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히바쿠샤 범주의 경계 구성과 통제
3) 히바쿠샤 범주에 관한 초기 논쟁
그렇다면 히바쿠샤의 범주를 결정하는 이 같은 시공간적 경계가 히바쿠샤를 판별하는 데 있어 이후 안정적인 지표로서 정착하게 되었을까. 전술한바와 같이 정책의 장에서 법률 적 용어를 통한 표준적인 정의의 선언이 관련된 여러 자원의 불균등한 배분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정책적 대상의 범주와 그 자격에 대한 명문화된 경계 짓기는 사실 언제나 격렬한 논쟁에 맞닥뜨리게 된다.63) 하물며 히바쿠샤의 경계와 같이 그 범주의 설정, 즉 경계 짓기가 완전하지 않거나 혹은 안정되지 않은 과학적 주장들에 근거하고 있을 때, 사회적 정당성뿐만 아니라 또 다른 과학적 주장에 기반한 강한 도덕적, 정치적 요구와 주장들은 그 경계를 허물거나 재구성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힘이 되기도 한다. 즉 이 명 문화된 경계 속에서 만들어진 자격의 범주와 관련된 여러 주장들은 끊임없이 협상되며, 그 로 인해 만들어지는 경계의 성격에 대해 공적 논쟁의 장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 공적인 논 쟁의 장 속에서 각각의 주장들은 도덕과 윤리, 정의뿐만 아니라 과학과 지식으로부터 정당 화 근거를 찾는다.64)
여기서 법률 제정 초창기의 논란 하나를 검토하는 것으로 관련 논의를 이어가볼 수 있 다. 1957년 3월 25일, 법안 가결을 앞둔 중의원 회의에서 히바쿠샤의 네 종류와 관련해 흥 미로운 질의응답이 오갔다. 당시 이 법안의 심사를 담당했던 사회노동위원회 소속 滝井義高 위원이 3호에 해당하는 피폭자의 범주에 대해 질문을 제기했다. 그는 2호의 ‘기한내’라는 의 미가 2주라는 답을 들은 뒤 3호에서 규정된 “앞2호에 해당하는 사람 외, 원자 폭탄이 투하 되었을 때 또는 그 후에 신체에 원자 폭탄의 방사능의 영향을 받은 사정 하에 있었던 사람” 의 문구에서 ‘그 후에 신체에 원자 폭탄의 방사능의 영향을 받은 사정 하’가 어디까지인지 를 물었다. 앞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원폭의료법 제정의 계기가 된 비키니 피재 사건은 냉전체제 하에서 미국과 소련을 필두로 한 핵무기 개발경쟁 속에서 일어났고, 연이어 영국 이 원수폭실험 대열에 뛰어들어 그로 인한 방사능 낙진이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소식 63) Michael Lynch, 2004, "Circumscribing expertise: Membership categories in courtroom
testimony" in Sheila Jasanoff ed., States of Knowledge: The co-production of science and social order, Routledge.
64) Lynch, 앞의 논문. p.163; Jasanoff, S., 2004, "The idiom of co-production" in S. Jasanoff ed.
States of Knowledge: The co-production of science and social order, Rout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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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민감해 있던 때였다. 滝井義高위원은 그런 의미에서 ‘그 후에’라는 범위를 물은 것이다. 이에 당시 山口 후생대신은 이 법률의 목적(제1조)에 분명히 “히로시마시 및 나가사키 시에 투하된 원자 폭탄의 피폭자라고 운운하고 있으므로” 8월 6일 및 9일의 원자 폭탄의 투하, “그 사건 이외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답변을 내놓는다. “‘그 후에’라고 하는 것을
“무한대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에 역시 이것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 폭탄 투하 와 직접 관련해서만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후생대신의 이 말은 일단은 법조문 내에서 는 논란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滝井義高위원은 ‘방사능의 영향’을 받을 만한 사 정 하에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법률이라면 마땅히 그 이후의 히바쿠샤들에 대해서도 법률은 그 구호를 생각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이는 다음 절에서도 살펴보겠지만 단순히 모 든 원수폭의 피해자를 구호해야 한다는 입장 때문만이 아니라, 피폭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에만 한정시킬 경우 그 증명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와 연관되는 문제였다.
