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영역에서 유급 돌봄노동의 확대는 사회적으로 돌봄이 조직되는 방식이 변화 됨을 뜻한다. 글렌(Glenn, 2010)에 의하면 돌봄의 사회적 조직(social organization of caring)은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게 돌봄이 할당되고, 돌봄 책임이 배분되는 체계적 방식을 의미한다. 돌봄노동은 가구내에서 또는 가구 밖에서 이루어질 수 있고, 무급 가족노동에 의해서 또는 정부기구나 비영리단체, 영리 기업 등 다양한 공급자에 의해 서 유급 노동으로 조직될 수 있다. 돌봄노동에 있어서 유급과 무급, 상품화/비상품화, 사적/공적 형태의 특정한 혼합과 균형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르며, 사회의 경제적 구조, 지배적인 믿음, 정치 체계, 문화적 관습을 반영한다(Glenn, 2010: 5-6).
돌봄노동이 공적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돌봄의 논의 틀도 변화하고 있다. 첫째, 기 존 돌봄 논의가 돌봄제공자와 수혜자의 관계에 한정되었다면(Leira, 1992: 31-32), 이 제는 돌봄을 제공하는 영리 또는 비영리기관이나 공적 서비스를 감독하는 정부 기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돌봄의 논의에 포함되어야 한다. 둘째, 이 이해관계자들은 돌봄수혜자의 친척이나 아는 사람이 아니라, 완전한 외부인이다. 셋째, 이런 외부인 들은 돌봄 관계에 영향력을 미친다(Stone, 2000: 89-90). 유급 돌봄노동은 돌봄제공자
와 돌봄수혜자만이 아니라 돌봄제공기관을 포함하고, 노동시장과 정부 등의 여러 영 역과 이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구성된다. 따라서 가족내 돌봄제공자와 돌봄수혜자 사 이의 이자 관계만이 아닌 다양한 사회적 행위자 사이의 균형 문제가 고려되어야 한 다(Stone, 2000; Daly, 2002).
1) 돌봄의 사회적 조직과 국가 정책: 탈상품화, 탈가족화, 탈젠더화
국가별로 상이한 돌봄의 사회적 조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돌봄 레짐의 유형화 논 의를 참고할 수 있다. 돌봄 레짐의 유형화 기준은 연구자별로 다양하지만, 크게 탈상 품화, 탈가족화, 탈젠더화라는 세 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논의되어왔다.
탈상품화 논의의 대표적인 연구자는 에스핑 안데르센(Esping-Andersen, 2007 [1990])이다. 그는 탈상품화를 어떤 서비스가 권리의 대상으로서 주어질 때, 그리고 어떤 사람이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때 성립된다고 보았 다. 국가가 직접적으로 다양한 사회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개인은 자신의 자립능력 을 극대화할 수 있다(Esping-Andersen, 2007[1990]: 54, 65). 즉 탈상품화는 돌봄을 받아야 하는 수혜자들이 시장을 통한 돌봄 구입이 없이도 필요한 돌봄을 받을 수 있 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 정책의 탈상품화 정도는 몇 가지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다. 먼저 사회 서비 스 급여에 대한 접근권을 규제하는 규칙을 확인하는 것이다. 수급 자격의 규칙이나 수급권에 대한 제한을 통해서 탈상품화를 판단할 수 있다. 어떤 프로그램의 접근이 용이하고, 복잡한 수급권 제한이 없어 적절한 생활수준을 향유할 권리를 보장한다면, 그 프로그램의 탈상품화 잠재 능력은 큰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둘째는 소득대체율 과 관련된다. 급여의 수준이 해당 사회에서 적절한 생활수준이나 통상소득에 미치지 못한다면, 급여 수급자는 빨리 노동으로 복귀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셋째는 수 급 권리의 보장 범위로 기본적인 사회적 위험이라고 볼 수 있는 실업이나 장애, 질 병, 노령 등의 위험으로부터 개인이 얼마나 보호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Esping-Andersen, 2007[1990]: 98-99).
탈가족화 개념은 탈상품화 논의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에 의해 제안된 돌봄의 사회적 조직에 관한 또다른 축이다. 탈상품화가 노동시장에서 상품화 된 경험이 있는 노동자를 전제로 하고 있어 노동시장 밖의 돌봄을 담당하는 여성을
1장 서론
고려하지 않는다고 탈가족화 개념을 제안했다(마경희·이재경, 2007: 95). 리스터 (Lister, 2000)는 탈가족화를 성인 개인이 유급 노동이든, 사회보장을 통해서든 가족 관계와 상관없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라고 정의한 다(Lister, 2000: 69). 특히 탈가족화를 여성이 가족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벗어나 독립 적인 생활을 영위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이에 비해, 에스핑 안데르센은 탈가족화를 가구의 복지와 돌봄책임이 복지 제공 또는 시장을 통해서 완화되는 것으로 정의하였 다. 이후 탈가족화 개념을 중심으로 복지국가를 유형화하는 연구에서는 이 두 학자의 개념에 충실하기 보다는 돌봄책임으로부터 완화라는 관점에서 탈가족화를 접근하였 다(이삼식 외, 2012: 50-52).
국가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때 개인의 욕구 충족은 탈상품화 되는 동시에 탈가 족화된다. 탈상품화와 탈가족화는 서로 조응관계에 있는데, 탈가족화 정책을 통해서 여성들은 ‘상품화’를 할 수 있는 자율성 혹은 독립적인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자율성 을 부여받기 때문이다(Esping-Andersen, 2006[1999]: 93, 116).
