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히바쿠샤 범주의 경계 구성과 통제
1) 히바쿠샤의 범주에서 배제된 “원폭체험자”
2012년 8월 6일 원폭기념일을 맞아 NHK는 NHK스페셜 <살아남지 못한 원폭조사−검 은 비>라는 특별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ABCC가 활동 초기인 1950년대 ‘검은 비’(黒い雨)69)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음에도 왜 이에 대한 후속 연구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한 이 방송 프로그램의 내용은 조금 길지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50년대 초 당시 미국원자력위원회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관련한 임무를 시작했 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ABCC는 1953년 9만 3천명의 피폭자 집단을 대상으로 한 방사선 의 건강영향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 조사는 원자력위원회의 피폭안전기준을 만들기 위 한 기초조사로 활용될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 기준이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원자력의 평 화적 이용 선언을 앞두고 급히 만들어질 필요가 있었다는 점이다.
같은 시기인 1953년 초 ABCC의 생물통계학 부장이었던 우드베리(L. Woodbury) 박사의 검은 비 및 잔류방사선의 영향에 대한 조사도 시작된다. 잔류방사선과 내부피폭 가능성을 타진한 이 조사는 폭심지에서 4.93km지점에 떨어진 곳, 즉 당시 ABCC 선량추계에 따르면 초기 방사선의 영향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지역에 검은 비가 내렸는데, 그곳에 있
69) 히로시마 시와 나가사키시가 공동으로 편집한 원폭재해지에는 원자폭탄의 피해 중의 하나로 ‘잔류방 사능’에 대한 부분이 나온다. 이 원폭재해지에 공식적으로 기술된 것에 의하면, 원자폭탄의 폭발 후 잔 류방사선의 원인으로 고려되는 것들은 핵분열생성물, 우라늄 또는 플루토늄이 미분열 상태로 날아다니 는 것 그리고 원폭기재(器材)나 공중 혹은 지상의 물질에서 중성자선에 의해 방사능을 띠게 된 것 등 이 있다. ‘방사성낙진’은 바로 이러한 잔류방사선을 방사하는 미립자들이 공중이나 대기 중으로 퍼졌다 가 지상으로 떨어지는 것을 지칭한다. 검은 비나 방사성 낙진 등으로 인한 피폭은 잔류방사선에 의한 피폭이라고 하는데, 이는 신체 외부에서 주로 감마선을 쪼이게 되는 외부피폭과 방사성물질이 체내에 들어가 그 베타선이나 감마선을 쪼이게 되는 내부피폭이 고려된다 (廣島市·長崎市 原爆災害誌編輯委員 會, 1989(1979)).
던 사람이 원폭관련 증상을 보이고 있으며 이와 관련해 좀 더 심도 깊고 확장된 연구가 필 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조사는 당시 ABCC의 직원이었던 구리하라 메히코의 직접 체 험이 바탕이 됐다. 그녀는 히로시마 시외에 살고 있었지만 원폭 당시 검은 비를 맞았으며 그 후 원폭피해자들과 똑같이 설사와 구토, 탈모 등의 증상을 경험했다. 조사가 진행 중이 던 1953년 12월 아이젠하워는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 For Peace) 선언을 내놓았다.
한편 ABCC에서 우드버리 보고서가 공식 발표되기 직전인 1954년 3월 1일 비키니 피재 사건이 터진다. 2장 2-3절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시기는 일본 사회 내에서 방사선에 대 한 불안이 매우 높았던 시기였다. 우드버리 박사는 이러한 시기가 잔류방사선 연구의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ABCC의 상부와 미국의 관계자들은 그의 의견을 달 가워하지 않았다.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신뢰할 수 없는 보고서"라고 치부된 그의 조사는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비키니피재를 계기로 일본의 반핵열기가 강해지고, 원수폭금지세계대회가 처음으로 개최되는 등 일본 사회 내의 공산당 및 사회당의 활동이 반미감정을 부추길 수 있다고 본 미국과 일본 정부당국이 방사선의 피해에 대한 사 람들의 불안감이 공산주의와 반미감정으로 이용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핵의 위험에 대한 의식이 높아질수록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선언과 그 실행 수단으로 내걸어진 원자력 정책 이 비판받게 될 것임은 자명했다. 1958년 우드버리 박사는 원자력위원회에 참석해 질의시간 을 가졌다. 그리고 돌연 ABCC를 사직했다. 그는 사직 후 검은 비와 잔류방사선에 대해서는 ABCC의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며, 인정도 하려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묻혀가고 있 다고 회고했다.
