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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소유계층의 형성과 자산기반 생활보장체계의 제도화

계급연대는 서구 복지국가의 성장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변수 중의 하나이다. 에스핑-안 데르센이 지적하듯이 서구 복지국가의 경험은 복지정치 혹은 복지동맹의 형성에서 중간계 급의 역할이 매우 핵심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무리 노동계급의 조직화 정도가 강하더라 도 노동계급이 절대다수를 차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계급동맹은 불가피하며, 게다가 중간 계급은 복지재정을 뒷받침하는 핵심재원이라는 점에서 복지국가 성장의 필수불가결한 사회 계급이라고 할 수 있다(Esping-Andersen, 1990; Baldwin, 1990).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중간계급 또는 보다 포괄적으로 계급이라는 범주가 어떤 고정된 실재가 아니라 가변적이고 유동적으로 형성 변형되는 구성물이라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 다(Rueschemeyer, Stephens and Stephens, 1992; 구해근, 2002; 신광영, 2004). 특히 루쉬마 이어와 스티븐스 부처는 남미의 민주화 이행에서 중간계급의 역할을 논하면서, 자본주의의 발전 및 중간계급의 성장과 민주주의 간에는 단선적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며, 중간계급 이 지배엘리트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자신의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가에 따라 민주 화 이행의 경로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중간계급의 정치적 경제적 정향은 계

급간의 물질적, 상징적, 정치적 투쟁의 과정에서, 즉 지배블록의 비타협성 여부, 노동계급의 조직력의 크기, 노동계급의 이념적 급진성 등의 변수에 따라 보수화할 수도 있고, 급진화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Rueschemeyer, Stephens and Stephens, 1992).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80년대 지배엘리트의 중산층 육성 대책은 지배엘리트가 중간계급 을 형성하고 포섭하기 위해 추진한 매우 적극적인 전략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사실 중산 층은 경제적인 개념임과 동시에 사회심리적인 개념으로서 지배엘리트가 사회적 계층상승의 꿈을 주입시키기 위해 정략적으로 활용해온 측면이 강하다(강준만, 1991). 이것은 중산층이 라는 용어가 학술적으로 엄밀하게 정의되지 못한 채 일상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권위주의 정권이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지속적으로 ‘중산층 신화’

를 확산시켜왔다는 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중산층을 특정한 방식으로 규 정하는 것 자체가 매우 정치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으며, 중산층 육성대책이라는 것은 지배 엘리트가 중간계층을 특정한 방식으로 주조해 내겠다는 중장기적인 플랜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80년대의 중산층 육성의 구체적인 방향은 재산형성 지원을 통해 중간층을 자산소유계층 으로 형성하겠다는 것이었다. 중산층을 육성하고 분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서구 복지국 가들처럼 보편주의적 사회정책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조세정책 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 그리고 수익자 부담·선별적 지원 원칙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정책의 형성으로 인해 서구와 같은 재분배 정치는 상당히 제약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가계의 재산 형성 지원은 산업화시기 저축동원의 부산물로서 매우 강한 제도적 경로의존성을 지니고 80 년대의 재분배 정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70년대의 근로자 재산형성 정책이 내자동 원의 맥락에서 임기응변적, 임시방편적으로 도입된 것이었다면, 80년대의 재산형성 정책은 민주화 과정에서 분출되는 분배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매우 전략적으로 채택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노동계급이 중간계급을 견인하면서 복지정치를 주도하기는 매 우 어려운 것이었다. 더욱이 노동배제적 산업화의 결과 사회적 차별이 노동계급에 집중된 결과 노동계급이 중간계급에 대해 갖는 인식은 매우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최장집, 1993:

190). 아래 <표 4-11 >은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가 1987년에 실시한 사회의식조사 중 중산 층에 대한 견해를 조사한 결과이다. 이것은 도시중산층과 생산직근로자가 중산층에 대해 갖 는 인식이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중에서 도시중산층과 생산직근로자의 인식 차이가 20% 이상 크게 나는 항목들을 보면, 주로 세금이나 분배이슈에 대한 무관심 등 주로 경제적 이슈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반면 정치적 이슈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중산층에 대한 견해 찬성비율(%)17)

도시중산층 생산직근로자

우리 사회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해왔다 85 72

공중도덕이나 질서를 잘 지킨다 82 65

점진적인 개혁을 바라지만 급진적인 개혁에는 반대한다 81 70 생활 정도에 비해 세금을 많이 내는 편이다 78 58

민주화의 중심세력이다 76 60

신문이나 TV에 대해 비판적이다 72 60

말로는 비판적이지만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 72 68

특권층에 대해 하층보다 더 비판적이다 63 61

타산적이다 59 61

경제성장보다는 정치적 자유를 중시한다 52 57

기회주의적인 속성이 많다 47 59

자기 가족만을 생각한다 47 55

생활 형편에 걸맞지 않게 지출을 많이 한다 39 50

못사는 사람들의 요구에 대해 무관심하다 36 56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21 46

는 두 집단 간에 차이가 크지 않으며, 대체로 긍정적인 인식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표 4-11> 중산층에 대한 사회의식조사(1987년) 단위: %

출처: 한완상·권태환·홍두승(1987)((홍두승, 2005: 121)에서 재인용)..

