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존재부정문장의 문제 /20
4. 솔먼의 해법 /50
4.1. 단순성 요건 /51
우선 지금까지의 해법들을 포함하여 본고가 목표한 (1α)형태의 문장들에 대 한 제대로 된 접근이 만족시켜야 할 중요한 제약 하나를 짚어보고자 한다. 그 것은 단순성 요건으로 이것은 앞서 언급된 사용 요건과 긴장관계에 놓여 있 다.
술어는 확실히 존재부정문장에서 표준적 의미를 할당받아야 한다. 즉 다른 존재 문장들에서 그 술어가 가지는 의미를 유지해야 ‘존재함’이란 술어가 애매 함의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는 ‘존재한다’가 다양한 범주에 속하는 대 상들에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사실상 어떤 것에 의해서건 소유되는 술어를 나 타낸다는 크립키와 에반스의 견해를 따르고자 한다.63) 사실상 ‘존재한다’가 모 든 것에 적용된다고 말하는 것이 ‘존재한다’의 의미를 독특하게 고정하는 바이 다. 이를 존재의 단순한 의미라고 부른다면 단순성 요건이란 바로 존재부정문 장에 나오는 ‘존재한다’도 바로 이러한 단순한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존재한다’란 술어를 마이농적인 ‘있다’와 구분되는 의미로 취하거나 구체 적 사물 혹은 불가능한 사물과 대비되는 가능자 등 일정한 범위를 가진 영역 에 제한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본고는 상세히 이 요건을 옹호 하지는 않겠다. 현재 목적을 위해선 단순한 의미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암묵 적으로 일종의 기본 값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
63) 크룬(2000), p.100, n.88 여기서 크룬은 크립키, 에반스 외에도 낙니키안과 솔먼, 알목 등이 이와 같은 논제를 펼친 바 있음을 지적한다.
이다. 이것이 러셀조차 “어떤 것에 대해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은 넌센스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 것도 아닌, 그런 명제의 구성요소를 가 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때 받아들인 의미이다.64) 이 인용문이 보여 주는 바대로 따라서 존재부정문장이 넌센스가 아니기 위해선 거기에 나타나는
‘존재한다’가 사용된 것일 수 없고 그 문장의 해석은 메타언어적으로 처리되어 야 한다. 반면 진짜로 사용되었다면 역설을 피하기 위해 결국 존재하지 않는 대상의 ‘있음’, 혹은 존속(subsist)을 용인하는 마이농의 해법으로 가게 된다.
이처럼 사용 요건과 단순성 요건 양자를 화해할 방식을 찾기란 쉽지 않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존재한다’란 속성이 모든 대상이 소유하는 보편적 속성 이건 그렇지 않은 차별적 속성이건 실제 세계에 속하는 진짜 속성으로 사유되 고 있다65)는 점이다. 이점에서 월튼은 우리의 기본적인 상식과 큰 차이를 보 이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월튼은 ‘존재한다'가 존재의 보편적 속성을 나타 낸다는 걸 부인함으로써 단순성 요건을 위반할 뿐 아니라 또한 그것이 어떤 속성도 나타낸다는 걸 부인한다. 앞서 월튼과 크룬의 이론을 체하기 논의로 묶어 살펴봤지만, 이 둘이 존재부정문장과 연관된 체하기를 제시하면서 생각 하고 있는 전제는 완전히 정반대이다. 월튼이 존재한다는 속성이란 것은 아예
64) 러셀, “The Philosophy of Logical Atomism”(1918), in Logic and Knowledge, R.C.Marsh ed., London: Allen and Urwin(1959),p.242, 크룬(2000), p.100에서 재인용.
65) 이점이 몇몇 철학자들에 의해 의심되어 왔다. 본문에서 월튼에 대해 논의되고 있지만, ‘존재 한다’는 속성이 아예 없다고 주장하는 월튼의 논의가 철학적 배경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흄이 “누군가 관찰하는 것은 손잡이의 존재가 아니라 그냥 손잡이다”라고 말한 것은 적어도 지각적 경험의 대상으로서는 존재한다는 속성이 없음을 보여준다. 또한 윌리암스 (D.C.Williams)의 “존재없이 지내기”란 논문(윌리암스(1962))을 보라. 그는 존재의 무효성에 대해 흔히 주어지는 두 개의 근거를 소개한다. 하나는 칸트 논증으로, 존재는 주어에 차이를 만들지 않으므로 술어일 수 없다는 것이다. 상상의 100달러가 진짜 100달러가 되더라도 단 1센트의 증가도 없다는 예를 칸트는 제시하였다. 또 하나는 존재의 개념이 절대적으로 보편 적 적용을 가지므로 그것은 내용이 없음에 틀림없다는 논증이다. 이런 논증들을 거부하면서 윌리암스는 섭시스턴스(subsistence) 이론을 차용하여 ‘존재’ 개념을 부정하는 논의를 보여준 다. 그는 섭시스턴스 개념을 들여오긴 하지만 약한 존재라는 의미에서의 이 개념은 거부한다.
