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5. 논문의 구성
2장에서는 일본의 원폭피해자 구호(救護)에 관한 법률 제정의 역사를 통해 일본의 원폭 피해자구호정책의 정치사회적 배경을 살펴본다. 패전 후 GHQ(General Head Quarters, 연 합군총사령부) 점령 하에서 일본의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초기 구호와 이들에 대한 과학연구 의 흐름, 그리고 ‘원폭전재민’의 구호 문제가 히바쿠샤의 원호(援護)로 제도화되는 역사적 과정을 개략적으로 고찰한다.
3장에서는 원폭피해자구호정책이 법과 행정이라는 제도적 틀 속에서 실행되어 나가는 과정을 히바쿠샤의 경계 구성과 통제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히바쿠샤의 경계를 구
성과 통제라는 측면에서 나누어보면 전자가 원폭피해의 실재를 규정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 련한 과정이라면, 통제는 그 법적 규정에 해당하는 기준에 따라 자격을 심사하고 판별하는 행정적 절차를 수반한다. 히바쿠샤라는 자격의 범주의 탄생 또한 경계의 구성이라는 측면과
‘이 경계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동시에 수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과정은 모두 원폭의 피해 혹은 피폭의 피해라는 것이 관료제적 체제 속에서 재구성 되고 정의되며, 실천됨을 의미한다.
4장에서는 일본정부가 히바쿠샤의 시민권적 경계를 설정해 놓았던 것이 균열되는 과정 을 다룬다. 일본정부가 원폭피해자 원호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재외국민 원폭 피해자는 히바쿠샤의 경계 안으로 편입되지 않았다. 그러나 1965년 한일협정 체결을 즈음해 사회적으로 결집하기 시작한 한국원폭피해자들은 한일 양국 사회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 기 시작한다. 본 장에서는 이들 한국원폭피해자들이 어떠한 역사적 과정을 통해 일본의 원 폭피해자구호정책의 장으로 편입되어 히바쿠샤의 또 다른 경계인 시정권(施政權)26)을 넘어 서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전후 냉전체제하 동아시아국제질서라는 제약 속에서 스스로의 권리 투쟁과 일본 시민 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일본의 원폭피해자구호정책의 장으로 편입된 한국원폭피해자들의 존 재는 정치사회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형성되어온 것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오늘날 히바쿠샤 의 경계를 넘는 개별 한국원폭피해자의 경험과 그들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이들을 설 명해주지는 않는다. 5장에서는 오늘날 한국원폭피해자들이 히바쿠샤가 된다는 것이 한편으 로는 일본원폭피해자구호정책에서 히바쿠샤의 경계에 관한 행정관료제적 통제 과정,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원폭피해자협회를 중심으로 특수하게 형성되어온 한국원폭피해자 구 호의 과정과 맞물려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한편 원폭피해자에 대한 연구는 일종의 사회적 고통에 대한 연구로서, 본 논문을 구성하 고 사례를 인용·분석하는데 있어 서술 원칙은 이 같은 주제를 다루는데 있어 중요하게 고려 되어야 한다. Kleinman·Das·Lock(1996)은 사회적 고통에 대한 연구에서 연구자가 이를 재현 하는 방식은 관찰자나 독자뿐만 아니라 고통의 당사자, 그리고 그 가해자에게도 경험되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재현할 자는 연구자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는지, 그리고 거 기에 어떻게 개입하고 있는지를 미리 구성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연구자는 한국원폭피해자 에 대한 그간의 연구들을 접하면서 위의 지적에 크게 공감하는 바이며, 본 논문에서 사례를 인용하고 분석하는데 다음의 세 가지 정도의 서술 원칙을 지키고자 했다.
첫째 지금까지 한국원폭피해자의 고통을 묘사하는 일반적인 미디어적 재현이나 서사 방
26) 원폭의료법과 원폭특별조치법의 적용 대상과 그 범위를 한정지은 후생성의 ‘402호 통달’은 한국원폭 피해자들 뿐만 아니라 이른바 일본 국적의 일본 ‘히바쿠샤’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일본에 살면서 피폭자건강수첩을 취득했다가 장기 출장 등과 같은 공백이나 퇴직 후 이민한 경우 ‘거주관계’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한국원폭피해자와 마찬가지로 ‘히바쿠샤’에 대한 의료적, 경제적 지원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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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과 거리를 두고자 했다. 사회적 고통이 카메라에 비친 피사체의 모습으로 드러날 때, 그 영상은 두 말할 나위 없이 큰 호소력을 지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의 일상적이고 비가시적이며, 현재적인 경험들을 구성해내는 역사적 층위와 한국의 정치사회적 장에서 큰 호소력이 없는 해석들을 주변화시키거나 침묵시키는 경향이 있다. 연구자는 한국원폭피해자 들의 경험을 단지 원자폭탄이 떨어지는 순간에 고정시키지 않고, 이들의 부모 세대에서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을 한국의 근현대사적 시간의 흐름 속에 위치 짓고자 했다.
둘째 원폭 피해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을 특정 절의 본문에서 따로 다루지 않았다. 이는 연구자가 원폭 피해의 정도를 일본에서 생산된 전체적이고 표준적이며, 또한 물화된 형태로 서의 공식기록이 아니라 한국원폭피해자들의 구술을 통해 비일관되고 비조직적인 형태로 이들의 삶의 한 부분으로서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의 부분적이고 파편적인 기 억과 인식들이 한국 사회에서 한국원폭피해자들이 자신들의 기억과 경험을 간직해온 방식 이며, 또한 그 개별 원폭피해자들의 경험과 기억은 피폭자에 대한 관료제적 통치 속에서 특 정하게 변형되거나 환기되고, 때로 교정되는 것이기도 한 현실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 방식이 독자로 하여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피해의 규모를 상상하는데 어려움을 낳는다는 지적에 따라, 그와 관련된 내용을 부록4에 추가했다.
셋째 연구자는 본 논문에서 개별 원폭피해자들의 넋두리나 한탄, 분노 등이 그대로 드러 나는 긴 구술 내용을 그대로 직접 인용했다. 논문에서 분노(anger)를 비롯해 감정을 드러내 는 언어는 허용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고, 연구자 또한 그와 같은 감정적 수사를 연구자의 분석 언어로 채택하지는 않았지만, 연구자는 연구자가 채록한 구술사 텍스트 상에서 나타나 는 강한 분노나 아쉬움, 긴장, 한탄, 슬픔 등이 그 자체로 하나의 강력한 감정적 힘과 분석 적 효과를 갖고 있다고 보았다.27) 특히 이러한 감정들은 5장에서 분석하고 있는 관료주의의
‘비인격적 대면’과 ‘무심함’과도 대비된다.
27) 이스라엘의 싱글맘을 지원하는 복지 제도의 관료제적 그물망(bureaucratic web)에 얽힌 사람들의 인 종과 젠더 정치에 대한 Lavie(2012)의 연구는 민족지 서술에서 ‘분노’의 언어가 그 자체로 강력한 감 정적 힘을 가지며, 이것이 일종의 해방적이고 강고한 선언 행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