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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중요한 수단으로 추진되고 있었다. 이것은 당시 경제기획원에 있었던 이형구의 증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만약 연기금이 중화학공업의 재원마련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수단이었다면, 박정희 대통령은 기 업이나 여론의 반대에 상관없이 밀어 붙였을 것입니다. 기업이 공식·비공식적으로 청와대에 우려를 호소하는 상황에서, 굳이 시행하지 않아도 될 만큼 다른 대안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기초자료 DB, 이형구 ‘국민복지연금제도 초기형성 관련’ 녹취록(양재진, 2008: 118에서 재인용))

사실 1974년 국민복지연금제도의 시행 유보는 한국 사회정책 역사에서 중요한 에피소드 로 다루어져 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들은 제도시행의 유보를 사회정책이라는 고립된 영 역에서만 파악해왔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반면, 자본동원의 관점에서 보면, 국민복지연 금제도의 무기한 시행유보는 ‘긴급조치3호’를 매개로 해서 대폭적인 소득세 감면조치 및 가 계저축 증대조치들과 동시에 취해졌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이것은 한국에 서 사회정책이 국가의 자본동원전략, 즉 저축동원 및 조세정책과 같은 내자동원전략과 얼마 나 긴밀하게 엮여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국민복지연 금제도의 시행유보는 한국에서는 강제저축조차도 정치적 부담 때문에 쉽게 실행할 수 없었 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김도균, 2012: 181-182).

1992). 즉 수출주도 산업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가격경쟁력 차원에서 저임금정책이 불가피 할 뿐만 아니라 노동생산성 제고를 위해 양질의 교육받은 노동력이 필요한데, 교육과 의료 에 대한 국가지원은 바로 이러한 양질의 노동력을 싼 값에 재생산하기 위해 요구되는 정책 들이었다는 것이다.

이 글은 이러한 설명에 더해 내자동원 극대화 전략 및 가계저축 증대가 갖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즉, 가계저축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가계의 가처분 소득의 증대와 아울러 인구 증가의 억제, 교육제도의 개선, 저렴한 보건의료제도의 확립 및 의료보험제의 실시 등으로 가계비부담을 경감시켜 가계의 저축여력을 증대시킬 필요성이 의료보험제도 도입의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는 것이다(내자동원실무계획반·재정실무계획반, 1976: 31).

1970년대 초반 한국의 가계저축은 일본뿐만 아니라 대만이나 기타 신흥공업국 등에 비 해서도 상당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정책당국의 입장에서는 가계저축 수준이 왜 낮으며, 어떻게 하면 가계저축을 증대시킬 수 있는가가 상당히 중요한 관심사 중의 하나 였다(재무부, 1974: 재정금융30년사편찬위원회, 1978: 209-214; 저축추진중앙위원회, 1984).

그런데 우리는 낮은 가계저축율의 원인에 대한 정책당국의 인식이 1970년대 전반과 후반에 걸쳐 중요한 변화를 겪는다는 것을 정부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선, 73년의 ‘장기전망’ 문서는 가계저축이 낮은 이유를 주로 지속적인 물가상승으로 인 한 인플레심리의 만연, 관혼상제비 등 비합리적 가계비지출이나 교육비 지출 과다, 소비재 중심의 산업구조 등을 언급하고 있다(경제기획원, 1973: 16). 또한 제도적 차원에서는 증권 시장이나 보험·신탁 등 비은행금융기관의 미발달, 농촌 금융기관의 부재 등도 가계저축이 낮은 이유 중의 하나로 지적된다(남덕우, 1973).11) 그러므로 가계저축 증대를 위해, 첫째, 소 비합리화를 통해 과도한 교육비 및 관혼상제비 등을 절감하고, 둘째, 사치성소비재 수입을 규제하고 세제를 통해 소비를 억제하며, 셋째, 기업공개나 정부소유주식의 매각, 보험·신탁·

연금 등 기관투자가를 육성하여 자본시장을 근대화하고, 넷째, 중화학공업화를 통해 소비재 중심 산업구조를 재편하며, 마지막으로 경제안정정책을 통해 물가상승을 억제함으로써 저축 에 대한 가치를 보전하는 방안이 제시된다(경제기획원, 1973: 92-93).

하지만 76년 ‘내자동원 부문계획’ 문서에서는 이러한 요인 외에도 추가적으로 높은 인구 증가율로 인한 과도한 부양인구가 가계의 잠재적 저축여력을 감소시켜 왔으며, 높은 교육비 와 의료비 부담 또한 가계의 저축여력을 약화시켜 왔다는 점을 강조한다(내자동원실무계획 11) 낮은 가계저축률의 원인에 대한 이러한 지적은 “재무행정5년사”에도 유사하게 지적된다. 여기에 서는 종합적인 국내저축 증대시책의 불충분, 장기적인 인플레심리의 지배, 비합리적인 가계지출 및 사치성 소비지출을 중요하게 지적한다(재무부, 1974: 136).

반·재정실무계획반, 1976: 4-12).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전 문서에서는 가계지출의 과다가 주로 낭비적이고 비합리적인 소비지출에 기인한다고 지적한 반면, 76년 문서에서는 소득의 계속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가계의 교육비·의료비·주거비 등에 해당하는 가계비 부담이 소 득에 비해 과중했다는 점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정책대응 의 차원에서도 이전과 달리 가계의 교육비·의료비·주거비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는 제도적 개선방안이 요구되는데, 의료보험제도 도입도 이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고 할 수 있다(내 자동원실무계획반·재정실무계획반, 1976: 31).

