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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존재부정문장의 문제 /20

2. 전통적 해결 /29

2.1. 러셀의 해법 /29

러셀에게 존재부정문장은 자신의 기술이론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하나의 논 거로 작동한다. 철학 이론이 다양한 퍼즐들을 다루는 능력에 의해 시험될 수 있다고 할 때, 자신의 이론이 부정적 존재문장에 대해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는 점에서도 그 우위가 입증된다는 생각이다. 이 문제에 대한 러셀의 답변은 간단하다. (1α)에서 α에 해당하는 어구를 항상 한정기술구로 해석해서(즉 기술 구가 아닌 고유명이 이 자리에 와도 그것을 한정기술구의 축약된 형태로 본 다),

(R) - (∃x)(y)(∅(y) ≡ x=y)

라는 양화문장으로 번역하면 이 명제는 참으로 분석될 수 있다40)는 것이다.

사실 (∃x)(y)(∅(y) ≡ x=y), 즉 ‘어떤 것이 유일한 하나의 ∅한 대상이다’로 분석된 문장의 부정은 두 가지 독해를 가진다. 기술구와 부정어구가 범위 (scope)을 두고 경쟁을 하기 때문인데 기술구의 좁은 범위 해석에서는 (R), 즉

‘어떤 유일한 하나의 ∅한 대상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로 분석된다. 이것은 참이다. 반면 기술구의 넓은 범위 해석에서는 ‘어떤 것이 유일한 하나의 ∅한 대상인데,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로 해석되며41) 이는 따져볼 것도 없이 말이 되지 않으므로 러셀은 이를 고려에 넣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존재부정문장의 주어 자리에 나타나는 지칭표현은 ∅에 해당하는 술어로 환원되어 버리며 따 라서 어떤 종류의 대상에 대한 개입도 담지할 필요가 없게 된다. 역설이 사라 지는 것이다.42)

40) 원래의 분석은 - (∃x)[(y)(∅(y) ≡ x=y) ∧ ∃(y)(x=y)]이다. 그런데 ∃(y)(x=y)는 러셀과 화이트헤드의 <수학 원리>의 정리이므로 이것은 (R)와 동치라는 것이다(솔먼(1998)).

41) (∃x)[(y)(∅(y) ≡ x=y) ∧ - ∃(y)(x=y)]

42) 브락도 허구관련 고유명을 한정기술구로 바꾸고 이를 좁은 범위로 쓰인 기술구로 해석하면 존재부정문장을 참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러셀적 견해를 통해 실재론자들을 반박할 수 있다 고 생각하였다. 단 브락은 주어 자리에 빈이름이 오는 문장은 무조건 거짓으로 보자는 약정

한편 α를 러셀이 말한 엄격한 논리적 의미에서의 진정한 고유명으로 보게 되면, 다시 말해 일반명제를 표현하는 양화문장과 관련이 없고 진짜 개별자들 을 집어내는 이름으로 보게 되면 여기선 문제가 아예 일어나지 않게 된다. 진 정한 고유명이란 직접지(대면지)에 의한 것으로 이런 이름과 관련된 부정적 존 재문장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맞닥뜨리고 있는 걸 가리키면 서 이게 있느니 없느니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즉 진정한 고유명을 사용하 는 존재부정문장은 단언자체가 불가능해지므로 역설은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나 러셀의 해법은 중요한 반대들에 부딪친다. 무엇보다도 러셀의 해법 은 고유명에 대해 오늘날 대체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론인 기술론을 전제하 고 있다. 고유명에 대한 기술론은 고유명이 사실상 한정기술구의 생략된 표현 으로,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란 이름은 ‘기원전 469년에 태어났고 이러저러한 이론을 주장하였으며 결국 독배를 마시고 죽은...,,,’ 등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고유명이 기술로 이해될 수 있는가? 오 늘날 많은 옹호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직접지칭이론에 따르면, 고유명, 지표어, 지시사와 자연종 용어들은 기술로 이해될 수 없다. 기술론에 대한 이 이론의 비판은 다음으로 요약된다. 당신이 어떤 방식으로든 고유명의 지칭체를 결정 하는 기술들을 얻게 된다 하더라도, 내가 이런 기술들의 상당한 숫자가 참이 되지 않는 누군가를 문제의 이름으로써 지칭하는 것이 가능하며, 또한 누군가 가 이런 기술들에 합당하면서도 사실은 내가 사용한 이름의 지칭체가 아니라 는 것도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크립키가 사용한 괴델-슈미트의 예를 보라. 알려진 바와는 달리 실제로는 불완전성의 정리를 완성한 사람이 괴델이 아닌 그의 동료 슈미트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괴델’이라는 이름으로써 슈미트 를 지칭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기술론에 따르면 ‘괴델’의 지칭체는 ‘산수의 불 완전성을 발견한 그 사람’이라는 기술을 만족시키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에 슈미트가 되어야 한다. 이 가정된 상황에서 ‘괴델’은 문제의 기술을 만족시키 지는 못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괴델’이란 이름의 명명식과 연관되어 있는 누 군가-원래의 괴델-를 지칭한다. 사실 이런 상황을 가정할 수 있다는 것 자체 가 기술론의 잘못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괴델’이란 이름은 곧 산수의 불완전성의 발견자와 동의어이므로 이 이름이 그러한 사람을 가리키지 않는 상황을 기술론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 정적 상황이 정말로 참일 수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43) 이런 비판을 고려할 때,

을 먼저 제시하였다(브락(2002), pp.17-18).

