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의 중화학공업화는 사실 경제개발을 위해 국가가 사회의 모든 가용한 인적 물 적 자원을 총동원하는 것을 의미했다. 1972년에 시작된 ‘제3차경제개발5개년계획’과 달리 중 화학공업화 계획은 물동계획적성격이 매우 강해서, 철강·비철금속·조선·기계·전자·화학 등 6 개 산업을 중점 육성산업으로 선정하고 이를 위해 모든 가용한 자원들, 특히 내자를 동원하 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중화학공업화를 조속히 성취시키기 위해서는 민간의 주도와 창의성을 추진모체로 하되 정부가 앞장서서 내외자의 재원조달계획, 입지계획, 사회간접자 본설비의 확충, 기술인력의 개발 등 합리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계획”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 함으로써, 자본동원이 국가의 책임임을 강조한다(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기획단, 1973: 6).
그런데 재정사회학이 강조하는 바와 같이, 국가의 재원조달방법은 다양할 수 있으며, 그 것이 갖는 정치적 사회적 의미 또한 매우 다르다. 가령 조세란 기본적으로 강제 징수를 특 징으로 하며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항상 분배 갈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반면, 민간저축의 동원과 같은 금융적 수단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재산권을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 에 저축을 통한 동원은 그것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가장 용이하고 저항이 적은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내자동원 방법으로서 민간저축은 조세를 통한 동원보다 정치적으로 행정적으로 보다 수월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Musgrave, 1965: 14).
유신 권위주의 세력이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하면서 중요하게 고려한 것이 바로 이와 같
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권위주의는 정권의 합법성이 취약하고, 이데올로기적 통합의 정도 가 낮으며, 정치적 동원능력이 작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및 전체주의와 구분되는 독자적인 정치형태이다(Linz 1970; 송호근, 1991: 298-303). 따라서 권위주의는 정치과정을 행정과정으 로 대체하고, 기술 관료의 역할을 중요시하며, 정책수립이나 문제해결에 있어서 철저하게 기술적, 관료적, 그리고 비인격적 접근방식을 취함으로써 정치적 공간을 최대한 축소시키고 자 하는 경향이 있다(O'Donnell, 1973; Cardoso, 1979; 한배호, 1994).3) 이러한 맥락에서 보 면, 조세와 같이 정치화할 가능성이 큰 자본동원방법은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는 매우 위험 한 자본동원전략일 수 있으며, 반면에 민간저축의 동원은 국민들을 정치적으로 탈동원하면 서 경제적으로는 적극 동원하는 매우 적절한 수단일 수 있다.
이와 함께 한국이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을 추진해 나갔던 것도 조세보다는 민간저축을 통한 자본동원전략을 선호하게 되는 중요한 이유였다. 수출주도 산업화에 성공하는 핵심 관 건이 가격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지배엘리트는 노동비용의 상승을 최대한 억 제해야 했다. 또한 공급측면에서 소득세 감면을 통해 기업과 근로자들의 투자와 근로동기를 높이는 것도 매우 중요했다. 이러한 이유로 간접노동비용의 상승을 유발하게 되는 소득세부 담의 증가나 사회보험의 도입은 산업화 시기 동안 최대한 자제할 필요가 있었다(양재진, 2012).
그러므로 1970년대 자본동원전략의 기본 방향은 국민의 광범위한 저축을 동원하여 이를 중화학공업화에 효과적으로 투입하는 것으로 제시된다. 1973년 ‘우리 경제의 장기전망, 1973-1981’(이하 ‘장기전망’) 보고서는 1980년대 초까지 연평균 경제성장률 10%, 수출 100억 불, 1인당 국민소득 1000불을 달성하는 것을 경제목표로 제시하고, 중화학공업화의 추진과 내자동원 극대화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관건임을 주장한다. 그런데 “담세능 력의 한계 및 경상지출의 증가 등으로 정부저축의 증가가 상대적으로 둔화될 것으로 전망 되므로 민간부문저축의 획기적인 증대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투자증가 및 경제성장의 고 도화가 제약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고, 그렇기 때문에 1981년까지 100% 투자자립도를 달 성하려면 국내저축률이 72년 15%에서 81년 27.1%까지 상승해야 한다고 강조한다(경제기획 원, 1973: 6-8, 92).
