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의 이러한 장점은 이론적 측면에서 소프트웨어가 지속적으로 새롭게 구 성하고 있는 현재의 미디어 환경을 분석하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기존 소프트웨어 연구들은 기존의 이론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지만, 소프트웨어의 특 성을 감안한 새로운 이론적 틀은 아직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ANT 자체 도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소프트웨어가 지속적으로 새롭게 구성하는 미 디어 환경을 다양한 행위자들과의 관계 맺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대안적이지만 새로운 틀을 마련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 맺음, 즉 교호 (association)의 과정을 추적하는 것은 소프트웨어에 이용자의 이용 행위가 결 합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고 그에 따라 소프트웨어가 변화하는 과정을 분석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소프트웨어 연구의 방법론적 측면에서도 ANT 관점은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소프트웨어는 기본적으로 기술적 대상으로 다양한 기능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소프트웨어에 대한 기존 연구들에서 자주 보이는 한계점은 복잡하 고 세세한 기능을 기술적 관점에서만 분석하던가, 세세한 기능의 변화는 무시 하고 소프트웨어를 전체적인 하나의 기술적 대상으로만 분석하는 것에 치우지 고 있다는 점이다. ANT 관점을 소프트웨어 연구에 적용할 경우 이러한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다. 각각의 세세한 기능을 소프트웨어라는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하나의 행위자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세한 기능 행위자들을 기술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고려하면서 전체적으로 형성하는 네 트워크를 분석한다. 이는 각각의 기능들이 갖는 의미와 함의를 다루면서도 소 프트웨어가 전체적으로 갖는 의미와 함의를 동시에 연구할 수 있게 한다.
계와 그들의 역할 치환을 통한 운동에 의해 전개되며 기술은 이러한 네트워크 전개 과정 안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ANT의 관점이다. ANT 안에서 비인간 행위자라는 정체성과 지위를 부여받은 기술과 사물들은 인간이라는 행위자와 동등하고 대칭적인 관계에서 세계를 구성한다. 인간, 기술, 문화, 사물 등이 구 분되는 것보다 이들이 어떻게 가치를 생산해내고 새로운 관계들을 생산해 내는 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김진택, 2012, 12쪽).
<그림 7>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의 주요 요소
<그림 7>처럼 ANT의 행위자는 기호학에서 기원한다. ANT에서 행위자는 기 호학적 정의이며, 이는 행동하거나 타존재로부터 행위능력을 인정받은 존재를 의미한다. 이는 개별적인 인간 행위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며, 일반적으로 인 간이 지닌 특별한 동기를 가정하지 않는다(Latour, 1997). ‘행위자’는 영어적 의미에서 인간에만 국한되기 때문에, 기호학에서 빌려온 ‘행위소(actant)’라는 개념이 인간과 비인간을 함께 지칭하기도 한다. 행위소는 행위할 수 있는 ‘행위 능력(agency)’을 네트워크에 의해 부여받은 인간 및 비인간의 모든 실체를 지 칭하는 개념이다(김환석, 2009, 877~878쪽). 행위소는 문자 그대로 행동의 원 천으로 인정받은 것이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기호학적 관점에서 모든 실재, 모든 행동들은 추상적인 행위소가 구체적인 행위자로 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선택으로 볼 수 있다. 고정된 실재가 아니라 흐르는 대상이다(Latour, 1997).
