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dak ada hasil yang ditemukan

III. 허구적 대상에 대한 혼합이론 /102

4. 혼합이론 2 /132

4.2. 허구내적 본질속성 /139

4.2.2. 퍼지적 본질 /143

4.2.2.2. 속성의 위계 /145

사실 본질적 속성집합이 있다면, 퍼지적 본질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이 집합이 제대로 설정되었다면 그 집합에 속하는 속성이 변화되었을 때에만 동일성이 깨지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동일한 사물이라 보면 될 것이 다. 그런데 우리는 인공품에 대해 본질적 속성을 설정하더라도 그것이 퍼지적 본질을 가질 수밖에 없음을 살펴보았다. 인공품의 경우 구성 성분들 가운데에 서 특권적 위치를 차지하는 속성, 유기체나 자연종에서처럼 자연과학을 통해 발견되는 근원적 실체를 설정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여기서는 단 하 나의 본질속성으로 환원되는 동일성도, 그렇다고 여러 속성들을 모두 동등하 게 취급하는 일반적인 인공품의 퍼지적 본질 이론도 허구적 대상의 존재론에 는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제 허구적 대상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허구내적) 속성집합을 다음과 같이 위계적으로 구분할 것을 제안한다.

I. 핵심(core) 속성들:

1. 실제 사람의 경우 그의 본질적 속성으로 인정되는 인물의 선천적 특성, 기질

ex) 홈즈의 ‘명민함’, 스메르쟈코프의 간질병 등

2. 위의 1에 배경적 요인이 작용하여 형성된 특성들: 사건전개가 시작되는 시점까지 결정되어 있는 초기값.

ex) 홈즈의 ‘탐정임’,‘영국인임’, ‘화학에 정통함’, 브론스키의 ‘미모의 청년장 교임’ 등

3. 주요 줄거리, 사건전개를 구성하는 속성들: 실제 상황에선 우연적인 사건 들이지만 이야기 전개에선 핵심적으로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사건과 관계된 속성.

ex) 안나의 ‘브론스키와의 만남’, 햄릿의 ‘폴로니우스를 죽임’, 그루센카의

‘드미트리 카라마조프의 사랑을 받아들임’ 등.

I

I. 준-핵심 속성들:

1. 줄거리, 사건전개에 관여하는 속성들: 줄거리 전체 구조에는 영향을 미치 지 못하지만 세부적인 줄거리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속성들

ex) <주홍색 연구> 사건 범인의, 이 작품 2부에서 묘사된 사건들에 연관된 속성

2. 해당 인물의 개성을 구성하는 속성들: 사건전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거나 그렇지 않은 속성들

ex) 홈즈의 ‘바이올린을 즐겨 연주함’, ‘파이프담배를 물고 다님’

3. 사건전개에 관여하지는 않지만 작품의 정체성을 구성한다고 판단되는 요 소들 중 해당 인물에 관련된 속성들198)

ex) <오만과 편견> 주인공이 가지는, 19세기 영국 중산층 가정의 생활상과 관련된 속성

III. 주변적 속성들:

1. 명시되어 있지만 작품의 정체성에 관련 없는 사소한 속성들 ex) 홈즈의 주소, 왓슨이 전쟁에서 얻은 상처의 위치

198) 압축적인 영화보다는 소설에서 확실히 사건과는 직접 관계 없는 부분에 대한 꽤 긴 묘사들 이 자주 등장한다. 홈즈가 사건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방의 벽지, 커튼, 앉아있는 소파의 천 질감 등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고 하자. 이런 자세한 묘사는 아마도 소설의 핍진감을 높이 기 위한 것이거나, 혹은 작가가 이러한 사물의 묘사에 흥미를 느끼고 있어서일 수 있다. 그런 묘사가 작품의 정체성을 이루는가에 대해선 그 부분이 가지는 미적 특성에 대한 판단 등을 비롯해 평론가들의 의견을 참고할 수 있다. 그러나 정체성에 관계되더라도 그것이 준-핵심 속성에 속하니만큼 약간씩의 변경은 가능하다.

2. 명시되진 않지만 함축되는 속성들 가운데 사소한 속성들 ex) 홈지언들이 추론해내는 홈즈에 관한 사소한 속성들

3. 명시되지 않으면서 함축도 되지 않는 속성들 ex) 홈즈의 ‘왼쪽 다리에 점이 두 개임’ 따위

허구적 대상의 속성들에 대한 이러한 상세한 명세화는 그 속성들이 대상의 정체성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위계를 형성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 위계는 열거한 순서로 표현되었다. 즉 위에 제시된 속성들일수록 변경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본질적 속성에 가까운 반면, 아래로 내려올수록 허용되 는 변화의 가능성이나 그 변화의 정도가 더 커진다는 것이 본고의 주장이다.

