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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농주의와 지향적 대상 /103

III. 허구적 대상에 대한 혼합이론 /102

1. 속성집합과 지시체 /102

1.1. 마이농주의와 지향적 대상 /103

속성집합과 허구적 대상을 동일시하는 허구적 실재론의 단초를 제공한 사람 은 바로 마이농이다. ‘존재하지는 않지만 있는 대상’에 대한 마이농의 유명한 주장은 브렌타노가 지향적 대상을 고려하면서 부딪쳤던 문제에 대한 해명으로 여겨진다. 그 문제란 모든 생각에서, 즉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할 때조 차 우리가 그에 관해 생각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논제에 관한 것이다. 브렌타 노와 프레게는 그런 지향적 대상들이 정신적 대상들이라는 제안을 거부했다.

예를 들어 페가수스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의 페가수스 관념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달에 대해 생각할 때 달 관념을 생각하고 있지 않듯이.142) 페가수스 관념은 프레게가 주로 구체물로써 설명한 뜻과 지 시체의 구분에서 전자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이 문제에 대해 마이농은 모든 지향적 상태가 대상을 향한다고 답함으로써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허용했다.

반면, 후설은 모든 지향적 상태가 내용을 가지지만 모든 상태가 대상을 가지 지는 않는다고 하면서 ‘노에마noema’ 개념을 제안했다. 프레게의 이중적 의미 론은 지향성의 문제에 대한 이 두 해결이 양립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다.

후설에게 비존재대상에 대한 생각들이 대상을 가지지 않는데도 그 생각이 무언가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참인 이유는 노에마-세계로 향하는 우리 의 마음을 조직하고 방향짓는-가 있기 때문이다.143) 노에마가 프레게적인 뜻

142) 잘타(1988), p.105

143) 후설의 노에마 개념은 프레게의 뜻 개념보다 인식주관의 지향적 상태에 더 많이 관계되어 있다. “K가 페가수스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를 참이 되게 하는 마음 상태는 신화 속에서 페 가수스에게 부여되지 않은 속성들과 연관된 내용에 의해 특성화될 수도 있는데 이때 이러한 내용이 곧 노에마이기 때문이다. 잘타는 푈스달을 인용해 노에마 개념의 특성을 [(1) 지향적 대상이다. 프레게의 뜻처럼 그것은 내포적 문맥에 관련된 실패를 설명하는 데 있어 핵심적 역할을 한다, (2) 두 요소를 가진다 a) 같은 대상을 가지는 모든 행위에 공통인 요소(후설은 이것을 노에마틱 Sinn이라 부른다), b) 행위타입(감지, 기억, 상상 등)에 따라 달라지는 요소,

에 가까운 걸로 생각될 때 후설이 주장하는 지향성은 이 뜻을 향하는 것으로, 대상을 가지지 않는 지향적 상태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지시체는 반드시 요구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문장 이해에 뜻뿐 아니라 지시체가 기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명박’ 같은 이름이 등장하는 지향적 상태에 대한 문장 만큼 이나 ‘페가수스’ 같은 이름이 등장하는 지향적 상태에 대한 문장도 그 진리조 건에는 지시체가 관여하는 것이다. 즉 지향적 문맥의 논리학을 단순화시키기 위해서나 문장들에 나타나는 함축 및 전방조응 관계 등에 대한 이해를 위해 지시체 개념이 요구된다고 할 때, 모든 상태가 대상을 가지지는 않는다는 후 설의 주장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이제 마이농의 생각을 후설의 주장과 화 해시켜

[ (a) 이름 ‘페가수스’는 허구적 대상을 지칭한다, (b) 지향적 상태는 그 내용으로 노에마를 가짐으로 인해 그런 대상으로 향해있다 ]