시간이라는 측면에서는 태내피폭자도 문제가 됐다. 원폭의료법은 제정 당시부터 직접피 폭자, 입시피폭자, 구호피폭자에 해당하는 사람의 당시 수태자에 한해 그 자격을 인정했다. 문제가 된 것은 그 이후에 피폭된 이들에 대한 인정 요구였다. 질의에 나선 카즈오 의원은
“(피폭) 후에 수태된 태아가 백혈병이 걸려 상당히 앓다가 사망한 실례”를 들며, 이들에 대 해 인정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후생대신은 이것이 “유전의 문 제와도 연결되는 것”으로서, 방사능의 유전적 영향에 대해서는 당시 학계에서도 여러 가지 논란이 되고 있어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이는 이후 학계 특히 유전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의 추이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 답한다. 카즈오 의원은 다시 이에 대해 반박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학설이라는 것은 진짜 정설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상당히 걸립니다만 병으로 고통 받으며 죽 어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시간의 여유가 없습니다. 정치라고 하는 것은 사회생활 속에서 살아 가는 것입니다. 어떤 학설이 정말 완전한 정설이 될 때까지, 그 사이에 자꾸자꾸 사망해가는 피폭 후에 수태된 태아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 점은 학설만을 근거로 하지 말고 정치를 담당하고 행정을 담당하고 있는 성(省)에서 그러한 태도로 그것이 포함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 니다. 그런 점에서 이 법안은 상당히 미흡합니다. 저는 정말 현실의 예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조사하고 싶다고 말씀하신다면 그 분에게 조사를 받도록 연락할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어떻게든 그것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이 법안은 지금은 맞지 않기 때문에 다음 해에 즉시 그러한 것을 고려해주셨으면 합니다. (1957년 3월 25일, 일본국회 중의원 사회노동위원회 회의록)
그러나 카즈오 위원이나 滝井義高위원의 주장은 법안에 반영되지 않았다. 사실 법안 의 결 당시의 이러한 초기 논란은 실질적으로 히바쿠샤를 규정하는 어떠한 법적/물리적 경계 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은 그저 하나의 소란과 같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태내피폭자 문
제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이외의 히바쿠샤들에 대해서는 그 어떤 원호 움직임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원폭의료법에서 규정된 히바쿠샤의 경계는 매우 견고한 형태를 띠는 것처 럼 보인다.
그러나 이 초기 논란은 이 히바쿠샤의 경계가 과학 혹은 학설에 따라서 사실은 얼마나 쉽게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부분은 침식이 되고 또 어떤 부분에서 는 여전히 견고한 상태로 남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실마리가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카 즈오 의원의 발언에서도 읽을 수 있는 것처럼 법률적 규정이 근거로 하는 학설, 즉 과학적 판단의 속성은 정치적 혹은 정책적 판단의 논리와 윤리를 규정하는 속성과는 다를 수 있으 며, 그런 의미에서 과학적 의견이 정책적 판단을 단순히 정당화 기능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이 두 영역이 균열될 수 있는 가능성도 시사한다.65) 학설로 대표되는 과학의 논리와 정치의 윤리는 언제나 상호 보완적이었다고만 볼 수는 없다.
더욱이 히바쿠샤들에 대한 과학연구는 신체에 대한 보통의 연구들이 갖는 일반적 한계 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피해자 연구가 갖는 특수한 한계를 동시에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ABCC의 초창기 연구를 과학사라는 입장에서 다루고 있는 Lindee(1994)는 이 무명의 생존자에 대한 과학 연구에 초점을 두어 그 특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은 이들은 과학자들이나 의학 분야의 연구에서 코드 번호나 사례, 개체, 피폭된 정도로 분류된 기준 등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과학 연구에 서 하나의 무명의 자료일 뿐이다. 그녀는 ABCC과 같은 과학연구들이 생존자들의 고통을 하나의 과학적 사실로 만들어 내는 것을 라투르의 ‘번역’으로 해석한다.
이제 이렇게 ‘번역’된 과학 연구의 결과들은 정책과정에서 거의 유일하게 통용되는 사용 가능한 공공지식을 만들어낸다. 생존자들에게 그들의 몸에 몇 십년간에 걸쳐 천천히 보이지 않는 내적 (역학적) 변화를 ‘일으킨 혹은 일으킬 그 무엇’은 과학 연구에 의해서만 가시적이 고 실재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생존자의 고통이 과학적 사실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이 새 로운 강력한 언어는 과학 연구에 한정된 곳이 아닌 다른 먼 곳의 작업자들의 손으로 넘어 간다. 그리고 그 언어는 특히나 히바쿠샤의 경계를 구성하는 데 있어 나름대로 해석되고 사 용된다. 이제 공식적, 비공식적 상황에서 이 히바쿠샤의 경계를 만드는 과학의 언어들은 특 정한 권위와 신뢰성을 내포하거나 주장하는데 사용된다. 히바쿠샤라는 경계를 구성하는데 있어, 그리고 그 히바쿠샤 내에서도 ‘특별’한 어떤 이들을 구분해내어 그 경계를 정당화하거 나 부정할 때 특히 이 과학의 언어가 핵심적으로 등장한다. 경계를 부정하거나 논박하거나 혹은 자신들도 거기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려는 입장에 서있는 다른 사람, 그리고 그것과 완 전한 대척점에 위치한 경우에도 사람들은 그에 필요한 과학을 소환한다 (Lindee, 1994:256).
65) 과학적 의견과 정책적 판단의 상호작용에 있어서는 다음 절에서 ‘특별피폭자’와 ‘원폭증’ 그리고 ‘원폭 체험자’ 범주를 통해 그 경계의 구성과 침식,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치와 과학이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 용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