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돌봄제공자에게 필요한 자질인 타인의 욕구를 인지하고, 욕구의 변화에 따라 돌봄을 조정하는 것은 여성의 특성으로 여겨져 왔다(Graham, 1983: 19). 여성 의 활동으로서 돌봄은 유급 돌봄노동으로 이루어질 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식적인 직업으로 창출된 요양보호사도 마찬가지로 사적 영역에서 여성의 역할로 규정된 돌 봄의 확대로서 여성에게 적합한 일로 여겨졌다.
재가 요양보호사는 중점적으로 맡게 되는 업무로 인해서 남자들이 할 수 없는 일 로 간주되었다. 요양보호사의 돌봄은 다양한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고, 노동자들은 교 육을 받기 때문에 여성들이 당연히 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실제 요양보호 사가 하는 일은 여성들의 성역할로 인해서 가정내에서 해온 일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가사는 여전히 여성의 영역이며, 여성이 잘 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되었다. 남자 요양보호사들 중에서 기본적인 가사노동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돌봄대상자들 은 남성들이 이것을 못한다고 인식을 해서 남성 노동자를 대부분 원하지 않았다. 그 래서 제도 시행 초기에 재가 서비스 영역으로 진입했던 많은 남자 요양보호사들이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현재는 남자 요양보호사를 찾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재가 관리자 인터뷰를 했던 8개 기관 중 남자 요양보호사를 고용하고 있는 기관은 단 한군데였다. 8개 기관에 소속된 요양보호사는 200명이 넘었는데, 그 중 남자 요양 보호사는 단 한 명이다. 이 경우는 가족들이 아버지를 모시는 걸 거부하면서, 2등급 인 아버지를 24시간 같이 돌볼 사람으로 남자 요양보호사를 구한 것이다. 남자 노인 을 돌볼 입주요양보호사와 같은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남자 요양보호사가 재가 서 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돌봄수혜자의 가족들도 남자 요양보호사를 꺼려했다. 보호자들은 요양보호사가 자 신이 하기 싫은 가사노동을 대신해줌으로써 돌봄 부담을 덜어주기를 원했다. 가족들 의 돌봄을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을 요구하는 것이다. 많은 남자 요양보호사 들은 노인의 방청소 하는 것 이외의 가사노동을 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보호자의 돌봄 경감효과가 적었다. 여자 요양보호사는 요리, 세탁, 청소 등을 모두 맡길 수 있
4장 재가 요양보호사의 돌봄노동 경험과 특성
기 때문에 선호했다.
남자 요양보호사님들은 하고자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필요로 하시는 분이 의외 로 없으신 거예요. 왜냐면 가사일이 재가가 주가 되다 보니까 사실 하실 능력이 있으 시니까 이거를 하시는 거거든요. 교육 받다보면 본인들은 하다못해 반찬까지도 된다 고 하세요. 근데 대상자가 마음에 안 드신다고 하는 거죠. 그러니까 미덥지도 않고, 남자가 한다는 거를 썩 내켜하지도 않고. (유수정, 재가관리자)
그리고 중증 수혜자를 돌볼 때는 기저귀 교체를 해야 하는데 아기 기저귀도 갈아 본 경험이 없는 중고령의 남성들은 쉽게 접근하기 힘들었다. 여성들은 자신의 아이를 키우면서 목욕시키고, 기저귀를 가는 일을 경험하기 때문에 남성들보다 더 익숙하게 이를 수행했다. 남성들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도 일을 하지 못하는 원인은 신체 활동지원 업무 때문인데 기저귀 교체가 비위 상하는 일이라고 일을 그만둔 경우도 있었다.
돌봄수혜자의 가족이 가정 상황에 따라서 여자 요양보호사를 원하기도 했다. 박정 자의 남편은 65세가 되지 않았지만, 뇌경색으로 인한 편마비가 있어 재활운동의 욕구 가 컸다. 여자 요양보호사가 재활을 하기에는 수혜자가 체중이 무겁기 때문에 어려워 남자 요양보호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보호자가 남자 요양보호사와 함께 집에 같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 불편해서 고민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여전히 여자 요양 보호사를 이용했다.
남자니까 힘이 드니까 좀 키도 크고 힘, 힘 센 사람을 하든지. 우리 아들 같은 경 우는 남자를 쓰는 게 어떻겠노? 그럼 운동 시키기에 안 좋겠나? 그런 이야기를 하기 도 하고 그랬어요. 한 번 생각해봤는데, 남자로 또 바뀌면 제가 집에 혼자 있으니까, 이렇게 사소한 부분은 전혀 안 될 것 같애. 뭐 먹이고 씻기는 게. 운동 자체만은 되 는데, 그런 부분도 좀 있고 해서. (박정자, 돌봄수혜자 가족)
남자 요양보호사를 원하는 경우는 대체로 다른 업무를 요구하는 경우였다. 돌봄대 상자가 남자 노인이고, 재활 운동이 필요할 때 또는 병원 동행과 같은 이동보조가 빈 번하게 요구될 때 남자 요양보호사를 선택했다. 돌봄수혜자들이 재활운동과 같은 특 정 기술이 필요하거나, 이동 보조와 같이 육체적 힘이 요구될 때 남성 노동자가 낫다
고 인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요양보호사 교육과정에서 남녀 따로 차별화 된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므로 남자 요양보호사가 재활운동을 잘 한다고 판단할 합 리적 근거는 없다.
