극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내 집 마련이나 국민주 발행 등을 통해 중간층을 보수화시키고자 한다(정해구, 2011).

우선 지배엘리트들은 3저 호황을 계기로 증권시장이 성장하고 주식인구가 확대되는 것 에 주목한다. 당시 주식인구가 7백 만 정도로 증가하고, 이러한 주식인구의 절반 이상을 중 간계층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당연히 증권시장의 안정을 원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보수화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므로 지배엘리트들은 이러한 주식보유자들의 심리를 활 용하여,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주식인구를 더욱 확대시키고자 한다. 80년대 후반 포항제철, 한국전력, 국민은행, 전기통신공사 등을 잇달아 공개하고 이들 주식을 국민주 방식으로 매 각함으로써 중간계층을 주식보유자로서 포섭하고자 한다(월간말, 1989 7월호 “노정권의 중 간층 포섭전술” pp.20; 윤상철, 1997).

80년대 후반의 주택정책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6공의 핵심 공약이었던 주택 200만 호 건 설은 영세민이나 중간층의 주거문제 해결보다는 사실상 중간층의 재산형성을 통한 중산층 신화 만들기의 성격이 강했다. 아파트 한 채가 중산층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상황에서 주택청약예금이나 청약저축을 통해 아파트 분양을 기다리는 인구가 1백 40 만 여명에 달한다는 것은 그 만큼 내 집 마련을 통한 신분상승의 욕망이 매우 강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부동산이 가장 수익성이 높은 재테크 수단이 되는 상황에서 내 집 마련 혹은 내 집 넓히기는 계층상승을 위한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에 다름 아니었다(강준만, 2003: 202-215; 송호근, 1999: 235; 월간말, 1989 7월호 “노정권의 중간층 포섭전술” pp. 20;

홍두승·이동원, 1993).

지배엘리트의 주식 및 부동산을 통한 중간층 포섭전략이 어느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었는지는 ‘월간말’ 지에 실린 다음의 인용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주택은행 주택청약예금 창구에서 만난 한 화이트칼라는 “노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에 정치적으로 는 동조하지만, 솔직히 말해 내가 투자한 증권에서 이익을 남기고 작은 아파트 한 채라도 구입할 때

까지 만이라도 커다란 격변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월간말, 1989 7월호 “노정권의 중산층 포섭전술” pp.20)

“기업체사원, 공무원, 교사 등 샐러리맨은 ‘우리가 언제 월급으로 살아 왔습니까’라며 본업은 제쳐 둔 채 사무실에서도 증권과 아파트 이야기를 합니다.”(월간말, 1989 7월호 “노정권의 중산층 포섭전 술” pp.20)

<그림 4-3> 자가거주율의 변화13)

출처: 통계청(KOSIS)

<그림 4-3>는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자가거주율의 변화를 살펴본 것이다.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한국의 자가거주율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1970년대 이후 1990년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하다가 1990년을 기점으로 다시 증가하기 시작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1970년대의 경우 모든 가용한 자본이 일차적으로 중화학공업 화에 투자되어야 했기 때문에 주택부문에 대한 지원은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연하청 외, 1990: 231-234; 김중수, 1987). 하지만 80년대 분배갈등이 주거문제를 중심 으로 벌어짐에 따라 지배엘리트들은 국민주택기금과 국민연금 동원 등을 통해 주택 200만 호 건설 등 매우 적극적인 주택공급정책을 펼치게 된다(한국주택은행, 1988; 박태규, 1989).

13) 이 그래프를 보면 2000년대 후반 자가거주율이 하락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의 경우 자기 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셋방살이를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자기 집이 있 으면서도 셋방살이를 하는 가구를 포함한 자가소유율을 기준으로 할 경우, 자가소유율이 2005년에 는 60.3%, 2010년에는 61.3%로 지속적으로 상승한다. 이러한 자가소유율은 일본과 유사한 수준이 다(김수현, 2011: 28).