NHK스페셜의 이날 프로그램은 일본에서 8월 6일과 9일 사이에 원폭피해자에 관한 특 집 방송이 연례적으로 방영된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계절적 성격을 띠는 것이기도 했지만, 이날 이 프로그램이 특별했던 것은 초점이 맞추어진 저선량 방사선에 의한 내부피폭 문제 가 오랫동안 원폭피해자들과 ABCC/RERF, 그리고 일련의 방사선인체영향과 관련된 연구자 들과 후생성 사이에서 그 영향의 정도를 놓고 이견이 있어온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저선량 방사선에 의한 내부피폭의 문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사고 지역뿐만 아니라 일본의 전역에서 점차 주목받고 있는 주제이기도 했다. 이런 관심 속에서 ABCC/RERF와 후생성은 내부피폭이나 잔류방사선, 혹은 저선량 방사선 피폭에 대해서는 매우 보수적인 기 준을 내세워왔다는 점에서 이날의 방송은 왜 ABCC/RERF가 저선량 방사선 피폭 혹은 잔류 방사선에 의한 내부피폭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가에 대해 1950년대 초기에 있었던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을 조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ABCC의 초창기 시절 우드버리박사의 연구가 당시의 냉전체제라는 배경 하에서 막 출범한 원자력산업의 이해에 따라 이후 심도 깊게 확장 되지 못한 것은 오늘날 소위 ‘원폭체험자’라고 불리는 이들의 ‘검은 비’에 대한 경험이 정치적 배경 속에서 과학의 언어로 번역될 기회를 잃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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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오테마치(大手町)에 살았어요. 폭심지에서 가까운 데에요. 그거(원폭) 맞기는 고이에 서 맞았어요. 그때 고이 기차역에서 시외로 나가는 전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 앞으로 먼저 몇 사람이 타고 가고 한두 명인가 앞에 있고 우리를 남겨두고 전차가 가버렸어요. 그러고 있는데 조 금 있으니까 ‘퍽’ 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옛날에 보면 사진 찍을 때 ‘퍽’ 하는 것처 럼, 번갯불처럼 천상 그기라. 그 벼락 떨어지고 나니까 깜깜해져요....(중략)....일어나서 보니 지갑 도 날아가 버리고. 나와 보니까 몇 백 년 된 수양버들 나무가 뿌리 채 자빠져가 있대. 그리고 조 금 있다 보니 비가 오대. 비가 새까매. 고르당(コールテン,코르덴71)) 물처럼. 먼지가 올라가서 만들어진 비라. 검은 비라. 데인 사람이 그 비를 맞으니 그 살이. 휴. 옷을 안 입고 있는 사람들 보면 비를 맞으면 껍데기가 싸악 벗겨져. 감자 껍질 벗겨지듯이. 그래 막 아프다고 하고. 또 그래 가 모자를 쓴 아이들 보면 모자 아래에는 머리가 있는데, 밖에는 머리가 다 타버리고 없어요. 말 도 못해요.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지. (김수영, 여, 1928년생, 히로시마 고이 역에서 피폭)
고르당 물 같은 이 새까만 비는 히로시마의 경우 당시 폭심지 서북방향으로 구름이 생 겨나 내렸고, 나가사키의 경우에는 니시야마(西山)지구 쪽에 집중적으로 떨어진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廣島市·長崎市原爆災害誌編輯委員會, 2005). 그런데 플루토늄으로 구성되어 반감 기가 길었던 나가사키 원폭의 경우 그 증거가 용이했던 것에 비해 우라늄으로 만들어진 원 자폭탄이 사용된 히로시마는 그렇지 못했다. 게다가 ABCC는 원폭투하 뒤 몇 주 뒤에 있었 던 태풍과 대홍수로 히로시마에 잔류방사능이 거의 다 사라져버렸다고 한 뒤였다 (広島県
「黒い雨」原爆被害者の会連絡協議会、2012).
일본인 연구자들이 폭심지 부근에서의 잔류방사선에 대한 보고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 하고,72) 잔류방사선 피폭도 포함되지 않았다. 구호작업을 위해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 입시 한 이들에게서 피폭증과 일치하는 증상을 겪었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미국의 군부는 잔류방 사선의 수준은 극히 낮으며 그러한 피폭 증상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기록했다. 즉 이들은 앞 절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쟁의 혼란상 등으로 인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초기 방사
70)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지금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저선량 방사선 피폭의 문제가 과학적 실재로 서 번역되거나 혹은 인정받은 것이 얼마나 정치적인 문제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71) 한국에서는 흔히 ‘골덴’(corded velveteen)이라고 불리는 옷감의 일본식 표현이다. 원폭 투하 당시 내 렸던 검은 비는 검은 색의 끈적끈적하고 매끈한 형태를 띠었는데, 연구자가 인터뷰했을 때 여러 사람 들이 이 비를 ‘석유같이 끈적끈적했다’거나 ‘고르당 물’ 같았다고 많이 묘사됐다.
72) 잔류방사선에 대한 일본 측 반응은 Shohno Naomi and Sakuma Kiyoshi, "The Fundamental Examination of the Amount of Radiation Received and Its Correlation to Acute Symptoms"(1958). Grant Taylor to Carl A. Harris, 7 Aug 1951, 6/S, JVN: “우리는 잔류방사선의 효과에 대한 가능성에 대한 몇몇의 의견을 받은 바 있습니다. 이 중 하나가 Dr. Davison을 통해 우리 에게 왔습니다. 히로시마에서 폭격 직후 사체 처리 작업 등에 동원된 미국 병사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내용이고, 비슷한 사례가 하나 더 있습니다.... 몇 달전에 우리는 원폭투하 직후 히로시마 시에 들어갔 던 사람이 탈모 증상이 있었다는 '루머'를 추적하고 시도로서 하나의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 잔류방사선에 대한 일본인 연구자들의 보고는 ‘히바쿠샤’의 범주를 구성하는 네 가지 조건 중 ‘구호피 폭자’와 ‘입시피폭자’를 인정하는 ‘잔류방사선 인정 기준으로는 채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