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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속성

Dalam dokumen 저작자표시 - S-Space - 서울대학교 (Halaman 32-36)

인류는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시점부터 지속적으로 조금이라도 편한 글쓰기 를 추구했다. 돌을 이용해 동굴에 벽화를 그리는 것보다는 철필로 가죽에 쓰는 것이 쉬웠고, 철필보다는 잉크 펜 등으로 종이에 쓰는 것이 쉬웠다. 손으로 한 자씩 공들여 쓰는 것보다는 자판을 눌러 쓰는 것이 편하다. 현재 시점에 있어 서 워드프로세서는 글쓰기를 위한 가장 쉬운 도구 중 하나다. 쿤데(Kunde, 2008)의 지적처럼 워드프로세서는 컴퓨터 기술로부터 발전한 것이 아니라, 좀 더 쉬운 글쓰기를 위한 글 쓰는 사람(writer)들의 욕망이 좀 더 빠른 연산을 위 한 수학자들의 욕망에 의해 탄생한 컴퓨팅 테크놀로지와 만나면서 진화한 것이 다. 워드프로세서는 컴퓨팅 기술의 발전에 따라 등장한 수많은 연산 도구 중 하나가 아니라, 좀 더 쉬운 글쓰기를 위한 지속적인 욕망이 컴퓨팅 기술의 발 전을 만나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글을 씀에 있어서 물리적 도구의 변화는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에게도 당연히 영향을 미친다. 플루서(Flusser, 1987/1998, 19쪽)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문자 기호들을 정돈하고 배열시키는 하나의 동작으로 이해됐다.

이 때 문자기호들은 직‧간접적으로 인간의 사고를 위한 기호들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글쓰기는 사고를 지향하고 정돈하는 동작으로 이해된다. 인간의 사고방 식을 유형화시키는 작업으로서의 이러한 글쓰기는 인쇄기술에 힘입어 혼란스러 운 사고의 순환으로부터 행으로 정돈된 사고로의 안내 역할을 하며, 논리적으 로 사고하고 계산하고 비판하고 과학하며 철학할 수 있게 하는 기능을 담당한 다(Flusser, 1987/1998, 23쪽).

인쇄 기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워드프로세서는 한 글자씩 손으로 눌러 쓰 는 방식에서 간단한 ‘키’(key) 입력으로 변화를 가져왔고 이는 필연적으로 글을 쓰는 과정에서 인간의 사고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일단 쓴 다음 바로 지 울 수 있다는 워드프로세서의 특징은 글을 쓰기 위한 사고의 결과물을 쓰는 것 이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한 사고 과정을 일단 쓰도록 유도한다. 이렇듯 글쓰기 도구 혹은 기술의 변화는 글쓰기 내용과 형식을 그와 상응하게 변화시킨다 (Ong, 1982/1997, 131쪽). 글쓰기에 있어서 좀 더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등장 한 워드프로세서는 글쓰기를 쉬워지게 하는 동시에 필연적으로 글쓰기 자체에 도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글쓰기 도구로서 워드프로세서는 이를 통해 글 을 쓰는 사람에게 변화를 야기하고 이는 글쓰기 속성의 변화로도 이어진다. 글 쓰기 도구로서 워드프로세서가 글쓰기 속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들은 크 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도구적 측면에서 워드프로세서가 야기하는 글쓰기 자체의 변화를 강조 하는 입장이다. 볼터(Bolter, 2001)는 글쓰기 도구를 글쓰기 테크놀로지의 관점 으로 바라본다. 인쇄기, 타자기, 라이노타이프(linotype)4) 등의 장치를 글쓰기 테크놀로지로 규정하고 활판 인쇄술이 등장한 15세기를 글쓰기의 기계화가 이 루어진 시기라고 말한다. 기계화된 활판 인쇄술은 글쓰기가 신속하고 효율적으 로 이루어지게 만들었다. 한번 쓴 글을 수없이 복사할 수 있게 함으로써, 손으 로 글을 베껴 쓰는 노동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볼터는 활판 인쇄술 다음 등장 한 타자기 이후 워드프로세서 등 컴퓨터를 통한 글쓰기는 여기에 새로운 유연 성을 부여했다고 말한다. 활판 인쇄술과 타자기는 일단 쓴 글을 찍어내는 것이 지만, 워드프로세서는 쓰는 과정에서 언제든지 수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볼터 가 말하는 글쓰기 테크놀로지는 시각적 공간에 언어적 생각을 배열하는 방식이 다. 글쓰기 테크놀로지는 물질적, 기술적 속성과 사회문화적 요소들 사이의 끊 임없는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진다. 글쓰기 도구의 변화가 글쓰기 자체 변화 로 이어진다는 것으로 글을 쓴다는 의미가 바뀌었다는 주장이다. 워드프로세서 4) 신문 인쇄 등에 쓰이던 식자기

라는 새로운 글쓰기 테크놀로지는 글쓰기에 있어서 편집의 중요성, 빠른 글쓰 기, 일상적인 글쓰기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특성들이 일반화되면서 글을 쓰는 방식과 과정, 글을 쓰는 공간 자체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워드프로세서와 같은 글쓰기 테크놀로지의 등장은 글쓰기 자체에 새로운 의미 형식과 소통 방 식을 가져온다.