I-1과 I-2의 경우 변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것에서 변경된 인물은 원래의 허 구적 대상과는 다른 인물이 된다. 반면 준핵심 속성들은 그 각각은 변경 가능 하지만, 그 속성집합에 속하는 속성들을 상당량 갖추지 않으면 동일성이 훼손 되는 그러한 속성들이다. 각각이 변경가능하다는 점, 즉 각 속성들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 집합의 속성들은 핵심속성과 구분된다.

그런데 사건들이 인과적으로 얽혀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여기에 속하는 속성 중 하나의 변화는 관련된 다른 속성들의 변화를 동반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 의 정도가 크지 않을 때, 즉 수반되는 변화들을 감안하더라도 전체적 속성변 화가 그리 크지 않은 수준에 그치는 속성들이 이 집합에 속한다. 질적으로든 수적으로든, 준핵심 집합 속성들에서의 광범위한 변화는 동일성을 깨지만, 이 집합에 속하는 속성들 모두가 아닌 상당량을 인코드하면 동일성이 유지된다는 점에서 이것은 퍼지적 동일성, 퍼지적 본질을 의미하게 된다.199) 이러한 생각 이 기본적으로, 앞서 살펴본 인공품의 퍼지적 본질에 대한 폽스의 아이디어를 수용한 것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필자는 폽스와 달리 속성 집합들의 위계를 설정하였고, I에 해당하는 속성들의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변이를 허용하지 않 는다. 그렇더라도, 즉 핵심속성에서의 변경이 없더라도 준핵심 속성에서의 광

199) 앞서, 인공품의 퍼지적 본질을 논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충분한 정도의 유사성’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는 허구적 대상의 준핵심 속성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 된다. 즉, 이때의 동일성, 즉 엄밀히 표현했을 때 상대역 관계라 볼 수 있는 관계에서 이행성 은 허용되지 않는다. 원래의 준핵심 속성집합 A로부터 한 속성만 이탈을 한 A'은 원래의 대 상에 연결이 되지만 A'으로부터 하나의 이탈을 보이는 A"를 인코드하는 (따라서A'의 상대역 이 되는) 대상은 그것이 A' 관련 대상의 상대역이어서 자동적으로 A 관련 대상의 상대역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범위한 변화가 있다면 정체성이 유지될 수 없다는 점에서 여기까지의 속성들 이 퍼지적 본질을 구성하는 본질적 속성으로 간주될 것이다.

핵심 속성들 가운데에서도 I –3은 사소한 변이가 가능하다. 사소한 변화만 가능한 것은 여기 속하는 속성들은 작품의 뼈대를 구성하는 사건에 관련된 것 이어서 하나가 변화함으로써 해당 인물의 핵심 및 준-핵심 속성들의 집합 구 성원들에 중대한 변화가 결과하기 때문이다. 가령 햄릿이 폴로니우스를 죽이 지 않았더라면 이후의 줄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햄릿>과는 전혀 다른 방향 으로 흘러갔을 것이고 그 결과 <햄릿>의 핵심 속성도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 다. 주의할 것은 사소함의 정도가 핵심 속성 구성원에는 변화를 주지 않을 정 도여도, 준핵심 속성들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온다면 그 변이는 허용될 수 없 다는 것이다. 위에서 설명하였듯이 준핵심 속성들은 각각에서는 다를 수 있더 라도, 한꺼번에 여러 개의 속성들이 바뀐 경우는 정체성에 영향을 주기 때문 이다. 그러나 줄거리 전체에도, 또 준핵심 속성들에도 큰 변화를 일으키지 않 는 사소한 변화들이 가능할 것이다. 필자는 오델로의 질투를 유발한 데스데모 나의 소지품이 손수건이 아니었을 수 있고, 또 마르셀의 기억을 되살린 단서 가 마들레에느 과자가 아닌 다른 무엇이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두 개의 사건은 그 자체로는 빠질 수 없는 작품의 핵심 스토리를 구성하지만 이런 사 소한 변화는 가능할 것이다.

