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쿠데타와 광주민중항쟁의 폭력적 진압을 통해 집권한 5공 집권세력은 부가가치세의 폐지를 지속적으로 검토한다. 보안사 조사결과 부가가치세가 부마항쟁의 매우 중요한 사안 이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12·12쿠데타 직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부가가치세를 폐지 할 것인가 유지할 것인가를 두고 논란을 거듭한다. 5공 출범 직후에도 다시 한 번 부가가치 세 폐지가 논의된다. 하지만 부가가치세가 국가의 조세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컸기 때문에 폐지논의는 흐지부지되고 만다(강만수, 2005: 58-60).4)
반면, 세금을 직접 부담하는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조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지속적 으로 확대된다. 한국에서 세금은 식민지시기와 권위주의시기를 거치면서 수탈적 억압적 성 격을 강하게 지녀 왔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은 세금을 권리와 의무의 문제로 인식할 기회를 가져본 적이 없다(최광, 1989: 50). 또한 산업화 시기에는 자본축적 지원과 자본동원의 명목 으로 금융자산과 부동산자산 등에 엄청난 세제상 특혜가 제공되어 온 반면, 소비과세에서는
4) 1976년 부가가치세 도입 당시 실무자였던 강만수는 1980년 부가가치세 폐지 논란과 관련하여 ‘나 라를 유지하는 데는 최소한 군대, 경찰, 세무공무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반행정은 국민의 권리와 재산을 보호하고 조장한다고 해서 조장행정이라고 하지만 이 세 가지 행정은 국민의 자유와 재산 을 빼앗는다고 해서 수탈행정이라고 한다... 세금은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이 부담할 의무이다’라고 언급하면서 부가가치세 유지의 당위성을 지적한다(강만수, 2005: 58).
역진적 성격이 강한 부가가치세가 도입되었기 때문에 조세의 불공평성에 대한 불만이 팽배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러한 역진적 조세체계에도 불구하고 이를 시정할 수 있는 국가 의 사회보장적 이전지출은 전무했기 때문에 조세부담에서 국가의 이전지출을 제외한 순조 세부담은 국제적인 기준에서 봐도 매우 큰 것이었다(한승수, 1982; 이계식, 1989).
재정사회학 연구에 따르면 조세에 대한 불만은 일반적으로 과중한 조세부담보다는 과세 의 불공평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즉, 조세부담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더라도 세금이 불공평하게 부과될 경우 조세정책은 정치화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Campbell, 2009).
그런데 한국의 경우 근로소득은 총 소득의 75% 정도가 과세당국에 포착되는 반면, 임대료 소득이나 이자소득, 배당소득의 경우는 과세포착률이 각각 11.8%, 40.2%, 51.0%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또한 토지에 대한 과표 현실화 수준이 매우 낮고, 사업소득자들이 사업소득을 과소 신고하는 경향도 소득종류별 과세 형평성을 심각하게 악화시켜왔다(세제발전심의위원 회, 1985: 25).
그런데 민주화 이행 시기에 이러한 조세부담의 불공평성에 더해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 던 것은 바로 ‘근로소득세 초과징수’ 문제였다. 잘 알다시피 한국경제는 80년대 중반 예기치 않은 ‘3저호황’으로 인해 매년 10% 이상의 급속한 경제 성장을 경험하고, 노동자 대투쟁과 맞물려 노동자 임금 또한 급속히 상승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임금상승으로 인해 소득세 세수 규모가 예산 편성시의 추정치를 훨씬 상회하게 된다. 이는 소득세가 누진세율 구조를 갖기 때문에 발생하는 매우 당연한 결과이다. 실제로 86년 근로소득세 세입 규모가 예산목 표를 12.2% 초과한 후, 87년에는 14.4%, 88년에는 34.4%, 89년에는 무려 60%에 달하는 근 로소득세가 예산목표보다 초과징수된다(1989년 제147회 재무위원회 회의록 5호).
한국의 조세체계는 이미 조세부담의 역진성과 불공평성으로 인해 조세저항의 가능성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근로소득세 초과징수’ 문제를 둘러싸고 조세저항이 폭발하게 된다. 게다가 87년 민주화 이행 이후 여소야대 정국이 초래되고 국회가 정치의 중심무대가 되면서 이러한 조세저항은 중요한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림 4-1>에서 보는 바와 같이, 87년 이후 ‘조세저항’에 관한 기사검색수가 급격하게 증가하는데, 이는 대부분이
‘근로소득세 초과징수’ 문제와 근로소득자의 세부담 불공평성에 관한 것들이었다. 특히 ‘독자 투고란’에 초과징수 문제를 항의하는 일반 독자들의 글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당시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음을 보여준다.
