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 기관에서 제공하는 돌봄이 신체적 돌봄과 더불어, 정서적 돌봄과 일상적인 돌 봄 등에 초점이 맞춰져있다면, 요양시설에서는 신체적 과업을 우선시한다(최희경, 2010b; 황은희 외, 2012; 권수현, 2013). 요양시설과 달리 재가 서비스는 여러 영역의 돌봄을 포함하면서 업무 범위가 과도하게 늘어나고, 그 경계도 모호한 문제가 있다.
요양시설의 돌봄은 시설의 하루 일정에 따라서 진행된다. 시설에서는 수혜자 아침 식사-목욕-간식-프로그램 진행-점심-프로그램 진행-간식-저녁-취침준비 이런 식으로 하 루 일정이 짜여져 있다. 요양보호사는 하루 종일 노인들의 식사와 목욕, 기저귀 교 체, 그리고 운동이나 노래교실 등 각종 프로그램 진행시 보조 업무로 매우 힘든 일정 을 보낸다. 시설에서 요양보호사가 초점을 두는 것은 노인의 건강 상태이다. 시설에 입소하게 되는 노인들은 대부분 1등급이나 2등급의 중증으로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하는 환자들이 많다. 응급상황이 발생해서 급하게 병원으로 옮겨야 하거나 시 설에서 사망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나기 때문에 노인들의 몸 상태를 돌보는 것이 중 요하다. 노동자는 수혜자가 열이 오르는 등의 변화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욕창이 생 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은 물론 응급상황이 발생하지 않는지 관찰했다.
어르신 상태를 보는 거죠. 몸 상태. 어르신들은 갑자기 열이 막 올랐다가 떨어졌다
4장 재가 요양보호사의 돌봄노동 경험과 특성
가 이런 게 많으니까 그것도 우리가 관찰을 해야지. 간호에서 다 하지만 간호가 그 걸 다 하지 못하니까 자기 방 맡은 사람은 자기 어르신을 관찰을 잘 해야 되는 거 야. (박은주, 시설요양보호사)
요양시설의 요양보호사 인력 부족도 시설의 돌봄이 기본 신체활동에만 집중되는 이유이다. 시설 요양보호사의 인력기준은 노인 1명당 요양보호사 2.5명이다. 4조 3교 대를 가정할 때 2.5명당 1인의 요양보호사 기준은 1명이 10명의 대상자를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관에 따라 3교대가 아닌 2교대제인 경우도 많아 대체적으로 요양보호사가 낮에 돌보는 인원은 5명이 넘고, 밤에 돌보는 인원은 10명이 넘는 경 우가 많다(제갈현숙, 2009a: 171). 노인을 보살필 요양보호사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 에서 돌봄은 미리 짜여진 하루 일정을 진행하는 데에 맞춰지고, 요양보호사는 노인의 개인 욕구에 부응하기보다는 일정을 쫓아가기에 바빴다.
요양시설에서 제공하는 돌봄의 초점이 노인들의 신체활동에 집중되면서 정서적인 돌봄은 소홀했다. 요양보호사들은 시간을 내서 기분이 좋지 않거나 우울한 노인에게 다가가서 말벗을 해주려고 하지만 시설의 일정상 어려웠다. 노동자가 자신의 점심시 간도 확보하기 힘들만큼 빠듯하게 일정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노인요양시설의 노동자 들은 컨베이어 벨트 앞에 있는 것처럼 느끼기도 하고(Stacey, 2005; 권수현, 2013), 수혜자에게 충분한 심리적인 지원을 하지 못하는데 대해서 자괴감을 표현하기도 했 다. 심층면접에서 많은 재가 기관 관리자들이 노인들의 정서적인 돌봄 제공을 강조하 는 것과 달리 시설에서는 이런 부분이 독려되지 않았다.
어르신이 쉰일곱분이다 보니까 어르신들이 개개인이 막 요구사항이 있잖아요. 그걸 다 못 들어줘요. 뭐냐면 어르신 말벗을 해드리고 싶은데 어르신이 무슨 말씀을 하시 는데 그거를 끝까지 다 못 들어주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중간에 잘라서 어르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빨리 파악을 해서 “아, 알았어요. 그거 해달라구요?” 딱 해서 이렇 게.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 시간에는. 어르신 말하는 부분을 끝까지 잘 듣고 나서.
