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들은 자신이 돌보는 노인에게 필요한 적절한 돌봄을 계획하고 이를 적 용하는 관리자로서 역할을 기대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돌봄수혜자나 또는 장기요양기 관 관리자가 지시하는 돌봄 계획에 맞춰서 이를 수행하는 ‘실행자’ 역할을 하고 있었 다. 돌봄수혜자는 자신이 받고자 하는 돌봄 업무를 지시하고 이에 따라 노동자는 돌 봄을 제공했다. 돌봄수혜자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부여하고 있는 자유로운 수요 자 기관 선택권에 의해서 요양보호사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때문이다. 수요자 의 권리는 양질의 서비스를 받는 권리인데 실제로는 소비자로서의 권리로 인식되고 있다. 돌봄수혜자와 가족이 원하는 것을 다 지시할 수 있는 권리로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수혜자는 돌봄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요양보호사를 관리하는 역할을 함 께 하게 되었다. 요양보호사는 장기요양기관의 관리자만이 아니라 돌봄수혜자라는 이 중의 감독을 받는 셈이다. 특히 요양보호사는 돌봄수혜자의 가정에 매일 방문하여 직 접 돌봄을 제공하는 최일선 노동자이기 때문에 관리자보다는 수혜자와의 상호작용이 더 많았다.
요양보호사가 수행해야 하는 다양한 돌봄서비스 중에서 어떤 일을 중점적으로 하 게 되는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돌봄수혜자의 욕구였다. 요양보호사들의 일 정은 수혜자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고, 매일매일 그들의 지시에 따라서 하는 일이 달라졌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 돌봄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많은 자율성을 가질 수 도 있지만 대부분 노동자가 일방적으로 지시를 받고 있었다.
옷(일복) 입는 도중에 오늘은 냉장고에 뭐 있으니깐, 뭐 해놓고 뭐 장독대 청소하 고 밖에 (텃밭) 물주고 이래 얘기를 해요.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뭐부터 제일 먼저 할까요?” 그러면 물 먼저 끓이는 거부터 끊여서 밑으로 내려놔라. 어머니 목욕부터 시켜라. 그러면 이렇게 순서가 잡혀. 하라는 대로 하고. (자율적으로 하는 건 전혀 없 어요?) 거의 그 집은 없어요. 그 집은 지시대로 해야 되고 만약에 내가 이렇게 해야 되면 항상 의논을 해야 돼요. 밥도 조금 남았는데 어떻게 할까요? 많이 하라고 하면 많이 해야 되고 조금 하라고 하면 쌀도 떠서 보여줘야 돼요. 요만큼만 할까요? 좀
5장 행위자들의 관계와 돌봄노동
더 할까요? 여기는 우리는 로보트예요. 물어봐야 돼요. 우리 맘대로 할 수가 없어요.
(박혜자, 재가요양보호사)
돌봄수혜자들은 요양보호사를 자신이 일상생활을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조자로서 생각했다. 수혜자들은 가사노동을 가장 중요한 업무로 보았다. 가사노동 은 요양보호사가 제공하는 표준 서비스 중의 일부이고 노인 돌봄의 초점은 노인의 건강상태나 기능 상태 향상이다. 그러나 돌봄수혜자의 욕구에 따라 가사노동을 포함 한 일상생활유지가 요양보호사가 제공하는 돌봄의 중심이 되었다. 노인들의 인지 활 동을 도와주는 업무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수혜자들은 요양보호사가 한글을 가 르쳐주거나, 레크레이션 활동을 하기 보다는 그 시간에 가사노동을 더 해주기를 바랐 다. 돌봄수혜자들이 가사를 요구할 때 보이는 태도는 “어르신은 할 게 없어요.”로 요 약되었다. 수혜자 돌봄은 특별히 할 게 없으니 가사노동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관리 자가 이용자와 요양서비스 계약을 하면서 요양보호사 업무에 대해서 논의를 하고 가 사노동이 주가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해도, 실제 요양보호사가 방문했을 때 요구되는 일은 가사이다.
