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히바쿠샤 범주의 경계 구성과 통제
2) 히바쿠샤 범주의 시공간적 경계 구성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히바쿠샤가 방사선량이나 피폭량 등과 같은 수치가 아니라 장소와 시간을 통해 규정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 장소와 시간이 방사선 영향의 지표가 됨을 의미 한다.
가령 히로시마시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면, 이 법안 시행 당시에는 피폭 당시 폭심지(爆 心地)에서 5km이내 혹은 후생대신이 지정한 구역 내에 있었던 사람(직접피폭)과 원폭 투하 후 2주 이내에 폭심지 2km 내의 지역에 들어갔던 사람(입시피폭), 그리고 사체처리 및 구호 등에 종사한 사람(구호피폭) 및 그들의 태아(태아피폭)에게 히바쿠샤의 자격이 주어진 것이 다. ‘기한 내’라 함은 두 도시 모두에서 원폭 투하 후 2주 이내로 결정됐다. 또한 이 중 2호 에 해당하는 입시피폭자는 원폭 투하 당시에는 없었지만 구호나 사체처리, 혹은 가족친지 등을 찾기 위해 원폭투하 후 2주 이내에 폭심지를 중심으로 2km 반경 이내의 구역에 들어 갔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 (広島県, 2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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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연구는 상당 부분 ABCC로 대표되는 사실상 미국 주도로 이루어진 미일공동연구에 기 반하고 있었다. 일본의 개별 연구자들이나 의사들의 임상 진단에 의한 연구가 진행되지 않 은 아니지만, GHQ 점령기의 원폭 관련 연구에 대한 통제로 인해 일본 연구자들의 자유로 운 연구 및 발표, 회람 등이 규제됐고, 연구나 자료의 많은 부분이 미국 측으로 넘겨졌다 (笹本征男, 1995; Lindee, 1994; モニカ·ブラウン, 1988). 일본에서 정부 예산을 지원 받는 방 사선 영향 연구가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진척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원폭의료 법 제정 초기에 ABCC에서 이루어진 과학 연구의 결과들과 몇몇의 개별적 연구들이 거의 전부였다고 할 수 있다.59)
중요한 것은 당시 이러한 연구들이 개별 피폭자의 신체에 대한 생물학적 진단 방식을 통해 선량을 평가하는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점과 방사선의 만성적 영향 연구나 치 료 등에 있어서는 매우 초보적인 단계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일본의 방사선 치 료 관련 권위자였던 츠즈키 마사오(都築正男) 동경대 교수가 1956년 일본 국회에서 당시의 일본의 방사선 관련 의학 수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한 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방사선 치료와 관련해서는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건 제가 말씀드 리기는 조금 뭐합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 세계의 어떤 나라도 방사선에 의한 만성적 영 향 및 그것의 치료 방면에 있어서 발전이라는 것은 '제로'입니다. 일본도 '제로'고 미국도 '제로' 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렇다 저렇다 해도 결국 결론은 '제로'입니다. 만약 지금 일본이 히 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장해자들에 대해 연구가 되어 0.0001이라도 플러스가 되면, 그것이 세계 제일이 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일본에서 이 방사선의 치료와 관련된 방면에서 풀타임으 로 연구에 매진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저만해도 일개 개업의로서 병원에서 치료를 하 고 있고, 도쿄대 교수라고는 해도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본직입니다. 제가 아무리 방사선 치료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걸로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일본은 이 방면에 반드시 전문으로 하 는 기관을 만들어 연구자들로 하여금 연구해나가게 해야 합니다 (1956년 11월 26일 일본 국회 참 의원 본회의 회의록).
이처럼 원폭의료법이 제정되던 시기의 과학 연구가 ‘피폭’의 인체적 영향을 밝히는 데 있어서 ‘방사선량’의 생물학적 진단이라는 방식을 채택하지 못한 것은 당시 연구가 가진 한 계였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어떤 경우에 어느 정도의 방사선량에 노출되며, 그것이 인체에 어떠한 정도로까지 영향을 미치는가를 판별하는 것이 이들 과학연구의 핵심 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그러한 한계를 보완해야 했다.
결국 당시 연구 수준에서 개별피폭자들이 쪼인 방사선량은 미국이 이미 진행한 핵실험 에서 얻은 물리적인 방사선량 데이터에 준거하게 된다. 폭심지에서의 거리에 따른 선량 추 59) 이와 관련된 연구 프로그램들을 아래의 표에 정리했다.
정이 당시의 연구수준에서는 동원 가능한 최선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 인체에 대한 피해 연구로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생존자들이 처음이었으므로, 그들이 가정 한 선량과 그에 피폭된 생존자들의 증상을 연결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즉 히로시 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생존자들의 증상이 선량에 따라 미리 예측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피폭된 신체적 상태나 증상을 통해 방사선량의 영향 정도 혹은 그 관계가 탐구됨을 의미했 다.