잘 경청을 들어드려야 되는데 중간에 딱딱 끊게 돼서 ‘아, 어르신 뭘 요구하는구나.’
그것만 딱 해서 해드리는데 그거를 끊는다는 거죠. 다 들어드리면 좋은데 그렇게 하 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니까 그렇다고 그 많은 분들을 다 그렇게 할 수 없잖아요. (홍 미혜, 시설요양보호사)
내 방에 있는 어르신은 얼굴 상태를 보고 관리를 해주는 거야. 그러니까 어르신이 침침하게 있다든가 아니면 어디가 아프다든가 이런 거를 잠깐잠깐 말벗을 한다든가 그러면 그거지. 그리고 이렇게 가족 간에 오면 잠깐 심부름 좀 해주고 이거지. 어떻 게 시간이 안 나. 우리 점심시간도 없어. 시간이. (박은주, 시설요양보호사)
부실하게 운영되는 시설은 노인 개인의 욕구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요양시설은 모든 돌봄이 시간표에 의해 진행되고 기저귀 케어도 따로 시간이 정해져있다. 시설 관리자들은 노인들이 배변을 해서 바로 기저귀 교체를 요구해도 기저귀 케어 시간에 하도록 지시했다. 노동자가 노인의 욕구에 즉각적이고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노 인들을 방치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요양보호사들이 요양시설에서 일하는 것을 거 부하고, 재가 기관에 취직을 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내가 실습할 때도 거기는 정해서 기저귀를 갈아주더라고. 깜짝 놀랐어. 나는 쇼크 를 받아왔는데. 저희가 교육 끝나고 실습 나갔을 때 할머님이 우리 불러서 젖었다고 갈아달라고 해서 우리는 멋모르고 갈아주려고 하니까 “아, 하지 마세요. 3시에 해야 돼요.” 젖었으면 갈아줘야 되는 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그렇게 시간을 맞춰서 갈아줬 다는 게 너무 놀랐어요. (이정선, 재가요양보호사)
이에 반해 재가 서비스는 노인을 위한 가사노동을 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시설 요양보호사도 빨래나 청소, 설거지를 담당한다. 자신이 돌보는 어르신들의 생활 복 세탁, 각 방 청소, 노인의 식사 후 배식판 설거지 등의 여러 업무를 수행했다. 그 러나 재가 요양보호사들이 중점적으로 하게 되는 요리는 대부분 각 시설의 조리사가 담당했다. 박은주는 재가 기관에서 일을 하다가 요양시설로 옮겼는데 그 이유가 “밥 하기가 싫어서”라고 구술했다. 요양시설에서 근무하는 것도 교대제로 인한 어려움, 빡빡한 하루 일정 등으로 단점이 많지만, 시설 요양보호사는 잡다한 가사노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요양시설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리고 돌봄수혜자의 가족이라는 존재는 요양보호사의 업무 경계를 흐리고, 노동 강도를 높이는 원인이다. 요양시설은 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특정 시간에만 면회 가 가능하기 때문에 가족들이 상시로 머무르지 않는다. 그래서 시설 요양보호사들은 가족에 대한 돌봄을 해야 하는 상황을 겪지 않는다. 재가 요양보호사는 가족에 대한 추가적인 가사노동을 하거나 그들의 시중을 드는 일을 해야 했다. 가족과 같이 동거
4장 재가 요양보호사의 돌봄노동 경험과 특성
하는 노인의 경우 노인과 가족에 대한 업무를 명확히 구분해서 가사노동을 하는 것 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시설 요양보호사와 비교해서 방문 요양보호사가 하는 업무에는 좀 더 다양한 차원 의 업무가 포함하고, 업무 경계가 명확하지 않았다. 시설은 노인에 대한 신체적 케어 가 초점이고, 인력 기준이나 시설의 일정 진행 상 그 이상의 일을 하기가 어려운 데 반해 재가는 1대1 돌봄을 바탕으로 노인의 개인적인 욕구에 부응하는 것이 중요했 다. 노인의 요구는 신체활동이나 생활지원활동 등의 다양한 영역은 물론, 가족의 욕 구 충족까지 포함하여 요양보호사의 업무 범위가 과도하게 확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