둘째, 글쓰기의 결과물인 텍스트를 중심으로 워드프로세서를 분석하는 연구 다. 워드프로세서로 인해 텍스트성(textuality) 자체가 변화했다는 주장으로, 헤 일즈(Hayles, 2004)는 워드프로세서에 의해 작성된 텍스트를 스크린 상의 텍스 트와 종이로 출력돼 나온 텍스트로 구분한다. 우리가 그동안 본 텍스트는 인쇄 (print)된 것이었는데, 스크린 상에 인쇄된 텍스트는 워드프로세서 등을 통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 새로운 텍스트로 인해 텍스트는 이중적 의미를 갖 게 된다. 종이로 인쇄된 텍스트들이 알고리즘을 통해 코드화되고 생성되어 찍 혀 나온 것(marked)이라면, 스크린 상의 텍스트는 찍혀져 굳어진 것이 아니라 과정이다. 이때 스크린 상의 텍스트는 표면의 아날로그 층위(스크린 상의 글자) 기저에 있는 디지털 층위(코드)가 있고 맨 아래에 아날로그 층위(비트를 만들어 내는 전자의 흐름)라는 ‘오레오 쿠키’5) 구조를 갖고 있다. 좀 더 깊은 코딩 수 준에서는 디지털 텍스트가 적용되고 있지만, 같은 텍스트가 인쇄될 경우에는 결과물로, 스크린 표면에 나타날 때는 과정으로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텍스트는 과정과 결과라는 이중적 의미를 갖게 되고, 글을 쓰는 사람은 의도적 이든 아니든 이러한 이중성에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이다. 이중적인 텍스트성으 로 인해 결과를 염두에 두는 글쓰기와 과정을 염두에 두는 글쓰기가 구분될 수 있으며, 이는 글쓰기가 갖게 된 새로운 가변성이다.

셋째, 워드프로세서가 가져온 글쓰기 도구와 텍스트성의 변화로 인해 결국 인간의 사고 과정 자체도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이다. 하임(Heim, 1999)은 새로 운 글쓰기 도구인 워드프로세서로 인해 인간의 사고 과정이 재구성되고 있다고 말한다. 워드프로세서는 문자 언어를 전자 언어로 바꾸어 놓았고 이 전자 언어 의 유연성과 신속성(rapidity)이 글을 쓸 때의 사고 과정만이 아니라 근본적으 로 인간의 사고 과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워드프로세서를 통 한 글쓰기는 더 이상 텍스트의 생산 자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자적인 텍스 트는 비선형적으로 시간을 넘나들고 다층적인 감각을 부여할 수 있다. 기존 인

5) 두 개의 초콜릿 쿠키 사이에 하얀 크림이 넣어진 형태의 과자. 오레오(Oreo)는 크래프트 푸즈의 쿠키 브랜드로 1912년 나비스코 사(후에 크래프트 푸즈에 합병됐음)에서 처음 제 조·판매한 이후 큰 인기를 끌었으며 20세기에 가장 많이 팔린 과자류로 손꼽힌다.

쇄된 텍스트들은 선형적으로 전달될 수밖에 없었지만, 전자 텍스트는 이를 초 월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임은 워드프로세서가 지적 작업의 속도뿐만 아니라 그 질(quality) 자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면서, 워드프로세서가 ‘인문학 자의(humanist) 계산기’가 되었다고 표현한다. 하임(Heim, 1999)에 따르면, 워 드프로세서는 즉각적이고, 유쾌하고, 물질에 의해 덜 강제적이기 때문에 스크린 위에서의 생각하는 것을 북돋운다. 이렇게 생겨난 즉시성은 약간의 키보드 조 작만으로 생각을 부드럽게 하면서 빠른 글쓰기로 이어진다. 게다가 물리적 측 면에서 디지털 글쓰기는 손으로 종이에 글씨를 쓰는 것에 비해 마찰이 거의 없 다고 할 수 있다. 생각이 실제 글쓰기로 이어지는 동안 마찰이 이전보다 훨씬 적어진 것이고 따라서 생각을 예전보다 가다듬지 않은 채 직접적으로 명확하게 표현하게 된다. 워드프로세서의 철자 체크, 찾아서 바꾸기 등과 가속화된 자동 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바를 점점 더 쉽게 공시화(公示化, formulation)6)할 수 있게 한다. 워드프로세서로 인해 관념적인 생각의 흐름이 흘러가는 과정으로서 지식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워드프로세서는 사고를 끝없이 열려 있는 (open-ended) 형태로 만들고 있고 이는 글쓰기 측면만이 아니라 인간의 전체 적 사고 과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연구들은 워드프로세서가 가져온 글쓰기의 본질적 변화에 대한 성찰 을 보여주고 있다. 글쓰기 도구의 변화가 텍스트성과 글쓰기 자체에 변화를 야 기하고 이는 결국 인간의 사고 과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기술적 대상에 불과한 워드프로세서가 이렇듯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글’이 가져온 변화와 ‘MS 워드’가 가져온 변화가 똑같다고 볼 수는 없다. 전 세계 90% 이상의 사람들이 ‘MS 워드’를 사용할 때, 우리나라 사람들 의 대다수는 ‘글’을 사용했다. 각각 다른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글쓰기 과정에서 같은 생각을 가졌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같은 워드프로세서 라도 그 고유한 특성이 다른 사회‧문화적 의미를 낳을 수 있다. ‘글’의 맞춤 법 검사 기능은 ‘MS 워드’의 맞춤법 검사 기능의 차이를 생각하면 된다.

워드프로세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구디(Goody, 1977/2009) 는 인류 역사의 측면에서 글쓰기 기술을 비판적 논의를 축적하는 도구로서 바 라본다. 읽기와 쓰기 기술이 비판 정신을 고무하여 지식 발달을 선도하는 일종 의 분석 도구처럼 작동한다는 것이다. 말로 전해져 내려오던 것들을 글로 기록 함으로써 그 말은 청각적 검토뿐 아니라 시각적 검토의 대상이 된다. 말하는

6) 직역하면 정식화, 공식화 등이 되지만,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한다는 측면에서 공시(公示) 화로 번역했음.

Dalam dokumen 저작자표시 - S-Space - 서울대학교 (Halaman 3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