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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사회적 안전망으로서의 복지의 필요성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간 한국사회는 국민연금의 전 국민 확대 적용, 의료보험통합, 고 용보험과 산재보험의 전 사업장 확대 적용,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 등 매우 가시적인 복지제도의 성장을 경험하였다. 외환위기로 실업률이 급증하고, 이직과 조기퇴직이 일상화

되고, 고용조건이 불안정해지는 상황에서 이러한 복지제도의 확충은 정책당국이 취할 수 있 는 최소한의 조치였을지도 모른다(손호철, 2005; 정무권, 2002; 조영훈, 2002; 신광영, 2002).

하지만 세계적으로 복지국가의 축소 압력이 거세었던 시기에 국가복지가 축소되지 않고 오 히려 확대되었다는 것은 적어도 한국적인 맥락에서 봤을 때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송호근·홍경준, 2006).

그런데 지난 10년간의 복지개혁은 그 이례성 만큼이나 그 성격이 무엇이었는지를 둘러 싸고 첨예한 논쟁을 촉발시켰다. 이것은 ‘한국복지국가성격논쟁’을 통해서 잘 나타난다. 이 논쟁을 대체로 두 가지 입장으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제도적 혁신을 강조하는 입 장은 외환위기 이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 국민연금의 전국민 확대 적용, 의료보험 통합 등을 통해 사회정책 분야에서 연대주의 원칙이 강화되어왔다는 것을 근거로 최근의 복지개혁을 보편적 복지국가의 출발점으로 이해한다. 둘째, 반면 최근의 개혁을 신자유주의 로 규정하는 견해들은 외환위기 이후 불평등과 빈곤문제는 더욱 심각해져 왔으며, 민간보험 시장의 규모가 공공복지 규모보다 더 크다는 사실 등을 강조한다(김연명 편 2002). 또는 노 동시장 유연화 등 경제정책 분야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성격이 매우 분명했기 때문에, 복지개 혁이란 그저 신자유주의적 재편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사회적 안정 망의 구축 정도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견해도 제기되었다(손호철 2005).

이 글은 외환위기 이후 공적복지의 증대 현상을 신자유주의적 복지확대로 개념화하고자 한다. 1997년 한국사회는 외환보유고 고갈에서 촉발된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1998년 한 해 동안 경제는 심각한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실업률 또한 외환위기 이 전 2%대에서 위기 이후 8.6%로 급증하게 된다. 실업자 규모로 보면, 1997년 10월 기준으로 451,000명에 불과하던 실업자가 1999년 2월에는 1,781,000명으로 급증한다(신광영, 2002: 62).

이것은 그 동안 한국경제가 거의 경험해 보지 못하던 상황으로서 앞으로 한국도 고성장-저 실업사회에서 저성장-고실업사회로 전환하게 될 것임을 보여주는 신호탄이었다(양재진, 2002).

또한 외환위기로 인해 한국경제는 IMF와 World Bank등의 국제금융기구가 요구하는 구 조조정 프로그램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환위기의 원인을 둘러싸고 내인론과 외인론 간에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었지만, 국제금융기구의 처방은 한국경제의 내부구조를 전면적으 로 구조조정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것은 그 동안 국가주도의 발전주의 축적전략이 더 이 상 불가능하게 되었으며, 한국도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적 방향으로 축적전략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1)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축적전략으로의 방향 전환은 기업·금융·노동·공공부문이라는 4대 부문 구조조정으로 표면화된다. 한국경제는 그 동안 관치금융을 바탕으로 막대한 자원을 재 벌들에게 몰아주기 식으로 배분해 왔으며, 재벌은 이러한 국가의 지원을 바탕으로 성장위주 의 경영전략을 구사해 왔다(이병천, 2003; 조영철, 2003). 이렇게 국가-재벌-관치금융이 연계 된 발전지배연합이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를 초래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기반으 로 고용조건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실업률이 낮게 유지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관치금융의 폐지를 중심으로 하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이제 더 이상 안정적인 고용의 유지도 불가능하며 노동시장 유연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게다 가 민주화 이행 이후 노동비용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그 동안 수출주도 성장을 뒷받침하던 저임금에 기반한 가격경쟁력을 상실해 왔다는 점도 노동시장 유연화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양재진, 2002).

하지만 노동시장 유연화는 고용안정성과 낮은 실업률에 의해 뒷받침되던 한국의 생활보 장체계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것으로서 사회적 안전망 구축의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한다. 사 실 한국에서 낮은 소득세부담과 높은 가계저축률에 기반한 생활보장체계는 고도성장의 결 과 실업률이 낮게 유지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실업률의 급격한 증가가 기 존의 이러한 생활보장수단들을 무의미하게 만들면서 공적 복지의 확대가 불가피해진 것이 다. 1990년대 중반 고용보험법의 도입이 정리해고제를 입법화하려는 사전조치였다는 점도 이러한 고용조건과 사회정책의 밀접한 관련성을 잘 보여준다(송호근, 1999: 246). IMF나 World Bank같은 국제금융기구도 한국 정부에 실업에 대한 사회적 보호기제가 매우 열악하 기 때문에 실업자와 빈민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개선할 것을 권유할 정도였다(신광영, 2002:

62-63).

실제로 외환위기 이후 빈곤층의 확대와 실업문제의 대두, 고용의 불안정성 증가는 김대 중 정권의 지지기반과 정치적 정당성을 위협하는 문제로 부각된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에는 당장의 경제위기를 수습하고 재벌 및 금융부문의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했기 때문에 복지에 대한 대책이 거의 부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어느 정도 수습되자 빈곤 층의 확대와 중산층의 붕괴, 그리고 노동시장 유연화와 고용불안정성이 중요한 정치적 문제 로 대두하게 된다(송호근, 1999: 246-248). 그러므로 김대중 정권은 정당성의 확보와 사회 붕괴를 막기 위한 조치로 사회적 안전망의 구축을 핵심 과제로 제기하게 된다.

1) 한국경제의 신자유주의화 경향은 1980년대 초반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그 동안 의 경제자유화나 금융자유화 경향이 외환위기를 계기로 급속하게 심화되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 을 것이다.

사실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은 노동시장 유연화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와 갈등을 최소 화하기 위해 기능적으로 사회안전망의 구축을 필요로 한다(손호철, 2005; 양재진, 2002; 신 광영, 2012). 이것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적정 수준의 사회적 보호가 없이는 성공할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의 공공복지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신광영, 2002:

72-3; 정무권, 2002: 400-401). IMF나 World Bank같은 국제금융기구도 사회통합의 실패로 한국의 구조조정이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가 반드 시 공공복지의 축소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과 같이 복지제도가 매우 미흡한 경우에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의 구축만으로도 복지확대와 국가책임의 강화라는 현상이 나 타나게 된다(송호근, 2001; 손호철, 2005).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공적 복지의 확대를 동시에 추진한 지배엘리트의 전략을 신자유주의 복지확대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축적체제로의 변화를 강요받는 상황에서 복지개혁은 구조조정 을 원활히 하기 위해 지배엘리트가 택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집권세력이 자본축 적과 정치적 정당성이라는 두 가지 모순된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잘 보 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