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은 네트워크의 중심에 인간 행위자를 위치시킨다. 예를 들어, 총이 사람을 죽이는가 아니면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가에 대한 논쟁에서 ANT 관점에서는 총 과 사람을 따로따로 생각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총을 쥔 사람’이라는 혼종적 존 재가 사람과 총 모두의 목적을 바꾸면서 새로운 행위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주 장한다.
기술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존재처럼 행위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 만, 분석자가 기술에게 부여한 행위능력에 불과하다는 비판(Collins &
Yearley, 1992)에 ANT는 아직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또, ANT가 기술에게 부여한 특성이 다름 아닌 ‘인간다운’ 특성으로 마치 인간처럼 행동하고, 반응하고, 실행하는 특성이기 때문에 비인간 행위자와 인간 행위자의 구분이 오히려 모호해지고 있다는 비판도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Khong, 2003). ANT는 아직 미완성된 이론이다. 다만, 인간과 사회가 소프트웨어 등과 같은 비인간 행위자들 없이는 구성될 수도 없고 유지될 수도 없다는 것만은 분 명해 보인다. ANT 관점은 새로운 문화적 동력으로서 소프트웨어의 실체를 인 정하고 보이지 않는 변화 과정을 추적하기 위한 대안으로서는 유용할 수 있다.
(where to travel)이며, 거기서 무엇을 보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지(what is worth seeing there)를 제시”하는 것이다(Latour, 2005, p. 17). 행위능력을 갖고 있는 소프트웨어가 다양한 인간, 비인간 행위자들과 맺고 있는 교호의 과 정을 기록하고 분석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적 수단일 뿐이다. ANT의 주요 개념 은 <표 5>와 같이 관찰자의 분석이 행위자들의 행위를 개념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인간 행위자가 생물체와 같이 실제로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기 때 문이다.
ANT 개념 관찰자의 분석
비인간 행위자 ‘글’을 비롯한 소프트웨어들
인간 행위자 이용자, 개발자, 조직, 기관, 정부, 학계 등
네트워크 추가되고 사라지는 기능들, ‘글’ 연계 소프트웨어들, 새롭게
‘글’을 이용하는 사람들 등
블랙박스 일상적으로 사용돼 인식하지 ‘글’의 기능, ‘글’과 ‘한글’ 등 번역 ‘글’에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는 과정, 새롭게 ‘글’을 사용
하는 과정 등
기입 개발의도, 매뉴얼, 이용목적, ‘글’의 버전 등 매개자 글쓰기 도구, 문서 작성 문화, 한글 등
<표 5> ANT의 주요 개념과 ‘글’ 관찰자의 분석
ANT의 개념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번역(translation)’이다. 번역은 한 행 위자가 다른 행위자와 결합해서 네트워크를 건설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번역의 핵심은 한 행위자의 이해나 의도를 다른 행위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로 치 환(displacement)하기 위한 프레임을 만드는 행위다. 번역의 과정을 통해 어떤 행위자는 다른 행위자들로 하여금 이미 맺고 있는 기존의 관계를 끊고 자신이 구성하는 네트워크 안으로 들어오도록 유도해 통합시키며, 이들이 다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통제하면서 네트워크를 만들려 시도한다. 번역의 과정을 성공적 으로 수행한 소수의 행위자가 네트워크에 동원된 다수의 행위자들을 대변하는 권리를 갖게 되면 이전에 비해 더 큰 권력을 획득하게 된다. 깔롱(Callon, 1986)은 가리비 양식장과 관련된 사례 연구를 통해 인간 행위자들과 비인간 행 위자들 사이에 형성된 네트워크를 추적하면서, <표 6>과 같이 번역을 문제제기 (problematization), 관심끌기(interessement), 역할부여(enrollment), 동원하 기(mobilisation)의 네 단계로 구분해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번역 단계 주요 내용
문제제기 ・기존의 네트워크를 교란시키고, 행위자들과 네트워크를 정의하는
단계
관심끌기 ・다른 행위자들을 기존 네트워크에서 단절시키고 이들의 관심을
끌며 새로운 협상을 진행
역할부여 ・다른 행위자들로 하여금 새롭게 주어진 역할을 맡게 하는 단계
동원하기 ・다른 행위자들을 대변하면서 자신의 네트워크로 포함시키는 단계
<표 6> 깔롱(Callon, 1986)이 제시한 ANT 번역의 4단계
더 많은 행위자들을 자신의 네트워크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다른 행위자들 에게 자신들만이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다 른 행위자들이 네트워크 상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점을 먼저 장악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행위자들이 네트워크 상에서 반드시 거쳐 가게 함으로써 행위자 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존재를 ‘의무 통과점’(obligatory passage point, OPP)이라고 한다. 이 의무통과점을 만들고 장악하는 것이 번역의 핵심 과정이다. 번역의 과정에서 자신들의 언어를 기록하고, 이런 기록의 결과를 바 탕으로 다른 행위자들을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치환이다. 번역은 실제 행위자 들의 행위를 의미하기 보다는 연구자, 혹은 관찰자 관점에서의 기록이다.