이러한 지적은 75년까지만 해도 보사부 내에서도 제도 도입을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경제관료들의 경우에도 경제개발과 내자동원의 우선성을 들어 국민복지연금제도 의 도입은 찬성하지만 의료보험제도의 도입은 반대했다는 점, 하지만 이러한 관료사회내의 반대와 준비부족에도 불구하고 76년에 제도가 전격 도입 시행되었다는 점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조영재, 2008: 77-78; 김정렴, 2006: 374-375). 즉 의료보험제도가 내자동원 측면 에서 갖는 중요성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것이 경제정책과의 일관성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그것이 과연 경제관료들의 반대를 극복하고 도입되었을까하는 질문을 제기해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의료보험제도 자체가 경제개발을 저해하지 않도록 조합방식으로 계획되었다 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두호, 1992). 제도 도입과 관련하여 대통령이라는 최고결정권 자와 보사부장관은 이러한 사회정책의 도입이 경제개발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할 것을 가 장 중요한 전제조건으로 지적하는데, 이것은 곧 국가의 재정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이전의 의료보험법이 사업비 전액을 국고부담으로 할 것을 명시하였던 반 면, 76년에 개정된 의료보험법은 사업비의 일부만을 국고부담으로 하는 것을 제도 시행의 중요한 전제조건으로 한다(1976년 제96회 보건사회위원회회의록 16호, pp. 10-11).12)

한국 사회정책 발달사에서 1970년대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하지만 기존의 연구들은 권위주의 국가가 추진한 사회개발의 목적과 성격, 경제개발과 사회개발의 연관성 등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한다. 특히 사회집단의 강력한 요구와 압박이 존재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관료들의 주도로 정책이 도입되고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관료들의 정책의지와 정책목표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이 글은 이와 관련 1970년대 국민복지연금제도와 의료보험제도의 도입과 시행, 시행유보

12) 가령 1970년대 후반 의료보험제도의 도입은 그것이 영국의 NHS방식과는 다른 재정방식을 채택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대통령의 재가를 받을 수 있었다. 지역의료보험의 경우 피보험자가 전액 부담하게 함으로써 재정중립 원칙과 수익자 부담 원칙을 고수하였는데, 이는 사회보험의 시 행에 있어서 국고부담의 증대를 막는 게 일차적인 과제였음을 보여준다(이혜경, 1992: 180).

등이 모두 내자동원 극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1970년대에는 경제정책 과 사회정책 같은 공공정책이 모두 중화학공업화와 내자동원 극대화라는 맥락에서 규정된 다. 따라서 내자동원 극대화와 관련이 없거나 혹은 경제개발 이외의 분야에서 지출을 초래 하는 정책들은 실행되기가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이렇게 내자동원 극대화라는 맥락에서 도입된 사회정책은 사회적 위험에 대한 대처나 불평등의 완화와 같은 사회정책 본래의 목적을 충족시키는 데에는 어려움이 존재한 다. 왜냐하면 사회정책의 일차적인 목적이 저축증대에 있었기 때문에 그 수혜대상 또한 대 체로 경제적 여력이 되는 중산층과 고소득층에 집중되기 때문이다(이혜경, 1993: 75-76).

게다가 제도를 실행할 경우에는 재정지출의 최소화를 위해 ‘수익자 부담 원칙’과 ‘선별적 지원 원칙’이 강하게 적용된다. 우선 사회보험제도의 비용부담 방식에 있어서 한국은 국가 와 사용자, 피용자간의 3자 부담 방식이 아니라 사용자와 피용자가 거의 모든 비용을 부담 하는 2자 부담 방식을 취한다. 서구 유럽과 같은 3자 부담 방식의 사회보험제도는 개인의 자조원칙과 사회적 연대, 그리고 국가의 책임이라는 세 가지 차원을 결합시킴으로써 개인주 의와 집합주의라는 두 가지 원칙을 조화시킨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한국과 같이 2자 부담 방식을 취할 경우 그것은 국가의 책임과 사회적 연대보다는 개인적 자조와 수익자 부 담 원칙만을 강조하게 된다(이혜경 1993: 66-67).

그러므로 한국의 사회보험제도는 적용대상에 있어서도 시행 초기에 사무직근로자와 대 규모 공장노동자를 중심으로 먼저 시작하고 이후에 점차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 농어민, 도 시자영업자 순으로 확대해 나가는 경향을 보인다. 서구의 사회보험제도가 대체로 빈곤층과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먼저 시작하여 점차 중간계급으로 확대되어 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송호근, 1999: 257). 이것은 국가가 사회보험을 내자동 원 극대화라는 차원에서 고려함에 따라, 재정부담을 전가할 수 있는 경제계층부터 제도를 적용해 왔기 때문이다.13) 그 결과 한국의 사회보험제도는 사회적 취약계층을 제도에서 체 계적으로 배제시키는 매우 강한 역진성을 지니게 된다.

4절 저축동원과 저축기반 생활보장체계의 형성

13) 농어민과 자영업자 등 비조직부문의 경우 소득파악과 적정보험료율 산정이 어렵고, 징수가 어렵 다는 행정편의적 요인도 중요한 이유로 제기된다(연하청 외, 1990: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