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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존재부정문장의 문제 /20

4. 솔먼의 해법 /50

4.3. 솔먼과 마이농주의 /58

솔먼은 (3)뿐 아니라 (1α)형태의 문장의 거의 모두가 빈이름을 주어로 가지 지 않으며 따라서 진짜 존재부정문장의 역설을 일으키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 는다고 본다. “소크라테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는 지금은 소크라테스 가 죽고 없지만 그 죽고 없는 소크라테스라는 명확한 대상을 지칭하는 주어를 가지고 있다. 카플란이 도입한 이름, '뉴맨-1'을 사용한 존재부정문장, “뉴맨 -1은 존재하지 않는다”를 생각해 보라. 이 이름은 “나는 22세기에 태어날 첫 번째 인간을 ‘뉴맨-1’이라고 명명한다”라는 선언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73)

먼은 또한 ‘노맨-0’이란 이름을 제안하고 있는데, 이 이름은 다음과 같은 대상 을 지칭한다. 솔먼 아버지의 특정한 정자세포를 S라고 하고 솔먼 어머니의 특 정 난자 세포를 E라고 할 때, 실제로는 S와 E가 결합한 적이 없으나, 이 둘이 만일 결합했더라면 태어났을 아이를 ‘노맨-0’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솔먼의 가능한 형제인 셈이다. 자 여기에 ‘노단-0’이라는 이름을 덧붙여 보자.

아까의 그 정자 S가 네이던 솔먼이 실제로 유래한 난자 Ens와 결합했더라면 태어났을 아이가 바로 노단-0이다. 그렇다면 어떤 가능세계에서도 솔먼과 노 단-0은 공존할 수 없으므로 “노단-0이 솔먼의 키보다 컸을 수 있다”는 명제 는 존재할 수가 없게 된다. 이제 “노맨-0이 존재하지 않는다”나 “노단-0이 솔 먼의 키보다 컸을 수 있다는 명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둘 다 참이 된다. 지 금까지 말한 모든 경우들은 그 주어가 과거의 존재자이건(소크라테스), 미래의 존재자이건(뉴맨-1), 또는 단지 가능한 존재자이건(노맨-0), 아니면 불가능한 대상(노단-0이 솔먼의 키보다 컸을 수 있다는 명제)이건 모두 어떤 확정적인 대상을 가리키고 있다. 그렇다고 솔먼이 그 주어로 완전히 비지칭적 이름을 가진 존재부정문장이 아예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콰인이 ‘과밀한 우 주’를 구성한다고 거부한 “저 문 앞에 서 있을 수 있는 대머리 아저씨 ‘컬리 -0’74)”이나 솔먼이 자신의 공상 속에서 만들어낸 프랑스 제국의 황제 ‘내피’는 앞선 예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콰인의 주장대로 그 개별화가 불가능한 이 런 막연한 대상들은 어떤 의미에서도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앞서의 존재부정문장들과는 완전히 다르게 해 석되어야 한다. 즉 이 경우는 정말로 문장의 구성 요소가 없다는 점에서 철학 적으로 역설을 제기하는 진짜 존재부정문장의 경우이다. 솔먼의 요점은 그런 것들이 굉장히 드물고 아주 이상스럽다는 것이다. 이런 문장들은 완전히 무의 미하고 그것이 나타내는 명제가 없으므로 참도 거짓도 될 수 없다.

말하자면, “컬리-0이 존재하지 않는다”와 “내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두 문장은 각기 다른 것들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지 않다. 컬리0은 이름은 내피와 다르지만 내피와 다른 사물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아예

73) 카플란(1973a), p.229 이 논문에서 ‘뉴맨-1’이란 이름은, 거기에 해당하는 대상이 없는 상 황에서의 명명식(dubbing in absentia)을 허용하는 고유명 이론에 반대한다는 문맥에서 도입 된 것이다.

74) “...과밀한 우주는 여러 면에서 탐탁하지 않다. 그것은 사막의 풍경을 좋아하는 우리의 미적 감각을 불쾌하게 만들지만...예를 들어 저 문 앞의 가능자 뚱보를 생각해보자. 또 저 문 앞 의 가능자 대머리 아저씨를 상상해 보자. 그들은 가능한 동일 인물인가 아니면 가능한 두 사 람인가?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결정하는가?” 콰인(1961,번역본(1993)), pp.16-17. ‘컬리-0’

이란 이름은 솔먼이 콰인의 생각을 인용하면서 쓴 것이다.

사물이 전혀 아니다. ‘컬리 0’이나 ‘내피’ 같은 이름들은 다른 것들과 차별되는 어떤 것도 집어내지 못한다. 이 이름이 포함된 문장들을 다르게 읽는 우리의 관행은 비의미론적 방식으로 처리되어야 한다. 이제 비로소 우리가 3절에서 다루었던 화용론적 분석이 개입한다. 똑같이 무의미하지만 두 문장은 각기 다 른 방식으로 독자의 마음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 만 이런 경우들은 아주 드문 예외적인 경우이고 그 외의 존재부정문장에서는 전부 지칭이 일어나고 있으며 따라서 역설도 없다. 허구적 이름들 역시 분명 한 지칭체를 가지며 본고는 이후 이 대상의 존재론적 본성과 동일성, 개별화 를 규명할 것이다.