라는 도식을 얻을 수 있다. 추상적 대상에도 프레게적인 이중틀을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적용에서 그 이름의 지시체와 뜻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몰리의 ‘결정자’ 개념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144) 러셀 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던 몰리는 <대상을 결정하는 속성>이라는 새로운 원 초적 개념을 도입하여 마이농적 형이상학의 본격적 전개를 시도한다. 이제 그 것들을 결정하는 속성들로 개별화되는 추상적 대상들의 영역이 설정된다. 하 나의 대상은 속성에 의해 결정되지만 그것이 그 속성을 만족시킬 필요는 없 다. ‘날개없는 두발짐승임’이라는 결정자(속성)는 추상적이고 명확한 ‘날개없는 두발짐승’이라는 개념을 결정하고 거의 모든 인간에 의해 만족된다. 반면 ‘둥 근 사각형임’이란 결정자는 추상적으로 명확한 ‘둥근 사각형’을 결정하지만 어 떤 대상에 의해서도 만족되지 않는다. 특정한 결정자의 결정된 바 (determinate)는 그 결정자를 실제로 소유할 필요는 없다. 둥근 사각형은 실제 로 둥글지 않고 사각형도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정신적 상태에 방향을 주는 어떤 추상적 개체가 있고 그 개체의 정체성은 결정자들과 긴밀하 게 연결된다는 것이다. 잘타는 후설과 몰리를 따라 여기서 ‘결정자의 패턴’이 라는 말을 쓰고 있다. 따라서 그는 허구적 대상을 일정한 속성패턴과 동일시 하게 된다. 허구적 대상이 무엇과 동일시되느냐는 이후 우리가 상론할 바이고,

(3) 노에마틱 Sinn은 의식이 그것으로 인해 대상에 연결되는 바이다, ...(5) 하나의 노에마에 는 하나의 대상이 상응한다, (6) 하나의 동일한 대상에 상응하는 다양한 노에마틱 Sinn들이 있을 수 있다] 등 12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노에마는 추상적 개체로 우리의 감각을 통해 인지되는 것이 아니라 현상적 반성을 통해 알려지는 것이다.

144) 잘타(1988), pp.108-112

여기서는 우선, 허구적 대상이 속한 추상적 대상 일반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자 한다. 그것이 속성들이 이루어내는 패턴인지 아니면 속성들이 모인 무리, 집합으로 간주되어야 하는지는 좀더 생각해볼 문제이다.

몰리의 결정자 개념이 속성 개념에 상응한다고 가정할 때, 몰리의 결정된바 개념은 추상적 대상 개념에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모든 종류의 속성 그룹에 대하여 그 그룹 안의 바로 그 속성들에 연결된 추상적 대상이 있게 된 다. 이러한 생각이 바로 마이농주의의 핵심이다. 그런데 현재의 관심에 있어 중요한 것은 이러한 추상적 대상이 그 자체 프레게적 이중 틀에서 뜻으로도 지시체로도 기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지향적 문맥과 연결시켜 설명하 자면, 하나의 추상적 대상은 지향적 상태를 고유하게 특성화하는 내용이며 다 른 추상적 대상은 이런 내용들이 그에 관한 바인 그런 대상으로, 연관된 속성 들이 부착되어 있는 하나의 초점이다.145) 지향적 상태의 내용이란 말은 누군 가의 마음의 일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단순히 다른 게 아닌 바로 그 내용을 가지는 데에 책임 있는, 상태의 주요 특성을 객관화하고 있는 것이 다. 그러나 이 내용이란 오류가능하다. 어떤 지향적 상태의 내용이 문제의 대 상을 제대로 특성화하지 않는 속성들을 포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렇더라도 우리의 정신적 상태는 바로 이 대상에 대한 것이다. 이때 지향적 상 태의 내용과 대상 간의 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상론은 피하기로 하자. 분명 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관계가 전자가 후자를 결정하는 관계는 아니라는 것 이다. 방금 지적했듯이 내용 자체는 오류가 가능하므로 어떤 지향적 상태가 무엇에 관한 것인지를 철학적으로 결정하기 위해 기댈 만한 바가 못 된다. 구 체물에 대한 지각의 경우 참고할 수 있는 것은 그 상태를 일으킨 문맥적, 역 사적 사실들이다. 지각적 상태의 근원이 되는 사실들이 바로 그 상태가 그 대 상에 대한 것, 혹은 향해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참이게 만든다.146) 여기서 는 ‘홈즈’와 같은 허구적 이름의 경우, 그 뜻과 지시체 모두 추상적 대상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로써 허구적 대상과 속성집합을 동일시하는 마이 농주의가 ‘홈즈’란 이름에 대한 내포적 사용으로 이어질 필요가 없게 된다. 이 름과 연결된 속성집합은 흔히 이름의 뜻이나 의미로서 기능한다. 이로부터 허

145) 잘타(1988), p.114

146) 지향적 상태의 내용과 대상의 구분에 대한 현재의 논의가 언어적 표현의 관점에서는 모든 종류의 명사에 대해 뜻과 지시체를 설정하는 이중적 의미론으로 이해될 수 있겠다. 지향적 상태의 내용이 그 대상을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러한 의미론을 택하면서도 고유명에 대 해선 지시체를 지정하는 기능으로서의 뜻을 주장하는 프레게주의를 거부했던 본고의 입장에 상응한다.

