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재가 요양보호사의 돌봄노동 경험과 특성
하는 노인의 경우 노인과 가족에 대한 업무를 명확히 구분해서 가사노동을 하는 것 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시설 요양보호사와 비교해서 방문 요양보호사가 하는 업무에는 좀 더 다양한 차원 의 업무가 포함하고, 업무 경계가 명확하지 않았다. 시설은 노인에 대한 신체적 케어 가 초점이고, 인력 기준이나 시설의 일정 진행 상 그 이상의 일을 하기가 어려운 데 반해 재가는 1대1 돌봄을 바탕으로 노인의 개인적인 욕구에 부응하는 것이 중요했 다. 노인의 요구는 신체활동이나 생활지원활동 등의 다양한 영역은 물론, 가족의 욕 구 충족까지 포함하여 요양보호사의 업무 범위가 과도하게 확대되었다.
이 어르신이 어떻다는 걸 마음도 읽을 줄 알아야하는데 그 마음을 빨리 읽지를 못하 고, 파악을 못 하면 서로가 부딪히는 게 많을 것 아냐? 이 어르신이 어떻다는 걸 모 르니까. 그런 점에서 틀린 것 같은데. (김영숙, 재가요양보호사)
노인이 겪는 질환에 대한 이해도 적절한 돌봄을 제공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했다.
예를 들어 치매 환자들이 인지기능의 문제로 인해서 했던 말을 또 하는 등의 현상을 이해하고, 치매환자를 대하는 방법은 교육을 받지 않고서는 알 수 없었다. 정선미가 관리하는 대상자 중 한 명은 치매가 심한데 보호자인 딸은 결벽증이 심했다. 치매가 있는 어머니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어서 매일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 에 관리자들은 요양보호사는 물론 가족도 노인 질환에 대해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 분이 치매가 있으니까 종이 휴지를 막 이불 속 아무데나 다 집어 넣어놔요. 결 벽증 있는 보호자가 미쳐버리죠. 이불 다 꺼내서 빨아버리고. 얼마나 미치는 행동이에 요? 그 집은, 가면은 싸움할 때는 무서워서 옆에 있을 수가 없어요. 그렇게 싸워서 그래서 보호자 교육을 먼저 하는 거예요. (중략) 엄마는 처음 한 얘기다. 그러면은 보호자는 처음 한 것처럼 받아줘야 된다. 그러면 그걸 어떻게 받아? 그러면 다른 방 법을 써서 그 반복적인 행동을 다른 반복으로 이렇게 해서 하도록 해야 되는 것 중 에 하나가 이런 프로그램이나 이런 것들이 그런 반복적인 행동이 교정이 되는 거다.
(정선미, 재가관리자)
요양보호사는 여러 수혜자를 돌보는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 는 방법을 배운다. 그래서 김정희는 만성질환으로 아픈 아버지를 고령인 어머니가 혼 자서 감당하는 것보다는 요양보호사와 같이 응급상황을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어서 안심했다. 오랫동안 아팠던 부모를 돌본 가족의 경우 자신의 가 족이 앓고 있는 질환과 그 증상에 대한 대처방법을 잘 알기도 하지만, 요양보호사가 다양한 경험으로 여러 상황에 대한 대비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교육을 통해서 노인들의 신체적인 돌봄에 대해서 배우기 때문에 돌봄에 필요한 다 양한 지식과 기술들도 습득했다. 휠체어나 전동 침대 등의 기구 사용법과 같은 간단 한 지식부터, 어떻게 해야 다치지 않고 노인을 이동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노하우를 배우기 때문에 교육을 받지 않은 가족들보다는 지식이 풍부했다.
