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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은 노동시장 유연화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와 갈등을 최소 화하기 위해 기능적으로 사회안전망의 구축을 필요로 한다(손호철, 2005; 양재진, 2002; 신 광영, 2012). 이것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적정 수준의 사회적 보호가 없이는 성공할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의 공공복지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신광영, 2002:

72-3; 정무권, 2002: 400-401). IMF나 World Bank같은 국제금융기구도 사회통합의 실패로 한국의 구조조정이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가 반드 시 공공복지의 축소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과 같이 복지제도가 매우 미흡한 경우에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의 구축만으로도 복지확대와 국가책임의 강화라는 현상이 나 타나게 된다(송호근, 2001; 손호철, 2005).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공적 복지의 확대를 동시에 추진한 지배엘리트의 전략을 신자유주의 복지확대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축적체제로의 변화를 강요받는 상황에서 복지개혁은 구조조정 을 원활히 하기 위해 지배엘리트가 택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집권세력이 자본축 적과 정치적 정당성이라는 두 가지 모순된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잘 보 여준다.

서 사회적 연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매우 모호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 는 외환위기 이후 복지정치를 국가와 사회가 처음으로 사회정책이라는 영역에서 조우하고 충돌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이 과정에서 어떤 사건이 야기되고 그것이 어떻 게 귀결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연구들은 지나치게 집권세력의 정치적 성향에 주목하거나 혹은 신자유주의/사민주의 등의 거대담론으로 외환위기 이후의 복지개혁 을 평가하려는 경향을 보여 왔다.

둘째, 21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복지국가 실험이 시도되었다고 하지만, 이것이 곧 복지 국가 실험이 빈 공간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미 한국사회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국가복지를 대체하는 다양한 수단들이 발전해 왔으며, 이를 둘러싼 이해 관계가 형성되어 왔다. 그러므로 외환위기 이후 국가복지의 확대는 바로 이러한 제도적 정 책적 경로의존성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집권 세력들은 근로소득세 면세점 제도와 가계의 재산형성 지원 등을 통해 복지에 대한 개인책 임 혹은 가족책임을 강조해 왔는데 이러한 기존의 제도들은 사회적 연대를 요구하는 복지 확대 전략과는 상충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자산기반 생활보장체계의 경로의존 성이 복지개혁의 정치과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복지개혁은 사회적 자원의 배분체계의 변경을 요구하며, 따라서 불가피하게 사회집단간 이해갈등의 새로운 조정을 요구하게 된다(송호근, 1999: 234).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사회 정책보다는 조세정책이나 주택정책, 재산형성 촉진 등이 사회구성원들의 복지와 더욱 밀접 한 관련을 맺어 왔다. 그로 인해 사회정책 이외의 정책들이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욱 컸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국가복지의 확대가 기존의 이해관계를 침해하거나 이해구 조를 변경시킴으로써 매우 첨예한 사회갈등을 초래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복지비용의 증가를 어떤 사회집단이 부담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첨예한 이해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 우 높다(송호근, 1999: 256).

지금까지의 논의들은 그것이 제도적 혁신을 강조하든, 불평등의 심화를 강조하든 대부분 사회정책의 분석에만 국한된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사실은 외환위기 이후 복지개혁 과정에서 전면적인 조세개혁 플랜이 부재했다는 점과 민주화 집권세력이 한 번도 증세의 정치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송호근, 1999: 253; 구인회, 2011: 236-240). 외환위 기 이후 복지개혁은 사회보험의 전 국민확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 등 국가 개입의 확대를 지향하는 것이었지만, 여전히 국가의 재정개입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 2)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부 부처 중에서 보건사회부(혹은 보건복지부)가 관료들에게 가장 인기가 없

고, 영향력도 미미했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송호근, 1999).

회보험을 저소득계층에게까지 확대하면서도 이들을 실질적으로 포괄할 수 있는 재정지원은 전무했으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경우에도 실시 과정에서 엄격한 자산 규정과 부양의무 규정을 두어 재정부담을 최소화하고자 한다(정무권, 2002: 407; 송호근·홍경준, 2006; 안병영, 2000; 김수정, 2003; 김영순, 2005). 이것은 김대중 정권의 복지개혁이 ‘패러다임적 전환’이기 보다는 과거와의 연속성이 상당히 강한 제도개혁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정무권, 2002).

복지확대전략이 증세를 요구하는 것이라면 신자유주의 전략은 감세정책과 더 친화력이 있다. 더구나 외환위기 이후 과세기반이 무너져 버린 상황에서 복지확대를 위해 조세부담률 을 높이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회정책적 측면에서는 사회보험의 포괄범위 를 확대하고 사회적 연대성을 강화할 수 있더라도, 실제 재정부담이라는 측면에서 국가가 규제자에서 재정지원자로 전환하기는 쉽지 않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복지확대전략이 갖는 내적 긴장구조라고 할 수 있으며, 세계화의 시대에 복지확대를 추구해야 하는 복지 후발국 이 직면하는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은 외환위기 이후 복지개혁의 정치과정 을 사회정책에 국한시키지 않고, 비용부담의 분배와 복지수혜의 분배, 그리고 재산형성을 포괄하는 보다 광의의 재분배의 정치라는 차원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2절 경제위기와 소득공제의 확대

1990년대 세제개혁의 핵심과제는 자본과 부동산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한국 의 조세제도는 그 동안 자본축적을 지원하기 위해 자본소득에 대해 광범위한 비과세제도를 취해 왔으며, 부동산을 통한 불로소득에 대해서도 사실상 국가의 과세의무를 방기해 왔다고 할 수 있다(이진순, 1990). 따라서 조세제도를 통해 소득재분배를 실현하고 과세의 형평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본과 부동산에 대한 과세강화가 절실했다. 이러한 맥락에 서 1990년에는 토지공개념에 기초하여 토지초과이득세와 종합토지세가 도입되었으며, 김영 삼 정부 하에서는 1993년 금융실명제가 실시되고 1996년 금융소득 종합과세 제도가 도입되 는 등 재산과세가 강화된다(김은경, 2006: 166).