연구자들은 피폭자의 생존율, 증상 분석을 위한 표준화된 형태를 파악하기 위해 생존자 시설 원폭상해조사위원회(ABCC 1947년)
(재)방사선영향연구소(방영연, RERF, 1975년)로 개편
히로시마적십자·원폭병원방사선의학총합연구소(방의연·치바 1957년) 히로시마대학의학부및원폭방사능의학연구소(히로시마대원의연 1961년) 히로시마원폭장해대책협의회건강관리센터(히로시마원대협 1953년) 조직 원자폭탄후장해연구회(1959년)
일본방사선영향학회(1959년) 원폭장해증조사연구반(1980년)
표 1 원폭 후장해연구에 직접 관계하는 주요시설 및 조직 (히로시마를 중심으로 함) (출처: 広島県福祉保健部保健医療局, 2007:20)
시설명 프로그램 대상자수 조사 개시
방영연(ABCC) 피폭자 수명조사 병리학적조사 성인건강조사 태내피폭자조사 피폭자의 자녀 사망률조사 유전생화학적 조사 세포유전학적조사
110,000 70,000 20,000 2,800 77,000 45,000 33,000
1950 1961 1958 1956 1960 1975 1967 히로시마대
원의연
피폭자사망조사 피폭자가족조사 근거리피폭자조사 피폭자쌍둥이조사 피폭자2세조사 혈청코호트조사
269,000 87,000가족 600 460조 12,000 9,700
1968 1976 1973 1980 1986 1990 히로시마
원대협 건강관리센터
원폭피폭자건강진단의 실태조사 피폭자건강진단미진단자조사 피폭자건강진단내용의 검토 당뇨병역학조사
위암발병률조사 폐암발병률조사
150,000 14,000 2,000 110,000 110,000 110,000
1968 1971 1973 1963 1964 1976 표 2 주요 원폭후장해연구 프로그램
(출처: 広島県福祉保健部保健医療局, 20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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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피폭 당했을 당시 폭심지와의 거리, 자세, 차폐물, 피폭 직후의 증상 등에 대한 상세한 기술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그리고 이것을 폭심지(ground zero)를 중심으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7개의 동심원이 그려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지도에 그려 넣어 생존자들 의 피폭지점을 도면화했다 (Lindee, 1994:27). 기존 핵실험 데이터에 기반을 두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경우도 폭심지로부터의 거리가 2Km가 넘으면 피폭선량은 모두 수 센티 그레이, 그리고 2.5Km 이상 멀어지면 원폭방사선은 제로라고 설정됐다.60) 8개의 방사선도 지도에 추가됐다. 이로서 어떤 지점이든지 폭심지로부터의 거리(동심원)와 방향(방사선)에 따라 특 정하게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도면은 생존자들의 패턴을 묘사하고 생존자들의 피폭량 정도를 추정하는데 사용됐다 (Oughterson and Warren 1956, 462-64).61)
1950년 시행된 국세조사를 바탕으로 처음으로 피폭자에 대한 대규모 집단 조사에 들어 간 ABCC의 수명조사집단 연구는 히바쿠샤의 과학적 경계를 구성하는 데 있어 특히 주요한 참고 자료가 됐다. ABCC의 주요연구집단인 수명조사집단(LSS)은 원폭 투하 당시 호적의 소 재지(본적)가 히로시마 또는 나가사키 시였던 사람들인데, 이들은 기본적으로 1) 폭심지로부 터 2km 이내에서 피폭당한 기본군 피폭자 전원으로 구성된 중심그룹(근거리피폭자), 2) 폭 심지로부터 2km~2.5km에서 피폭당한 기본군 전원, 3) 앞의 중심그룹(근거리피폭자)과 연령 과 성별이 일치하도록 ‘추출된’ 1950년대 전반에 히로시마 혹은 나가사키에 거주하고 있었 지만 원폭당시에는 시내에 있지 않았던 사람, 4) 원폭 당시 시내에는 없었으나 원폭 후 60 일 이내의 입시자와 그 이후의 입시자를 포함시켰다. 이 수명조사집단 연구에 따르면 폭심 지에서 2km에서 피폭된 경우 이 집단의 50%가 급성방사선증에 의한 사망에 이른다는 것이 1950년대 후반 당시까지의 연구결과였다. 폭심지로부터 2km 이내라는 기준은 급성방사선증 그리고 심각한 피폭의 영향의 중요한 기준이 됐다.62) 원폭 투하 이후에 이곳에 진입한 미국 측 연구자들은 원자폭탄의 대인살상력 효과의 판정이라는 군사적 관심을 가지고 조사를 시 작한 만큼, 폭탄의 초기 폭발력과 치사(致死)에 이르는 선량을 규명하는 것(Lindee, 1994:25-26)과 관련된 연구들이 이 기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와 같이 원폭의료법 시행에서 히바쿠샤의 범주를 결정하는 데 있어 피폭 당시 폭심지
60) RERF의 기본 선량 추계에 따르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모두 폭심지에서 1km에서 4500밀리 시버 트, 2km에서 100밀리 시버트로, 원자력위원회는 100밀리 시버트를 인체영향의 안전기준으로 보고 있 다. 그러나 RERF의 1999년 요람에는 잔류방사선에 대해 꽤 상세한 내용이 담겨있다. 물론 잔류방사선 은 폭탄 폭발 후 1일째 전체 잔류방사선의 80%, 2-5일째에 약 10%, 그리고 6일째 이후에 남은 10%
가 방출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61) 이 면접조사에 기초해 방사선에 의한 급성사망(피폭 후 약 2개월 이내 사망)자가 집단의 50%에 해당 하는 선량을 LD50(50%치사선량)이라 명명했다. 히로시마에서는 1~1.2km, 나가사키에서는 1~1.3km 정도에서 피폭당한 사람의 약 50%가 2개월 이내에 사망했으며, 그들의 골수 선량이 2.7~3.1Gray로 추정된다고 보고됐다.
62) 이 거리 변수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직후부터 매우 중요하게 고려된 변수로서, 이 는 피폭자에 관한 과학연구 뿐만 아니라 원폭의료법 제정 초기의 ‘특별피폭자’제도 그리고 지금은 ‘원 폭증’ 인정 여부 등에 있어서도 가장 핵심적인 기준이 된다. 被爆者援護法令研究会編,앞의 책. p.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