요양보호사의 체력에 대한 요구도 마찬가지였다. 돌봄수혜자의 가족은 요양보호사 의 체력을 중요한 요건으로 생각했다. 혼자서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수혜자를 돌볼 때 특히 노동자의 체력이 필수적이다. 요양보호사의 힘이 약하면 요양보호사가 누워 있는 수혜자에게 운동을 시키는 것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하고, 보호자들이 옆에 같이 있으면서 이동시 도와줘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자신의 돌봄 부담이 감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참여자들의 사례에 의하면 여자 요 양보호사가 1등급 남자 노인이나 체격이 큰 여자 노인을 돌보고 있었다. 요양보호사 혼자서 남자 노인을 운동시키거나, 목욕을 시키는 일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 적으로 나이가 젊은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의 요양보호사들은 자신이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고, 자신보다 덩치가 큰 노인들을 돌보는 역할을 하고 있었 다.63)
돌봄수혜자의 남녀 요양보호사에 대한 인식 차이로 인해서, 남자 요양보호사는 대 상자의 운동에 초점을 두었고 여자 요양보호사들에게 할당되는 많은 일에서 제외되 었다. 돌봄수혜자들은 남자 요양보호사를 특별히 요청했기 때문에 여자 요양보호사들 이 하는 가사노동을 맡기지 않았다. 노동자 스스로도 가사노동을 할 생각이 없고, 하 지 않는다고 해도 가족들과 아무런 갈등이 겪지 않았다. 보호자도 재활을 담당하러 온 남자 요양보호사에게 식사를 챙기고 치우는 기본적인 활동만을 요구해서, 일상적 으로 하는 돌봄 내용이 요양보호사의 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남자 요양보호사는 담당해야 하는 돌봄 업무 내용이 더 명확하기 때문에 일의 경계를 정하는 것이 쉬웠 다.
차이점이 확연해요. 확연하게 다른 게 주로 남자분들은 요리라든가 이런 집안일 같은 데서는 아무래도 조금 미치지 못하죠, 여자분들한테... 아예 처음에 그걸 이해를 하니까 저한테 요리를 해달라는 얘기는 크게 들은 적은 없어요. 저도 그런 거는 제가
63) 요양시설은 재가기관보다 등급이 더 높은 중증 노인들이 입소를 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더 힘들었다. 그렇지만 시설에서 노인을 혼자 돌보는 것이 아니라 동료와 함께 일하기 때 문에 여자 요양보호사들이 힘이 약해서 일을 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4장 재가 요양보호사의 돌봄노동 경험과 특성
안 할라 그러니까. (김성훈, 재가요양보호사)
또한 돌봄수혜자나 가족들이 남자 요양보호사에게 요구하는 돌봄 관계의 양상도 달랐다. 돌봄을 잘 제공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좋은 돌봄 관계가 확립되어야 하지 만, 여자 요양보호사에게 요구하는 수준의 친밀성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남자 노인은 남자 요양보호사를 같이 사회에 대해서 토론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요양 보호사는 거동이 불편하여 사회와 소통할 수 없는 노인들에게 소식을 전해주는 전달 자로서 기능하였고, 연구참여자 중에서는 이런 역할을 스스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 성노동자도 있었다. 그러나 노인들은 남자 요양보호사에게 기대할 수 있는 업무로 여 기고 있었다.
같은 남자라는 것 때문에 생기는 공감대가 있어요. 그러니까 2등급 어르신을 우리 선생님이 케어를 하셨는데 이 2등급 어르신이다 보니까 인지능력이 어느 정도 있잖아 요. 그럼 같이 뉴스를 보면서 토론을 하세요. 지금 돌아가는 사회에 대해서. 바깥에 는 못 나가지만 침상에 앉아서 이 분은 세상을 보고 계시는 거잖아요. 화면 하나에 서. 근데 친구가 있는 거예요. 그 세상을 다시 뭔가를, 논할 수 있는 친구가, 나이 차 이는 많지만. 되게 좋아하셨어요. (박혜옥, 재가관리자)
대상자가 남자인 경우에도 대부분 여자 요양보호사를 선호했는데, 돌봄은 여성의 일이므로 남자보다는 여자 요양보호사가 잘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자 요양보 호사는 남성 노인에게 아내에게는 할 수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대상이었다.
친밀한 관계를 통한 상호작용은 여자 요양보호사에게 기대하는 영역이다.
남자 노인은 여자 요양보호사를 직업인이 아니라 여자로 생각하고 여자 요양보호 사를 선호하기도 했다. 수혜자들이 돌봄노동자에게 이성애적 감정을 표현하거나, 성 적 서비스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돌봄수혜자의 가족, 지인들이 돌봄노동자를 ‘아 내’, 혹은 ‘여자 친구’로 바라보는 등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다(권수현, 2013: 135). 남 자 노인이 요양보호사가 ‘이쁘든 안 이쁘든 여자였으면’ 하고 생각하는 내면에는 성 적인 측면도 포함되는 것이다.
한편, 돌봄이 여성의 성역할에 기반한 활동이라는 점은 요양보호사가 하는 업무의 범위에도 영향을 미쳤다. 요양보호사 자신들도 돌봄을 여성의 일로 생각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