하지만 외환위기로 인해 과세기반이 붕괴하고 경기부양과 소득분배 개선의 필요성이 증 대함에 따라 중산층 서민 대책의 일환으로 소득세 감면제도가 활용되는 등 임시방편적인 조세정책들이 채택된다. 우선 경제전반의 구조조정과 경기활성화를 위해 1998년에 금융소득

년도 1999 2002 2004 2009

근로소득 공제

500이하: 전액 500-1,500: 40%

1,500-3,000: 10%

500이하: 전액 500-1,500: 45%

1,500-3,000: 10%

3,000-4,500: 10%

4,500초과: 5%

500이하: 전액 500-1,500: 50%

1,500-3,000: 15%

3,000-4,500: 10%

4,500초과: 5%

500이하: 80%

500-1,500: 50%

1,500-3,000: 15%

3,000-4,500: 10%

4,500초과: 5%

공제한도 1,200만원 한도폐지 - -

근로소득 세액공제

50만원이하: 45%

50만원초과: 30%

50만원이하: 45%

50만원초과: 30%

50만원이하: 55%

50만원초과: 30%

50만원이하: 55%

50만원초과: 30%

공제한도 60만원 40만원 50만원 50만원

종합과세 제도가 무기한 연기된다. 그리고 1999년에는 생산적 복지정책을 뒷받침한다는 취 지로 봉급생활자에 대한 세부담 경감조치가 광범위하게 취해진다(이형구·전승훈 편, 2003:

156; 송호근, 1999: 248-250; 오건호, 2010: 114-115).

<표 5-1>은 외환위기 이후 근로소득공제와 근로소득세액공제의 공제율 변화 추이를 보 여준다. 정책당국은 1999년 ‘중산층 및 서민생활 안정대책’을 발표하여 외환위기 이후 악화 되고 있는 소득분배문제를 해결하고 공평과세를 실현하기 위해 광범위한 소득세 감면조치 를 취한다. 1999년 이전에는 연소득 500만원 이하의 전액, 500만원 초과급여의 30%, 그리고 연간 900만원 한도에서 공제해 주던 근로소득공제를 변경하여, 500만원-1,500만원 사이 공 제율 40%, 1,500만원-3,000만원 사이 공제율 10%, 그리고 공제한도를 1,200만원으로 인상하 는 등 근로소득공제의 범위를 대폭 확대한다. 이 밖에도 의료비 공제한도를 연간 100만원에 서 200만원으로 인상하고, 교육비공제한도를 연간 7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인상하는 등 특 별공제항목의 공제한도를 인상한다. 이러한 소득세 감면조치로 인한 조세감면규모는 1999년 에 약 1조4천억 원에 달했으며, 이는 근로소득세액 5조원의 약 28%에 달하는 규모였다(재 경부, 1999: 67-78).

<표 5-1> 2000년대 소득공제제도의 변화 단위: 만 원

출처: 김은경(2006: 178) <표 6>, 성명재(2011: 120-121) <표 1>, <표 2>에서 재구성

이러한 소득세 감면조치는 2000년대에도 계속 활용된다. 2000년에는 ‘중산·서민층 재산 형성 촉진대책’의 일환으로 저소득·소외계층을 위한 비과세저축제도, 저율과세저축을 통합한

‘세금우대종합저축제도’, 근로자우대저축 및 농어가목돈마련저축 비과세시한 연장 등의 조치 가 취해진다(재정경제부, 2000). 2001년에는 ‘금융·세제분야 중산층 재산형성 및 서민생활안 정방안’이 제시된다. 소득세 부담 경감을 위해 종합소득세율이 모든 과세구간에서 일률적으 로 10% 인하되고, 경로자와 장애자에 대한 추가인적공제가 1인당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인상된다. 그리고 의료비·보험료·교육비에 대한 특별공제가 확대되는 등의 조치가 취해진다 (재정경제부, 2001). <표 5-1>는 이러한 각종 대책들을 통해 2000년대에도 지속적으로 소득 세 부담 수준이 경감되어 왔음을 보여준다.3)

<그림 5-1>는 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안 근로소득세 납세자 비율의 변화를 보여준다.

이 그림은 근로소득세 납세의무자에서 실제로 근로소득세를 납세한 인원의 비율이 외환위 기 이전인 1997년에 68%에서 1999년에는 58.8%, 2000년에는 53.5%로 급격히 하락하는 것 을 보여준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에도 51% 수준으로 낮게 유지되다가 2000년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다시 근로소득세 납세자 비율이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근로소득세 납 세자 비율이 급격히 하락한 데에는 외환위기 이후 실질소득이 급격히 하락한 것도 원인이 지만 기본적으로는 외환위기 이후 근로소득공제 규모가 대폭적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림 5-1> 외환위기 이후 근로소득세 납세자 비율 변화4)

출처: 성명재(2011: 120), <그림 1>에서 인용.

3) 대체적으로 노무현 정부 하에서는 소득공제 개편을 최대한 자제하여 다자녀추가공제가 신설되는 등 소폭개편에 그쳤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반면 이명박 정부 하에서는 근로소득공제는 축소되었지 만, 인적공제 중 기본공제금액이 1인당 10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상향조정되는 등 가구규모가 클 수록 세금혜택을 우대하는 조치가 취해진다(성명재, 2011: 119-150).

4) 여기서 근로소득세 납세의무자는 근로소득세 연말정산자로 파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