어떤 하위네트워크(sub-network)가 충분히 안정화되면 이는 다른 행위자들 에게 하나의 개체로 보이는데, 이를 ‘블랙박스화(black-boxing)’라고 하며, 이 렇게 하나의 개체로 작동하는 네트워크가 ‘블랙박스’다. 블랙박스란 더 이상 다 시 생각할 필요가 없고 그 내용물이 이제 무관심(indifference)의 대상이 되어 버린 사물들을 담고 있다. 물론, 영원히 완전하게 닫힌 것은 아니고, 거시적 행 위자들이 닫혀져 있고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Callon &
Latour, 1981, p. 285). ANT는 사람들이 블랙박스의 내용 속에서 원래의 네 트워크를 보지 못하고 이것을 외부의 입출력에만 의존하는 대상으로 취급하는 점에 주목한다. 블랙박스가 더 닫힌 것이 될수록, 사람들이 그것에 축약된 네트 워크에 더 무관심해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그 블랙박스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홍성욱, 2010, 24쪽). 어떤 소프트웨어가 현재 나에게 있어서 별 불 편함 없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내부의 복잡함은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소 프트웨어를 통한 투입과 산출물에만 신경을 쓰면 된다. 따라서 소프트웨어가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 성공을 거둘수록 그것들은 불투명해져서 사회로부터 더 이상 눈에 띄지 않는 블랙박스가 된다(김환석, 2009, 878쪽).
ANT 관점에서 소프트웨어는 행위자들의 교호과정에서 ‘매개자(mediator)’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매개자는 행위자들을 네트워크에 연계시키고 해당 네트워크 자체를 규정하는 고리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총을 들게 되면 ‘총을 든 사람’이라는 새로운 행위자가 생겨나며, 이 때 ‘사람’과
‘총’을 연결하는 과정이 매개고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매개자다. 컴퓨터를 글을 쓴다고 할 때 컴퓨터와 사람을 연결하는 것은 소프트웨어다. 소프트웨어는 보 이지 않는 행위자인 동시에 다른 행위자들 사이를 매개해 네트워크의 연결 고 리가 되는 것이다. 같은 문서를 컴퓨터를 통해 작성하더라도 ‘글’ 사용자 네 트워크와 ‘MS 워드’ 사용자 네트워크는 다르다. 행위자들은 자신들 사이에 매 개자를 유통시킴으로써 다른 네트워크를 건설한다. 매개자는 네트워크 내에서 각 행위자의 위치를 규정하고 행위자들과 더불어 네트워크 자체를 구성한다.
서로 다른 행위자들의 협상에는 이들을 중재하는 요소가 있기 마련이다. 매개 자는 자신이 운반하는 대상을 번역하거나 재정의, 재전개하거나, 배신할 수도 있는 능력이 부여된 행위자다(Latour, 1991). 따라서 매개자를 행위자와 정확 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매개되지 않은 행위자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행위자는 매개자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생산자로도 볼 수 있다.
한편, 모든 행위자는 매개자 혹은 네트워크에 ‘기입(inscription)’을 함으로써 자신의 의지를 다른 행위자가 번역할 수 있도록 한다. 비인간 행위자인 기입 장치들이 실제 행위들의 데이터를 받아들인 후 그것을 숫자나 그래프, 그림 등 과 같은 기호로 번역해 인간 행위자들이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는 정보로 변화 시킨다(Latour, 1981). 시간에 따른 기입을 연구하는 것은 행위자들이 직접적 으로 소프트웨어의 기능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게 한다(Faraj, Kwon & Watts, 2004). 기입은 어떤 실체가 기호, 기록, 문서, 논문, 흔적 등 으로 구현되면서 겪는 모든 종류의 변형들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다. 소프 트웨어의 경우 문서로 기입된 것은 ‘매뉴얼’이고, 내재된 것은 아이콘과 같은 직관적 인터페이스며, 네트워크 배열 속에 숨겨진 것은 페이스북의 ‘친구 추천’
과 같은 알고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기술(description)’은 기입을 거꾸로 돌리는 것으로 행위자가 기입한다면 연 구자는 기술한다. 다양한 행위자들이 매개자들에게 남긴 기입을 읽어내는 것이 기술이다. ANT 연구자는 이미 소멸됐거나 블랙박스화된 네트워크에서 인간, 비인간 행위자를 판별해내고 이들의 궤적을 기술해 원래의 네트워크를 재구성 한다. 따라서 ANT는 일반화나 미래에 대한 예측을 추구하지 않는다. 모든 네 트워크는 서로 다른 특이성들을 갖고 있고 나름대로 독특하며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네트워크를 잘 기술해 설명할 수 있으면 되는 것 이다(홍성욱, 2010, 28~29쪽).
ANT는 지금까지 제시된 주요 개념들을 바탕으로 다양한 행위자들이 교호하 며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설명한다. ANT는 자연과 사회 또는 인간이라는 이원적 존재론을 거부하면서 인간과 비인간의 행위능력을 구분하지 않는 새로운 존재론을 주장한다(Latour, 2005). 과학과 기술, 사회가 함께 행 위하며 지금 우리의 세계를 구성한다는 관점이다. 새로운 기술적 대상으로서 소프트웨어를 분석하는 대안으로서 ANT는 유용하지만, ANT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ANT는 사회‧문화적 맥락을 크게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프트웨어라는 새로운 기술적 대상을 연구하기 위해 ANT 관점에서 교호 과정을 기록하지만, 그 기록은 다시 해석할 필요가 있다. 관찰자가 부여한 행위이지 실제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ANT는 사회가 형성되는 과정을 이해 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서 개념들을 제시하는 것이지, 그 개념과 같은 실제 행위가 벌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변화하고 있는 과정을 추적할 수 있 는 실마리로서 ANT 관점을 대안으로 채택하지만, 그 내용의 해석은 다시 소프 트웨어 연구 관점으로 돌아올 필요가 있다. ANT 관점에서 소프트웨어를 분석 한 기존 연구들의 한계는 ANT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에서 발생한다. 이 러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새로운 이론적 틀의 필요성을 주장하기 위해 앞서 다 음 항에서는 행위자 네트워크 관점에서 소프트웨어에 대한 선행 연구들을 검토 하고 그 한계점을 지적한다.
2. 행위자 네트워크 관점에서 소프트웨어에 대한 선행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