이것은 당시 상황에서 노동계급이 분배이슈를 둘러싸고 중간계급과 연대를 모색하는 것 이 실현 가능성이 낮은 선택지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더구나 국가복지나 조세부담 등 분 배이슈에서 지배엘리트와 자본가계급, 중간계급의 이해관계가 점차 일치되어 가는 상황에서 노동계급이 독자생존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란 사실상 기업복지밖에는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즉, 국가복지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집도 장만하고, 자녀들 교육도 시키고, 몸 이 아플 때 치료비도 준비하고, 노후대책도 마련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이 라곤 기업이 제공하는 임금과 기업복지 밖에는 없는 것이었다(김동춘, 1995). 그리고 당시 주택문제가 다른 어떤 사회문제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고려할 때, 90년대 초반 기 업복지가 주로 내 집 마련 지원을 중심으로 증가하게 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18) 17) 응답은 ‘동의한다’ ‘동의하는 편이다’ ‘반대한다’ ‘전적으로 반대한다’ 등 4점 척도로 이루어져 있

는데, ‘동의한다’와 ‘동의하는 편이다’를 더하여 찬성률로 제시한다.

아마도 민주화 이행 과정에서 노동계급의 조직력이 매우 크고, 정당체계가 시민사회의 계급균열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제도화되어 있었다면, 그리고 중간계급이 노동계급과의 연대 를 택했다면, 중산층을 육성하는 방식도 소유권이 아니라 시민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진행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민주화 이행은 엘리트협약에 의해 구체제의 기득권세력 이 막강한 통제력을 행사하는 가운데 진행되었으며, 중간계급도 노동계급도 이러한 방향을 전환시킬 만한 역량은 지니고 있지 못했다. 87년의 노동자 대투쟁은 후발국가로서는 예외적 일 정도로 폭발적이었으며, 19세기 유럽식의 노동갈등과 매우 유사한 양상을 보여주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의 노동운동은 “때늦은 성장을 보이다가 때이른 후퇴”를 경험하게 된다(은 수미, 2005; 임현진·김병국, 1991).

5절 소결

이 장에서는 1980년대 민주화 이행 과정에서 지배엘리트의 중산층 육성 전략이 자산기 반 생활보장체계를 제도화시키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한국에서는 아래로부터의 민주화 이행 과 격렬한 노동자 투쟁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집합행동이 대중적인 복지정치로 귀결되지 않 았으며, 민주화 이행도 실질적 민주화와는 거리가 먼 ‘구조 내의 개혁’으로 국한되고 말았다 (임현진·김병국, 1991; 최장집, 1997). 오히려 기업복지의 증가(최균, 1992)와 회사인간의 등 장(신광영, 2011) 같은 기업중심사회의 고착, 그리고 대기업의 기업별 노조주의 강화(김동춘, 1995)가 이러한 격렬한 집합행동에 뒤이어 전개되었다. 이 장에서는 한국 민주화 이행 과정 에서의 재분배 정치의 독특성이 1970년대의 저축기반 생활보장체계의 유산과 매우 밀접하 게 관련되며, 이러한 제도적 유산이 80년대의 분배갈등과 집합행동을 제약함으로써 결과적 으로 자산기반 생활보장체계의 제도화로 귀결되었음을 밝혔다.

우리는 3장에서 한국이 중화학공업화 시기 민간저축증대를 통한 자본동원을 추구했으며, 그 결과 근로소득세 부담 수준은 낮게 유지된 반면, 가계저축 증대를 위해 재형저축과 같은 저축증대조치들이 취해졌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또한 사회적 이전지출을 최대한 억제하려고 했기 때문에 조세수입에 바탕을 둔 일반재정의 증가는 제약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재정

18) 한국의 경우 기업복지에서 주거비용 다음으로 학비보조가 증가하게 된 것은 노동시장의 연령구 조와 관련된다. 즉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령이 상승하면서 점차 가계부담이 내 집 마련에서 교육비 부담으로 이동하게 됨에 따라, 기업복지의 비중도 점차 주거지원에서 학비지원으로 이동하게 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유형근,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