또한 ‘장기전망’ 보고서는 1960년대 자본조달이 주로 세수증대를 통한 정부저축의 증대, 외자도입을 통해 이루어진 반면, 가계저축의 기여도는 일본이나 대만 등에 비교해 봤을 때 3) 남미 사례에 적용되는 관료적 권위주의는 대중의 배제와 기술관료적 지배를 강조하는 개념으로서, 이것은 과거의 과두적 정치체제, 민중주의적 정치체제와 1960년 쿠데타 이후의 정치체제를 구분하 기 위해 제기된 개념이다(Collier 1979; O'Donnell 1973).
매우 낮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가계저축률이 동 기간 중 4.6%에서 10.6%로 2배 이상 증대 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저축을 위해서는 조세부담률이 72년 13.9%에서 81년 17.7%로 증가하게 될 것이며, 이와 같은 조세부담률의 증가는 경제성장으로 인한 세원의 확 대에 따른 것으로 조세부담의 가중현상은 없을 것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망 하에
“지금까지는 정부저축의 증가가 크게 기여해 왔으나 앞으로는 민간저축이 가속적으로 증대 됨에 따라 내자조달에 있어서 정부의 역할은 감소케 될 것”임을 밝히고 있다(경제기획원, 1973; 17).
또한 국민의 광범위한 저축을 설비투자 등 중화학공업화에 효과적으로 투입하는 방법으 로는 국민투자기금과 같은 공공기금제도의 활용이 제시된다(재무부, 1974; 김용환, 2006:
111-121; 남덕우, 2009: 110-112). 국민투자기금은 ‘중화학공업 등 중요 산업의 건설을 촉진 하고 수출을 증대시키기 위해 국민의 광범위한 저축과 참여를 바탕으로 필요한 투융자자금 을 조달·공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치된 것으로서(김용환, 2006: 120), 이러한 목적을 위해 국민투자기금의 재원은 국민투자채권의 발행과 ‘저축 증대에 관한 법률’에 기초하고 있는 국민저축조합 조합원의 저축자금 및 우편저축자금, 국민복지연금, 국민생명보험 등 공공기 금의 여유자금, 금융기관 저축성 예금이나 손해보험회사 보험금, 그리고 정부 각 회계로부 터의 전입금 또는 예탁금 등으로 조성되도록 계획된다(한국은행기금운용부, 1989).4)
이러한 정부의 자본동원전략에 대해 경제계, 학계, 언론계 등 사회여론도 대체로 정부의 기본 방향에 동의하면서 민간의 자발적 저축에 의한 내자동원을 강조한다. 언론들은 정부의 내자동원 극대화 계획에 대해, 직접세는 가처분소득에 영향을 주어 자발적 저축과 직접적 대체적 관계에 있으므로 조세를 통한 정부저축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매경 73년 5월 17일 “장기내자동원 계획의 수립”), 내자동원은 국민생활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강제저축보 다는 생활실정을 고려한 저축증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경향 73년 10월5일 “시정연설과 새해 예산”, 동아 10월5일 “박대통령의 시정포부”).