43) 이런 비판이 도넬란(1970)에도 나온다. 이 고전적인 논문에서 고유명을 기술과 동일시하는

위에서 제시된 러셀의 해법은 기술적 이름들에만 해당하지 고유명이나 나머지 비기술적 용어들에는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한편 한정 기술구가 전제들에 대해 가지는 관계에 대한 문제도 있다. 한정 기술구는 그것이 지칭하는 바의 존재를 전제하긴 하되 주장하지 않는다는 주 장이 있어왔다.44) 이는 앞서 한정기술구가 ‘어떤 것이 유일한 하나의 ∅한 대 상이다’로 번역됨으로써 결국 그러한 대상이 있음을 함축하게 된다(따라서 존 재부정문장은 그러한 존재에 대한 주장을 철회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는 점 을 비판하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에선, 전제 실패의 경우 우리는 다시 진리치 를 따질 수 없는 진술을 가지게 되어 (1α)가 직관적으로 참값을 가진다는 사 실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들보다 더 강력하게 주어질 수 있는 러셀에 대한 비판은 그것이 소위 ‘사용 요건’을 준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러셀의 전략은 문법적 인 형태로 볼 때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는 표현들을 사실상의 술어로 환원시킴 으로써 역설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즉 (1α)가 말하는 것이 참이라면 여기에 나 오는 지칭 표현은 진짜 사용을 갖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 이 문장에서 지 칭의 대상이 없다고 말하고 있으므로, 그렇다면 그에 대해 어떤 참인 것도 말 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러셀은 존재부정문장의 용어들이 사용된다기 보다는 언급된다고, 지칭의 도구라기보다는 양화 구성물의 약어로 기능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존재부정문장에서의 용어들의 발생이 전형적인 사용으 로 간주되는 용어들의 발생들과 같은 표면(prima facie) 테스트를 통과한다는 사실, 또한 우리가 용어-탄력성 테스트라 부르는 것 역시 통과한다는 사실에 서 여기서의 용어들이 언급이 아니라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시도에 대한 반박이 상세히 개진되었다. 고유명을 기술에 대한 단순한 대체물로 본 러셀의 주장 뿐 아니라 스트로슨이나 써얼의 보다 느슨한 관념, 즉 상당한 수의 기술을 만족시키는 대상을 고유명의 지칭체로 보는 관점에도 대처하기 위해 매우 정교한 반례들이 제시되어 있 다(도넬란(1970),p.343 및 pp.345-355). 크립키의 예는 그의 <이름과 필연>(1972, 번역본 (1986), pp.98-99)에 나온다. ‘괴델은, 만일 실존했다면 산수의 불완전성을 정리한 사람이다’

란 문장이 필연적 진리를 표현하지 않는다는 크립키의 양상적 논증은 솔먼(1981, 번역본 (2000)), pp.54-56 참조.

44) 예를 들어 스트로슨의 주장이 그렇다. 이 주장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현재 프랑스의 왕은 현명하다

현재 프랑스의 왕은 현명하지 않다 현재 프랑스의 왕은 존재한다

이 세 문장의 관계에 대해, 마지막의 존재문장이 참이어야 앞의 두 문장이 참이거나 거짓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한정기술구를 포함한 서술문은 이 존재문장을 전제 혹은 가정하고 있지, 그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정대현 편(1987), p22).

전자는 존재부정문장이 ‘클린턴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라는 문장의 표면적 문법 형식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고 후자는 용어가 정말로 사용되고 있는 중이 라면, 그것 혹은 그 전방조응적 대리자(anaphoric proxy)가 주변 문맥 안에서 역시 사용을 가져야 한다는 요구 조건을 존재부정문장이 충족시킨다는 것이 다. 따라서 이 문장이 일으키는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시도들은 이 점을 존중 할 것이 요구된다.45)

존재부정문장의 용어들이 탄력의 특성을 보여준다는 것을 납득하기란 어렵 지 않다. 존재부정문장은 일상적인 주어-술어 문장들처럼 분명히 사용의 문맥 안에서 그 이름을 포함하는 다른 문장들의 출현과 함께 나타난다. 다음의 예 문에 나오는 ‘머피 브라운’과 ‘그녀’의 발생들을 보라.

머피 브라운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캔디스 버겐에 의해 연기되는 TV 캐릭터다. 머피는 금발의 미디어 앵커여신이고 독설적이고 지금은 반항적으로 미혼인 마돈나이다.

실제로, 우리는 더 강하게, 부정적 존재문장은 이런 종류의 연합을 만드는 데 특히 적합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부정적 존재문장은 자주 그 문장 안에서 말해진 바를 명확히 하고 설명하고 확대하는 그런 술어들의 열에서 시작점이 된다. 비존재에도 불구하고 머피가 악명 높은 데 대한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독자는 바로 다음 문장에서 정보를 제공받는다. "머피는 금발의 미디어 앵커 여신이고,..." 이처럼 명백한 용어 탄력성을 보이는 용어들이 실제로 사용되 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이상의 비판들을 고려할 때 존재부정문장에 대한 러셀의 해법을 받아들이기 는 힘들어 보인다.

2.2 의미론적-상승, 내포적-상승 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