4장 재가 요양보호사의 돌봄노동 경험과 특성
2) 감정적 거리 유지와 객관적인 돌봄
가족 돌봄 제공자와 중요한 차이는 요양보호사와 노인의 관계에서 존재하는 ‘감정 적 거리’ 때문에 정서적인 돌봄을 제공하는 데 있어서 일관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다 는 점이다. 돌봄노동자와 수혜자의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는 유급 돌봄의 취약 점으로, 돌봄관계의 상호성이 약화된다는 지적도 있지만(Graham, 1983; Strazdins &
Broom, 2004), 요양보호사의 돌봄에서 사회적 거리는 가족의 돌봄보다 더 좋은 돌봄 을 제공할 수 있는 기초로 작용했다. 가족들은 노인을 돌보면서 다양한 감정을 경험 하고,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노인과 심리적 갈등을 빈번하게 겪었다.61) 부모가 자 식을 양육하면서 보였던 태도나 평상시 가족 관계의 질이 수혜자와 가족들의 돌봄 관계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자녀나 배우자가 의무감이나 경제적 필요에 의해서 가족 을 돌보도록 강요받을 때 가족구성원 사이에서 장기간의 갈등이 이어질 수 있다 (Stone, 2001: 163). 가족간 불화가 오래 지속되면 가족들은 노인을 돌봐야할 책임을 방관하고, 노인을 자주 방임하기도 했다. 가족 내에서 돌봄을 받아야 하는 노인의 욕 구는 묵살되는 것이다. 반면 요양보호사는 완전한 타인이기 때문에 노인과의 관계에 서 나타나는 부정적인 감정이 영향을 적게 미쳤다.
어르신을 대하는 자세라고 할까요? 그런 마음가짐. 그게 조금 다르죠. 가족들은 제가 이렇게 일하면서 주위에 본, 느낀 바로는 가족들은 혈연이기 때문에 그냥 그러 려니 해요. 뭐든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당연히 그러니까 뭐 늙어가는 사람은 다 그렇다. (중략) 이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나에 따라서 가족들 태도도 다르다는 거죠.
가족들이 정말 이 사람이 잘 살아서, 아름답게 살았을 때와 이 사람이 어떤 안 좋은 모습으로 살았을 때 거기에 따라서 가족들이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다르다는 거죠.
우리 엄마가 예전에 잘 하고 살았고, 우리한테 잘 하고 살았으니까 불쌍하니까 우리 아버지를 이렇게 이렇게 하고, 아닐 경우에는 흔히 말하는 찬밥 신세. 그냥 ‘우리 엄 마가 해준 게 뭐 있어? 우리 아버지가 해준 게 뭐 있어?’ 이렇게 되니까. (성현숙, 재 가요양보호사)
요양보호사가 가족이 아닌 제3자이기 때문에 감정조절을 잘 할 수 있고 요양보호 61) 가족을 돌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돌봄을 하면서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스트 레스, 불안, 절망, 좌절을 겪고 신체적, 정신적 병을 얻기도 한다(Stone, 1991; Abel, 1991).
사가 돌봄수혜자와의 관계에서 가지게 되는 ‘거리’는 돌봄을 할 때 매우 중요한 요소 이다. 요양보호사에게 그 거리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했다. 노동자는 가족과 달리 돌봄수혜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간에만 책임을 가진다. 그 책임은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혹시 노인과의 관계에서 나쁜 감정이 생 긴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 새로운 마음으로 다음날 돌봄을 제공할 수 있다. 그래서 요양보호사는 노인과의 관계에서 조금 더 객관적일 수 있고, 돌봄수혜 자가 힘들게 할 때 직업적인 의무감을 바탕으로 감정 관리를 할 수 있다.
요양보호사들은 50~60대 중고령인 만큼 자신의 부모도 돌봄을 받아야 할 연령이 다. 노동자로 일을 하면서 부모도 같이 돌보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요양보호사 스스 로도 자신이 모르는 사람에게 돌봄노동을 하는 것과 가족을 돌보는 것이 감정적으로 다르다고 인식했다. 이수연이 돌보는 오전 대상자는 파킨슨을 앓고 있는 1등급인데 감정의 변화가 심했다. 노인의 감정이 폭발하면 기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게 중요했다. 돌봄대상자를 돌볼 때 이수연은 숙련노동자로서 감정노동을 잘 하지만 현재 부양하고 있는 시어머니에게는 그게 가능하지 않았다. 이수연의 시어머니는 장 기요양등급을 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서 합가해서 살고 있다. 이후에 시어머니의 건강이 나빠지면 자신이 직접 돌보기보다는 시설 입소를 생각하고 있다.