ANT는 전기 자동차에 대한 분석(Callon, 1987), 1952년 말 영국의 항공기 프로젝트인 TSR-2에 대한 분석(Law & Callon, 1992), ‘자동 문 닫힘 장치 (door closer)’(Latour, 1991) 등과 같이 특정 기술, 사물 등을 탐구함으로써
기술과 사회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항상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자동 문 닫힘 장치’와 관련한 연구에서 라투르는 호텔에서 문을 닫 아주는 역할을 하던 도어맨을 자동 문 닫힘 장치가 대체함으로써 나타난 여러 가지 변화를 서술한다. 이 자동 문 닫힘 장치를 설치함으로써 문을 통과하는 인간 행동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부분이 중요하다. 문 닫히는 동작이 매끄 럽지 못한 자동 문 닫힘 장치를 설치한 문을 통과하는 사람들은 문을 재빨리 통과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ANT에서 행위자는 곧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나’는 ‘나’에게 연 결되어 있는 수많은 인간, 비인간 행위자들의 이종적인 네트워크에 의해 구성 된다. ‘나’의 행위 능력은 나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잇는 수많은 행위자들과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된 ‘관계적 효과’로 볼 수 있다(홍성욱, 2010, 22~23쪽). ‘
글’을 이용하는 ‘나’와 이용하지 않는 ‘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나’는 ‘글’
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행위는 “관계 안에서, 관계에 의해서, 관 계들을 통해” 일어나며 연구자들은 이 네트워크를 추적하여 그 변화를 기록한 다(Law & Hassard, 1999, p. 4). 행위자와 네트워크는 서로가 서로를 구성하 기 때문에 행위자는 네트워크가 없이는 행위할 수 없다. 행위자와 네트워크는 서로를 지속적으로 재규정하고, 하나가 다른 하나에 의존한다(Callon, 1987, p.
93). 다양한 인간, 비인간 행위자들은 교호를 통해 네트워크를 건설하고 행위자 이기도 한 네트워크는 다른 네트워크와 또한 교호한다.
네트워크는 연결이 이루어지고 있는 형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보 이지 않았던, 필요하지 않았던 존재들을 나열하기 위한 탐구의 방식(mode)이기 도 하다(Latour, 2011). ANT에서 네트워크는 인간 행위자들의 연합과 같은 일 반적인 네트워크가 아니다. 소프트웨어와 같은 비인간 행위자와 인간 행위자들 의 행위(work)가 네트(net)를 이루면서 만들어진 것이 네트워크다. 어떤 의미에 서는 ‘워크네트(worknet)’로도 표현이 가능하다. 네트워크의 규모는 포함하는 행위자들의 수와 관련이 있다. 미시적 네트워크와 거시적 네트워크의 차이는 구조적 차이가 아니다.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해 행위자가 만들어낼 수 있는 네트워크의 규모, 즉, 자신의 목표에 따라 그가 동원할 수 있는 행위자들의 수 의 차이일 뿐이다(Latour, 2005).
ANT가 소프트웨어와 비인간 행위자의 행위능력을 인간과 동등하게 바라본다 는 점은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소프트웨어의 행위능력이라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인간을 중심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들이 형성하는 혼종적 네트워크를 추적한다고 하지만, ANT 연구들의 대
부분은 네트워크의 중심에 인간 행위자를 위치시킨다. 예를 들어, 총이 사람을 죽이는가 아니면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가에 대한 논쟁에서 ANT 관점에서는 총 과 사람을 따로따로 생각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총을 쥔 사람’이라는 혼종적 존 재가 사람과 총 모두의 목적을 바꾸면서 새로운 행위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주 장한다.
기술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존재처럼 행위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 만, 분석자가 기술에게 부여한 행위능력에 불과하다는 비판(Collins &
Yearley, 1992)에 ANT는 아직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또, ANT가 기술에게 부여한 특성이 다름 아닌 ‘인간다운’ 특성으로 마치 인간처럼 행동하고, 반응하고, 실행하는 특성이기 때문에 비인간 행위자와 인간 행위자의 구분이 오히려 모호해지고 있다는 비판도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Khong, 2003). ANT는 아직 미완성된 이론이다. 다만, 인간과 사회가 소프트웨어 등과 같은 비인간 행위자들 없이는 구성될 수도 없고 유지될 수도 없다는 것만은 분 명해 보인다. ANT 관점은 새로운 문화적 동력으로서 소프트웨어의 실체를 인 정하고 보이지 않는 변화 과정을 추적하기 위한 대안으로서는 유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