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노동은 돌봄수혜자와 돌봄노동자 사이의 관계에 기반하는 노동이다. 돌봄노동 은 돌봄제공자가 수혜자에 대한 관심은 물론 타인의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Leira, 1992; Tronto, 1993; Clement, 1996). 돌봄노동은 돌봄을 제공하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게 아니라 돌봄수혜자의 반응을 확인한 뒤에야 돌봄이 이루어졌다 고 볼 수 있다.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돌봄노동에서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Tronto, 1993: 107).65) 관계노동이라는 의미는 돌봄 제공이 돌봄수혜자와의 관계와 분리될 수 없으며, 돌봄제공자와 수혜자간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돌봄이 만들어진다는 의미한 다(Himmelweit, 1999; 윤정향, 2012).
요양보호사의 노동경험은 돌봄이 관계 노동이라는 측면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돌 봄수혜자와의 관계는 서비스 노동에서의 노동자와 수혜자라는 공식적인 관계를 넘어 서서 사적 영역에서 나타나는 친밀한 관계로 발전되었다. 그리고 돌봄수혜자와의 관 65) 트론토(Tronto, 1993)는 돌봄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4단계로 구분한다. 첫째는 관심을 가지 는 것(caring about)으로 돌봄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돌봄 욕구를 가진 존재를 인 지하고, 어떻게 충족되어야 하는지 판단한다. 둘째는 책임을 지는 것(taking care of)으로 확인된 욕구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어떻게 대응할지 인식한다. 셋째는 돌봄을 제공하는 것(care-giving)으로 직접적으로 돌봄 욕구를 충족시키는 단계이다. 넷째, 돌봄을 받는 것 (care-receiving)은 돌봄을 받는 존재가 돌봄에 반응을 하는 것이다(Tronto, 1993:
106-107).
계에 따라서 요양보호사가 수행하는 일의 내용이 달라졌고, 돌봄 업무를 조직하는 데 있어서 권한배분에서도 차이가 나타났다.
1) 돌봄노동과 친밀한 관계의 형성
비공식 돌봄이 애정이나 의무에 기반하여 가족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과 달리 유 급 돌봄노동은 계약에 기초하여 금전적 보상의 교환으로서 수행된다(Leira, 1994;
Fischer & Eustis, 1994). 이에 따라 유급 돌봄노동은 무급 가족 돌봄에서 나타나는 돌봄수혜자와의 관계나 돌봄의 질과 비교해서 차이가 있다고 여겨져왔다(Cancian, 2000; Stone, 2005; Lynch, 2007). 그러나 유급 돌봄노동도 마찬가지로 수혜자에 대 한 애정에 기반하고 있는 것으로 여러 연구 결과에서 나타나고 있다. 나아가 요양보 호사가 돌봄수혜자와 유사 가족과 같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밝혀지기도 했다(Kemp et al, 2009; 최희경, 2010b; 홍세영, 2011; 김송이, 2012; 김민정·김윤정, 2012; 권수 현, 2013).
좋은 돌봄은 요양보호사와 돌봄수혜자와의 가까운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일반적 으로 가족의 돌봄을 이상적인 돌봄을 상정하고, 가족과 같은 애정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좋은 돌봄으로 여겨진다(최희경, 2010a; 2010b). 돌봄노동자들도 수혜자들이 자 신을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면 자신의 지위가 더 높아지는 것으로 인식했고, 일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다(Kemp et al, 2009: 228). 요양보호사의 돌봄노동도 노인에 대 한 애정을 기반으로 하고, 노인과의 관계가 더 좋을수록 돌봄의 질도 향상되었다.