한국은 이미 경제개발 초기부터 국가가 제도금융을 통제함으로써 민간자금의 배분에 간 4) 국민투자기금의 경우 정부가 재정자금을 지원하도록 규정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자금은 금융기관이 국민투자채권의 매입 혹은 예탁금의 형태로 출연하는 예금재원으로 조달된다. 국민투 자기금법은 국민저축조합, 국민복지연금, 우편저금, 국민생명보험, 공공기금의 경우는 사업상 필요 자금과 지급준비금을 제외한 자금의 80%에 해당하는 금액을 국민투자채권 인수나 기금 예탁에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금융기관은 저축성예금 증가액의 20%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재무부 장관이 정하는 금액, 신탁회사는 불특정금전신탁수탁액 증가분의 10%, 보험회사는 보험료수입에 서 지급된 보험금과 사업비를 공제한 금액의 30% 이내에서 재무부령이 정한 금액을 각각 채권인 수 혹은 예탁에 사용하도록 규정한다(한국은행기금운용부, 1989). 특히 기금설립 초기에는 은행의 경우 예금증가액의 약 10-39%, 보험회사의 경우 수입 보험료의 약 40-50%, 그리고 공공기금의 경우 여유자금의 약 90%를 국민투자기금에 출연시키도록 규정한다(김용환, 2006 120-1).
여하여 왔는데, 이러한 전략은 국가의 입장에서는 재정부담 문제와 조세마찰을 피하면서 자 본을 동원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그런데 1970년대의 국민투자기금 제도는 국가의 민간자금에 대한 개입을 아예 민간자금을 재정자금화하는 방향으로 제도화하는 것 으로서, 국내의 모든 가용자금, 특히 일반은행 등 민간 금융기관이 모집한 민간 금융자금을 최대한 동원하는데 목적이 있었다(전창환, 2004: 102; 김상조, 2003). 그리고 이것은, 사회적 여론의 반응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반 국민들을 경제적으로 동원하고 정치적으로 탈동원함 으로써 사회를 관료화하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으로 고안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5)
하지만 민간저축동원을 중심으로 한 자본동원전략이 강조되었다고 해도, 이것이 곧 유신 권위주의 세력이 조세동원이라는 수단을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중화 학공업화를 위해 모든 가용한 자원이 총동원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조세는 매우 중요한 자 본조달수단으로 활용된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1960년대 후반부터 개발세제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조세저항이 심 각해짐에 따라 집권층은 ‘장기세제방향’을 통해 조세개혁의 방향을 제시한다. ‘장기세제방향’
은 그 동안 세제가 공평과세의 원칙과 응능부담의 원칙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 고, 이러한 조세행정 상의 원칙을 구현하기 위해 직접세 부문에서는 종합소득세로 전환할 것을 제시한다. 그리고 종합소득세 전환으로 세수결함이 예상되기 때문에 간접세 부문에서 조세저항이 적으면서도 세수확보에 효율성을 기할 수 있는 부가가치세를 도입할 것을 제안 한다(세제심의회, 1971; 재무부, 1978: 178; 재무부, 1990: 92-95; 김정렴, 2006: 347-354). 이 것은 집권세력이 여전히 조세를 내자동원의 중요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오히려 조세저 항을 완화하면서 증세를 추진하기 위해 직접세 중심에서 간접세 중심으로 조세구조를 전환 하고자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분명 유신 권위주의는 자본동원 과정에서의 사회적 마찰을 피하고 정치적 공간을 최대 한 축소시키기 위해 민간저축의 동원을 중심으로 한 자본동원전략을 취한다. 하지만 모든 가용한 자원을 총동원해야 하는 상황에서 조세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곧 유신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도 분배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공간이 형성된다는 것을 의미한 다. 한국의 국가는 중화학공업화를 위해 공적 사회지출을 최대한 억제해 왔다. 그런데 공적 사회지출이 억제될 수밖에 없다는 바로 그 사실로 인해 국가가 국민의 조세부담률을 인상 5) 권위주의 체제를 후발 국가에서 정치세력들이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빠른 시간 내에 대규모의 자본을 축적해야 하나 부족한 자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제도들을 인 적·물적 자본의 동원을 위한 목적으로 대폭적으로 개편해야 할 필요성에서 등장하는 일종의 동원 체제라고 할 때(한배호, 1994), 유신체제의 등장과 국민투자기금 제도의 도입은 매우 커다란 친화 력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