돌봄정책의 탈상품화 정도는 개인이 돌봄서비스에 어떤 자격으로 접근할 수 있는 지, 어느 정도의 돌봄을 제공받는지, 그리고 어떤 위험에 대한 대비로서 돌봄서비스 를 받는지를 평가함으로써 판단하게 된다. 돌봄의 탈가족화는 개인이 가족의 도움 없 이 필요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정도로 판단할 수 있다.
탈젠더화의 개념은 탈상품화 논의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제안된 또 다른 유형화의 축 이다. 탈젠더화 논의는 프레이저(Fraser, 1997)와 세인즈베리(Sainsbury, 1999)에 의해 서 본격화되었다. 이들은 유급 시장노동과 무급 돌봄노동간의 조합을 중심으로 복지국 가를 유형화했다. 프레이저가 제안한 보편적 돌봄제공자 모델(universal caregiver model)이나 세인즈베리의 개별화된 소득-돌봄자 모델(individual earner-carer)은 남성 과 여성이 모두 노동자이자 돌봄제공자로서 역할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송다영, 2014:
421-422).8) 탈젠더화(degendering)는 가족관계에서 불평등한 성별분업구조를 해소하기
8) 프레이저는 후기산업사회의 복지국가가 추구해야 할 방향을 세 모델로 구분했다. 먼저 보 편적 생계부양자모델(universal breadwinner model)은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유급노동 자가 되어 자신의 소득으로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며, 여성들이 전일제 노동을 할 수 있도 록 무급 돌봄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돌봄은 시장이나 국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동등한 돌봄제공자 모델(caregiver parity model)은 여성의 자녀출산, 양육, 비공식 가사노 동을 공식적인 유급 노동과 동등하게 보는 것이다. 여성의 삶을 남성과 동일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차이를 인정한다. 비공식 돌봄노동을 지원하는 방식은 출산휴가나 육
위한 정책 개입을 의미한다. 돌봄의 탈젠더화는 구체적으로 남성의 돌봄참여가 가능한 조건을 만들고 돌봄참여를 장려하거나 강제하는 방식을 뜻한다(김수정, 2006: 7). 나아 가 탈젠더화는 가족내 무급 돌봄만이 아니라 유급 돌봄노동에서 남성이 얼마나 참여하 는지 정도에 기초하여 논의된다.
탈상품화, 탈가족화, 탈젠더화와의 세 축이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개별 국가가 가진 돌봄의 사회적 조직이 달라진다. 복지 국가의 정책에 따라 돌봄 산업의 구조와 노동조건이 달라지는데(Boris & Klein, 2006: 81), 국가가 돌봄 욕구에 어느 정도 대 응하느냐에 따라 국가, 시장, 자발적/비영리 영역, 가족 등의 영역에서 담당하는 돌봄 의 비용과 책임의 조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Daly, 2002: 261). 국가가 정책과 법을 통해서 돌봄노동자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서 돌봄노동자의 지위도 달라진다. 예 를 들어 돌봄을 사적 영역의 문제로 받아들여 돌봄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 고 비가시화할 수도 있지만, 공공기관의 피고용인으로 다룸으로써 노동자 지위를 인 정할 수도 있다(Boris & Klein, 2006; Delp & Quan, 2002).9)
아휴직은 물론 돌봄수당을 포함한다. 돌봄제공에 대해서 공적 재정이 지급되지만 가족내 에서 수행된다. 보편적 돌봄제공자 모델(universal caregiver model)은 앞의 두 모델에 대 한 대안으로서 제시되었는데, 남성을 여성과 같이 돌봄노동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남녀가 생계부양과 돌봄제공을 모두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유형으로서 이를 위해서 모든 직무는 돌봄제공자이자 노동자인 사람들에게 맞춰서 설계되어야 하고, 유급 노동시간 감소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Fraser, 2000). 세인즈베리의 모델은 남성생계부양자 모델(male breadwinner), 분리된 성역할 모델(separate gender roles), 개별화된 소득-돌봄자 모델 (individual earner-carer)로 분류된다.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은 성별에 따라 다른 과업과 의 무를 부과하는 것으로, 남성은 생계부양자, 여성은 돌봄제공자로 역할이 부여된다. 여성의 사회보장수급권은 남편의 피부양자로서 주어진다. 분리된 성역할 모델은 남녀의 차이를 강조하며, 이 차이에 기반하여 사회적 권리도 할당된다.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에서는 여성 의 무급 돌봄을 상정하는 것과 달리 이 모델에서는 가정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여성에게 수당을 지급한다. 개별화된 소득-돌봄자 모델에서는 남녀 모두 역할과 의무를 공유하고, 권리도 동등하게 보장된다. 남녀 모두 소득자와 돌봄제공자가 되며, 수급권은 가족이 아니 라 개인에게 주어진다(Sainsbury, 1999: 77-79).
9) 미국의 재가 돌봄노동자들은 1930년대 뉴딜 정책에서 가정을 직장으로 보는 것을 거부하 여 가내 하인(domestic servants)로 분류되었다. 그리고 재가 돌봄노동자들을 피고용인이라 기보다는 독립된 계약자로 봄으로써 노동자로서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그들의 노동조건이 나 보상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았다. 오레곤 주에서는 1960년대에 노인을 위한 재가 돌 봄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제도들이 생겨났지만 그 제도의 기원도 가사서비스에서 비롯되었 기 때문에 재가 돌봄노동자들을 가사노동자로서 분류하고 노동법 적용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그리고 주정부에서 임금을 받지만 주정부의 피고용인이 아니라 독립된 계약자로서 분류되었다(Boris & Klein, 2006: 84, 95-97). 이에 반해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노조가 주정 부 스스로 공공기관을 설립하고 그 기관의 피고용인으로 노동자를 고용하도록 요구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