년도 가계

저축률 가계 저축

금융자산 실물

자산 부채 합계 은행 상환

예금 보험 곗돈 기타

1982 20.7 61,636 76.8 33.9 7.3 36.6 -1.1 2.8 13.3 1983 23.2 78,526 81.0 42.9 7.0 28.2 2.9 1.1 12.1 1984 24.2 89,883 75.8 38.2 7.4 26.7 3.6 2.9 14.1 1985 23.9 95,027 70.1 37.4 8.6 21.6 2.5 7.1 15.5 1986 25.2 111,651 72.7 44.7 6.5 20.0 1.6 6.2 14.6 1987 26.4 136,524 72.9 47.1 5.9 16.5 3.4 8.3 12.1 1988 25.8 154,188 66.5 40.8 9.6 12.5 3.5 15.4 11.6 1989 23.6 173,657 77.0 38.3 13.0 12.5 13.2 18.2 2.6 1990 25.3 220,237 76.5 37.4 12.8 11.0 15.3 27.8 -7.5 1991 27.8 299,645 76.7 44.3 11.1 8.0 13.4 14.6 4.2 1992 27.9 348,390 69.2 40.9 12.5 10.3 5.6 24.6 2.5 1993 27.4 372,320 67.3 34.7 12.5 11.1 8.9 20.9 6.5 1994 28.2 437,282 61.1 30.6 15.3 8.4 6.8 31.7 1.7 1995 29.0 501,953 71.4 39.9 15.6 8.1 7.8 17.1 7.6 1996 28.3 549,834 76.9 40.0 15.8 8.6 12.5 14.2 3.6 1997 29.6 610,455 68.7 40.3 15.8 6.6 6.0 19.4 9.4 1998 31.5 596,870 56.5 32.0 16.5 5.4 2.5 12.0 21.0 1999 25.1 494,228 57.6 27.0 22.4 3.7 4.5 23.4 14.7 2000 23.6 498,787 71.1 36.1 26.6 2.6 5.9 12.8 15.6 2001 24.5 567,608 75.1 41.9 24.1 4.5 4.6 21.4 2.4 2002 26.4 656,483 80.6 47.7 24.0 3.8 5.1 8.5 10.5 특히 내 집 마련 혹은 아파트 한 채가 중산층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적인 수단이 됨에 따라 주택공급은 중산층 신화와 정당성 확보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 된다.

다음으로 한국의 도시가계조사 자료를 활용하여 한국 가계의 자산구성의 시계열적 변동 을 살펴보고자 한다. <표 4-8>는 매년 가계저축이 각각의 자산항목에 어떻게 배분되었는지 를 보여준다. 이 표는 통계청 ‘DOSI’시스템을 활용하여 조사가구의 자산구성의 변동을 금융 자산과 실물자산, 부채부문으로 나누고, 금융자산의 경우는 다시 은행예금, 보험, 곗돈, 기타 (유가증권과 개인적으로 빌려준 돈 포함) 등으로 세분화해서 살펴본 것이다.

<표 4-8> 가계자산의 구성 변화 단위: 원, %

2003 25.4 659,353 80.5 29.5 28.7 2.8 0.1 2.8 16.4 자료: 통계청 DOSI시스템.

이 표는 가계금융자산의 경우 은행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대략 30-40%에서 변동해 온 반면, 그 동안 곗돈이 차지하는 비중은 급격히 하락하고, 대신 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 게 증가해 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가계저축 중 주택이나 부동산 등 실물자산으로 축 적되는 비중이 80년대 후반 이래로 증가하여 90년대 중반에는 30% 수준에 달한다. 부채상 환의 경우는 실물자산의 증감과 반대방향으로 변동하는 경향을 보여주는데, 가령 실물자산 축적 비중이 높았던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후반까지의 기간 동안 가계의 부채상환 비중 은 낮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표를 통해 우리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후 반까지 한국의 가계저축률이 가장 높았던 시기에 가계저축의 상당부분이 보험과 실물자산 형태로 축적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80년대의 재산형성 및 가정경제의 육성 정책은 가계의 생애주기상의 필요성, 부의 불 평등한 분배 문제, 중산층 육성을 위한 재산형성의 필요성 등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가복지의 발달이 미비한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민간보험은 사회보험을 대체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보험자산의 증가는 가계저축의 복지적 측면이 더욱 중요해지기 시 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당시의 열악한 주거환경과 심각한 주택부족 문제를 고려할 때, 저축을 통한 내 집 마련 촉진이 매우 중요한 정책과제였다고 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 가계저축에서 보험자산과 실물자산의 비중이 증가해 왔다는 사실은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 준다.

하지만 지배엘리트의 중산층 육성 및 포섭전략은 중간계급을 정치적으로는 지배엘리트 에 반대하면서도 경제적 풍요와 이익을 위해서는 지배엘리트를 지지하게 하는 이중적인 태 도를 만들어 낸다. 중간계급이 이렇게 재산형성과 신분상승에 몰두하는 상황에서 분배문제, 복지문제가 정치화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할 수밖에 없었다(최장집, 1993: 351). 실제로 민주 화 이후 의료보험 통합이나 국민연금 기금활용을 둘러싼 쟁점들이 형성되었음에도 불구하 고 이러한 이슈들은 크게 정치화되지 못한다. 비록 중산층의 재산형성에는 투기적 욕구와 신분상승의 열망이 가세하는 것이었지만 가계저축 및 주택소유는 기본적으로 가계의 복지 수단이었으며, 가계가 보유한 자산에서 투기적 욕구와 복지적 욕구를 구분해 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