사실 솔먼의 해결방식은 비존재(nonbeing)의 수수께끼라는 해묵은 문제에 대해 어찌보면 아주 간단한 답을 준다. 비존재는 어떤 뜻에서는 존재해야 한 다. 그렇지 않다면 있지 않은 것이란 과연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솔먼의 대답 이 이런 사소한 맥락에서 주어진 것은 결코 아님에 유의해야 하겠다. 여기서 홉웨버가 마이농주의자들을 비난하면서 그들이 비존재 대상이 있느냐는 실질 적인 존재론적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때 중요한 논증의 하나로 우리가 실제 로 겉보기에 참인 문장들에서 양화사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는 데 주 목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마이농주의자는 말하자면 비존재 대상에 걸쳐 있는 양화사가 쓰인 문장이 참인 걸로 이해되는 한 비존재대상이 있다는 주장 이 옳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75) 그러나 우리는 결코 이런 수준의 사소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M) 무언가 날 밤중에 깨웠어. 그러니까 꿈 속의 괴물이.

이런 문장을 발화할 수 있다는 것이 곧 꿈 속의 괴물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함축하는가? 뿐만 아니라 우리는 “컬리-0이 존재하지 않는다”로부터 참인 양 화 문장, “그러니까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 컬리-0이 있다”를 얻어낼 수도 있 다. 그러나 이러한 문법적 변형으로부터 따라나오는 ‘무언가’라는 양화사가 실 질적인 존재론을 함축할 리 없다. 마이농주의자들로서는 결국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있고 그 가운데 어떤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문법적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존재하는 것들이 무엇이냐는 문제 에 관심을 가지며, 이러한 관심에서 분명히 컬리-0이나 내피 같은 것은 없다 고 생각한다. 또한 이어지는 논의들에서는 존재부정문장의 주어 가운데에서도

75) 홉웨버(2000)

많은 철학자들이 전형적인 예로 지적했던 ‘홈즈’, 즉 허구적 이름이 분명히 지 칭체를 가진다는 입장에서 그러한 존재자들의 본성과 개별화를 규명하는 실질 적인 존재론의 과제들을 짊어질 것이다.

사실 서두에서 마이농의 해결 방식이 가지는 존재론적 부담을 언급했지만, 스스로를 마이농과 차별시키려는 솔먼의 논의도 결국 마이농주의의 재판(再版) 이 아닌가라는 의심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76) 허구적 대상의 실재론을 정 립하려는 본고의 목표에 비추어볼 때, 본고가 솔먼에 대한 이러한 혐의를 진 지하게 다룰 필요가 있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허구 캐릭터는 뉴맨-1이나 노단-0, 꿈 속의 비행 같은 존재자들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그 존재가 의문시 되는 경우들과는 차별화된다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반실재 론자들이 허구적 대상과 이런 존재자들 사이에 연속성이 있음을 주장했다는 것을 상기할 때, 겉보기의 빈이름들과 진짜 빈이름들 간의 확실한 경계선을 긋는 것은 분명히 필요하다. 캐플란(B.Caplan)은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 이론이 상정한 존재자들, 가령 플로지스톤 같은 것들과 허구적 존재자들 간에 연속성 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 삼아, 그런데 플로지스톤 같은 존재자들과 내가 임의 로 만들어낸 엉터리 이론의 존재자들 간에도 연속성이 있으니, 결과적으로 허 구적 존재자들이 존재한다고 하려면 이런 엉터리 이론의 존재자들도 존재한다 고 해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한다.77) 필자는 캐플란이 말하는 엉터리 이론, 즉 순전히 나의 공상 속에 등장하는 내피 같은 것들을 존재론에서 배제시킬 기준 을 아래에서 제안할 것이다. 본고가 연속성을 강조하고 싶은 존재자는 앞서 언급한 것들이 아니라 허구 작품, 문화적 제도 등의 존재자이다.

솔먼이 존재와 비존재를 가르는 기준을 명시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솔 먼이 든 예들은 그러한 기능을 할 만한 꽤 유용한 하나의 틀을 암시해주고 있 다. 솔먼은 다른 것들과 구분되는 명확한 무언가를 집어내지 못하는 이름들을 진짜 비지칭어라고 보았다. 본고는 이에 덧붙여 하나의 이름이 일정한 문화권 에 속한 공동체에 의해 인식되고 통용되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76) 솔먼은 자신이 예로 든 불가능한 대상들이 둥근 사각형 같은 마이농식의 비일관적 대상과는 다르며 이 점에서 자신은 마이농과는 달리 결코 저급한(low-class) 존재론적 지위를 주장하 는 것이 아닌 양 이야기하고 있지만(솔먼(1998), p.288), 다음의 구절은 그런 본인의 주장과 는 달리, 솔먼이 사실은 일종의 존속주의(subsistentialism)에 기운 것은 아닌가라는 의심을 품게 만든다. “부정 존재문장, ‘노단-0이 솔먼보다 컸을 수 있다는 단칭명제는 존재하지 않는 다’는 참이다... 사실 이 부정 존재문장에 의해 표현된 명제는 존재했을 수가 없다. 그러나 어 떤 의미에서 문제의 명확한 명제가 있고(there is),그리고 그것은 참이다.” (Loc.cit, 강조는 필자의 것)

77) 캐플란(B.Caplan,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