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존재부정문장의 문제 /20
3. 화용론적 해결 /37
3.2. 지칭의 메카니즘 /40
3.2.2. 존재부정 문장의 개별화 /42
(5)-(9)를 포함해, 빈이름이 들어간 문장들의 개별화56)를 위하여 제시된 나 름의 해결책들 가운데 많은 부분이 제시의 방식(mode of presentation), 개념 화(conception), 기술 집합 등, 프레게의 뜻 관념에 유사한 도구들을 끌어들이 는 방향에 서있다. 앞서 논의한 혼합관점이 대표적인 경우이고, 스테커와 브라 운, 아담스와 디트리히(F.Adams & L.A.Dietrich), 에버렛(A.Everett), 테일러 (K.Taylor)등이 여기에 해당한다.57) 스테커는 빈이름을 사용하는 문장들이 각 기 다른 이름을 가지고 똑같은 불완전한 명제를 포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54) 브라운(1993), p.464, 데이비스(2005), p.249 55) 아담스와 디트리히(2004)
56) 본장의 관심인 존재부정문장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빈이름이 포함된 문장들의 경우에도 아래 의 해법이 적용될 수 있다.
57) 아담스,풀러,스테커(1997), 에버렛(2000), 테일러(2000), 아담스와 디트리히(2004), 브라운 (2005). 이들 가운데 브라운은 허구적 개체는 추상적 존재자(abstract entity)로 생각할 수 있다고 보았다. 허구적 이름의 사용에 대해 브라운(2005), p.612이하를 보라.
때 다른 용어를 사용해서 같은 명제를 허구적으로 단언한다는 것은 결국 다른 일을 하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여기서 스테커는 ‘제시의 방식’ 개념을 제 안하기 위해 흥미로운 논증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반실재론에서 허구문장을 이해하면서 생기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코난도일의 셜록 홈즈는 스파이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문장의 의미를 생각 해보자. 이는 코난도일의 홈즈 이야기에서 다음이 참임을 의미한다(아래에서 x 는 빠진 것, 즉 지칭체가 없는 주어를 대신하는 플레이스홀더이다).
(10) x가 스파이를 찾아냈다는 어떤 명제도 (허구적으로) 단언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는 다음을 함축한다.
(11) 누구도 스파이를 찾아냈다고 (허구적으로) 단언된 적이 없다, 즉 아무 도 스파이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허구적으로) 단언되었다.
(10)이 (11)을 함축한다는 것은 (10)의 x를 일상어 ‘누군가’로 대치해보면 쉽게 이해된다. 스테커는 반실재론자이므로 ‘홈즈’가 아무것도 지칭하지 못한 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주어자리에 x를 놓은 것이다. 물론 (11)은 결코 참 이 아니다. 도일의 소설 속에서 홈즈는 스파이랑 관련이 없지만 그의 조수인 왓슨은 영국 군인으로 인도에서 활동한 적이 있고 따라서 스파이를 찾아냈다 는 스토리가 <홈즈> 시리즈 속에 포함되었을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코난도 일의 셜록 홈즈는 나찌 스파이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결코 (11)과 같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런 이상한 추론을 막기 위해 스테커는 (불완전한) 명제 뿐 아니라 그 명제의 제시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즉 코난도일은 단 순히 x가 스파이를 찾아냈다는 어떤 명제도 (허구적으로) 단언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명제를, 다른 이름이 아닌 ‘셜록 홈즈’란 이름을 쓰면서 단언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11)로의 추론이 차단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고 는 (10)의 ‘x’ 대신 ‘홈즈’의 지칭체가 들어간다면 (11)로의 연결이 끊긴다는 것이 더 간단하게 설명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58)
한편 브라운은 빈이름이 포함된 결함있는(gappy) 명제를 믿는 방식으로서의
58) 다음의 추론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명확하다. “베컴이 스파이를 찾아냈다는 어떤 명제도 (허 구적으로) 단언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아무도 스파이를 찾아냈다고 (허구적으로) 단언된 적이 없다, 즉 아무도 스파이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허구적으로) 단언되었다.”
고유한 심리상태에 호소할 것을 제안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____ , 비존 재>라는 똑같은 결함있는 명제를 믿더라도, 그것을 “홈즈의 방식”으로 믿을 수도 있고 “왓슨의 방식”으로 또는 “산타클로스의 방식”으로 믿을 수도 있다.
즉 똑같은 명제를 믿으면서도 서로 다른 심리상태를 가지므로, (3)과 (5)가 다 른 명제를 표현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홈즈의 방식”으 로 믿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브라운 자신도 이 부분을 따옴 표를 써서 표현하고 있지만, 이런 심리상태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 서는 전혀 설명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필자가 보기에는 각각의 문장을 다른 방식으로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각각의 문장이 다른 명제를 표현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는, 설명되어야 할 상황과 동일한 것을 그냥 동어반복하고 있는 것이 다. 아담스와 디트리히 또한 빈이름이 다른 고유명들처럼 관련된 기술들로 이 루어진 집합인 지식(lore)을 거느리며 이러한 지식에 의존해서 (5)에서 (9)까 지의 각 문장들이 말하는 바 사이의 동일성과 차별성을 다룰 수 있다고 주장 한다.