일을 하다 보면은 제2의 가족이 탄생을 하게 되는 거예요. 친밀감이. 그러니까 이 분은 엄마라고 부르는데... 우리 엄마보다 더 많이 관심을 갖게 되는 게 뭐냐면 병자 니까. 당장 엄마를 모시기 전에는 진짜 퇴근 후에도 꼭 들렸었어요. (이정선, 요양보 호사)
돌봄수혜자들도 요양보호사를 친밀한 상대로 생각했다. 요양보호사가 오는 것을 반가워하고 요양보호사가 오지 않는 주말에 그들을 기다렸다. 특히 혼자 움직일 수 없는 독거노인들은 요양보호사 없이는 밖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고립 되어 있다. 그들에게 요양보호사는 유일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대상이면서 사회와 소 통하는 통로이다. 그래서 수혜자들은 요양보호사가 오지 않는 주말에 외로움을 많이
4장 재가 요양보호사의 돌봄노동 경험과 특성
느꼈다. 요양보호사는 그들의 일상을 같이 공유하고, 어떤 때는 가족보다 더 많은 시 간을 같이 보내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요양보호사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도 ‘딸’이라고 지칭하거나, 요양보호사를 부를 때 ‘우리 딸’이라고 호칭하는 돌봄수혜자들도 있었다.
내가 일이 있어서 (요양)보호사가 있으면 좋겠다가 아니고 항상 혼자 있으니까 사 람이 그립지요. (김혜숙, 돌봄수혜자)
나보고 맨날 그랬거든요. “우리 딸보다 정선생이 더 좋아”. 이랬거든요. 딸은 어쩌 다 한두 번 오고 그래서 맨날 집에 손님 오면 “우리 딸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어. (중 략) 집에 할머니 친구분 아니면 교회 식구들이 오면 늘 “우리 딸이다”고. 그리고 어 르신 병원을 늘 모시고 갔잖아요. 그러면 “누구세요?” 물어보면 항상 이렇게 “우리 딸이에요” 이렇게. 그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고. (정미희, 재가요양보호사)
요양보호사의 애정에 기반한 돌봄은 효로 표현되기도 했다. 요양보호사들은 노인 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보살폈고, 돌봄수혜자들은 요양보호사가 자신을 부모처럼 보살 핀다고 느꼈다. 이런 감정을 바탕으로 수혜자들은 요양보호사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했 다. 가족들은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쌓인 감정 때문에 노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 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양보호사는 노인들이 마음을 털어놓고, 그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였다.
뭐 환자한테 소홀히 한 게 하나도 없고, 어디 환자에다가 있는 힘을 다, 정말 노 력을 했어요. 그 간병하는 분이. 자기 부모처럼 섬기고, 말 한마디 한마디도 꼭 자기 부모처럼 대해주고, 그래서 우리 가정, 가사도우미까지 잘 챙겨줬고. 뭐야? 요양사가 와서 가정 요양한 것은 손톱만큼도 불만이 없어요. 참 잘해줬어요. (강춘복, 돌봄수혜 자 가족)
요양보호사가 돌봄수혜자와 친밀하게 관계를 잘 맺는 것은 요양보호사의 능력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연구 참여자중 경력이 많은 요양보호사들은 십년에 가까운 기간 동 안 한두 명의 수혜자가 아니라, 다수의 수혜자를 만났다. 새로운 돌봄수혜자와 적응 하는데 시간이 소요되고, 서로 적응을 하지 못하면 서비스 관계가 해지되기도 하므
로, 새로운 수혜자와 좋은 관계를 잘 발전시키는 것은 요양보호사에게 중요한 요건이 다. 재가 기관의 관리자도 돌봄수혜자와 관계를 잘 맺는 요양보호사를 선호했다. 돌 봄수혜자와의 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으면 돌봄수혜자가 기관을 쉽게 바꾸지 않기 때 문이다. 노동자가 다른 신체적 돌봄이나 일상생활 도움을 원활하게 하지 않아도, 관 계가 친밀하면 돌봄수혜자와의 서비스 계약이 계속 유지되었다. 돌봄수혜자는 관계를 잘 하는 요양보호사에게 계속 돌봄을 받기 위해서 기관을 바꿀 수도 있다고 여겼다.