구적 이름에 딸린 속성집합도 단지 의미로 취급하는 내포적 사용을 하게 되면 후설의 노에마 개념이 지향성 문제를 해결하면서 보여준 한계를 그대로 지니 게 된다. 무엇보다 후설은 대상없는 지향적 상태를 인정하면서 페가수스에 대 한 생각을 그러한 예로 보았는데, 이런 입장은 애초에 마이농주의가 지지한다 고 생각되었던 허구적 대상의 실재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앞서 지적한 바대 로 후설과 대비되는 마이농주의의 주장은 모든 지향적 상태가 대상을 가진다 는 것이었다.

1.2. de re 체하기

보통의 이름에서 속성집합이 뜻이나 사고 등 내포적 기능을 가진다는 점 뿐 아니라 허구를 구성하는 문장들이 ‘코난 도일의 소설 속에서’, ‘셰익스피어의 연극 안에서’ 같은 어구가 생략된147) 사실상의 내포문맥을 형성한다는 주장 또한 허구적 이름의 내포적 사용을 지지하는 강력한 논거를 시사하는 것 같 다. 사고이론에서는 이러한 어구들이 내포문맥을 구성하며 따라서 그 문맥 안 의 이름들이 간접적 지시체, 즉 일상적 맥락에서의 뜻을 취한다고 명시적으로 주장한다.148) 그러나 본고는 허구를 창작하는 과정 중에 ‘홈즈’란 이름을 사용 하는 경우, 즉 아직 ‘홈즈’의 지시체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코난 도일이 이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149)를 제외하고는 모든 맥락에서 ‘홈즈’가 내포적 문

147) 우즈는 허구에 대한 나이브한 이론들 중 하나인 생략-논제, 즉 허구에 등장하는 문장들을 문장의 기원이나 출처를 기록하는 문장에 대한 생략으로 이해하는 관점이 가진 문제점을 비 판한 바 있다(우즈(1974),pp35-36).

생략-논제에서 (1)은 (2)의 생략이다.

(1) 홈즈는 런던에 살았다.

(2) ‘홈즈는 런던에 살았다’가 L의 일원이다.

여기서 L은 영어 허구작품들로 된 연쇄의 적절한 일원이다. (1)이 (2)를 't-의미’한다고 하자.

‘t-의미’는 그로 인해 문장들이 서로 번역되는 그러한 의미로 이때 번역은 과격하게 문장-대 -문장 실행으로 간주된다. 일반적으로 문장 ϐ는 두가지 환경 하에서 문장 Ψ의 생략이다. 하 나는 ϕ와 Ψ가 같은 문장 타입의 비본질적으로 (글자적으로orthographically) 변화된 토큰들 일 때다. ϕ는 Ψ보다 글자적으로 더 얇은 토큰이다. 다른 하나의 환경은 ϕ가 Ψ와 같은 것을 t-의미할 때이다. 이때 ϕ와 Ψ는 다른 타입의 토큰인게 가능하다. 대신 ϕ는 Ψ의 관련적으로 줄여진 버전이어야 한다. 인용을 문맥으로 보아 (1)이 (2)안에 발생한다고 하면, 생략논제는 다음을 함축하게 된다.

(3) ‘‘홈즈는 런던에 살았다’가 L의 일원이다’가 L의 일원이다.

그러나 (3)은 거짓이다.

148) 이때 허구에 대한 우리의 감정반응은 작품 속 문장이 가지는 언어적 의미, 다시 말해 그것 이 전달하는 생각, 사고에 대해 일어난다는 것이 사고이론의 핵심 주장이다.

149) ‘홈즈’의 명명식과 이 과정 중의 이름 사용이 일으키는 문제에 대해 II장 2.2.3절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