한편 II-1의 속성들은 그 변이가 이야기의 큰 흐름에는 변화를 줄 수 없지 만 줄거리 전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들이다. 인물의 어떤 결정이나 의도, 행동에 있어서의 변화도 고립되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 도 그렇듯이 모든 결정과 행동이 중요한 파장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연쇄 적인 변화가 있더라도 주요 사건의 발생에 있어서는 역할을 하지 못할 수 있 다. 이런 사건들을 ‘부수 사건’이라고 한다면 여기에서의 변화는 작품의 정체 성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인물의 핵심 속성 및 준핵심 속성에 서의 의미있는 변화는 잇따르지 않는다. 그것은 전체 이야기의 완성도, 플롯의 짜임새, 사건 전개의 사실감이나 심리적 동기가 가지는 설득력, 감상의 몰입도 등 미학적 특성에 영향을 줄 수는 있다. 사건들의 전개가 보다 긴밀하거나 보 다 압축적이거나, 그 반대일 수 있다. 범행의 동기는 보다 설득력이 있거나 그 러지 않을 수 있다. 아니면 부수 사건이 단순히 같은 정도의 의미와 설득력, 효과를 가진 다른 사건들로 대체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는 II-2, II-3의 속 성들도 마찬가지이다. 인물은 보다 개성 넘치고 생생하게 묘사되었거나 그 정 도가 덜할 수 있다. 그러나 반복하지만, 준핵심 속성들에서의 큰 변화는 용인

되지 않는다. 19세기 영국 가정의 일상 및 풍속의 자잘한 묘사 부분을 확 덜 어내고 다아시와 엘리자벳의 사랑 및 심리적 싸움만을 담은 그런 <오만과 편 견>은 가능하지 않고, 그런 엘리자벳도 가능하지 않다. 문학작품을 영화로 각 색한 많은 사례들이 준핵심 속성에서의 변화의 예들을 풍성하게 가지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영화판 각색에서 그 변경이 허용되는 것은 주변 속성들 및 준 핵심 속성들까지이다. 그렇지 않으면 영화가 묘사하는 허구적 대상은 같은 대 상으로 인정될 수 없고, 문제의 영화는 제목만 원작에서 차용한 전혀 다른 작 품이 될 것이다.200)

주의할 것은 겉보기에 사소해보여도 그것이 I, II의 속성들과 연관되어 있는 경우라면 이런 속성에서의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지는지 조심스럽게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본질적 속성과 연관이 되어 있더라도 그것의 중요한 변화와는 상관이 없는 속성들만이 III으로 분류될 수 있다. 그 외에 이 부류에 속하는 속 성들에서는 얼마든지 변화가 가능하다. 특히 III-3의 속성들은 위에서(4.2.1절) 제시한 [제약1-함축]과 [제약 2]를 따르는 한 감상자가 그 변이나 속성의 소 유 자체에 대해 자의적으로 결정해도 무방한 것들이다. 캐릭터가 가지는 사소 한 속성들에 대해서, 혹은 실제 인물에서는 중요할 수 있지만 이야기 속에서 는 그 이야기 안의 사건 전개에 무관한 특성들에 대해서 이야기는 별 정보를 주지 않을 것이다. 가령 허구에서 주인공의 키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하자. 그 렇다면 우리는 그의 키에 대해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 허구 속에 문제의 속성에 대한 언급이 나오더라도, 그것이 주인공의 개성을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지도, 허구 안의 어떤 사건에 인과적 영향력을 갖지도 않는다면 우리는 원 래 명시된 속성과 다른 속성을 그가 가졌을 수 있다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 다. 명시된 속성들로부터 함축되지만 사소한 속성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세부 사항들을 채워 넣는다. 그것들은 명시된 속성들로부터 자연스럽게 함축된 것일 수도 있고, 감상자의 편견이나 소망이

200) I, II 속성들에는 [제약1-함축]에 의해 함축되는 속성들도 포함됨에 유의하라. 그렇지 않으 면 다음과 같은 반론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가령 어떤 소설에 유형화된 성격의 인물 집단이 나온다고 해보자. 이들에 대해 준-핵심 속성에 해당하는 속성들 이외의 세부 사 항들은 주어지지 않는다. 가령 그들은 모두 중산층에 속물적 근성으로 가득차 있고 참견하기 를 좋아한다. 필자의 이론이 준-핵심 속성들에서의 일치를 근거로 이들을 모두 같은 캐릭터 로 취급해야 할 것인가? 그러나 [제약1-함축]은 이들이 진짜 사람이고, 따라서 공통성을 가 지고 있지만 다 다른 사람임을 자연스럽게 추론하게 해준다. 허구 안에 그들의 차이, 개성에 대한 묘사가 전혀 없더라도 그렇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떼를 지어 주인공을 공격하는 아무런 개성이 없이 똑같아 보이는 기계인간들의 더미를 떠올려 보자. 이들의 개별화는 어떻게 가능 할까?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