관계가 좋으니까 정말 2년, 3년 꾸준히 가시는 거예요. 이 사람 아니면 나는 기관 을 바꿔도 이 사람은 못 바꾼다. 이렇게 하시는데. (유수정, 재가관리자)
그러나 요양보호사가 가족과 같은 깊은 관계를 맺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요양보 호사는 유사 가족이지, 진짜 가족은 아니다. 유급 돌봄노동에 가족적 이상을 기대하 고 가족처럼 유대감을 가진다는 논리는 돌봄노동자를 교묘하게 착취하는 방식으로 작용했다(Stacey, 2005; Meagher, 2006). 돌봄수혜자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어떤 때는 요양보호사를 딸로, 어떤 때는 가사노동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돌봄수혜자 의 가족들이 방문했을 때, 요양보호사는 가족들을 시중드는 위치로 격하됐다. 수혜자 가 요양보호사를 딸이라고 호칭한다고 해서 그들을 더 존중하고 인격적으로 대우하 는 것은 아니었다. 노동자들은 노인들이 보이는 이런 모순적인 행동으로 인해서 상처 를 받았다.
어르신들 계시면, 아무래도 환자 계시면 자식들이든지 친척들 오잖아요. 당연히 이 집의 파출부로 전락이 돼버려요. 이 집에 오면. “정 선생 차 한잔, 차 좀 갖고 와.”
(정미희, 재가요양보호사)
우리가 일을 하고 있는데 자기 자녀들이 와. 그러면 그거 하지 말고 얼른 밥 차리 래. 그러면 이럴 때는 우리가 기분이 안 좋지. 아니 자기 아들이 왔는데 우리가 왜 가서 생선을 튀겨야 되고 국을 끓여야 되고 밥도 새로 해야 되고. 처음에는 하긴 하 면서도 불만스러웠어. 이걸 왜 해야 되나? 이걸 우리가 꼭 해야 되나? (박혜자, 재가 요양보호사)
요양보호사들은 자신의 돌봄이 애정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 애정관계는 언제든지
4장 재가 요양보호사의 돌봄노동 경험과 특성
끝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돌봄수혜자를 제2의 가족이라고 불렀던 이정 선도 돌봄수혜자의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아서 언제든지 돌봄서비스를 종료할 수 있 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돌봄수혜자에게 감정이입하고 친밀해지는 것은 결과적으로 노동자에게 피해를 가 져올 수 있기 때문에 관리자들은 수혜자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조언을 하기도 한 다(Stacey, 2005: 844). 노인을 존중하고,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중요하지만 어디까지나 노동자와 돌봄수혜자의 관계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요양보호사의 노동자 지위는 사라지고, 돌봄수혜자가 언제든지 돌봄을 부탁할 수 있 는 가족과 같은 존재가 되면서 가족에게 요구하는 수준의 헌신을 요양보호사에게 기 대하기 때문이다.
가족 같이 되면 자기 노동자성은 없어져요. 제가 맨날 일정 거리를 두라고 하는 게, 존중하는 것도 일정거리 두기에요, 상대 존중하는 것도. 그리고 호칭을 정확하게 쓰는 것도 일정거리 두기에요. 그래서 나는 분명히 요양보호사이고 노동자이고, 이 분은 서비스를 받는 대상자. 여기에서는 벗어나갖고 자꾸 가족이 되면은 나중에 상처 받는 게 요양보호사에요. 가족이 되면은 여태까지 안 했던 서비스가 차츰차츰 늘어나 요. 그러면서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다. 본인이 생 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살살 물어봐요. ‘언제부터 이렇게 일을 많이 하게 됐지?
한 6개월 후부터 많이 하게 됐나? 1년 지나니까 더 많이 하게 되고, 2년 되니까 더 많이 하게 되고. 그래서 누구 잘못이지?’ 내 잘못이에요. (서명옥, 재가요양보호사)
그러나 노인과의 관계에서 거리를 어느 정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요양보호 사들간에 이견이 존재했다. 돌봄노동이 매일 이루어지고, 육체적인 노동만이 아니라 정서적인 부분까지 포함을 하기 때문에 노인에 대한 친밀감 없이 일을 하는 것이 어 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인과의 관계에서 경계를 짓고, 공식적으로만 일을 하는 것 은 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요양보호사도 있다. 돌봄수혜자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상처를 받더라도, 다시 새로운 수혜자를 만나면 과거의 경험을 잊고 새롭게 관계를 시작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