이런 접근들과 대조적으로 도넬란은 지칭이 일어나는 메카니즘에만 의존해 서 존재부정문장들 간의 직관적인 동일성을 설명한다는 것을 앞서 보았다. 존 재부정문장들 간의 차이에 대해서도 도넬란은 같은 방식으로 대답한다. 사실 (5)와 (6)이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다는 직관은 스테커나 아담스와 디트리히 식으로 이름과 관련된 기술집합의 동일성에 의해 설명될 수 있겠지만 (7)과 (8)에 대해서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될 수 없다. 지킬과 하이드는 각자 완전히 다른 지식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7)과 (8)은 물론 (5)와 (6)이 그런 것 만큼 똑같은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적어도 지킬과 하이드 가 동일인임을 아는 사람들에게 두 문장은 무언가 하나의 대상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생각은 도넬란 식으로 지칭의 메카니즘을 동원 하는 방식으로 해명될 수밖에 없다.
에버렛은 ‘얇은’ 관함 개념을 통해 지킬이나 하이드 둘다 어떤 대상도 지칭 하지 않으면서도 (7)과 (8)이 같은 것에 관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을 설명하려 고 한다. 그는 이름과 연관된 기술집합과 이름 사용의 역사적 연결을 자신의 지칭적 틀이라는 개념 안에 통합함으로써 존재부정문장의 개별화에 답하고 있 다. 그는 이름을 도입하는 근거가 되는 관념이 지칭체를 가지지 않더라도 각 이름 사용은 근거관념을 공유하거나 아니면 지칭적 틀 자체를 공유할 수 있고 이를 지칭체를 공유하는 ‘두꺼운’ 의미에서의 관함과 구분되는 ‘얇은’ 의미에서 같은 것에 관한 경우라고 부른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스티븐슨의 기술과 이
야기에 근거해서 형성된 지킬-하이드-관념을 공유하므로 (7)과 (8)은 얇은 의 미에서 같은 것에 관한 발화로 인정된다.
앞서 언급한 아담스와 디트리히나 스테커 역시 기술집합 뿐 아니라 이름 사 용의 인과적 역사를 함께 참조할 것을 주장하였고, 테일러도 지칭주의의 요소 를 끌여들여 (5)와 (7)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공통지칭 메카니즘이 빈이름 의 경우에도 해당되어 (5)(6)의 용어들은 (7)(8)과는 상관없는 공통지칭 메카 니즘에 의해 구획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산타클로스’와 ‘Père Noël’이 등장하 는 각각의 문장이 왜 지킬과 하이드가 나오는 문장들과는 다른 명제를 표현하 는 것처럼 보이느냐는 질문에 대해, 전자와 후자가 각기 다른 공통지칭 메카 니즘을 따르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것으로는 만족스럽 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그 공통지칭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일 텐데, 이 부분에 대해 테일러는 거의 아무런 설명도 내놓지 않는다. 어쨌든 그런 공통 지칭이 일어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문제이다. 그런 공통지칭이 실 제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왜 용어가 가지는 지칭에서의 이러한 차이가 의미 론적 차이로 반영되지 않고 화용론적 차이에 그치고 마는 것일까? 이는 공통 지칭 메카니즘 대신 단절구역의 역사적 연관성을 이야기한 도넬란의 설명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테일러는 이 문제에 대해, 빈이름이 사용된 발화가 관련된 명제를 엄밀히 문자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단지 화용론적으로 함축하는 것만도 아니라고 답하고 있다. 즉 빈이름이 사용됨으로 인해 이 발화가 의미 론상 유의미한 명제를 산출하진 못하지만 단지 함축보다는 발화에 단단히 묶 여 있는 명제와 관련된다는 것이다.59) 그러나 테일러의 이러한 응수는 오히려, 지금까지 살펴본 화용론적 접근들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왜 우리가 (5)(6)(7)(8) 각각의 차이를 단지 화용론적 차 이로 보아야 하느냐는 문제이다. 아니 애초에 이 문장들이 표면적으로 전달하 는 바를 넘어서 무언가를 (단지) 함축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문장들인 가? 또 원래의 문장이 무의미한 문장이라면 어떻게 그러한 무의미한 문장에 함축이 있을 수 있는가?
요점은, 존재부정문장에 대해 진리치 평가가 가능하다는 생각이나 그러한
59) 테일러는 이러한 관련이, 문맥 안의 발화에 의해 엄밀하게 말해진 바를 구성하는 포화 (saturation)로서의 1차 화용론 과정과 1차과정에 의한 명제적 출력을 입력으로 간주해서 더 이상의 함축을 출력으로 내놓는 2차 화용론 과정 간의 구분에 대한 르카나티의 이론을 보완 한 1.5차 화용론 과정의 적용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는 명제가 1.5차 화용론 과정의 적용에 의해 발화와 연결된다면 발화가 그 명제를 가-표현(pseudo-express)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