그는 다양한 특성들이 섭시스트하면서 이 특성들이 원시적 존재자들인 절대적 특수자와 결합 하여 실세계의 구체적 개별자를 만든다고 본다. 그러나 이때 캐릭터들의 ‘섭시스팅’은 단지 그들이 이러저러한 특성임에 불과하고 특수자들의 ‘존재’는 단지 그들의 수적 동일성일 뿐이 다. 즉 그에 따르면 무언가임(being Something)이 존재론적으로 더 앞서는 개념으로 우리는 이와 더불어 존재없이 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존재문장/존재부정문장은, 주어가 지 칭을 한다 혹은 하지 않는다는 걸 나타낼 뿐이다. 이때 지칭에 대해 명시적으로 분명한 존재 적 형식을 사용하지 않는 설명 방식은 다음이다: ‘갈색 말’은 지칭하고 ‘나는 말’은 그렇지 않 다고 말하는 것은 갈색임과 말임은 동시발생(concur)하지만 날음과 말임은 그렇지 않다고 말 하는 것이다.
없고 단지 체하기 안에서, 어떤 대상이 그런 속성을 가지거나 가지지 않는 차 별적 속성인 것처럼 이야기한다고 주장하는 반면66), 크룬에 따르면 모든 대상 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대상은 존재하고 어떤 대상은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체하기의 영역 안에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월튼 말대로라면 존재한다는 속성은 진흙덩이를 파이인 체하는 게임에 나오는 ‘파이임’이란 속성과는 달리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관련 문장 표현과 관련된) 허구 안에만 있 는 속성, 말하자면 ‘아바타임’ 같은 속성으로 취급된다.
솔먼은 물론 존재한다는 속성을 이런 속성 가운데 속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나아가 크룬처럼 그것이 모든 대상이 소유하는 보편적 속성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크룬이 ‘대상’으로 간주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본 많은 것들 에 대해 그는 그것들을 일정한 무언가로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는 한 존재하 는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즉 둘 다 모든 것은 존재한다고 보지 만, 그 ‘모든 것’의 범위를 솔먼은 훨씬 넓게 잡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렇다 면, 위에서 말한 대로 사용 요건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다. 솔먼은 체하기를 동원하지 않고 (3)과 같은 문장에 대해 자연스러운 해석을 주려고 한다. 예를
66) 월튼은 차별적 속성이 어디까지나 게임 안에 있는 것이지, 화자가 부과하고 있는 체하면서 화자가 실제로 주장하는 바를 결정하도록 해주는 속성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 다. 단지 그러한 차별속성이 있는 척하는 것이지 우리가 허구적으로, 즉 체하기로 부과하고 있는 그런 (진짜) 속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루이스 캐롤의 시에 의해 촉발된 하나의 게임을 고려하라. 장난감 동물들의 분류와 관련된 어떤 시에서 어떤 동물은 토브들이고 다른 것들은 스니치들이라는 것이 허구적이라고 해보자. 즉 게임 안에서 이런 단어들이 어떤 동물이 소유하는 특정한 속성을 집어낸다는 것이 허구적이 다. 그러나 그 말들이 집어내는 실제의 속성들이란 없다. 이제 나무로 만들어진 짐승형상은 ' 토브'를 나타내고 플라스틱 형상은 '스니치'를 재현한다는 임의적인 관습을 수용한다고 해보 라. 크룬은 다음과 같이 월튼에 반대했다. 즉 스모키가 나무로 된 형상으로 재현된다면 “그것 이 토브다”라고 말하는 것이 허구적으로 참되게 말하는 것이라고 할 때, 여전히 화자가 이렇 게 말함으로써 부과하고 있는 척하는 그런 속성이 없으려면 다음이 명백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스모키가 토브라고 말할 때 그로써 그 특정 장난감이 나무로 만들어졌다고 선언하는 그런 의미, 적어도 흥미로운 의미는 없어야 한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이에 대한 월튼 의 대답은 이점이 바로 화자가 주장하고 있는 바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게임이 프 랍지향적 방식으로 채용되어, 플라스틱 동물 형상과 달리 나무 장난감은 유독하지 않으니 스 모키가 토브라고 선언함으로써 그것을 아이 방안에 그냥 둬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할 때 더욱 그러하다. 요점은 월튼이 보기에 이를 인정하더라도, 이것이 ‘토브임’에 해당하는 진짜 속성이 있음을 보여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나무 장난감을 가지고 그것이 토브인 체하고 플 라스틱 장난감을 가지고 그것이 스니치인 체 하더라도, 토브와 스니치가 곧‘ 나무임’과 ‘플라 스틱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 진흙을 가지고 파이 놀이를 한다고 해서 ‘파이임’
이라는 속성이 ‘진흙임’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즉 토브임과 스니치임에 해당하는 실제 속성은 전혀 없다(월튼(2000)). 그러나 본고에서의 문제는, 존재한다는 속성도 이런 속성에 해당하는가이다.
들어 “도일이 홈즈를 창조하였다. 다시 말해 그는 허구적 캐릭터이지 존재하 는 인물이 아니다. 그런데 그는 다른 탐정 소설의 캐릭터와는 다르게....”라는 문장에 나오는 ‘홈즈’란 이름은 분명히 사용된 것으로 홈즈라는 캐릭터를 지칭 하고 있다. 월튼이나 크룬의 주장과는 달리 이때 존재부정문장에서의 이름 사 용은 체하기의 범위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67) 그렇다면 솔먼은 (3)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모든 것들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그런 것들에 대해
‘존재하지 않는다’란 술어를 할당할 수 있는가? 이제 솔먼의 해법이 어떻게 사 용과 단순성이라는 두가지 한꺼번에 해결되기 어려운 제약을 다 만족시킬 수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솔먼의 대답은 존재론의 철학적 주장을 일상어로서 의 ‘존재한다’라는 술어의 분석과 분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