1988년 6공화국 정부가 세제개혁을 서둘러서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이러한 근로소득세 초과징수 문제와 이에 따른 조세저항의 격화라는 문제가 존재한다. 6공화국은 출범 초기 3
대 개혁 과제로 ‘민주발전을 위한 법제개혁’, ‘분배정의의 실현을 위한 세제개혁’, ‘자율과 책 임을 지는 행정개혁’을 제시한 바 있는데, 이 중 세제개혁이 ‘중기세제 방향과 88세제개편 과제’라는 형태로 재무부에 의해 가장 먼저 제시된다(매경 88년 6월15일 “국민기대 못미치 는 졸작”). 이는 6공화국 정부가 분배문제와 관련 세제개혁을 매우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 으며, 당시 근로소득세 초과징수와 관련 조세저항이 매우 거셌음을 보여준다.5)
<그림 4-1> 조세저항에 관한 기사검색수 추이6)
자료: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검색(동아·경향·매경 3개 신문 검색 기사수).
1988년 정부의 세제개편안은 인적공제의 수준을 대폭 인상하고, 그 외에도 근로자에게만 적용되는 근로소득공제와 각종 특별공제금액의 인상 등을 통해 근로소득자의 세부담을 경 감시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구체적으로 기초공제, 배우자공제, 부양가족공제를 각각 연42만원으로 인상하고, 근로소득공제를 88만원-170만원에서 120만원-210만원으로 인상하 며, 그 외에도 자녀교육비공제 및 장애자공제금액을 인상하고 경로우대공제를 새로 도입하 는 것 등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이를 통해 근로소득세 면세점이 5인 가족 기준 현행 월 22
5) 13대 대선 직후 당선자 노태우는 근로소득세 초과징수와 관련 소득재분배 차원에서 세제개편을 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린다(김영호, 2002c: 275).
6) <그림 4-1>은 ‘조세저항’이라는 키워드를 이용하여 신문기사를 검색한 결과이다. 이 그림을 보면 국세청이 신설된 1960년대 중반 이후 ‘조세저항’에 관한 신문기사가 매우 급격히 증가하여 1971년 에 최고에 달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1960년대 후반 이래 정부 의 증세위주의 조세행정이 초래한 조세저항의 경향을 잘 보여준다. 또한 1981년의 높은 빈도는 1970년대 후반 부가가치세 도입에 따른 조세저항이 당시에는 언론통제로 기사화되지 못하다가 80 년대 초반에 이슈화된 결과로 짐작된다.
만8,000원(연 274만 원)에서 월 33만3,000원(연 400만 원)으로 상향조정된다. 또한 소득세 세 율구조를 최저세율 6%, 최고세율 55%에서 최저세율 5%, 최고세율 50%로 낮추고, 세율단계 도 16단계에서 8단계로 축소하여 중산층 이하 계층에게 세부담의 혜택이 돌아가도록 한다 (1988년 제144회 재무위원회 회의록 4호, pp. 3-11). 즉, 88년 세제개편은 근로소득세 감세가 중심과제였으며, 근로소득세 면세점 제도를 통해 근로소득자의 소득을 보장하고 소득종류별 세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고자 한다(최광, 1988: 59; 경향 88년 6월2일 “세제개편 방향은 옳 다”).
이것은 집권세력이 민주화 이행과 근로소득세 초과징수를 계기로 터져 나온 조세불만을 완화하고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의 증세기조에서 감세기조로 전환했음을 보 여준다. 우선 ‘중기세제 방향과 88세제개편 과제’ 이전에 제시된 보고서들은 모두 증세가 불 가피함을 지적하고 있다. 1985년도의 ‘세제발전연구보고서’는 복지재정의 증가를 전제할 때 증세정책은 불가피하며, 우리의 조세부담수준은 3-4% 포인트 정도 증가여력이 있다고 평가 한다. 또한 소득종류별 과세포착률에 차이가 크기 때문에 조세형평성을 위해 사업소득이나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포착률을 증가시켜야 한다고 지적한다(세제발전연구보고서, 1985; 대한 민국정부, 1986). 즉 증세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조세의 불공평성은 중산층 이하 근로소득자 의 조세부담을 감소시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고소득자나 자산소득자, 사업 소득자의 조세부담을 증가시킴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반면, ‘중기세제 방향과 88세제개편 과제’ 보고서에는 자산소득과 사업소득의 과세포착률 을 제고할 수 있는 어떤 구체적인 방향이나 정책수단도 제시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 려 조세개혁의 가장 기본적인 조치라고 할 수 있는 금융실명제 실시를 91년 이후로 연기할 것을 제안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조세개혁이 초래할 고소득자나 금리생활자 등 기득권세 력의 조세저항과, 이로 인해 야기될지 모르는 금융질서의 혼란을 집권세력이 두려워했기 때 문이다(매경 88년 6월15일 “국민기대 못 미치는 졸작”). 오히려 근로소득세 면세점의 인상으 로 인해 초래되는 소득세 감소를 보전하는 방안으로 부가가치세의 세율인상이 거론되기까 지 한다. 물론 이 또한 조세저항에 대한 우려로 추진되진 않지만 ‘중기세제 방향과 88세제 개편 과제’ 보고서에는 부가가치세 인상의 불가피성이 언급된다(매경 88년 6월3일 “세제개 편의 허실). 이것은 민주화 이행기의 조세저항으로 인해 증세위주의 조세개혁방향이 감세위 주로 전환되었으며, 이것이 매우 임기응변적인 전환이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