김윤숙은 어머니가 이미 장기요양등급을 받은 상태인데 자신이 다른 대상자를 돌보 는 동안, 요양보호사가 와서 어머니를 돌본다. 그는 과거에 남편과 아버지를 오랫동 안 간병한 경험이 있다. 그가 그들을 돌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가족이기 때문에 돌봄 의무를 거부하지 못하고 혼자서 어려움을 감내해야만 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신이 돌보기보다는 방문요양서비스를 받도록 했다. 돌봄노동을 오래 해온 요양보호사에게도 가족을 돌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파킨슨도 뇌질환 그런 쪽이잖아요. 그런 질환 가지신 분은 특히 노인분들은 그런 게 있더라구요. 병원에서도 봐도 그렇고. 우리가 젊은 사람들 같으면 변덕이 심하다 고 하잖아요. 그런 것. 그러니까는 그 때만 넘기면은 괜찮아요. 그러니까 그 분이 정 상적인 분이라면 저도 화가 나죠. 근데 환자니까. 환자니까 충분히 저러지. 그 때만 지나면 괜찮았어요. 근데 그게 우리 어머님한테는 안 돼요. (이수연, 재가요양보호사) 가족 돌봄과의 차이는 과거에 가족을 돌본 경험이 요양보호사로서 일을 하는데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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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도 나타났다. 재가 관리자들에 의하면 가족 돌봄을 한 경험이 있는 노동자는 노인에게 쉽게 다가가고, 노인의 병이나 정서적인 부분에서 대한 이해도가 높다. 요양보호사로서 경험이 없는 노동자라면 기존에 가족을 돌본 경 험은 일을 처음 시작할 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경력노동자와 비교해서는 중요한 장점이 아니었다. 부모를 돌본 노동자들은 부모의 요구를 늘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주었기 때문에 타인을 돌볼 때에도 감정적인 거리를 유지하지 못했다. 자신의 위 치를 설정하지 못하면서 일에 대한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가족 돌봄 경험이 있는 요양보호사가 돌봄노동을 하는 데에서 어려움을 더 많이 겪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경험으로 이 분들이 원하는 것은 지금 내 말을 존중해주 는 거라는 것. 이 분은 캐치를 한 거예요. ‘아. 얘가 내 말을 잘 들어주는구나. 고맙 다.’... 근데 이 분은 또 예스맨이에요. 어머니랑 살아봐 갖고 어머니한테는 토를 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분이니까, 직업하고 이런 구분이 헷갈려하시더라구요. (배 영은, 재가관리자)
요양보호사들이 제공하는 공식적인 돌봄은 가족의 돌봄과 몇가지 점에서 차이를 보였지만 이런 차이를 돌봄수혜자들도 수긍하는 것은 아니다. 요양보호사의 노동을 여전히 여성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족들이 하는 돌봄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보모에 대한 연구를 한 김경희(2009)에 의하면 고용주들이 보육을 ‘그냥 엄마가 볼 일 볼 때, 애기 볼 시간이 안 될 때 그 시간만큼 같이 있어주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 으로 나타났다(김경희, 2009: 168). 즉 가족을 대신하여 잠시 돌보는 것으로 생각하 는 것이다. 돌봄수혜자나 가족들은 요양보호사에 대해서도 가족의 경제활동 등으로 인해 돌볼 수 없으니까, 또는 가사노동자보다 좀 더 저렴하게 고용할 수 있는 사람이 라고 생각했다. 특히 노인의 상태에 따라서 수혜자나 가족들의 요구가 매우 단순할 수 있고,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지원을 받는 수혜자들은 요양보호사와 가족의 돌봄 차 이를 인식하지 못했다. 수혜자나 가족들은 요양보호사만이 제공할 수 있는 특별한 서 비스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노인의 질환에 대한 의료적인 전문 지식이 보유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가족이 돌볼 때나 가사노동자처럼 요양보호사 자격이 없는 사람 을 고용하는 것과 비교해서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위에서 언급한 감정의 거리에 대해서 동의하는 돌봄수혜자도 있었다. 가족들과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