대부분은 가사를 원해요. 그런데 저희가 처음 계약할 때부터 짚고 가는 거는 이용 자에 대한 케어다. 그리고 이용자가 치매나, 요즘에는 확실하게 치매가 기본적으로 있으면서 노인성질환을 가지고 있는 거를 가지고 요양등급이라는 걸 기준을 세워놨기 때문에 이 분 자체가 케어가 필요가 없는 분들이 아니거든요. 일차적인 케어가 반드 시 필요한 분들이기 때문에 그 분에 대한 신체사항이라든가, 영양사항이라든가 그 분 의 건강 상황 같은 걸 우선으로 하는 거지. 가사노동이 주가 아니다 라고 못을 박고 있어요. (이정아, 재가관리자)
장기요양보험제도는 돌보는 노인이 아닌 가족에 대한 가사는 요양보호사가 제공해 야 할 업무가 아니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돌봄수혜자들은 가족들의 가사까지 자연스 럽게 요구했다. 자신이 장기요양서비스를 받으면 자녀들에게도 혜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요양보호사의 노동력을 활용했다. 돌봄수혜자가 가사노동에만 집중하여 요양보호사가 노인의 신체활동에는 전혀 신경을 못 쓰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현미는 운동지도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주말에 노인들에게 운동을 가르치는 봉 사를 하고 있을 정도로 노인의 재활 운동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가 돌보는 대상자는 가사노동을 시키는 것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대상자 운동은 거 의 하지 못하고 있다.
이 어르신은 편마비이기 때문에 운동이 필요한데, 그 가사노동 때문에 운동에 손 을 댈 수가 없어요. 시간은 짧고. 제가 봤을 때 그 분이 쓰러지신 지 오래 됐는데, 10년이 넘었는데. 그 때부터 꾸준한 재활치료를 했으면 충분히 거동하시는데, 밖에 외부출입도 가능할 수 있는 그런 분이신데 방치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만약에 요양보 호사가 2007년부터 왔다, 그러면 그 부분에다가 꾸준하게 두 시간이든 시간을 투자 했으면, 운동하는데 재활하는데 투자를 했으면 그 분은 밖에 거동도 가능하신 분이 에요. 근데 제가 봤을 때는 그걸 방치한 거예요. 가사노동 때문에. (이현미, 재가요양 보호사)
이런 상황에서 요양보호사는 자신이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돌봄과, 수혜자의 욕구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돌봄을 제공하는데 있어서 돌봄수혜자의 욕구를 고 려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돌봄이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돌봄이라고 볼 수는 없다. 돌봄제공자는 돌봄수혜자의 욕구와 돌봄수혜자에게 필요한 돌봄 사이에서 갈등하고, 이를 어떻게 중재하느냐에 따라서 돌봄의 질이 영향을 받게 된다(Tronto, 1993: 109).
한편으로 돌봄수혜자가 자신에 대한 신체적 돌봄 지원을 과도하게 요구하기도 했 다. 장기요양서비스의 표준이 마련되지 않아서 돌봄서비스의 수준을 어느 범위의 의 료서비스까지 포함할 것인지는 이해당사자간에 인식의 차이가 존재한다(이정석, 2013: 115). 요양보호사가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는 여러 영역의 일을 포함하지만 병 원에서 받아야 할 재활 수준을 요구하면서 요양보호사에게 4시간 내내 재활만을 하 도록 지시하는 대상자도 있었다. 돌봄노동은 많은 육체노동을 포함하고 있지만, 요양 보호사가 한 명의 대상자를 보는 게 아니고, 매일 그 일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자 신의 체력을 관리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청이다.
재활을 열심히 한다고, 요양보호사의 역할을 요구하는 보호자가 있다고 해서 그 사람도 괜찮은 사람 같아서 가봤어요. 그 분은 센터를 10번인가 바꿨더라구요. 그래 서 들여다봤더니 우리 요양보호사 선생님한테 4시간 내내 재활만 요구하는 거예요.
재활만. 핫팩부터 뜨거운 물 핫팩, 스트레칭, ROM(관절범위 내 운동), 걷기. 뇌졸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